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발표회 후기 – 조선후기 부세수취 관행과 ‘중간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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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발표회 참관후기]

 

조선후기 부세수취 관행과 ‘중간비용’

박세연(중세2분과)

 

□ 일시: 2015년 5월 30일 토요일 1시
□ 장소: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첨단강의실
□ 주최: 한국역사연구회·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 후원: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0. 총론: 조선후기 재정구조 상의 ‘雜費’
발표: 손병규(성균관대학교)
1. 조선후기 전결세 징수와 중간비용 연구
발표: 임성수(고려대학교)
2. 조선후기 拯劣米의 부과와 징수제도의 변화
발표: 문광균(충남대학교)
3. 대동법 시행 이후 중간비용의 처리양상과 科外別役의 문제
발표: 최주희(한국학중앙연구원)
4. 조선후기 糧餉廳의 둔전수취구조의 변화와 雜費 운영
발표: 박범(건양대학교)
5. 조선후기 환곡 이자의 수취와 추가징수의 문제
발표: 문용식(전주대학교)


 

조선후기 왕조국가의 중앙정부는 영정법과 대동법, 균역법 등 일련의 제도 개혁을 통하여 16세기 이래로 계속되었던 부세 수취 상의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일정한 성과를 거두어 부세의 정액화가 이루어졌지만, 법으로 규정되는 정규비용 외에 부세 수취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정규비용은 계속 존재하거나 혹은 증가함에도 불과하고 그 운용은 각각의 재정 운영 주체들에게 맡겨졌다.

기존의 이러한 비정규비용에 대한 인식은 주로 ‘수탈’과 ‘문란’으로 설명되었다. 이른바 봉건사회 해체기에 벌어진 모순이나, 지방관 및 이서층 개인의 탐욕 등 부정적 요소로만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앙재정사반의 구성원들은 이를 조선후기 재정운용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재정원을 직접 부여 받은 재정 운영 주체들이 부세 수취 과정에서 증가하는 비용, 즉 재정운영을 위한 ‘중간비용’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중간비용이 발생하고 공식화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조선후기 경제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위하여 연구발표회를 준비하였다.

연구발표회는 손병규 선생님의 총론 외에 총 다섯 분의 선생님들의 발표로 이루어졌다. 다섯 개의 발표는 전세, 대동세, 환곡 등에서 발생하는 중간비용을 중앙, 지방, 군문 등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었다. 손병균 선생님은 총론에서 정규세원과 대비되는 ‘잡비’에 관한 기존의 부정적 연구성과를 소개하고 중앙집권과 개별분산의 이중적 재정시스템의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시하셨다.

첫 번째 발표는 임성수 선생님의 「조선후기 전결세 징수와 중간비용 연구」였다. 여기서 임성수 선생님은 전세 부분의 중간비용이 존재하였던 원인과 이에 대한 조선왕조의 대응을 살펴보았다. 점차 줄어드는 전세 수입을 만회하고자 왕조정부는 지방 군현에서 관례적으로 걷어 오던 전세에서의 중간비용 중 중앙상납에 필요한 부분을 『속대전』에 포함시키면서 공식화 시켰다. 그러나 지방에서 설정한 중간비용은 규례가 없었기 때문에 지방의 자의적 운영에 따른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었고, 18세기 후반부터 지방 차원의 중간비용 역시 문서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19세기 농민들 역시 중간비용을 당여한 부세운영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밝혔다. 이를 통해 전세의 중간비용은 무명잡세나 과외수탈과는 다른 중앙과 지방의 행정 유지를 위한 필수적 비용이었으며 때문에 중앙에서 중간비용의 설정과 운용은 용인하였음을 밝혔다.

두 번째 발표는 문광균 선생님의 「조선후기 拯劣米의 부과와 징수제도의 변화」였다. 증렬미는 중앙상납 과정에서 바다나 강에 침몰한 선박에서 건저 낸 쌀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부는 손실된 재원을 보존하고자 침수 지역의 백성에게 증렬미를 나누어주고 새 쌀을 납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상당수 증렬미는 식용으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일부 지역에 수취가 집중되기도 하였으며 사공과 격군들에게 폐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앙정부로서는 손실된 재원을 보충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증렬미의 分給改色 방식을 손댈 수 없었다. 많은 논의 끝에 증렬미의 분급방식은 점차 변화해 가는데 특히 정조 13년에는 채제공의 주장으로 증렬미를 쌀 대신 돈으로 대신 징수하도록 결정되었다. 이는 중앙정부가 재정손실을 감내하면서 백성의 폐단을 덜겠다는 損上益下의 재정이념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발현한 것이다. 철종대에는 한글은 더 나아가 증렬미를 백성에게 분급하지 않고 시가대로 판매하여 상납시키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통설과는 달리 조선후기 중앙정부는 중간비용의 운용에서 ‘損上益下’의 재정이념을 19세기까지 고수하여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발표는 최주희 선생님의 「대동법 시행 이후 중간비용의 처리 양상과 科外別役의 문제」였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많은 과외별역이 대동세 안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지방 군현의 잡역세와 공인들이 져야 했던 과외별역은 그대로 존재하거나 오히려 늘어나기도 하였다. 이 발표문에서는 대동법 시행 이후 중간비용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살펴보면 그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각종 운송비와 수수료, 잡비와 잡역에 대한 비용이 대동세에 흡수되면서 백성의 부담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서울의 정부관서와 지방의 행정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중앙정부의 경우 지출경비의 증대에 비하여 새로운 세원을 창출하기 어려웠고, 이에 정부는 조달상인들에게 무상의 과외별역을 부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18세기이후 계속되는 ‘순막’이라는 형태의 대공인정책은 조달상인에 대한 과외별역의 수탈적 요인을 인지하면서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네 번째 발표는 박범 선생님의 「조선후기 糧餉廳의 屯田 수취방식 변화와 잡비 운영」 이었다. 양향청은 호조의 소속 기관이면서 훈련도감의 군수를 지원하는 기관으로 많은 둔전을 운영하고 있었다. 문제는 둔전이 많이 지역에 펼쳐져 분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호조에서는 수령을 통한 본읍수취와 별장 파견을 고민하던 중 결국 수령수취제를 선택해 중간비용을 최소화시키고자 하였다. 동시에 호조는 세액을 낮은 수준에서 고정시켰다. 문제는 수입은 낮은 액수로 고정된 반면 지출은 유동적이라는데에 있었다. 이에 호조는 잡비를 줄이려고 노력하였으나 지방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잡비가 설정되었으므로 그것까지 통제하는 것을 불가능했다. 이를 통해 중간비용 문제의 원인 중 하나인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알 수 있었다.

다섯 번째 발표는 문용식 선생님의 「조선후기 환곡 이자의 수취와 추가 징수의 문제」였다. 환곡에서 징수하는 10%의 이자는 지방의 주요 수입원이었으나 이를 중앙정부의 회계장부로 보내 기록하는 회록을 시행하면서 지방의 재원이 잠식되는 문제가 일어나고 지방관은 환곡 이자 외의 추가 징수를 시도하게 되었다. 문용식 선생님은 환곡 이자의 추가 징수가 지방관이나 서리의 사리보다는 지방재정의 확보라는 측면과 온전한 환곡미의 보관을 위하여 이루어졌음을 밝히면서 지방의 입장에서 환곡제도를 이해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토론의 종합토론의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근호 선생님의 사회 아래 권기중, 조영준, 김덕진, 유현재, 김태웅 선생님께서 참여하셨다. 토론의 내용은 각각 발표문의 소소한 부분도 있었지만 크게 3가지 문제로 집중되었다. 첫 번째 문제는 잡비를 중간수탈이 아닌 중간비용으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잡비를 수탈로 보았던 기존의 문제의식을 극복하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조영준 선생님의 경우 ‘중간비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신중한 것을 주문하였다. 김태웅 선생님은 일상적 문란은 늘 야기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며 문제는 재정구조와 재정 운영을 나누어 접근하는 구조적 파악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두 번째 문제는 중간비용이 증가하는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였다. 김덕진 선생님의 잡비의 발생과 증가의 핵심 요인이 그 이전에 없었던 인건비의 지급에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인건비 지급의 역사적 의의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문제의식을 던지셨는데, 발표자인 최주희 선생님 역시 여기에 동의하면서 계속 논의되어야 할 과제임을 확인하였다.

세 번째 문제는 19세기를 어떻게 바라볼까의 문제였다. 발표자들은 19세기까지 중앙과 지방에서 중간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다는 데에 동의하였다. 그런데 그렇다면 왜 19세기의 민란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잡비=중간비용의 문제를 단순한 수탈로 보아서는 않되겠지만 동시에 19세기 사회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하 고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중간비용의 문제는 과거 선학들의 연구에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설명할 때, 봉건국가의 무능과 지배계급의 부패상을 상징하고 이들을 대신할 새로운 계층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해 주로 연구되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국가가 19세기까지 끊임없이 제도적, 정책적 노력을 통해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며 중간비용은 그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된다는 것이 본 발표회를 통해 크게 밝혀진 것 같다. 본 연구발표회를 통해 적어도 조선후기 경제사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문제의식이 환기되었으며 토론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화두로 삼아 구제적인 연구를 계속되리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