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발표회 후기 – “1950년대 사회주의 블록과 북한: 국제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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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후기 –  “1950년대 사회주의 블록과 북한 :국제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강명(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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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북한에 관심이 많습니다. 북한 지도자의 현지지도가 뉴스에 나오고, 아파트에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지, 사람들이 먹는 밥이 무엇인지가 화젯거리가 됩니다. 헌법 조문의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내용처럼, 통일을 당위적 과제로 여겨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한국사회에 비치는 북한의 모습은 종종 선입견의 잣대에 따라 왜곡되어 있습니다. 색안경을 벗고 보고자 하는 경우에도 단순히 현상을 소개하거나, 이론서의 문구를 도식적으로 인용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날 북한에 대한 정보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데, 이해의 정도는 그만큼 깊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통일인문학을 배우며 북한사 연구의 중요성을 절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대중매체에서 무심코 보는 북한의 모습에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사적 맥락들이 있습니다. 대중매체에 나온 모습뿐만 아니라 실제 제도 · 이론 · 생활의 영역 모두가 그렇습니다. 북한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면 오늘날의 북한을 보다 입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부하는 도중, 한국역사연구회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경희대 인문학연구원의 공동주최로 “1950년대 사회주의 블록과 북한 :국제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학술회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학술회의는 주로 1950년대 북한과 사회주의 블록의 관계 속에 일어난 사건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1950년대 북한은 한국전쟁과 전후복구, 정치적 위기와 사회주의 건설의 대고조를 거치며 자신들의 제도를 정비해 갑니다. 이 시기 북한과 사회주의 블록 국가들은 서로 간의 이해관계, 사회주의권으로서 연대의식의 사이에서 활발히 관계 맺었습니다. 발표를 통해 사회주의 블록과 북한이 맺은 관계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발표는 총 3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는 ‘한국전쟁과 북·중·소 관계’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첫 발표는 김선호 선생님의 “한국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의 재편과정과 북한·중국·소련의 갈등과 조율”이었습니다. 김선호 선생님은 ‘조선인민군’이 한국전쟁의 과정에서 경험한 2차례 대규모 부대 재편의 모습과 특징을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조선인민군’의 부대 재편 과정에서 북한과 · 중국 · 소련 사이에 벌어진 갈등과 조율을 각국의 이해관계와 전선 상황 등의 요인을 통해 분석했습니다.


문미라 선생님은 “1950년대 북중관계의 단면: 중국의 ‘항미원조운동’과 연변 조선인 사회”에 대해 발표해 주셨습니다. 문미라 선생님은 한국전쟁 당시 연변의 조선인 사회에서 진행된 ‘항미원조운동’의 양상과 특징을 소개했습니다. 특히 ‘항미원조운동’중 연변 조선인들이 보여준 특징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한반도 조국관’에 주목했습니다. 연변의 조선인들은 전쟁 초기 한반도를 조국으로 하는 조국관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항미원조운동’에 대한 열렬한 참여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조국관은 한국전쟁 중에 중국을 조국으로 하는 조국관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발표에서는 이러한 조국관의 변화 요인으로 한국전쟁 중 연변 조선인들이 중국에 가지고 있던 ‘채권자의식’이 사라진 점과, 중국공산당의 통제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연변 조선인들의 특수한 지위가 약화되었던 점을 들었습니다.


2부는 ‘북한에서 파견한 사람들, 북한으로 파견된 사람들’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우동현 선생님은 “북한의 전후경제복구에 대한 외부의 원조 및 유학생으로 본 1950년대 ‘국제주의’의 실상과 그 함의”라는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우동현 선생님은 형제국가의 원조라는 ‘국가’ 적 차원, 북한을 찾은 사람들이라는 ‘개인’ 적 차원, 사회주의권으로 간 북한 유학생이라는 ‘집단’ 적 차원을 통해 북한을 둘러싼 ‘국제주의’의 실상을 드러냈습니다. 북한과 다른 사회주의 진영은 국제주의라는 개념을 공유하며 상호관계를 맺고 교류하였습니다. 이러한 교류의 과정에서 서로가 공유하던 국제주의라는 개념이 ‘개인’과 ‘집단’ ‘국가’와 같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당사자들에게 다양하게 이해되고 실천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조수룡 선생님은 “전후 북한에서의 소련계 억압과 국적문제(1954~1958)”을 통해 정치적 측면에서 다루어진 소련계 억압의 문제를 사회문화적 측면, 구체적으로는 이와 연계된 ‘국적문제’를 중심으로 분석했습니다. 소련계 사람들과 북한사람들 사이의 사회문화적 차이, 그중에서도 조국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서로의 융화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소련계와 북한인 사이의 사회문화적 차이와 베타성은 북한·소련 간의 관계변화를 거치며 ‘국적문제’의 제기와, 소련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요인이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3부의 주제는 ‘사회주의 이론의 수용과 변용’이었습니다. 옥창준 선생님의 “해방 이후 북한 지식장에서의 사회주의 이론 수용과 스탈린 표상: 『근로자』기사(1946~1949)를 중심으로” 에서는 1940년대 북한의 사회주의 이론 수용 양상을 소련계의 활동을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는 소련군이 진주하며 냉전에 따른 정치적 질서가 형성되어 갔습니다. 발표는 냉전적 질서 속에 북한의 지식장이 영향을 받는 상황과, 소련계 지식인들이 사회주의 이론 점유 투쟁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또한 북한 현실과의 연계 속에 레닌과 스탈린의 사회주의 건설 이론·경험이 도입되고 소련과 스탈린에 대한 표상이 형성되는 양상을 다루었습니다.


박창희 선생님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의 혁명론 사이에서 –선전선동부문의 변화를 중심으로-” 는 1955년 4월 전원회의 이후 당내 사상사업과 관련된 소련계 숙청과 선전선동체계의 변화 양상을 소개했습니다. 발표자는 소련계의 숙청과 교양체계 개편이라는 상황이, 북한이 변화하는 대내외 조건 속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창조적 적용’을 비롯한 자신들 만의 고유한 입장을 천명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세영 선생님의 “1950-60년대 북한의 ‘문화혁명’ 개념의 변화와 사회주의적 근대화”는 1950년대 이후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개념으로 내세워진 ‘문화혁명’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이세영 선생님은 범 사회주의권에서 공유되었던 ‘문화혁명’ 개념이 북한의 현실 속에서 수행되는 양상과 그 변화과정을 소개했습니다. 북한의 문화혁명이 농촌 지역과 밀접히 결부되어 추진된 양상을 살펴보는 가운데, 1960년대 초중반을 거치며 사상혁명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문화혁명에서 분리되게 되는 과정과 요인을 분석했습니다.
학술회의의 각 부가 종료될 때마다 이에 따른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토론에서는 각 발표의 내용에 대한 학술적 질문 · 첨언과 이에 대한 답변이 오고 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표문의 내용뿐 아니라 1950년대 북한사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논의도 진행되었습니다. 발표와 토론을 보면서 북한이 신생 사회주의 국가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한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1940-1950년대뿐만 아니라 이후 시기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척도가 된다는 점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발표 중 들었던 인상 깊었던 표현이 있었습니다. 북한사 연구가 이번 발표를 통해 공개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입니다. 기존에도 북한사는 꾸준히 연구되어왔고 이에 따라 여러 성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큰 규모로 공개되어 논의된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보다 쉽게 문제의식을 공유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북한사 연구가 보다 활성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우리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