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용(龍)들의 건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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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龍)들의 건강법

하원호(근대사 1분과)

참여연대란 단체에서 선정한 이번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가장 나쁜 선거운동의 사례 10가지 중에 “김대중후보가 치명적인 병으로 약물에 의존하고 있다” (『한나라당보』)가 끼었다. 군사독재시절의 고난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김대중후보인지라 와이에스처럼 조깅이라도 하면서 “머리는 빌려도 건강은 못빌린다”는 ‘씰데없는’ 호언장담을 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대응하기가 만만찮은 흑색선전이었다. 하기야 건강만 하지 머리는 결코 빌릴 수 없다는 걸 ‘학실히’ 증명한 와이에스의 전례 때문인지 일반인들이야 “건강갖고 대통령하나”식의 시큰둥한 반응이어서 대세에 큰 지장은 없었다.

건강이 문제가 되어 왕위에 오르지 못할 뻔한 인물은 이미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했던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바로 그다. 경종은 친어머니 장희빈이 죽임을 당하는 어려운 상황을 당하면서 근심과 두려움이 쌓인 것이 병으로 되어, 한열증(寒熱症)으로 멍청한 상태가 된다든지, 앞뒤의 응대가 달라진다든지 하는 일종의 노이로제 증세가 있었다. 속설에는 장희빈이 죽을 때 이씨의 대를 끊겠다며 경종의 성기를 잡아채는 바람에 자식도 나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숙종은 말년에 노론의 영수격이던 이이명을 불러 경종의 ‘다병무자(多病無子)’를 걱정해 이복동생이던 연잉군, 곧 최무수리의 아들인 영조로 후사를 이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물론 이이명이 숙종을 만날 때 증인이 없었고, 더구나 이이명은 영조를 지지하는 노론쪽이어서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경종의 건강문제는 국정 수행 자체를 어렵게 했다.노론은 경종이 즉위한지 1년이 되지 않아 영조로 왕위를 잇는 세제(世弟)로 삼아 국정을 대리하게 하자고 주장하고 나왔다. 경종을 지지하던 소론은 이에 반발해 격렬한 정치적 파워게임 끝에 노론을 처단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경종이 재위 4년만에 죽음으로써 영조의 등장과 함께 노론이 재집권하게 되었다.

왕을 권력의 정점으로 하던 전근대의 왕조에서 왕의 건강은 사실 정치세력의 권력의 향배와 직접 관련이 있었던 탓에 『조선왕조실록』에도 왕의 건강문제에 대해서는 일상적으로 언급되고 있었다. 건강문제에 대한 신하들의 건의는 왕의 성향에 따라 좀 달랐다. 숙종처럼 여색을 지독히 밝힌 경우는 주로 여색을 삼가 건강을 조심하라는 식의 주문이 잇달았다. 다음은 『숙종실록』의 한 기사다.

지평 최계옹(崔啓翁)이 상소했다. “전하께서 ’30년간 몸이 고달프고 평소에 담화(痰火)를 앓아 날로 더욱 심한데, 어찌 구구한 약의 힘으로 효과가 있기를 바라겠는가?’라고 하시었으므로, 신이 생각하여 두 가지의 설(說)을 얻었습니다. 그 하나는 온갖 방법으로 보양하는 것이 모두 헛된 일이고 다만 조심(操心)하는 것이 요규(要規)요, 다른 하나는 천가지 처방과 만 가지 약이 혼자 자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혼자 자는게 남는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영조나 정조 같은 인물은 너무 밤늦게까지 국정에 빠지지 마라는 식의 일중독 경계에 대한 상소가 많았다. 원래 무엇이든 지나치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지만 왕이야 신하들이 견제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어선지 여러 가지 이유로 건강을 해친 왕들이 많았다.

텔레비전 사극 『용의 눈물』의 주인공격인 이성계나 방원이야 무인 출신들이어서 건강문제는 별로 걱정이 없었지만 그 후손들은 대체로 건강이 썩 좋거나 명이 긴 인물들이 드물었다. 세종같은 인물도 오랫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지만 말년에는 질병으로 크게 고생을 했고, 세종의 아들 중 가장 건강하고 담이 컸던 세조도 종기 때문에 전국 온천을 순례할 정도였다. 나라안 최고의 산해진미를 먹어대 비만이 일상화된데다 평민처럼 근육노동도 하지 않고 에어로빅도 않는 왕의 건강이 결코 좋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왕실의 건강법은 약제나 음식 섭취에 의한 것보다는 위의 최계응의 상소에서 처럼 주로 ‘조심(操心)’이었다. 조심은 글자 그대로는 과다한 것에 대한 절제를 의미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도인법(導引法)도 들어 있었던 것 같다. 도인법은 일종의 호흡법으로 요즘 유행하는 단전호흡과 비슷하다.

단전호흡은 물론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왕실과 귀족, 그리고 승려들의 건강 유지법이다. 그러나 굶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던 평민들이야 전근대 사회부터 1960-70년대 ‘중단없는 전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풀칠하기도 힘든 입 저 아래 보이지도 않는 단전같은 데 관심을 쏟을 리 만무였다. 비만이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원인이 된 80-90년대에 온갖 신비주의적 호흡법이 등장한 것은 음식문화가 거의 예전 ‘용들의’ 수준에 접근한 탓이기도 하다. 황모씨의 신바람 건강법이 기세를 떨친 것도 그의 독특한 화술, 캐릭터 덕택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먹고 살만해진 사회의 분위기를 탄 때문이다.

하기야 요즘처럼 쪽박찬 IMF시대의 건강법이 그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 신바람날 일도 별로 없고, 장바구니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는 시대에는 앉아서 비만이나 걱정하고 한가하게 호흡이나 고를 여가는 없다. 다시 예전 평민의 건강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열심히 일하고 뛰어 다니다 보면 건강이야 저절로 찾아 온다. 그래서 IMF시대의 생존방식과 건강유지법은 역시 “I aM Fightin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