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타락을 강요당한 타락산(타酪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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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을 강요당한 타락산(타酪山)

홍순민(중세사 2분과)

혜화문―동소문에서 흥인문―동대문을 잇는 산, 지금은 방송대학, 문예진흥원 등이 들어선 옛 서울대학교 동숭동 캠퍼스 뒷 산이 타락산이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조선 초기 자료들에는 “타락산(타酪山)”으로 나온다. “타락”이란 물론 타락(墮落)이 아니다. ‘타’자는 술에 취하여 얼굴이 발개지는 것을 가리키는 글자이다. 타락이란 그러나 술에 취하여 얼굴이 발개진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불교 용어로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서 진리를 깨달은 탓에 얼굴이 붉어진다는 뜻이다. 마주 대하고 있는 산이 불국토를 지키는 인왕산인 것과 통하는 이름이다. 그 타락산이 조선 후기로 가면 일반적으로 “타락산(駝駱山)”으로 표기된다.

불교적 관념이 점차 퇴색하고, 음이 같으면 서로 바꾸어 쓰는 통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타락이 글자 순서가 바뀌어 다시 낙타산(駱駝山)으로 표기되거나, 줄여서 “낙산(駱山)”으로 표기된 예도 간간히 보인다. 그러던 것이 일제시대에 들어와서 지명을 이리저리 바꾸어 왜곡하려는 일제의 의도에 따라 이 산의 이름이 낙산으로 굳어졌고,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내려와 공식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일제시대에 낙산으로 굳어진 것은 아무래도 본 이름 타락산(타酪山)의 타락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타락산의 타락은 이름이 왜곡된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름보다도 그 겉모습은 더욱 심하게 망가져 있다. 지금 타락산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높이가 110.9m로 백악산이나 인왕산, 목멱산보다 낮기는 하지만, 꼭 높이 때문만은 아니다. 타락산은 지금 아파트와 개인 주택으로 완전히 뒤덮혀 있기 때문이다. 타락산 중앙의 정상 부근에 있는 누런 색깔의 중산시민아파트는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생기기 시작한 초기의 것으로서 타락산을 압도하고 있다. 어떻게 그 높은 곳에 그렇게 아파트를 지을 생각을 했는지 참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타락산도 인왕산이나 백악산과 같이 화강암 바위로 된 산으로서 경치좋기로 정평이 있었다. 그러한 산이 이제는 도무지 산으로서 제모습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완전한 타락이다.

그러나 타락산은 거기 있다. 아무리 철저하게 집들로 덮여 있어도 산은 산이다. 이화동, 동숭동 쪽에서 주택가나 아파트 숲을 헤치고 동쪽으로 자꾸 올라가거나, 아니면 동대문에서 북쪽으로 동대문 교회를 바로 왼편에 끼고 오르는 길을 따라 가면 타락산의 능선으로 올라서게 된다. 걸어 오르기가 힘들다 하여 지레 포기할 필요가 없다. 동대문에서 숭인동과 창신동 사이로 나 있는 지봉길을 따라 타락산 정상까지 마을 버스가 다닌다. 그 타락산 정상에는 마치 시골 장터같은 시장까지 서고 있고, 무엇보다도 도성이 살아서 감돌아 내리고 있다. 도성을 따라 길게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도성을 살피며 걷기에 좋다. 백악이나 인왕산, 목멱산과 마찬가지로 그곳에 오르면 서울 장안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타락산은 비록 그 이름과 겉모습이 타락하기는 하였지만 역시 명산이다. 서울의 좌청룡, 서울을 감싸 안는 왼팔로서 타락산은 저렇게 의연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