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발표회 후기 – 1950년대 동북아 안보체제의 변동과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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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발표회 후기]

1950년대 동북아 안보체제의 변동과 한반도


김수향(현대사분과)


일시 : 2013년 7월 6일 토요일 오후 2시~6시
장소 : 대우학술재단빌딩 7층 1세미나실
주최 : 한국역사연구회 현대 한국 군사반
발표 :
사회 : 박동찬(한양대학교)

1. 제네바정치회담 실패원인과 영향 –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을 중심으로 –
발표: 안정애(여성평화연구원)  토론: 박영실(한국학중앙연구원)
2. 1950년대 한국후방관구사령부(KComZ)의 창설과 해체를 통해 본 한국전쟁과 ‘후방’
발표: 이동원(서울대학교)  토론: 노영기(조선대학교)
3. 1950년대 중반 한국의 대미군사외교
윤시원(성균관대학교)  토론: 이현진(국민대학교)
4. 한국전쟁과 일본의 재군비 -『大陸硏究』를 통해 본 일본의 재군비 –
이상호(건국대학교)  토론: 박성진(한국학중앙연구원)

 



1953년 체결된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올해로 60년을 맞이했다. 그런데 정전협정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다소 무관심했던 이전과는 무척 다르다. 시내를 걷다보면 버스, 가로수에 부착된 정전협정 관련 국정홍보물을 접할 수 있고, 신문과 TV등 각종 매체에서도 심심치 않게 관련기사를 찾아 볼 수 있다. 정전협정에 대한 높은 관심은 ‘6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에서 기인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2013년 상반기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NLL(북방한계선)논란’을 그 배경으로 지목할 수 있다. 이제는 ‘주지하다시피’라는 용어를 써도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정전협정 체결과정과 내용에 대해 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은 ‘NLL논란’에서 파생되었지 정전협정의 역사적‧현재적 의미를 찾고자하는 데에서 비롯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소모적 논쟁 안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빠진 느낌이다. 이를테면 한국전쟁과 정전협정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고,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가와 같은 학술적 물음에 대한 해답은 물론 여전히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은 한반도에서 평화를 모색하기위해 1950년대로부터 어떤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가와 같은 현실적 문제제기는 묻혀버린 것 같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일정정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공동연구발표회가 열리는 대우학술재단으로 향했다.

지난 7월 6일 토요일에 열린 공동연구발표회는 ‘1950년대 동북아 안보체제의 변동과 한반도’라는 주제 하에 현대군사연구반 반원분들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준비된 발표된 총 4개로 각각 제네바정치회담, 후방관구사령부, 한국의 대미군사외교, 한국전쟁과 일본의 재군비를 다뤘다. 박동찬 선생님의 사회와 함께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발표는 안김정애 선생님의 〈제네바 정치회담 실패원인과 영향 : ‘미국무부한국정치회담문서’를 중심으로〉로 문을 열었다. 휴전협정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된 제네바정치회담은 휴전 이후 한반도 통일문제를 논의한 최초의 다자회의였다. 발표에 따르면 지위와 역할 강화, 대외적 선전을 위해 회담에 임한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재발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통일‧평화로 향하는 해결책 마련에 적극적인 것도 아니었다. 발표자는 미국뿐만 아니라 남·북한, 소련 등이 공통적으로 이러한 태도였다고 지적했다. 결국 회담은 성과 없이 막을 내렸고, 이는 평화적으로 한반도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막힌것을 의미했다.

발표회장에 오면서 가졌던 의문, 왜 휴전협정 60주년을 기념하는 오늘날에도 평화질서와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논의는 부재한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어렴풋이 찾을 수 있었다. 평화를 모색할 수 있었던 정치회담이 무위로 돌아가고 난 뒤, 남·북 간에는 협상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 적대감만이 증폭되었다. 그 결과는 불안정한 평화의 ‘60년’이었던 것이다. 발표를 들으며 제네바정치회담은 결국, 불안정한 휴전체제의 서막을 알린 공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발표는 이동원 선생님의 〈1950년대 한국후방관구사령부(KcomZ)의 창설과 해체를 통해 본 한국전쟁과 ‘후방’〉이었다. 최근 한국전쟁연구는 기억이나 민간인 구호 등 담론·사회사적 차원으로 그 폭이 확장되어, ‘한국전쟁에 대한 총체적 역사인식’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전쟁기 및 종전 후 후방지역을 관할했던 한국후방관구사령부(KcomZ)를 연구한 본 발표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한다. 선행연구가 없는 새로운 주제인 터라 필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발표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서(NARA)에 소장된 보고서들을 토대로 KComZ의 창설배경과 활동내역, 해체과정을 실증적으로 규명했다. KComZ는 1952년 7월에 창설되어 병참지원 업무에서 포로 관리, 빨치산 토벌은 물론 한국정부와의 관계 및 정치 관련 활동을 벌였고 1955년 6월 해체되었다. 발표를 통해서 ‘후방’이라는 개념을 매우 단순하게 사고했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KComZ의 업무범위에서 볼 수 있듯이 ‘후방’은 단순히 전선 뒷 편, 민간인들의 주거지역이 아니다. 빨치산 토벌과 같은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활발한 정치활동이 전개되는 역동적이며 복합적인 공간이었다. 관련하여 ‘한국정부와의 관계 수행’이라는 업무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서 발표자도 폭넓은 자료를 통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한 만큼 후속 연구가 기대된다.

짧은 휴식시간 이후에 발표가 계속되었다. 세 번째 발표는 윤시원 선생님의 〈1950년대 중반 한국의 대미군사외교〉였다. 60년 동안 징병제에 기반한 대규모 군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한국군의 ‘비결’이 미국의 對韓군사원조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발표자는 이러한 군사력증강‧유지 구조가 확고히 된다는 점에서 1950년대에 주목했고, 보다 세부적으로는 미국을 상대로 한 군사외교에서 협상 실무진들이 택한 협상방식과 미국의 군사원조가 한국군에 끼친 영향을 규명하고자 했다.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협상방식은 1954년 말을 기준으로 변화하는 데, 이전은 공세적으로 이후는 방어적인 성격을 보였다. 하지만 병력 상한선, 병력수준 유지에 대해서만큼은 한국정부는 일관되게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토론을 통해 외교적 차원에서 보이는 경향성에 얼마나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발표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토론에서 오간 질의응답을 바탕으로 보다 심화된 연구가 진행되길 기대한다.

네번째 발표는 이상호 선생님의 〈한국전쟁과 일본의 재군비-《大陸問題》를 통해 본 일본의 재군비〉였다. 아베 총리 취임 이후 보다 급격하게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사회와 일본의 헌법개정, 재무장 논의가 진지하게 논의되는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본 발표에 대한 기대가 컸다. 특히 일본의 재군비가 전개된 역사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동북아시아 질서재편의 기원에 대해 재고해야한다는 발표자의 문제의식이 깊게 와 닿았다.

한국전쟁 전후로 일본에서 경찰예비대, 보안대, 자위대 등의 군사기구가 창설되었는데, 일본은 재군비가 자신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고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 강조했다. 발표자는 1950년대 진행된 일본의 재무장이 과연 ‘비자발적’이었는가라는 의문을 표한다. 1951년 창립된 일본의 대륙문제연구소의 활동과 연구소 간행 잡지인 《대륙문제》의 내용을 보면, 재군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및 여론 형성을 목표했기 때문이다. 발표자의 표현대로 일본의 재군비는 ‘울고 싶은 데 뺨때리는 격’으로 진행된 것이고, 미국의 강요 이면에는 일본의 자발 또한 존재한다. 발표를 들으며 이러한 ‘자발’이 결국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 재무장 논의로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1950년대의 역사가 현실과 깊이 연동하고 있음에 다시 한 번 역사적 접근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가 인상 깊었던 것을 중심으로 발표를 요약했기 때문에 발표자의 의도를 오독했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각 발표들이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어 발표회 동안 머리가 아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양한 주제와 관심이 표출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군사에만 시야를 한정하지 않고 동북아, 안보, 경제, 군사 등 폭넓은 지역과 범위를 오가는 사고를 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종합토론에 참석하지 못하고 급히 발표회장에서 나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앞으로 관련 주제에 대한 발표자들의 후속 연구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