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추가 파병을 둘러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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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추가 파병을 둘러싼 논란

이라크 추가 파병을 앞두고 다시금 논란이 심각하게 일고 있다. 그 계기는 김선일씨의 피살 사건이다. 처음 추가 파병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도, 오래  동안 논란을 벌이다 16대 국회 말기에 겨우 추가파병동의안이 처리되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추가 파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추가 파병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각계각층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원(院) 구성을 마치기도 전에 새로 당선된 17대 국회의원 50명이 추가파병동의안의 재심의를 제안했고, 시민들은 연일 김선일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촛불집회를 열면서 추가 파병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추가 파병 철회를 요구하고 있으며, 민주노총은 파병 철회를 전면에 내걸고 파업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추가 파병은 이미 결정된 일이라며 파병 준비를 서두르고 있고, 한편에서는 피살에 대한 보복과 응징을 위해서라도 군대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김선일 씨 사건 후에 테러에 대하여 굴복하지 않겠다고 한 대통령의 성명을 시의적절하고 ‘국민과 국제사회로부터 찬사를 받아 마땅’한 발언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추가 파병은 단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라크에 한국군대를 더 보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반대한다면 또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이라크에서 볼 때 한국군은 어떤 의미와 성격을 갖는가? 주권국가에 들어가는 군대는 동맹군 아니면 침략군, 둘 중의 하나이다.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이라크에 파견되는 것이 아니므로, 한국군은 미군의 일부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국군은 이라크에게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역사상 이라크에 수도 없이 침입한 침략군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요청에 따라 파견되는 한국군은 침략군의 일부를 구성하는 부대일 뿐이다. 이름을 아무리 ‘평화’나 ‘재건’이라고 붙여도, 그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알고 있듯이 이라크는 고대 문명이 발생한 유서 깊은 지역에 자리 잡은 나라이지만, 그 역사는 피침과 피지배로 점철된 비운의 역사이다. 이른바 인류 4대 문명 발생지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에 있는 땅’이라는 뜻으로, 국토의 중앙부를 서북에서 동남으로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평원을 가리킨다. 이곳을 중심으로 가장 오래된 인류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수메르 문명이 발달했고, 바빌로니아 제국이 건설되었다. 그리고 이라크 북부에서는 아시리아제국이 발흥했다.

고대에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이라크의 역사는 그러나 순탄치 않았고, ‘신이 부여하였다’는 뜻의 바그다드는 여러 차례 이민족에게 정복당하고 때로는 폐허로 변했다. 동양과 서양의 길목에 위치하므로, 동양으로 진출하려는 서양세력이나 서양으로 진출하려는 동양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 중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시아 정벌에 나서 이 지역을 정복한 것이 서양세력의 동양 침략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13세기 중엽 몽골이 유럽을 정복하면서 이라크지역을 정복하고 바그다드를 초토화한 것은 동양세력의 서양 침략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라크는 7세기 중엽 이슬람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8세기 중엽에 시작된 압바스왕조 때 바그다드가 수도로서 이슬람의 중심지가 되어 번영을 구가하였다. 그러나 12세기에는 셀주크터키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13세기 중엽부터 14세기 후반까지는 몽골 훌레구 가문이 지배하는 칸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그 후에는 한 세기 가까이 티무르의 지배를 받았으며, 흑양부의 수령 카라 유숩 등의 투쟁 결과로 티무르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라크의 피지배 역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아서, 1534년부터는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 지배는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무려 400년 가까이나 계속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이라크의 비극은 계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투르크와 전쟁을 하던 영국군이 페르시아만에 상륙하여 1917년 바그다드를 점령하였다. 이로써 투르크의 지배에서는 벗어났으나, 세계대전이 끝났음에도 독립하지 못하고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또다른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영국의 지배에 반항하는 독립운동을 끈질기게 벌인 결과 1932년에야 독립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400년 만에 세운 독립국가는 공화정이 아니라 파이잘을 왕으로 한 왕국이었다. 이라크가 독립했음에도 영국은 완전히 물러가지 않고 계속 군대를 주둔시켰다. 석유를 노린 제국주의의 간접 지배였다. 이라크가 독립국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갖춘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10여 년이 지난 1958년 7월, 카셈 장군이 지휘하는 일단의 청년장교들이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수립한 이라크혁명을 통해서였다.

어느 국가에서나 그러하듯이 군사혁명 후의 이라크 정정(政情)은 불안했다. 계속된 정치소요의 와중에 1968년 바스당이 집권하였고, 1979년 사담 후세인이 등장하여 독재권력을 행사하며 정국은 안정되었다. 후세인의 집권에는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지원이 컸다. 그러나 후세인은 집권 후 군비를 강화하며 이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였다. 1980년의 이란 침공과 1990년의 쿠웨이트 침공은 그 구체적인 행위였다.

이러한 행동은 미국을 자극하였고, 마침내 1991년의 걸프전쟁을 초래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은 곧 석유 공급지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유엔의 지지를 받은 미국은 이라크에 전쟁을 선포했다. ‘사막의 폭풍’으로 불린 최신예무기를 동원한 미국의 전자전 앞에 이라크는 패배했고, 그 결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강대국의 제재를 받게 되었다. 후세인의 패권 추구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고, 경제제재로 이라크 경제는 파탄났으며, 이라크 인민은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라크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침공은 일련의 피침 과정의 하나이다. 이라크인들은 이미 기원전부터 침략자들에 맞서 싸웠고, 대부분의 역사를 침략자들과의 전쟁으로 기록했으며, 지금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전의 침입자들과 다른 점은 미국이 땅을 접하지 않은 대양의 건너편에서 온 제국이라는 점과, 그 목적이 영토와 인민의 정복이나 무역통제권의 확보가 아니라 석유 자원의 확보에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전쟁이나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의 이유 때문에 벌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개 전쟁의 이유는 복합적이다. 미국이 제시한 이라크 침공 이유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처음에는 이라크의 테러리즘 응징이 침략 사유였다. 즉 9  1〮1 테러의 배후에 이라크가 있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유포하면서 침략의 명분을 만들었다. 그러나 체니 부통령이 밝힌 대로 이라크가 9. 11테러에 연루되었다는 증거는 없었고, 이라크와 알카에다가 협력관계를 구축했다는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라크가 대량 파괴 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위험하다는 이유를 침략의 명분으로 제시했다. 유엔사찰단을 보내 면밀히 조사했음에도 대량 파괴 무기가 발견되지 않자, 미국은 후세인 치하에서 이라크 국민들이 당하는 고통을 해소하고 민주주의를 전파한다는 것으로 침입 이유를 바꾸었다. 그래서 전쟁 이름도 ‘Operation Iraq Freedom’이란다.

이렇게 침입의 이유를 바꾼 것은 결국 진정한 사유가 되지 못하는 것을 이유로 삼으려다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침입의 정당성이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 동안 미국이 제시한 침공 사유는 모두 근거가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고, 미국이 공식적으로 제시한 침략 이유도 이라크 침입의 진정한 이유가 아니라는 점이 명백해졌다.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여 무엇을 달성하려 했을까?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에서 대통령특별보좌관을 지내며 안보와 대테러리즘정책을 관장한 리처드 A. 클라크는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통해 달성하려 한 목적으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 걸프전 이후에 후세인이 비축한 대량 파괴 무기의 회수, 이라크의 군사적 위협 제거를 통한 이스라엘의 전략적 위상 강화, 민주주의 전파, 이라크를 견제하기 위해 12년 동안 주둔하면서 반미 감정만 부추겨 온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미군의 철수, 사우디아라비아 이외에 친미 아랍 산유국의 확보가 그것이다.

그러나 대량 파괴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전략적 위상을 강화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미군을 철수한다는 것은 부수적인 목적이라고 하겠다. 민주주의 전파라는 구실 역시 이라크 침입의 목적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을 무력으로 다른 주권국가에게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할 인권이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철저히 유린된 것을 보면, 적어도 점령지에서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운위할 자격이 없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진정한,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이외에 안정적으로 석유를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을 차지하려는 것이 이라크 침입의 제일 큰 목적이고, 직접 이유인 것이다. 클라크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간접적이고 장기적인 목적을 찾는다면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의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여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 기지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어느 나라나 국가 전략 목표가 있고, 국가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과연 미국은 전쟁을 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는가? 클라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오히려 그는 전쟁으로 인해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전혀 불필요한 이라크 공격을 감행해 ‘적’들의 입장을 강화해주었기 때문에 새로운 알 카에다가 나타나고, 그 세력이 점점 커져서 미국은 9․11테러 이전에 직면했던 위협보다 더 싸우기 힘든 ‘적’과 대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적실한 판단으로 생각된다. 이라크 공격은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이슬람세계가 새로운 증오의 이데올로기를 양산해 미국에 저항하게 된 것이다.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음에도, 그리고 무엇보다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관련이 없고 대량 파괴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이유는 무엇인가? CIA가 이라크의 대량 파괴 무기 생산 계획이 폐지된 것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등 정보체계의 문제점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부시 행정부의 기본 성격과 관련이 있다. 부시 행정부가 군산복합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은 누누이 지적되었다. 체니 부통령은 군비생산업체인 핼리버트의 최고경영자였고, 부시 행정부의 절대 지지층은 바로 군수산업가들이다. 전쟁은 군수물자의 소비와 생산을, 그것도 고가의 최첨단 무기의 확대 생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이라크 침공으로 미국은 위기를 맞고 있다. 침공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 국가와의 동맹관계가 손상되었으며,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예상 외로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사실상 미국군대는 한계상황에 다다랐다. 미국이 점령하고 있는데도 테러와 납치, 참수가 계속되고, 그 지역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근 국가로 확대되어 미국의 국제적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의 도움을 절실히 요구하는 까닭이다.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한국은 증파해야 하는가? 미국이 위기에 처한 것은 잘못된 전략을 채택하여 실행한 결과이다. 그 과정이나 결정에 동맹국인 한국은 동의하거나 참여하지 않았다. 한미 동맹은 기본적으로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공동 대응한다는 정신에 입각하여 체결된 것이지, 공동으로 침략할 목적으로 체결된 동맹이 아니다. 미국이 알카에다로부터 테러를 당했지만,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연관이 없음은 미국도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동맹의 정신과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동맹은 평화를 지향하는 동맹이어야지 전쟁을 일으키는 동맹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적인 한미동맹관계에 입각해도 한국이 반드시 파병해야 할 이유는 없다. 미국은 중요한 나토국가이지만, 한국보다 훨씬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토 국가들 가운데 파병하지 않은 나라는 얼마든지 있고, 파병했다가 철수한 나라도 있다. 이들 역시 동맹은 침략이 아니라 외적(外敵)의 침입을 공동으로 방어할 필요에서 체결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군이 이라크의 평화 회복과 재건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는, 우리의 기대일 뿐 이라크인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김선일 씨 사건에서 입증되었다. 평화와 재건군이라고 하지만, 이라크인들에게는 침략군의 보조군인 것이다. 실제로 한국군의 주둔 예정지인 아르빌은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이번 전쟁에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그러므로 평화와 재건이라는 명분을 가진 군대가 주둔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오히려 이곳은 쿠르드족과 이라크인들 사이에 종족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있는 분쟁 잠재지역이다. 오늘날 국가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 최대 민족인 쿠르드족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협조하면서 독립 내지 자치권 확장을 노리고 있고, 미국은 이라크 이란 터어키 등의 국경 산악지대에 광범위하게 거주하는 이들을 이용해 이란을 압박할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이 이 지역에 주둔하면, 미국과 이라크전쟁 과정에서 파괴된 시설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쿠르드족의 무장력을 재건하여 이라크 및 이란과의 갈등을 조장하는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군을 파견하여 실익(實益)을 얻을 수 있다는 이른바 실익론(實益論)은 매우 위험하고 안이한 생각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가시적인 실익은 한국 기업의 이라크 재건 참여와 석유의 안정적 확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라크 재건은 체니 부통령이 최고경영자였던 군납업체 핼리버튼이 주도하기로 이미 결정되었고, 한국 기업의 참여 보장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이 없으며, 이라크산 석유의 확보에 관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전우전략연구소의 제프리 레코드의 지적처럼 이라크전은 ‘전략적 실책’이며, 그로 인해 미국은 초강대국이 아니라 ‘초강력 망나니’로 취급받게 되었다. 이러한 전략적 실책에 한국이 동참하여 아랍인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을 이유가 없다. 정말로 한반도의 안정을 얻고 국익(國益)을 찾으려면, 파병 이외의 다른 방법,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군대 파견을 통해서만 이라크 재건을 돕고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이라크를 포함한 이슬람세계에 대한 진지한 이해와 협력 증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강력한 한국군은 피침과 피지배의 역사로 점철된 다른 국가를 지배하는 데 사용할 것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 확대하는데 사용해야 한다.(안병우, 한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