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정도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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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꿈

하원호(근대사 1분과)

원래 TV의 역사 드라마란게 정치적 상징조작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전두환씨가 쿠데타를 했을 때 각 방송이 줄을 지어 만든 드라마가 이성계였고, 와이에스의 개혁이 한참일 때 조광조가 인기 끌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기억한다.

요즘 『용의…』란 드라마도 대권주자들의 각축과 절묘하게 시점이 맞아 떨어지면서 인기가 계속 떨어질 줄 모른다. 연횡합종하는 600년전 정치적 파워게임이 지금의 정치판과 너무 흡사하다는 세간의 관심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필자처럼 역사로 밥빌어먹고 사는 사람도 어떤 땐 드라마 본 사람들에게서 한 수 배울 정도이다.

정도전이란 인물도 덕분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어 버렸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미 대권경쟁에서 탈락한 탓에 앞으로의 관심을 계속 끌지는 못할 것같다. 그러나 요즘의 대권주자나 600년전의 경쟁자들처럼 피나는 파워게임을 한 인물 정도로만 정도전을 기억한다는 것은 곤란하다. 쿠데타의 주모자는 이성계였지만 한낱 무인에 불과한 이성계를 움직여 조선을 건국하고 조선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든 인물은 바로 정도전이었다. 그래서 정도전은 술만 한 잔 거나해지면, “한고조(유방)가 자방(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자방이 한고조를 이용했다”면서 자신이 이성계를 이용했다는 것을 유방과 장량의 관계에 빗대어 말하곤 했다.

『태조실록』에 실려 있는 정도전의 졸기(卒記)에 의하면 정도전의 외조모는 승려와 여종 사이에 태어났다고 한다. 이 외조모는 우씨의 첩이 되었고, 그 딸이 바로 정도전의 어머니였다. 정도전의 처 역시 첩의 소생이었다. 그래서 정치적 대립이 있을 때마다 정도전은 반대 세력에게서 출생에 대해 끊임없는 비난을 받았다.

정도전의 부계도 원래 한미한 향리 집안이었지만 그의 아버지 정운경은 요즘으로 치면 법부부 장관 정도되는 형부상서의 벼슬까지 지냈고 『고려사』 열전 [양리전(良吏傳)]에도 실려 있다. 조선후기쯤 되면 향리가 이 정도의 벼슬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정도전 역시 출생성분으로 봐서 벼슬길에 오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려말이나 조선초기에는 상대적으로 신분의 유동성이 많아 정도전이나 그의 아버지도 사회적 진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정도전은 이색의 문하에서 정몽주 등과 함께 유학을 배웠다. 스승인 이색이 대사성이 되는 바람에 순탄하게 벼슬길에 올랐으나 우왕 즉위후 권신이었던 이인임의 미움을 사서 전라도 나주군의 거평부곡으로 유배되었다. 여기서 그는 일상적으로 농부, 승려, 은거인사 등을 만나면서 민심의 동향을 접할 수 있었다. 그가 조준과 함께 권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토지개혁을 단행하게 되는 배경에는 당시 농민의 고충을 알고 있었던 탓도 있었던 것이다.

그 뒤 유배가 완화되자 삼각산 아래에서, 부평에서, 김포에서 서재를 열고 제자를 키웠지만 권문의 방해로 집이 뜯기는 수모를 당하다가 유배생활 9년만에 당시 함경도에 있던 이성계를 찾아가게 되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는 장면은 『용비어천가』에도 실려있다. 정도전은 태조를 쫓아 함주막(咸州幕)으로 갔다. 이 때 태조는 동북면도지휘사로 있었다. 태조의 호령이 엄숙하고 대오가 질서정연한 것을 보고 정도전은 은근히 말했다. “참 훌륭합니다. 이런 군대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이 때 이미 정도전은 이성계의 군대로 쿠데타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위화도 회군이후 정도전은 이성계의 최측근으로써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고려의 유신들을 모두 처단한 정도전에게 정치적 시련이 닥친 것은 국내가 아니라 국외에서였다. 정도전은 위화도회군 후부터 요동정벌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에 위기를 느낀 명나라는 정도전을 제거하려 했다.

핑계는 당시 명에 보낸 표전문(表箋文)이 경박하다는 것이었고 표문의 지은이로 정도전을 지목해 명에 들여 보내라고 했지만 정도전은 이 표문의 작성에 개입한 적이 없었다. 명의 황제까지 정도전을 ‘화의 근원’이라고 극언하게 된 데는 정도전의 요동정벌론이 배경에 있었던 것이다. 정도전은 병을 칭탁하고 명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지만 요동정벌계획은 더욱 적극적으로 행하게 되었다.

정도전은 강비의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내세워 방원 등과는 대립했는데, 요동정벌을 위한 군사력 강화를 빌미로 왕자와 공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군사지휘권을 박탈하는 사병혁파를 단행했다. 이에 반발한 이방원 일파의 역습을 받아 살해 당하고 말았다. 국내의 정치적 대립이 정도전을 죽음으로 몰았지만 그의 꿈이나 정치적 소신은 다른 정적들과는 달랐다.

그는 좁은 국내를 벗어나 요동땅을 경략하려는 스케일 큰 꿈을 가졌을 뿐 아니라 자신이 복종해야할 왕권을 오히려 견제하는 재상중심의 정치체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 군사 등 온갖 방면에 걸친 관심을 보여 주는 문집 『삼봉집』은 그가 결코 권력에만 눈이 먼 잔챙이 용이 아니라는 것을 그대로 증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