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과 재해] 1960년대 재난사례 검토와 역사학의 역할 – 1963년 연호(燕號) 침몰과 1969년 콜레라 유행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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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현대사분과)

 

재난과 역사학

2014년 4월 16일 이후 2년 반이 지났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거리를 메우면서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다시 의문에 부쳐졌다. 청와대는 그날 대통령의 사정을 가리기에 급급하다. 머지않아 ‘거리의 심판대’에 오른 정권의 ‘전횡’과 함께 세월호에 관한 진실도 밝혀질 것을 기대하지만, 재난 대처 문제는 세월호만이 아니었다. 이듬해 2015년, 정부의 메르스(MERS) 대응에 대한 사전 대처 미흡과 그에 따른 결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과거의 재난 대응은 어떠했을까. 사고로 이름 붙여진 수많은 재난들은 그간 관리 소홀과 기술의 한계로 치부되면서 진지하게 검토되지 못했다. 원인도 모른 채 비명횡사했던 이들과 이들의 가족들을 신원(伸冤)하기 위해서라도 역사학은 재난의 연속이었던 현대사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300명이 넘는 국민들이 수장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세월호 참사와 답답한 마음만 가중시켰던 메르스 사태는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학살’과 다를 바 없었다. 역사학은 재난 사례와 안전관리체계의 형성과정을 검토함으로써, 분노와 무기력함과 단절하고 다가올 재난을 해결하기 위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직후 그동안 발생한 ‘사고’들을 검토한 연구들이 일부 출판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글은 최근의 재난들과 비교할 수 있는 1960년대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하여, 다시 주의를 환기시키고 고질적인 안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들을 모색하고자 한다. 시공간적 거리와 방역조건의 차이로 단순비교는 어렵겠지만, 1963년 연호 침몰은 50여 년 전이라는 시기만 다를 뿐 세월호 사건과 재난발생 원인이 매우 유사한 사례이다. 1969년 콜레라 방역사례는 국외로부터 유입·확산하는 유사한 대처과정을 거쳤다는 측면에서 메르스 대응과 비교할 수 있다. 두 사례 모두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실과 거리가 멀지 않다면 ‘정말 무엇이 문제였는지’ 처음부터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의 데자뷰: 1963년 연호(燕號) 침몰

1963년 1월 18일 목포와 연호리를 운항하는 정기여객선 연호(35톤)가 침몰했다. 목포항에서 2.5마일 거리의 영암군 가지도 앞바다였다. 1월 21일 정부는 인양을 위해 사고부근을 비상사태지역으로 선포했다. 풍랑으로 구조 및 인양작업은 원활하지 못했지만 일주일 후 선체를 인양할 수 있었다. 사고 직후 보도에 따르면 승객은 100여명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조사를 통해 최종 141명(140명 사망, 1명 구조)이 탑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고 이후 26일이 경과하였으나 64구의 시체는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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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연호 인양 장면( 「목포 해난사고-제2신-」, 『대한뉴스』, 1963.2.2.)

박춘식(朴春植) 교통부장관은 선박 문제가 아니라 “갑자기 불어 닥친 돌풍”이 사고원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1차 돌풍 이후 2차 돌풍이 선체를 조정할 시차 없이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풍랑과 선박조정에 책임을 두는 회피성 발언이었다. 교통부도 선체에는 문제가 없었고 조난원인은 풍파와 과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배에는 적재량을 초과하는 쌀 150가마가 실려 있었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근본적인 사고원인을 지적했다. “선체가 썩을 대로 썩어 있었는데 그를 취항케 한 당무자도 책임을 져야 될 일(「遭難原因이 엇갈려」, 경향신문, 1963.2.2.)”이라는 발표였다. 아울러 노후선박을 운항하면서 실제 승선인원에 대한 정확한 확인도 이뤄지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결국 관련 행정당국과 여객회사의 선박 안전관리가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책임자 처벌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연호는 세월호의 데자뷰와 같을 정도로 침몰 원인이 다르지 않았다. 특히 선박 정비, 과적과 정원 초과, 여객회사와 관계 당국의 운항 관리 미비, 재난 대처에 대한 행정당국의 자세는 한국사회가 오래 전 세월호 참사를 이미 겪었음을 말해준다.

 

목숨 보다 ‘국익’: 1969년 콜레라 유행

1960년대는 세계적인 7번째 콜레라 유행의 시기였다. 1969년 여름 동남아에서 콜레라가 창궐했고, 8월 필리핀에서 출항한 선박을 통해 콜레라균이 한국으로 들어왔다(「작년콜레라比서侵入 印菌株분석통보로結論」, 『동아일보』, 1970.8.19.). 콜레라 침입에 대한 공식보도는 9월 3일 식중독으로 진단된 괴질환자 발생 소식이었다. 확산지역으로 급파된 기용숙 교수는 괴질을 장염비브리오균으로 보면서도, 성상(性狀)이 뚜렷하지 않으니 우선 콜레라와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콜레라 비상방역대책을 중지하고 식중독 예방에 대한 조치를 취했다.

9월 6~7일 사이 이틀 간 괴질은 전북, 충남 전역에서 165명이 발생하였고, 전국 환자는 434명, 사망자는 30명이 되었다. 9월 9일 정희섭 보사부장관은 괴질을 “일단 콜레라로 생각하고 콜레라방역대책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음을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더불어 초기 비상방역조치 해제와 콜레라균 여부에 대한 확증에만 주력한 책임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9월 16일 서울에서도 콜레라 판정의 문제가 반복되었다. 보사부 국민보건연구원은 진성환자로, 서울시는 의사(疑似)환자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진성환자로 판명되면서 9월 18일 서울에서 5명의 환자가 확증되었다. 방역관계 기관 사이 책임소재가 얽혀 방역활동은 이뤄지지 못했다.

9월 14일 수재까지 덮쳐 콜레라는 경상남도로 확산되었고 오염지역은 44개로 증가하였다. 콜레라의 전국적 확산을 막기 어려운 상황에서야 보건당국은 미국 국제개발처(USAID)에 백신, 항생제, 소독약 등 지원을 요청했다. 방역당국은 9월 말부터 기온이 떨어지자 콜레라가 섭씨 11도에서 활동이 둔화되기 때문에 종식을 예상했으나, 간헐적인 확산이 계속되었다. 11월 4일 당국은 콜레라 종식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환자 1,396명, 사망 125명, 치사율 9.1%, 「「콜레라」완전퇴치 오염지구全面해제」, 『매일경제』, 1969.11.3.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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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콜레라 상륙(한국사진기자협회, 『한국의 보도사진: 제3공화국과 유신의 추억, 1967-1979』, 눈빛, 2013, 137쪽)

미국 국제개발처는 콜레라 확산 초기 한국정부에게 마닐라와 대만에 체재 중인 방역전문팀의 도움을 받을 것을 제안했지만, 한국정부는 거절했다. 콜레라가 국제적 관심을 끌어 국산품 수출이 제한될 것에 대한 우려가 그 이유로 지적되었다. 한국정부의 태도는 이듬해 같은 콜레라가 유행할 때 이낙선 상공부 장관의 발언을 통해서 나타났다. 그는 해외에서 콜레라가 발생하더라도 국익을 우선하여 외신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국가의 경제적 손해가 곧 국민의 손해가 아니냐(「先保障부딪친石公總裁」, 『매일경제』, 1970.8.18.)”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국익’은 국민의 생사보다 중요했고 국민은 ‘국익’에 종속된 존재로 이해되었다.

이를 비판하며 천관우는 수출을 중시하는 사람은 “자기나 자기의 子女가 콜레라에 걸려도 輸出目標만 달성되면 그만이라고 達觀한 사람들일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콜레라로 인한 수출액 감소수치를 추정하는 이들에게 전염병 확산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불필요한 비용 지출로 계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 또는 주변 사람이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고 생각다면 목숨 앞에서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이어서 그는 정보 공개 문제도 지적했다.

…콜레라 정도의 重大問題라면 國內新聞에 안 나도 國民이 알고 있다. 다만 알아도 막연히 알고 있는데 탈이 있다. 그러니까 不安이 생긴다. 이렇게 가다가는, 政府에서 하는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안 믿게 되지는 않을까, 그것이 정작 걱정이다…(「續·國内用 公論」, 『동아일보』, 1970.9.9.)

전염병 확산은 그 자체로 불안을 가중시켰다. 정부가 정보를 독점한 상황에서 방역활동이 효과적이 않다면, 정부시책은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전염병 확증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 충돌이 있더라도 방역당국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대응해야 했다. 정보 비공개에 의한 정부의 신뢰도 하락은 지난 메르스 사태에서도 대응 초기 감염상황에 대한 비공개주의 원칙에 따른 결과로 되풀이되었다.

 

안전사회를 위한 과제: 재난을 기억하는 방법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안전불감증’ 문제는 화두가 되었고 급격한 경제성장의 부작용과 이를 추동한 경제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반성이 요구되었다. 20여년이 지나 세월호와 메르스를 겪으면서 무엇인가 나아졌을 것이라는 기대는 무색해졌다. 더불어 지난 9월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동일본대지진이 한국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최근 한국의 재난대처능력에 비춰볼 때, 현대과학기술의 정점에 있는 원자력 기술의 관리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난관리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안전불감증과 현대과학기술에 의해 증폭될 재난을 방지해야 할 과제에 당면해있다.

한국의 안전시스템이 취약한 상황에서 재난대응 방안을 모색해나갔던 해외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1995년 고베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재난대응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었고, 2002년 간사이대는 인문학과 공학을 포함한 ‘사회안전학부’를 개설하여 ‘재난학’을 이끌고 있다. 재해에 대한 정부 대처문제, 안전시스템 작동여부, 사고초기 인력투입문제 등 관련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수용하여 한국에서도 최근 재난융합연구가 시도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재난대응시스템 구축만으로는 효과적인 대처를 보장하지 못한다.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과 함께 안전문화에 바탕한 한구사회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여러 안전장치의 총합으로서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할 때, 전체에서 하나가 빠지더라도 문제없다는 안일한 무책임함이 지금까지 재난을 확대시켜왔다. 세월호와 메르스와 닮은 50여 년 전 연호 침몰과 콜레라 확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재난을 어떻게 기억하는가’가 문제이다. 재난의 충격에 의해 재난대응시스템에 일시적으로 가시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재난의 위험성에 대해 무뎌지고 관료주의에 의해 안전관리비용은 축소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안전’을 전문가와 관료에게 맡겨두지 않고 시민들이 안전담론을 주도하여 한국사회의 안전감수성을 유지해야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재난을 기억하고 재난당사자의 자세를 갖아야 한다. ‘퍼블릭 히스토리(Public History)’는 이 같은 방향에 단서를 준다. 대중이 역사 생산의 주체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대중이 만드는 역사를 중시하며, 공동학습과 역사활동의 한 형태를 퍼블릭 히스토리라고 한다. 미국의 911테러 당시 직접적으로 관련 자료의 보존, 대중의 재난 기억과 회복을 위해 박물관과 아카이브 등과 연계하는 대중활동을 전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월호 기억저장소 또한 같은 맥락에 있어, 앞으로 공감과 치유의 역할을 통해 재난에 대한 기술적인 교육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연말 기사란을 채우고 있는 ‘올해의 사건사고’를 보면 기억하지 못하는 재난들이 너무도 많다. 기억하고 바꿔야 한다.

 

참고문헌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http://newslibrary.naver.com)

세월호 기억저장소(http://416memo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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