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발표회 후기 – “메타 역사로서의 3.1운동사 연구, 3.1운동 인식사의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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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인식이 변화해온 과정’, 3.1운동의 메타역사를 밝히다.

 

한승훈(근대사분과)

 

“2016년 가을, 일련의 연구자들이 모였다. 모임 구성원들은 다양하였다. 1989년 연구회 창립과 함께 펴낸 『3·1 민족해방운동 연구』(청년사, 1989)의 집필자와 기획자, 그 책을 밑줄치고 읽은 자, 그 책의 존재조차 몰랐던 재수생과 중학생, 그리고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이들까지 모였다. 전공도 천차만별이었다. 3.1운동을 전공하는 연구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3.1운동 공동연구는 이렇게 시작하였습니다. 그 시작은 기존 연구 성과 검토였습니다. 1년여 공동 연구를 통해서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역사는 항상 새롭게 쓰여 진다. 우리에게 너무나 자명한 듯 보이는 108년 전 3.1운동도 역사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서술되어 왔다.”

 

<메타역사로서의 3.1운동사 연구>, 2017년 11월 18일 연구발표회의 주제는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이번 발표는 3.1운동에 대한 인식이 시기마다 기억 주체마다 달랐다는 사실과, 그 이유를 추적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각 발표자들이 정리한 발표 요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최우석(성균관대 박물관)은 「3.1운동, 그 기억의 탄생」이란 논문에서 3.1운동 연구에서 기본 사료로 사용되어온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일관계사료집(1919),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 김병조의 『한국독립운동사략 상편』(1922)을 비교 분석하였다. 그 결과 각각의 사료는 저술 목적을 각각 달리 하고 있었기에 서술 내용이 매우 달랐다는 점, 특히 박은식의 저서는 그에 앞서 간행된 『한일관계사료집』의 수치와도 참여인원에서 38만 명이나 차이가 나며, 일제 측의 공식 발표 기록보다 참가인원이 적게 추산된 지역도 54개 소나 달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해방 직후 좌익과 우익 간 투쟁에서 사회주의자들이 3.1운동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는 이후 북한 역사학의 전개 과정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박종린(한남대 역사교육과)은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의 3․1운동 인식」이란 논문에서 해방 직후 사회주의자들이 3.1운동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밝혔다. 그 결과 한국의 민족운동이 ‘갑오농민전쟁’ → 3.1운동 → ‘10월 인민항쟁’ 으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운동은 결국 ‘민주주의 조선’ 건설이라는 목표를 향한 과정이었다고 결론지었다.

홍종욱(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은 북한에서 발간된 주요한 단행본 통사책들을 검토하여 북한 역사학자들이 시기에 따라 3.1운동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 왔음을 규명하였다. 초기에는 1910년대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3·1 운동을 자리매김한 정도였으나, 1960년 전후에는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하여 3·1 운동이 부르주아 민족운동이라고 하여 근대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주체 사관이 전면화된 1980년대는 김일성 가문을 중심으로 3.1운동을 서술하고 역사학이 형해화되었다고 보이는 2000년 이후에는 ‘조선민족제일주의’에 입각한 서술이 이루어졌다. 홍종욱은 이와 아울러 남한 역사학자들이 한편에서는 북한 역사학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 역사학을 인용하는 현상도 지적하였다.

김정인(춘천교대 사회교육과)은 최근 몇 년간 가장 뜨거운 논쟁적 주제인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관계를 다루었다. 그는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성 인식의 정치성과 학문성」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스스로 3.1운동의 계승자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고 이러한 인식이 임시정부 해체의 위기 때마다 부각되고 해방 직후에는 한국민주당 등 우파의 ‘임시정부 법통론’으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또한, 1980년대 이후 역사학계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강조하면서도 그 내부에는 3.1운동 → 임시정부 → 대한민국이라고 하여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강조하는 흐름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일개 독립운동 단체로 보고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별도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함께 만들어져 왔음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지원(대림대)는 「3·1·절 기념사를 통해본 민족정신의 구조화」라는 논문에서 역대 한국 정부가 3.1운동의 정신을 어떻게 강조하면서 ‘3.1정신’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어 왔는지를 검토하였다. 그에 의하면, 해방 직후부터 새로운 국민 국가의 주체가 누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좌익과 우익 정치세력은 3·1운동 정신의 해석을 둘러싼 싸움을 벌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는 3·1절을 국경일로 제정하고 국가의 공적 역사로서 3·1운동을 전유·기념하면서 ‘3·1정신’을 ‘국민 정신’ 고양의 전략으로 활용하였다. 이후 ‘3.1정신’에 대한 해석은 국가주의라는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이승만, 장면, 박정희 등 정권 핵심세력마다 강조하는 구체적 내용이 변화되어 오늘날에 이르렀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발표 후 종합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형식은 개별 토론이었지만, 이번 종합토론에서는 ‘발표자-토론자’의 끈을 느슨하게 하였습니다. 토론자 선생님들께서는 본인이 맡으신 주제 이외의 다른 발표자에 대한 토론도 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맡으신 도면회 선생님의 역할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했던 연구발표회였습니다.

 

토론자 선생님은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지만, 거기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3.1운동’이라는 단일한 사건을 입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나의 사실을 입체적인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은 역사학을 전공자에게 매번 닥치는 큰 숙제와도 같습니다. ‘입체적 관점’은 수많은 난관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체적 관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를 무시했다가는 나도 모르게 ‘사건’에 대한 편향적인 시각을 갖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3,1운동은 더욱 그렇습니다.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당대 독립운동세력들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좌우 모두는 자신들의 정치 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3.1운동을 자의적으로 기억하거나 전유하였습니다. 자의적인 기억과 전유는 전쟁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그렇기에 3.1운동 당시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과, 그 사실을 후대인들이 어떻게 재창조했는가의 문제는 서로 다른 주제인 듯하면서도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토론자 선생님들도 사실 자체에 대한 확인과 아울러 사실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를 아우르는 관점에서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류시현 선생님께서는 모두에게 익숙한 3.1운동의 기억을 재검토하였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익숙함’이 때로는 ‘오류를 정설로 만드는 현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본 연구회의 취지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윤덕영 선생님께서는 3.1운동의 대중적 지향이 사회주의 운동 세력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해방 이후 현실로 다가온 토지개혁을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김재웅 선생님께서는 현실정치에 북한 역사가 종속되었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북한의 3.1운동에 대한 인식변화가 갖는 의의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박찬승 선생님께서는 법통성과 정통성의 개념 정의를 토대로 임시정부의 법통성과 정통성을 설명하였으며, 학계에서 임시정부의 정통성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이태훈 선생님은 3.1운동에 대한 다양한 기억들이 국가주의적 전유에 의해서 포섭되었는지, 아니면 갈등 혹은 대결의 양상이 반영되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아울러 3.1운동의 기억 과정에서 무엇이 배제되었는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플로어에 계셨던 여러 선생님들도 좋은 말씀들을 해 주셨습니다. 김주용 선생님께서는 3.1운동의 기억들은 다만 조선인들만이 전유하지 않았으며, 외국인들도 이를 기억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였다는 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홍구 선생님은 북한 역사학에서 3.1운동을 인식해온 흐름을 조망하는 과정 속에서 남북한 역사학계의 인식을 조망해야 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임경석 선생님께서는 3.1운동 연구가 학계의 연구성과로 매몰되는 경향을 경계하면서, 당시 3.1운동의 가슴 설레는 생동감을 글로서 담아내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번 연구발표회는 서울역사편찬원과 공동으로 주최하였습니다. 김우철 원장님께서는 공동 연구발표회의 의미를 부여하시면서, 학회와 편찬원이 공동으로 학술회의를 주최하는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하시기도 하였습니다. 학회와 공공 연구기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학술회의를 준비하는 모습이 기대되는 말씀이셨습니다.

 

연구발표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8년 3월 24일 또 한 번의 연구발표회가 있습니다. 과연 3.1운동의 원인이 일제의 무단통치였을까? 3.1운동 직전은 호황이었다는데? 일본은 3.1운동을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3.1운동이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를 비롯한 약소국 민족해방운동에 영향을 주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정형화된 3.1운동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준비 중에 있습니다.

제목 : 메타 역사로서의 3․1운동사 연구, 3․1운동의 연구사 재검토
일시 : 2018년 3월 24일 토요일
장소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다른 연구발표회의 후기보다는 딱딱하게 글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는 다 필자의 능력 부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안함을 전하오며,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렇습니다. 한 달에 한 번 3.1운동 기획위원회 회의가 열립니다. 구성원이 다양하기에 어찌 보면 경직된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봉숭아 학당을 연상하기도 합니다. 재미있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글로서는 다소 진지하게 그려냈음을 이해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인다면, 저희 기획위원회에서는 3.1운동 총서 출판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번 겨울 동안에는 매주 토요일에 각 권 필자 선생님들이 모여서, 총서 집필 회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총 5권으로 구성된 총서의 큰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권 : 메타 역사로서의 3.1운동사 연구>
<2권 : 사건과 목격자들>
<3권 : 권력과 정치>
<4권 : 공간과 사회 경제>
<5권 : 사상과 문화>

 

2019년 2월 출판을 목적으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저희 총서가 완성된다면, 오수창 회장님께서 축사에서 말씀하셨던 바와 같이, 『1894년 농민전쟁연구』 (총 5권, 역사비평사) 출판 당시 연구회의 활발했던 공동 연구 분위기를 재현하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리오며,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