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단군과 ‘웅비(雄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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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과 ‘웅비(雄飛)’

하원호(근대사 1분과)

근래 들어 역사연구자가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단군과 고조선의 문제이다. 1980년대 이후 단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면서 서점에서도 잘 팔리는 역사책으로 단군관련 서적을 들었다. 현재 한국사를 서술한 많은 역사책이 책 머리에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삼고 있고 이를 부인할 사람은 없다. 단군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하나의 역사공동체로서의 뿌리를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은 단군이 실존인물이냐 단군신화가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가 하는 논란은 이미 옛이야기가 되었고 단군왕검 이전에 1,565년간의 환웅의 시대가, 그 이전에 3,301년간의 환인의 시대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환단고기』), 이 주장이 많은 사람들에게 먹혀들어 가는 실정이다.

원래 단군에 대한 기록은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부터 나오고 조선시대에도 단군을 모시는 사당들이 지어졌지만 이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킨 쪽은 20세기 들어서의 대종교이다. 나철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이 교단의 단군 숭배는 나름대로 민족주의적 인식으로 기능해서 일제때 만주를 거점으로 한 초기 반일무장투쟁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 홍범도 같은 인물도 초기에는 이 계열에서 할동했다. 그러나 단군에 대한 인식이 민족해방투쟁의 노선의 일부만 된 것은 아니었고, 민족주의를 가장한 친일적 논리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앞서 들은 『환단고기』는 일본인들이 일역해서 역수입되면서 1970, 80년대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다. 『환단고기』는 단군조선의 역사를 간략히 서술한 [삼성기(三聖記)], 47대 2,100 여년에 걸친 단군조선의 편년사로서의 [단군세기], 그밖에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을 함께 묶은 것이다. 그 중 [단군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쓰여진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 책을 검토한 학자들의 견해로는 적어도 1920년대 이후, 또는 1940년대 후반에나 지어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연개소문의 조부 이름을 자유(子游)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1923년 중국 낙양에서 연개소문 아들의 묘지, [천남생묘지(泉男生墓誌)]가 발견된 이후 알려진 것이다. 이 책보다 좀더 서지학적 가치가 있다고 보여지는 『규원사화』는 한 때 학계에서도 책의 발문에 나오는 대로 숙종때 쓰여진 것으로 보고 실학의 역사관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되었지만 최근에는 1920년대 이후 만들어 졌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 밖에도 단군조선의 역사를 다루는 많은 책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두 책의 아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책들에는 근대사회에 들어와서나 사용된 ‘전세계’, ‘인류’ 등의 용어나 남녀평등론,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적 인식, 나아가 현대 지리학과 물리학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서술하기 불가능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언젠가 학자들이 이 책들의 내용을 그대로 믿는 단군숭배집단의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며 이 문제를 지적하자, 그들의 대답은 몇천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단군이 대단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 책들은 단군의 재위연대와 치적들을 서술하며 중국과 대등한 역사를 가진다거나 오히려 중국을 우리가 가르치고 정복했다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어 사실 여부와 관련없이 관심을 끌게 한다. 단군을 높이고 우리 역사의 유구함을 자랑하는 것은 그 자체로만 볼 때는 민족주의적 인식의 하나라 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근거없는 민족 자존의식은 올바른 민족주의가 되지 못하고 폐쇄적 국수주의로 전락한다. 국수주의는 일본군국주의, 독일의 게르만주의와 같이 파시즘의 근거가 된다. 이 책들이 유행하던 시점이 1980년대 이후 5공화국 이후의 폭압적 군사통치 때와 같다는 것은 우연일까.

그런데 이 책들을 폐쇄적인 민족주의라도 민족주의적 의식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이 책에서 설정되는 우리 민족의 적은 중국이다. 책이 쓰여진 시기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일제때거나 해방 직후이다. 그런데 전혀 일본에 대한 적대의식은 없다. 『규원사화』에서는 조상이 같은 만주족, 일본족과 연합해서 중국족을 제압하자고 한다. 이 논리는 이 책이 쓰여진 시기를 생각하면 만주족, 조선족, 일본족을 하나로 묶는 일제의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을 연상시킨다. 『환단고기』도 이 면에서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환단고기』는 우리 역사를 일본문화의 전통이나 신화와 세심하게 연결시켜 놓아 일제가 식민지말 민족말살정책을 쓸 때 사용하던 논리인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를 그대로 이을 소지가 있다. 실제로 『환단고기』를 일역하여 퍼뜨린 일본인 카시마(鹿島昇)는 일본의 극우사학자로 일본과 한국고대사의 연결성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얼마전 우리가 많이 쓰던 용어 중에 ‘민족적 웅비(雄飛)’라는 말이 있다. 한때는 ‘웅비사관’으로 불리던 이 논리는 군사정권 아래에서 관료와 군관계자들이 많이 쓰던 말이다. 그러나 ‘웅비’라는 용어는 일본이 19세기 조선침략만이 일본의 살길이라는 정한론(征韓論)이 대두하면서 쓰기 시작해서 군국주의시대에 반도로, 대륙으로의 ‘웅비’를 주장하는 침략적 황국사관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환단고기』가 일본에서 역수입되면서 우리에게 알려지고 집권층 쪽이 그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사용했다. 민족주의로 가장한 이 책들은 사실상 일본문화를, 그것도 황국사관의 침략적 사고를 우리에게 오염시키는데 앞장선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몇년전 국조로서의 단군숭배를 주장하는 쪽에서 단군성전을 지어야 한다는 데 대해 일부 기독교인이 우상숭배라고 반대의견을 내며 대립한 적이 있다. 그 결론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지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으니 기독교쪽의 승리로 끝난 것같다. 민족주의가 이미 한물간 것으로 여기는 기독교의 일부 종교적 보편주의쪽은 단군이 마귀라는 투서를 청와대에 넣고 단군을 국사교과서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군 숭배를 주장하는 쪽의 오도된 민족주의가 가지는 폐해도 문제지만 자신의 뿌리마저 거부하는 탈민족의식의 반역사적 사고도 우리 사회가 오랜 군사독재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데서 나온 부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