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중건론(重建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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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을 중건(重建)하자

홍순민(중세사 2분과)

  완전히 타 없어진 줄 알았던 숭례문이 그나마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성벽 부분인 육축(陸築)이 그대로 있고, 목조 부분인 문루도 2층은 모두 타 없어졌으나 1층 부분은 다 타지 않았다. 그러기는 하지만 크게 충격을 받고 망가져서 그대로 되살리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림 1) 숭례문 문루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계단 위 2층 부분은 형체가 없어졌으나, 1층 부분은 골조가 남아 있다.

저 숭례문을 어찌할 것인가? 일각에서는 어느새 복원 이야기가 나오고, 그 기한과 재원 마련 방법까지도 운위된다. 그러나 나는 과연 복원을 할 수 있는지, 복원이란 무엇인지 이 참에 근본부터 따져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복원이란 원래대로 회복하는 것이다. “원래”란 어떤 상태인가? 숭례문을 복원한다면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잡을 것인가? 2008년 2월 10일 불타기 직전으로 잡을 것인가? 그것이 원래의 모습―원형(元型)인가? 불타기 직전의 숭례문은 1962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중수(重修)한 것이다. 그 때 중수하면서 과연 원형대로 했는지 의심스런 부분이 없지 않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언제를 기준으로 잡을 것인가? 1908년 일본인들의 입김으로 양 옆의 성벽이 잘라져 나간 이후를 기준으로 잡을 것인가? 그것이 숭례문의 원형인가? 그건 아니다. 적어도 숭례문이 도성의 정문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시절을 기준으로 잡아야 하지 않겠나?


(그림 2) 1890년 전후의 숭례문의 모습. 양 옆으로 성벽이 살아 있다. 전면의 초가집들은 도로변의 점포에서 내달아 지은 가가(假家)이다.

그렇게 복원을 하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복원에 필요한 자료를 널리 모아야 한다. 일정한 예산을 세워서 어떤 업체에 맡겨 시공하는 방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기계 공구를 가능한한 쓰지 말고 옛 공구로 옛 공법대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그러한 공구와 그것을 다룰 줄 아는 장인들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 힘이 든단다. 힘이 들면 힘을 들여야 한다. 시간과 공을 들여서 그 기술을 되살리고 그런 사람을 키워야 한다. 그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공기(工期)를 재촉하지 말고, 예산 타령을 벗어나야 한다. 생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설령 기술과 사람, 예산과 공기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그래서 건물을 새로 지을 수 있다 하더라도 양 옆의 성벽을 어찌할 것인가? 성벽까지 복원하면 교통은 어찌할 것인가?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설령 그렇게 어렵게 복원을 한들 그것이 과연 사라진 저 숭례문인가? 복원은 이렇듯 어려운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함부로 복원을 말할 것이 아니다.

나는 복원보다는 중건(重建)을 해야 한다고 본다. 중건이란 다시 짓는 것이다. 옛 모습과 거기 깃들어 있던 분위기와 맛, 아름다움은 될 수 있는한 살리되, 이 시대에 맞게 바꿀 것은 바꾸어서 새로운 모습을 창출하는 것이 중건이다. 우리 시대의 건축 정신과 기술, 지혜와 의지를 모아서 숭례문의 기본 모습을 되살리면서도 우리 상황에 맞는 작품을 하나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시간에 쫓기지 말고, 몇몇 사람들끼리 얼른뚝딱 해치우지 말고, 어느 업체의 기계공구에 의존하지 말고, 천천히 근본부터 따져 가면서 후세에 길이 남길 기념물을 하나 만들면 좋겠다. 그것이 속절없이 불타버린 저 숭례문에게 우리가 속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