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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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이지원(근대사분과)

이 글은 근대사분과 이지원 선생님이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9773.html)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국정농단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살리려는 함성으로 확산되고 있다. 장엄한 시민들의 함성은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그 함성의 대열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11월1일 한국역사연구회 등 47개 역사·역사교육 학회 및 단체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규탄하고 국정 역사교과서의 중단을 요구하는 시국성명을 하였다. 연이어 시민사회와 역사교사들도 국정화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이미 7월에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할 수 없도록 하는 ‘역사교과용 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작년 11월3일, 많은 시민과 역사학계, 역사교육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리의 고시로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이 강행되었다. 그리고 고시를 발표한 지 이틀 만에 “단,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국사 과목은 2017년 3월1일부터 적용한다”고 수정 고시했다. 원래 지난해 개발된 2015 교육과정은 2018년 3월(중·고교 1학년 기준)부터 적용되도록 한 것인데, 정부가 역사교과서만 2017년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무리한 조치라는 비판이 거셌다. 교육부는 오는 11월28일 그 내용을 검토할 정당성도 없는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할 예정이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facts) 암기가 아니라 인과관계를 생각하여 인간 삶의 이치와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유엔에서도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를 세계 각국 시민들의 ‘문화적 권리’로 정의하고, 문화의 다양성·창의성을 위해 각 국가에 ‘하나의 역사교과서’는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한국에서 ‘하나의 역사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은 국제기준과도 맞지 않으며, 역사교육의 본래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그것이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결과라고 한다면 마땅히 그만두어야 한다.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영웅시하는 역사교과서를 만들고자 했던 것, 시대역행적인 역사교육과 퇴행적인 국정교과서 발행을 단지 대통령이 원한다고 강행했던 것은 민주주의의 합리적 제도와 상식을 거부하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국정농단이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시하면서 대통령이 ‘읽어보지 않아도 전체 책을 보면 그런 기운이 든다,’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고 한 말은 무분별한 개인 감상이었다. 그러한 무분별로 학계와 교육계 전체를 색깔론으로 매도하며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를 정치에 악용한 결과 나오게 될 국정교과서는 ‘최순실 교과서’라는 오명을 갖기에 이르렀다.

역사교육을 볼모로 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바로잡고, 역사교육의 퇴행을 막기 위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철회되어야 한다. 그것은 역사학자나 역사교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다. 오이시디 국가 최고의 자살률과 꼴지의 아동행복지수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작금의 국정농단을 기억하는 미래 세대에게 정상적인 국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당장 철회되어야 한다. “교과서가 발간되지 않으면 내년 학기부터 역사교육을 하지 못한다”는 교육부 장관의 말은 한갓 협박이며 궤변일 뿐이다. 지금 국정교과서 발행 작업을 중단해도 2017년에는 기존의 검정 교과서를 쓰면 되기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 혼란이 일어날 일은 없다. 지금이라도 국정교과서의 발행을 철회하는 것만이 역사교육을 볼모로 한 국정농단에 대한 사죄의 길이고, 미래 세대에게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대한민국을 회복시켜주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