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위에 선 한반도

0
143

시험대 위에 선 한반도

 

한반도가 또다시 시험대 위에 올라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90년대에 ‘세상’이 다 변하였는데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꿈쩍 않고 ‘불바다’ 발언과 ‘핵개발’ 전술로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올 2004년 대한민국은 4.15 총선으로 또한번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해외 주요 언론들은 한국에 진보색채의 입법부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긴급 타전하였다. 국회의 어설픈 탄핵사태가 이라크파병이나 실업문제와 같은 현안을 압도하고 지지율이 극도로 떨어진 대통령과 소수여당을 급부상시켰다고 놀라고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야기한 국회 구 정치세력의 ‘의회 쿠데타’는 ‘국민’의 힘 앞에 불발로 끝나고, 어두웠던 과거와의 단절을 요구하는 민중은 그 ‘모오든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으라고 외치고 있다.

‘세계제국’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려는 미국과 일척건곤의 대결을 벌여오다가 이제 자신과 인민을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북한과, 미국 대외정책의 포로가 되어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기적’적으로 성장하여 이제는 기존 한미동맹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는 남한, 이 1민족 2국가가 공존하고 있는 한반도. 이 한반도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현실은 이상과 달리 여전히 불투명하고, 기득권층의 여력이 소진되지 않아 온갖 착시현상이 세상을 채우고 있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갈 길은 오직 하나임을 한반도는 가리키고 있다. 외국 언론이 보기에 이제 현안으로 남은 문제는 이라크 파병과 실업문제의 해결이다.

제국주의시대 이래 어느 한 가지 예외가 될 수 없겠지만, 냉전의 마지막 보루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사태를 보다보면 마치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느낌과 동시에 어떤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6.25 이후 전개된 북한의 사회주의 노선과 남한의 반공주의를 기조로 한 산업화․세계화 노선 간의 대립이 한 본보기이지만, 다른 한편 남한 사회 내부에서 전개된 정치적 격변 역시 예외가 아닐 듯싶다. 지난 2003년 대통령 선거 과정과 16대 국회의 대통령 탄핵사태 이후 전개된 일련의 정치적 대립 현상은 그 극단적인 예의 하나라고 하겠다. 일련의 과정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층들은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위와 같은 현상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작고한 동양사학계의 한 원로는 한민족의 특성이 한 갈래로 ‘정열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음을 말한 적이 있는데, 음미할만한 대목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 원로 교수는 원래 한민족의 전통은 다양하고 신축성이 있었는데 유교와 주자학을 받아들이면서 경직성을 보이더니, 반대로 뒤늦게 근대에 들어와서는 그것으로부터 탈피하여 서양화하는 데서 한국이 동양 삼국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들어 그 같은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문화에 대한 역사적 이해에 있어서는 정곡을 놓진 감이 없지 않으나 현대 한국문화 현상을 이해함에 있어 타당한 면이 적지 않다고 판단된다. 세계에서 한국처럼 미국적인 사회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변의 얘기 역시 마찬가지 지적인데, 여러 나라들을 여행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비단 문화적 현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실제 정치적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그런데 그렇게 극단을 추구해서 얻고자 하는 내용은 과연 어떤 것인가. 여기에서 민족운동의 대 본영이었던 신간회가 해산된 후 이역만리에서 보내온 단재 신채호의 일성을 참고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백척간두에 서 있는 민족의 현실이 당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1929년 정월 모 일간지에 실은 <랑객의 신년만필>에서 도덕(道德)이나 주의(主義)의 판단기준이 시비(是非)에 있지 않고 오직 인간의 이해(利害)관계에 있음을 천명하면서,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된다.”라고 하면서 그 노예성(사대주의)을 통렬히 비판한바 있다. 이 말 역시 한국 문화전통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지만, 일제하 민족의 독립에 매진해야 할 지식인들이 갖고 있던 오류와 무정견에 맹성을 촉구하는 발언이었다.

일제로부터 벗어난 이래 지금까지 남북이 각각 추구해온 것이 ‘자유민주주의’요 ‘사회주의’였다고 믿을 사람도 많지 않겠지만, 설령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한반도에서 이미 생명을 다해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즉해 볼 때, 이제 이 한반도에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실 이익은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위 신채호의 말에 따른다면, 우리는 이제까지 남북의 각 체제가 떠받들어온 그 자유민주주의나 사회주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 될 터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 이해를 위해, 그리고 누구의 이익을 위해 떨쳐나서야 할 것인가. 깊이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민족’의 이익을 내건다면 곧바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웃을 인사들이 없지 않을 듯한데, 만일 ‘한반도의 평화’라는 ‘이해’를 제시한다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번에는 ‘동북아 평화’와 ‘세계의 평화’란 구두선으로 대응할 것인가? 인근 일본과 중국은 물론, 미국, 소련, 영국 등등 과거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가졌던 그 모든 나라 가운데 어느 한나라라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또 그 주장들이 구두선으로 끝나지 않은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과거 제국주의시대 현실이 거부할 수 없는 무게로 나약한 인간과 약소민족들을 짓눌러,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의 대응마저 국가와 민족의 틀 속에 가두어 놓았기에 이제는 그러한 틀을 떨쳐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된바 오래지만, 한반도는 그러한 틀마저 거부당한 채 지난 한 세기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해왔던가.

물론 앞으로의 역사까지 제국주의의 마술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주눅들 필요는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같은 국가 민족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고집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평화를 지켜내야 할 책임을 지닌 집권층과 주민들이 이를 지킬 자세와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 전쟁이 야기하는 폐해가 얼마나 큰 것인가는 역사가 증명하고 우리가 겪고있는 현실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민족과 국가를 뛰어 넘자는 구호는 단위 국가와 민족사회를 내부로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물적 토대를 확보한 위에서 각각의 국가․민족에 관철되고 있는 기존의 권력관계까지 바꾸어내려는 실천을 방기한 자들이 감히 주장할 수 있는 구호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그 같은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 어떠한 주장도 기득권에 타협하고 있는 자신들을 은폐시키는 구두선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맹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결국 이 어려운 시험대를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한반도의 선택이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지금은 신자유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의 한반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의 한반도가 될 것인가. 그것이 아닐진대 한반도가 딛고 서야 할 최소한의 기반, 공감대로서 ‘COREA’의 ‘민주주의’를 위해 매진하자는 구호는 내걸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내용과 방법은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것인바, 우리는 이미 그 도정에 올라 서있지 않는가. 꼬레아의 민주주의는 지금까지의 남북한이 겪어온 전쟁과 기아, 독재와 굴종, 개발과 파괴, 편견과 배제 등 이 모오든 것에서 벗어나 평화와 풍요, 자유와 평등, 지속가능한 발전과 환경보존, 다양성 존중과 포용을 그 핵심 내용으로 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사업은 오늘의 한반도가 있기까지 이 땅을 지켜온 남북한 주민들을 포함한 전 ‘민족’의 피와 땀이 만들어온 역사, 문화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사업을 추진하는 데 한반도 평화는 필수적이다. 한반도의 이해 기준은 평화와 민주이다. 이 기준으로 모든 현안을 타개해 나가자. 그리고 이제는 밖으로부터 주어진 어느 한 도덕이나 주의를 극단적으로 밀고나가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기존 사회의 모순을 지양하면서 과거의 전통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공동체원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무엇보다도 그동안 무시되었던 자존심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추진해 나가자. 그렇지만 우리의 모든 공동사업을 추진하는데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데  있어서만큼은 ‘정열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여주자.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굳건히 하고 남북한 공동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실천 속에 한반도 ‘COREA’의 미래가 달려있다.

 

김  인 걸(서울대, 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