[인물로 보는 역사의 전환점] 위인 안중근과 위인전의 안중근

0
285

위인 안중근과 위인전의 안중근

김대호(근대사 분과)

  ‘항일’, ‘애국’의 상징으로서의 안중근은 하얼빈 의거 이후 소식을 전해들은 한국민들이 일제의 침략과 억압 속에서 ‘한국 독립’에 대한 희망으로 가꾸어 간 것이다. 특히 안중근은 상상이 아닌 현실의 인물이었으므로 근대의 인쇄매체를 통해 더욱 구체적이고 시각적으로 대중들에게 전파되었다.

  안중근에 대한 사진이나 사진엽서는 일제의 감시 하에서도 비밀리에 유통이 되었다. 강점 직후인 1911년 7월 조선총독부 경무총감의 지시로 작성된 문건에서도 안중근의 그림엽서는 반일 감정을 가진 인물들의 집에서 발견되지 않는 곳이 없으며 ‘배일자(排日者)’ 안태국 등의 무리는 안중근의 사진을 복사하여 벽에 걸고 존숭의 뜻을 표하였고 남자만이 아니라 경신여학교 졸업생 홍은희(洪恩喜)는 안중근의 초상을 자수 놓아 가슴 속에 품고 다녔다고 하였다.


<그림 1> 옥중 안중근사진(출처 : 문화재청 진주성지킴이 카폐 http://cafe.cha.go.kr/yum4908)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1926년 금호문 밖에서 경성부회 평의원을 죽인 송학선도 거사 3년 전에 안중근 사진을 본 후 자신도 그 같이 되기를 소원했다고 밝혔다.

  이제는 더 이상 부르지 않지만 안중근에 대한 노래도 유행했다. 그 중 1930년대 유행하던 것을 하나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숫자놀음의 하나로 “어린 아희들의 XX사람을 욕설한 노래”였다.

一에XX(일본)놈의
二XXX(이등박문)이란 놈이
X千XXX(삼천리강산) 집어 삼키랴다가
四신에게 발각되어
五사할놈이
六혈포에 맞어서
七十도 못된놈이
八字가 긔박하야
九치 못하고
十字架에 걸텻다.

(출전 : 天台山人, 「朝鮮歌謠의 數노름」, 『동광』 제29호, 1931.12. 삭제된 내용은 추정함)

  상당히 재미있고 기발하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을 상징한 노래였다. 당시에도 이 노래에 대해 “XX의 모 중대신(重大臣)이 조선인에게 피살된 뒤에 생긴 노래인 만큼 불과 수십 년의 역사를 가졌을 뿐이나 확연히 걸작”이라고 평가하였다.

  이처럼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안중근에 대한 기억의 상속은 사진과 노래를 통해 계속되었고 그는 일제시기 내내 여전히 항일의 상징으로 추앙되었다. 안중근에 대한 사진 한 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국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정의 원천이었고 그를 기리는 노래는 스스로를 가둔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안중근의 이미지는 점차 그 뜨거움을 상실하며 현실과 분리되어 갔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능동적으로 만들어진 생생한 안중근 이미지는 점차 생동감을 잃고 박제화되어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추상적 이미지로 재생산되고 보급되었다. 마치 일본의 수신교과서에 나오는, 이를 계승한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인물처럼 덕목만이 남아 있다.

  이런 안중근에 대한 이미지는 현재에도 아동들의 위인전에 탈색된 채 유통되고 있다. 안중근은 한국의 위인 가운데 가장 많은 위인전을 갖고 있는 인물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안중근은 각종 위인전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그를 다룬 아동용 도서만도 약 150종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런 많은 수에 비해 내용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는 초기 안중근 위인전이 몇몇 작가에 의해 계속 양산되고 이후 동화작가들이 큰 변화 없이 이 틀을 받아들이며 하나의 전형으로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대상 연령이 낮을수록 분량이 적고 그림이 많으며 기존의 전래 동화적 성격을 내포하며 창작적 성격을 강하게 가진 위인동화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위인동화의 구조를 분석하면 안중근의 출생, 어릴 적의 삶이 전설처럼 묘사되며 각종 일화가 창작된다. 다수의 일화는 상투적이며 정직, 용기, 지혜 등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각종 덕목과 관련되어 있다. 창작된 일화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과도하게 교육적 측면에 염두를 두고 있다.

  사냥을 잘하는 안중근이라는 부분에서 동물을 죽이는 잔혹한 모습이 상상될까 염려되어 안중근이 사냥을 즐기지만 함부로 짐승을 죽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짐승만 사냥총으로 한 번에 아프지 않게 죽인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대부분 죽인 동물의 그림은 멧돼지라는 우연한(?) 공통성을 보인다.


<그림 2> (출전 : 글 강숙인, 그림 이영원, <안중근>, 프뢰벨. 2004)

  한 도서의 말미에 실린 독서지도에서는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가 모두 지옥에 가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안중근은 한 사람을 죽였으니 지옥에서 잠시만 지내고 천국에 가고 이토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므로 영원히 지옥에 머무는 것으로 서술되기도 한다. 이처럼 ‘살인’은 ‘죄’라는 도덕가치에 혼동을 피하며 이토 처단의 정당성을 교육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이토의 잘못을 매우 자극적으로 강조하며 음흉하고 잔악한 이토의 그림을 편집하여 이토는 ‘악(惡)’이라고 각인하는데 많은 할애를 하고 있다. 이는 ‘단지(斷指)’, 혈서한 태극기, 이토 처단 장면 등 시각적이고 자극적인 부분과 연결되어 안중근이 가진 여러 일면 중 특정 부분만을 기억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의 가치관, 평화사상 등 추상적인 부분은 서술되지 않거나 동떨어져 나오게 된다. 안중근이 계몽운동에 참가한 사실이나 공판 과정은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경향 중의 하나는 안중근이 시기적으로 오래된 것일수록 안창호의 연설에 감명을 받아 계몽운동을 펼치고 해외로 가는 것처럼 묘사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최근 김구가 주목을 받으면서 안중근이 안창호의 영향을 받았다는 내용보다 김구와의 깊은 관계가 있다는 식으로 서술되는 것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안중근 유묵 중에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가 유독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데 혹시 이 유묵이 위인전 전체 흐름에서 보면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은 가져본 적은 없는지?

  ‘국가안위를 마음 쓰며 애태운다(國家安危勞心焦思)’, ‘나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爲國獻身軍人本分)’, ‘이익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見利思義見危授命)’, ‘장부가 비록 죽으나 그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가 위태함에 임하니 기운이 구름과 같도다(丈夫雖死心如鐵義士臨危氣似雲)’ 등과 같은, 안중근의 이미지에 더 부합되는 유묵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안중근 인격의 고매함을 강조하여 이를 교육적으로 차용하고자 의도한 것인지, 위인전을 처음 접하는 어린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내용이라서 그런 것인지, 혹은 출판업계의 전략일수도 있겠다는 허무맹랑한 의혹도 떠오른다.

  도처에서 등장하는 안중근이 사형을 당할 때 원하는 소원을 물었더니 지금 읽는 책을 마저 읽는 것이라고 했다는 일화는 과문해서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의아스럽기만 하다. 내가 알기로 안중근이 마지막으로 바랐던 것은 ‘동양평화 만세’ 삼창이었으나 전옥에 의해 거부당했다.

  안중근에 대한 창작위인동화가 여전히 주류를 이루지만 그를 다룬 어린이 위인전, 또는 어린이 위인전에 가까운 위인동화의 간행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안응칠역사』나 동양평화론을 어린이 독자가 읽기 쉽게 다듬거나 역사관련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부록이나 배경설명 등이 강화하는 기획이 눈에 띈다.

  또한 최근에는 그동안의 아동용 위인전에 대한 반성시대적 요구에 따라 역사다큐라는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논술, 통합적 사고 향상을 내세우며 글의 분량도 늘어나고 이전에 비해 내용적 수준도 올라갔다. 그러나 여전히 안중근의 삶보다는 잡다한 지식을 전달하면서 위인전의 본래 목적이라고 할 위인의 삶에 대한 감동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에서는 도리어 멀어지는 듯한 점은 앞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중근 위인전은 대부분 유아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각 위인의 삶을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행위중심, 결과 중심의 서술에 치우치게 되고 아이들의 눈에 맞추고 흥미를 끌기 위해 자극적인 그림을 배경으로 동화작가들이 재미와 교훈을 전달하며 각종 일화를 창작하게 된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교육과정의 보조자료로서 기획되어 마치 잘 포장된 종합선물세트처럼 되어 버렸다. 독자는 위인과 서로 거리를 두고 그들의 삶을 감상하는 태도를 가지게 만든다. 지금의 위인전으로는 안중근의 삶을 제대로 알릴 수 없고 도리어 오해만 낳을 수도 있다.

  안중근에 대한 획일적이고 상식적인 가치를 전달하며 그 가치의 현재적 내용이 상실된 경우도 존재한다. 국가에 대한 충성, 애국심,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지만 이를 실천하는 방법과 내용이 빠져 있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것, 청소년을 위한 것일수록 기획이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무기획적이고 과거의 것을 별 생각 없이 그냥 따르기만 하고, 도리어 위인의 삶을 왜곡하거나 자신의 개인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현재와 같은 위인전은 도리어 그 위인에 대해 관심을 멀게 한다.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 자신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사람처럼 독자를 몰고 간다. 지금 상태로는 삶에 대해 방황하고 갈등하며 고민하는 독자, 특히 청소년들에게 위인전은 현실적인 답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위인전은 사실 아동용 보다는 삶의 가치를 고민하는 청소년을 위한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적합하다고 판단된다.

  안중근이 죽을 때까지 ‘한국독립’과 ‘동양평화’를 바라며 의연히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적인 갈등이나 고민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로운 행동을 한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이 오직 ‘사형’ 뿐이라는 것에 그는 큰 분노를 하였다.

  “그야말로 머리가 깨어지고 쓸개가 찢어질 일이 아니냐. 내게 무슨 죄가 있느냐, 내가 무슨 죄를 범했느냐”며 분노의 감정에서 고뇌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크게 깨닫고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나는 과연 큰 죄인이다. 다른 죄가 아니라 내가 어질고 약한 한국 인민 된 죄로다”라고 생각한 후 의심이 풀려 안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안중근이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한 부분이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간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더욱 마음 깊은 곳을 울린다. 하늘로 올라가 신화가 되어버린 영웅보다, 자신의 시대, 삶, 가치에 대해 진지하고 그 난관, 역경, 한계를 타파하고자 시도하고 두려워하고 좌절하기도 하는 희로애락이 살아 있는 인간이 그립다.

  전지전능하며 완전한 선이 아닌 인간, 그래서 더욱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존재, 그리고 한 사회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의지, 그게 위인의 존재 가치가 아닐까 싶다. ‘어질고 약한’ 존재가 역사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꿨던 ‘평화주의자’ 안중근의 바람이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