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발표회 후기 – 설화로 본 고대 習俗의 원형과 변형, 성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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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발표회 후기

설화로 본 고대 習俗의 원형과 변형, 성과 속

권준(고대사분과)

 

한국 고대 사회는 안타깝게도 아직 많은 부분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이것은 다른 문제라기보다 사료의 절대적인 부족이라는 어쩔 수 없는 요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설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진실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고대 사회의 모습을 알려주는 아주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설화를 연구하는 것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설화를 주제로 고대사분과의 습속반이 발표회를 갖는다는 소식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고대의 종교와 신앙, 풍속관련 자료를 연구해온 습속반의 입장에서 설화는 본인들에게 딱 어울리는 옷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고대사를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발표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후기까지 쓰게 되었다. 선생님들의 연구성과와 학술회의의 모습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걱정이 앞서지만, 그러지 않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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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학술회의는 총 2부로 구성되었고 총론과 5개의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으며, 종합토론이 없이 매 발표가 끝날 때 마다 지정토론자와 발표자가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1부는 ‘지역 설화에 나타난 성과 속’이라는 주제로 이준성 선생님이 진행을 맡았고 습속반 반장님이신 박미선 선생님의 총론과 2개의 발표로 구성되었다.

 

총론에서는 본 학술회의의 모든 발표가 ‘설화’를 공통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이를 통해 당시 사회의 제도 및 습속의 형성·전승과정, 그리고 거기에 투영된 당대인들의 사고나 세계관을 고찰하는 것이 이번 발표의 목적임을 밝혔다. 이와 더불어 역사학계가 역사학적 방법론을 통해 설화를 적극적으로 분석·활용해야 하고 타 학문분야의 축적된 연구 성과와 연구방법을 폭 넓게 받아들일 필요성을 언급했다. 개인적으로 주제에서 습속은 한자로 쓰고 성과 속은 한글로 쓴 것이 그 의문이었는데, 총론에서 그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바로 설화 속에서 성과 속은 性과 俗, 혹은 聖과 俗이라는 복합적 의미를 갖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이렇게 표기했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 나니 이러한 표기법은 설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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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이 끝난 뒤 본격적인 발표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김지영선생님이 ‘고구려의 혼속 – 한씨 미녀 설화를 중심으로’ 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고구려 초기부터 6세기까지 혼속의 특징은 혼인논의-부모허락-동숙-후일 남가(男家)로의 이동이라는 절차가 엄격히 존재하다가 6세기 이후에는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거나 간소화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토론을 맡은 김선주 선생님은 우선 한씨 미녀와 안장왕이 결합하는 공간이 백제지역이기 때문에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점과 발표자의 주장이 점차 혼속에서 의례가 강조되고 있다는 일반적인 이해와 배치된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한씨 미녀 설화에 대한 검증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이 주제는 필자도 관심이 많았는데, 혼속의 변화에 여성의 지위나 역할의 변화가 반영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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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발표는 윤성재 선생님의 ‘종교적 鬼의 세속화 – 동경 豆豆里를 중심으로’ 였다. 그에 따르면 신라시대의 비형랑은 대문을 지키는 문신(門神)이었는데, 고려시대에는 왕가수라는 곳에서 제사를 받는 두두리(豆豆里)라는 이름의 목랑[木郞(=木魅)]으로서 경주, 즉 동경(東京)의 지역신으로 변화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 지역 출신인 이의민이 권력을 잡고 개경으로 두두리를 모셔오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이를 상경이라 표현한 것이 흥미로웠다. 이러한 두두리 신앙은 이의민 사후 점차 소멸되었다. 이는 지역신이 자신의 지역을 버리고 상경하여 권력과 직접 연계되면서 세속화된 결과이며, 지역을 지키고 조선시대까지 국가제사를 받았던 나주의 금성산신과 비교된다고 하였다. 두두리 신앙은 곧 종교적 귀(鬼)가 세속정치에 도전하였다가 실패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는 고대 습속에서의 성(聖)과 속(俗)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한다. 토론자인 옥나영 선생님은 먼저 비형이 이미 신라시대부터 문신과 더불어 목랑(=두두리)로 존재하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한 금성산신과 두두리에 대해 전자는 수호신이고 후자는 첩사로서 그 의미와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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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을 가진 이후 안정준 선생님의 진행으로 2부가 시작되었다. 2부의 주제는 ‘신라인의 세계관에 나타난 성과 속’이었으며, 총 3개의 발표가 준비되어 있었다.

 

2부의 첫 번째 발표는 고현아 선생님의 ‘신라 선덕왕대 영묘사 지귀설화의 수용 배경과 의미’였다. 고현아 선생님은 우선 지귀설화의 원형인 술파가설화가 수록된 『대지도론』이 진흥왕대 수입된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지귀설화는 『삼국유사』, 『대동운부군옥』에 실려 있으며, 두 기록 간의 차이는 신라의 시대적 상황과 정서가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설화 모두 영묘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덕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지귀 설화는 선덕왕 당대나 죽은 직후의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선덕왕의 안정적인 왕권 행사와 불사를 통한 신성성 강조, 그리고 선덕왕에 대한 지배층과 백성들의 우호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고 추정했다. 토론을 담당한 김경화 선생님은 책은 목적에 따라 다르게 쓰이기 때문에 오히려 『대지도론』이 가장 당대의 역사상을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여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담긴 술파가 설화가 변형된 지귀설화는 오히려 선덕여왕의 약점을 부각시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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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이현주 선생님이 “신라 ‘여인왕생’의 인식변화와 의미 – 『삼국유사』 욱면비염불서승을 중심으로 –”를 발표해주셨다. 그 골자는 당시 신라에서 여인성불에 대한 논의가 여왕에 한정되어 있었고 욱면은 여성의 모습을 버린 채 왕생한 것이었으므로, 욱면의 왕생이 주목받은 것은 그가 여성이기 이전에 노비였기 때문이며 그의 이야기가 설화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미타신앙이 수용되면서 관음신앙과 결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토론자인 라정숙 선생님은 우선 사료해석상의 문제를 지적했고, 욱면의 왕생이 주목된 이유는 석가의 제자 중에도 노예출신이 있었다는 점에서 욱면이 노비였다는 것과 더불어 여성이라는 점도 함께 작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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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발표는 박미선 선생님의 ‘虎女 설화의 전승과 신라인의 세계관 – 『삼국유사』 김현감호조를 중심으로 – 였다. 박미선 선생님은 이 발표를 통하여 김현-호녀의 설화는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지만 『삼국유사』에 수록된 것이 그 원형으로 대략 원성왕대 즈음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설화 속에서 신화적 세계관과 불교적 세계관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당시 신라인은 다양한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고 정리했다. 토론자 이정빈 선생님은 『삼국유사』의 김현-감호조에서 인간을 우위에 두는 관점이 발견되기 때문에 이 설화는 이미 이른바 ’비대칭적 세계관‘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이보다 앞선 원형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여기서 나아가 당대에 신화적·불교적 세계관이 공존했다는 주장에 공감하면서 그 내용이 다양하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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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술회의에서 종합토론이 없어서 개별적인 논의에 그쳤다는 점과 백제와 가야가 빠졌다는 것은 아쉬웠다. 그러나 여러 지역과 시기에 걸친 설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성과들을 도출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의미가 있다. 특히 사실과 허구의 구분에서 벗어나 설화에 나타난 당시의 사회상과 고대인의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점이 주목된다. 이러한 시도는 설화의 해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술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될 습속반의 연구를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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