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평양성”의 역사적 배경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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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준(고대사분과)

영화 “평양성(平壤城)”은 “황산벌”에 이은 시리즈로서『삼국사기(三國史記)』의 본기(本紀)와 열전(列傳)에 등장하는 여러 기록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역사영화이다. 사실 “평양성”을 예전에 보았을 때 “황산벌”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실망했던 터라, 웹진위원회로부터 집필 제안을 받고 망설였다. 그러나 예전에 “황산벌”에 대한 글을 이미 작성하였고 “영상물로 본 고대사”를 기획했던 책임자로서 후속작업이라는 책임감에서 맡게 되었다. 따라서 이 글을 읽으려는 분들은 “황산벌”에 대한 글을 먼저 읽고 나서 읽는 것이 이해에 더 도움이 될 듯하다.


[그림1]  영화 “평양성”의 메인 포스터  ⓒ영화 홈페이지(네이버 블로그)

   영화 “평양성”은 “황산벌”과 마찬가지로 첫 장면에서 코믹한 터치로 백제 멸망 이후에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제목은 “평양성”이지만 평양성 전투만 다룬 것이 아니라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죽음부터 시작하여 고구려가 패배한 후 멸망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따라서 대상 시기는 첫 장면의 배경 부분을 제외하면 연개소문이 죽은 665년~668년 9월 정도라고 할 수 있고, 배경 부분까지 포함하면 당이 고구려와의 전쟁을 선포한 660년 12월∼668년 9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평양성 전투의 짧은 기간만 가지고는 사료의 부족으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어려운 측면도 있는데다가, 백제 멸망과 연개소문의 죽음 이후 국제정세 및 고구려 국내정세의 변화를 모르고서는 영화의 내면에 흐르는 주제의식을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백제 멸망 이후의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연개소문의 죽음 이후 고구려 국내정세의 변화를 설명함으로써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평양성”의 주된 이야기는 나당연합군과 고구려군이 대치하는 전투의 장면들이지만, 그 장면들 속에는 신라와 고구려의 국내정치는 물론 당시의 국제정세까지도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두 가지를 하나씩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평양성”에 등장하는 시기의 고구려 국내정치는 연개소문의 사망으로 인해 남생(男生)을 대표로 하는 온건파와 남건(男建)을 대표로 하는 강경파의 대립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연개소문의 집권기 동안에는 대당강경책을 지속하였지만, 그의 후계자였던 장남 남생의 입장에서는 장기간의 전쟁으로 피폐한 고구려의 상황을 타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결국 당과의 전쟁을 상당한 기간 중지하는 쪽으로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양성”에서는 연개소문이 죽으면서 정치는 남생에게, 군사는 남건에게 맡긴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그러한 정황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쿠데타로 집권한 연개소문이 정통성 문제를 없애기 위해 이전 집권세력의 대당유화책을 대신하여 대당강경책을 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남생의 지방 순행 중 쿠데타로 집권한 남건 또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그림2]  연개소문 사후 남생을 밀어내고 군권을 장악한 남건  ⓒ영화 홈페이지(네이버 블로그)

   이와 달리 남생이 연개소문과 달리 대당유화책으로 돌아선 것은 확실해 보이는데, 666년 당(唐) 고종(高宗)과 측천무후(則天武后)의 태산(泰山) 봉선(封禪)에 왕자 복남(福男)을 파견한 실질적 주체가 당시 집권자인 남생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남건의 집권으로 인해 당과의 갈등은 시간문제가 된 것이었고, 그에 대하여 기존에 남생을 지지하던 세력들이 당과 내통함으로써 고구려가 멸망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쿠데타로 인한 집권 자체가 당에게 전쟁의 명분을 내어준 사건이기도 하였으니, 이것 또한 연개소문의 집권 이후 당이 그것을 명분으로 645년 고구려 원정에 나섰던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평양성”에서는 남생과 남건의 대립을 축으로 고구려의 국내정세를 설명하다 보니, 보장왕(寶臧王)이나 여타 귀족들의 동향이 지나치게 축소된 느낌이 강하다. “황산벌”에서 의자왕의 권력 집중에 반발하는 귀족들의 동향이 잘 묘사되었던 것과 대비되는데, 아무래도 백제와는 달리 고구려의 상황이 사료 상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같은 시기 신라의 상황은 김유신(金庾信)과 여타 세력의 대립처럼 묘사되어 있다. 고구려 멸망 이후 당과의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김유신과 나당연합을 믿고 일단 고구려와의 전쟁에 집중하려는 여타 세력이 대립하는 형국인 것이다. 아마도 이 부분은 백제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군기를 어겼다는 이유로 신라 장수를 처형하려는 소정방(蘇定方)에 대해 항의하는 김유신의 모습을 보고 착안한 것 같은데, 실제 김유신이 일찍부터 나당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또 문무왕(文武王)과 김유신이 왕권을 두고 갈등하는 듯한 모습도 사료에서 실마리를 찾기는 어렵다.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황산벌”에서는 잘 드러났던 신라의 내부 갈등 같은 모습이 사장되어 버렸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 대신 그것을 백제 유민과 신라 지배층의 갈등으로 묘사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구려의 경우와 달리 전쟁 과정에서 보이는 신라의 내부 갈등은 사료 상으로도 그리 찾기가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다소 아쉽다.

   마지막으로 백제 멸망 이후의 동아시아 국제정세는 나당연합군과 고구려의 대립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백제 멸망 이전에는 나당연합과 고구려-백제-왜의 세력이 대립하는 구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와 왜를 연결하는 고리였던 백제가 멸망하고, 왜가 663년 소위 “백촌강 전투” 이후 점차 신라와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고구려는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개소문이 죽었을 때 고구려는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도 정확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나당연합군의 백제 공격도 향후 고구려 공격을 위한 후방 보급기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640년대 이래 연이은 당의 공격이 실패한 것은 보급의 문제로 장기전이 불가능하였다는 데에 원인이 있었다고 당에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고구려 공격에서도 공격의 주력은 당이고 신라는 보급부대의 역할을 하는 성격이 강하였다. 실제 661∼662년의 평양성 공격에서도 신라의 보급부대가 늦게 도착하자, 당군이 양식 부족으로 퇴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기본적으로 7세기 국제전에서 당은 고구려를, 신라는 백제를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백제와의 전쟁에서는 신라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는 당이 주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평양성”에서는 당군과 신라군 모두 이후의 나당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보니, 본래 공격의 주력이어야 할 당군이 전력 보존을 위해서 선봉을 신라군에게 미루는 눈치작전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적의 물자나 병력이 온존되어 있는 초반 전투에 선봉으로 서게 되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황 자체가 고구려와의 전쟁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당군과 미온적일 수밖에 없는 신라군이라면 이러한 묘사가 타당할 것인지는 다소 의문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제작된 “평양성”은 전작인 “황산벌”에 비해서 실망감을 주는 부분이 많다. 그것은 개봉 당시 흥행성적의 참패는 물론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가혹하였던 점으로 이미 드러났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더라도 크게 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역사적 배경의 검토 전에 몇 가지만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째, 도입부의 역사적 배경이나 신경전, 전쟁에서 출전 전의 의식처럼 “황산벌”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장면들이 많은데, 그 어느 장면도 전작만큼 임팩트 있지 못했다. 그것은 “황산벌”에 이어 다시 등장한 평민 ‘거시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동원 체제에 대한 묘사도 전쟁에 대한 백성들의 시각도, 백제 유민에 대한 신라의 차별도 영화 속에서 잘 다가오지 않는다.

   “황산벌”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 중 하나였던 김유신 캐릭터의 새로운 해석 또한 그 상태 그대로 나이만 먹은 모습인 데다가, 다른 인물들 중에서 “황산벌”의 김유신처럼 “평양성”에서 새롭게 해석된 캐릭터도 찾기가 힘들었다.


[그림3]  영화 속 백전노장의 김유신  ⓒ영화 홈페이지(네이버 블로그)

   둘째, 지나치게 코미디를 의식하다 보니 진지함과 코미디의 균형이 깨졌다. “황산벌”에서는 역사라는 소재가 주는 진지함의 무게와 코미디가 주는 가볍고 유쾌함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는데, “평양성”에서는 코미디가 진지함을 깨뜨리는 작용을 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구려의 식량 문제를 “쌀 공격”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부분도 진지함은 전혀 없이 코믹에만 집중한데다가 정작 그렇게 웃기지도 않았다. 전작의 코미디가 풍자 위주였던 데에 비하여 단순 코미디 비중이 높아진 결과가 아닌가 싶다. “평양성에서는 황산벌에서 보이던 날카로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역사 영화라면 역시 풍자가 필요하다.

   셋째, 가장 큰 문제는 감독이 지나치게 과욕을 부린 탓인지 너무나 많은 요소들을 집어넣고 그것들을 적절히 배치하지 못함으로써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가 잘 전달되지 못한 것이었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지나치게 다양하고 많은 양념이 주재료의 맛을 없애버린 데다가, 양념의 배합 또한 적절하지 못해 실패한 요리인 것이다.


[그림4]  영화 속에서 백성의 입장을 대변했던 거시기(위)와 갑순이(아래)  ⓒ영화 홈페이지(네이버 블로그)

   드문드문 일종의 반전(反戰) 같은 것도 보였고, 거시기와 갑순이의 결혼을 통해 남북통일을 꿈꾸는 듯한 모습도 보였던 데다가, 전쟁은 지배층의 일이고 백성은 상관없다는 것을 통해 “백성을 위하는 정치라는 것은 다 기만이다” 같은 것도 보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집중되거나 몰입되지도 않았고 확 다가오지도 못한 채 나열되기만 한 느낌이었다. 신라와 당의 신경전이나 눈치작전 같은 것도 결국 다음 시리즈로 내정(?)된 “매초성(買肖城)”을 염두에 둔 포석이겠지만, 마찬가지로 나열된 것의 하나일 뿐이었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다양한 것을 복잡한 구조 속에 담아내기보다는, 한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데에 효과적인 만큼 선택과 집중을 하거나 주재료와 양념을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였다.

*이 글은 영화의 공식 스틸컷을 저작권법에 맞게 인용하였습니다.*

※ 영화 스틸컷 출처 : http://blog.naver.com/comic_bat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