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위한 역사 10] ‘헬조선’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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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의 탄생

한국역사연구회는 <시민의 한국사> 출간에 앞서 <한겨레21>에 15회 분량의 ‘시민을 위한 역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근대사분과 박준형 선생님이 기고한 글입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1981.html)

박준형(근대사분과)

1911년 작성된 인천각국조계 평면도. 바둑판 모양의 각 지구 안에 표기된 영어 알파벳은 소유주의 국적을 가리킨다. 각국조계 내 하얀 부분은 각각 청국조계(왼쪽)와 일본조계(오른쪽)이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바로 이 일대를 복원한 것이다. 박준형 교수 제공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1876년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됐다. 이 조약에 따라 왜관이 자리하던 현재의 부산 용두산공원 일대에는 ‘조계’가 설치됐다. 조계란, 외국인의 거주 및 무역을 위해 조성된 특정 구역을 말한다. 조계와 왜관은 차이가 있다. 왜관 시대에도 일본인이 거주하며 무역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왜관에서의 무역이 조선 국왕의 은택에 의한 것이라면, 조계는 조약이라는 양자 간 계약에 근거했다. 은택은 국왕의 뜻에 따라 거둘 수 있었지만, 계약 파기에는 책임이 따랐다. 조선은 ‘조약 체제’라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던 것이다.

부산에 이어 1880년에는 함경남도 원산, 1883년에는 인천이 개항됐다. 부산과 원산에는 일본과 청국의 전관조계가, 인천에는 청일 양국의 전관조계와 더불어 각국공동조계가 설치됐다. 일본전관조계에는 일본인만이, 청국전관조계에는 청국인만이 거주할 수 있었고, 각국공동조계에는 청일 국민뿐 아니라 구미 국가 사람들도 거주했다.

이들 조계를 가리켜 흔히들 ‘나라 속의 작은 나라’라고 부른다. 조선 정부의 행정권이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조계 내 행정은 전관국 영사나 외국인들의 자치기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조계가 외국 영토였던 것은 아니다. 외국인들은 조선 정부로부터 땅을 빌렸을 뿐이어서 일정액의 지대를 조선 정부에 납부해야만 했다. 문제는 땅을 빌리는 기간에 제한이 없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외국인에게 영원히 빌려준 땅인 조계는 내 땅인 듯 내 땅 아닌, 치외법권의 장소였다.

내 땅인 듯 내 땅 아닌

조선인들은 조계 내에서 거주할 수 없었다. 조선에 앞서 개항했던 중국에도 상하이를 비롯한 각지의 개항장에 조계가 설치돼 있었는데, 조선과 달리 각국의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들도 조계 내에서 거주할 수 있었다. 대신 조선에는 조계로부터 4km 범위 내에 ‘잡거지대’가 설정됐다. 본래 조계 밖은 ‘내지’라 하여 외국인 거주가 금지돼 있었다. 그러나 잡거지대에선 조선의 지방행정에 따른다는 조건하에 외국인 거주가 허용됐고, 결과적으로 이곳에 한해 조선인과 외국인은 이웃하며 살게 되었다. 원칙적으로는 그러했다.

그런데 조계 안과 밖의 상황은 크게 달랐다. 조계는 자연발생적 촌락이 아니라 계획된 도시였다.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접안 시설이 구축됐고, 바둑판처럼 구획된 거주지 사이로는 도로가 곧게 뻗었다. 도로를 따라 가로등이 세워지고 상하수도 같은 근대적 설비들이 들어섰다. 건물을 세울 때는 도시 미관은 물론 화재 방비까지 고려됐다. 나아가 공원에서는 나날이 성장해가는 도시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었다.

“조계는 극락세계, 조계 밖은 지옥”

이에 반해 조계 밖에선 개발 없는 도시화가 진전됐다. 조계 설치로 본래 거주하던 곳에서 쫓겨난 사람들, 상거래를 통한 이익이나 항구의 일자리 등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이 조계 밖 잡거지대에 조선인 마을을 형성했다. 거주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지만 도시 설비는 수반되지 않았다. <독립신문>의 한 논설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조계와 그 밖의 조선인 마을을 각각 극락세계와 지옥에 비유하면서 “조선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기에 이 세상에서부터 지옥에다 가두어놓고 들볶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를 볼 때 요즘 유행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은 의외로 오랜 기원을 갖는지도 모른다. 지옥 같은 현실은 이처럼 천국을 이웃하며 살아야 하는 상대적 박탈 속에 더욱 절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외국인들에게 조계 밖은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러일전쟁 중에 일본에서 간행된 <조선이주안내>라는 책은 일본인들에게 한반도 이주를 적극 권장했는데, 흥미롭게도 조계보다는 내지를 추천했다. 조계는 이미 상당한 자본이 투여됐고 물가도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내지는 창업에 큰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활비도 일본의 3분의 1 정도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외국인은 조약상 엄연히 내지에서 거주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외국인의 내지 거주는 더욱 확대됐다. 이러한 무법 행위는 일본의 식민권력에 의해 제도화됐다. 그리고 무법이 합법화된 곳에서 식민지 지배는 현실이 되어갔다.

조계가 철폐된 것은 1914년이다. 일본의 강압에 의해 ‘한국병합’이 이루어진 것은 그보다 4년 앞선 1910년의 일이지만, 조선총독부는 조계 철폐를 곧바로 단행하지 않았다. 조계는 청일전쟁 이후 부산, 원산, 인천 외에 진남포, 목포, 군산, 마산, 성진 등지에 추가로 설치됐다. 통치의 일원화를 위해서는 치외법권 장소인 조계의 철폐가 필수였지만, 일본이라 해도 구미인들의 이권이 얽힌 조계를 손쉽게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총독부는 우선 조계 내 경찰권만을 회수하고 그 외 외국인들의 기득권은 모두 종전과 같이 인정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동시에 조계 철폐를 대비한 지방행정제도 개편에도 착수했다. 1914년은 바로 그 작업이 일단락된 해였다.

조계 철폐와 함께 새로운 지방행정제도로서 현재의 ‘시’ 정도에 해당하는 ‘부’ 제도가 실시됐다. 부의 경계는 대체로 조계와 그 주변의 시가지를 포함하는 형태로 정해졌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구분을 전제로 했던 조계와 달리, 부는 도시와 시골의 구분만을 남겼다. 그러나 부 제도 실시를 앞두고 조선에 거주하던 한 일본인은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도시 주변부에서 아예 도시 밖으로

지금의 송도국제도시. 박준형 교수 제공

“이번 새로운 부 제도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동일한 제도하에 두었는데, 비유하자면 그것은 기차와 같은 것이다. 경제 등 사회 각 방면의 우수자는 자기 뜻에 따라 상등칸에 탈 수 있지만, 이러한 자격이 없는 열패자는 모두 하등칸에 탑승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의 우수자인 일본인과 자격이 없는 조선인 사이는 자연히 구별될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조선인과 일본인 모두 부라는 도시 내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회적 능력 차이에 따라 우등한 일본인은 도시 내에 남고 열등한 조선인은 도시 밖으로 축출될 것이라는 말이다. 민족 간 우열 관계는 본래 그러하다기보다 식민권력에 의해 구축·재생산됐는데, 도시는 그 시스템 내에서 민족 간 차별을 만들어내는 기제로 작동할 것이 기대됐던 것이다. 그 점에서 조선인에게 ‘도시에 거주할 자격’은 “우리 땅에서 우리를 축출하려는 힘에 맞서 되찾아야 할 권리”였다.

부끄러운 ‘조계의 역사’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2003년 8월, 재정경제부 산하 경제자유구역위원회에 의해 인천이 우리나라 최초의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송도, 영종, 청라 등 3개 지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서해 바다의 드넓은 갯벌을 매립해 조성된 송도국제도시의 풍경은 끝 모르게 치솟은 고층 빌딩과 정연하게 교차하는 도로, 그리고 대규모 녹지공원이 채우고 있다.

끝나지 않은 구별과 배제의 역사

그런데 마치 조계를 정의한 듯한 관련 법제상의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규정과(“외국인 투자 기업의 경영 환경과 외국인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조성된 지역”), 일찍이 각국의 조계들이 위치해 있던 인천 중구로부터 불과 10km 떨어졌을 뿐이라는 지리적 근접성 등은 송도의 근미래적 풍경으로부터 새삼 조계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송도국제도시는 조계와 다르다. 무엇보다 경제자유구역 건설은 외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청일전쟁 이후에도 조선 정부가 자발적으로 개방한 항구들이 있기는 했으나, 이 경우에도 조선 정부는 조계의 행정권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또 다른 차이는 경제자유구역이 조계처럼 외국인만을 위해 조성된 공간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송도의 높은 분양 및 매매 가격이 많은 이들로부터 경제자유구역 내에서 거주할 자격을 박탈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은 인천을 비롯해 부산, 광양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 군산, 동해안, 충북 등 전국에 총 8개 구역으로 늘어나 있다. 이 공간들이 앞으로 전시행정의 수많은 사례에 숫자를 하나 더하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확실히 고층 빌딩들이 만들어내는 야경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우리 손으로 쌓아올린 ‘극락세계’가 사실은 그 주변에 조계 밖과 같은 ‘지옥’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지난날 조계 내 일본인들이 직면해야 했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 간의 교제를 저해하는 비인간적 힘이라고 어느 학자가 말했던 것처럼, ‘헬조선’이란 기본적 권리도 싸워야 쟁취할 수 있는, 인간성 상실의 공간을 일컫는 말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