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조정에 서린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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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 서린 뜻은

홍순민(중세사 2분과)

근정전 앞 회랑으로 둘러싸인 넓은 마당―조정(朝庭)에는 그에 걸맞는 분위기와 상징이 서려있다. 조정 마당에는 별 특별한 시설물은 없다. 그러나 그곳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옛 모습을 조금은 더듬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외 관광객들로 붐비는 편이기 때문에 좀 소란스럽고 어딘가 들뜬 듯하면서도 조정의 분위기는 자못 그윽하다. 그 그윽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런저런 요소들이 모두 함께 어울려 빚어내는 것이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요인은 우선 바닥에서 찾아야 할 것같다. 조정 바닥에는 흔히 박석이라고 부르는 평평한 돌들이 깔려 있다. 중국의 궁궐은 바닥이 흙을 구운 전돌로 되어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화강암이되 그 형태나 표면이 다듬은 건지 다듬지 않은 건지, 요즘 흔히 보는 보도 블록처럼 네모 반듯반듯하고, 표면이 반질반질하지가 않다. 바로 그 무심한 듯한 솜씨에서 우러나오는 맛이 그윽함의 밑바탕이 아닌가 싶다.

조정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 질러 근정문에서 근정전으로 길이 나 있다. 그 길은 세 구역으로 나뉜 길―삼도(三道)인데 그 가운데 부분은 양 옆보다 조금 높다. 왕만 다니게 되어 있는 어도(御道)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최고로 고귀한 존재인 왕은 다니는 길까지도 이렇듯 구별되었다. 삼도의 양 옆으로는 자그마한 비석 모양의 돌들이 열 두 개씩 줄지어 서 있다. 거기 써 있는 글씨들을 보니 근정전 가까운 데서부터 정일품(正一品), 종일품(從一品), 정이품, 종이품, 정삼품, 종삼품으로 나가다가 사품부터는 ‘정’만 있고 ‘종’은 없이 구품까지 이어진다. 이 조정에 참여하는 관원들은 각자 자기 관품에 해당하는 위치에 가서 서라는 용도로 만든 품계석(品階石)이다.

삼도의 동쪽 편에 서는 관원들을 동반이라고 하고, 서쪽 편에 서는 관원들을 서반이라고 한다. 동반은 문반(文班)이고, 서반은 무반(武班)이다. 이렇게 조정에 참여하는 동반과 서반, 다시 말하자면 문반과 무반을 가리켜 양반(兩班)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래 양반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지만, 그 의미가 점점 넓어져 사회 신분을 가리키는 뜻이 되었다가 오늘날에는 신분 개념도 아닌 2인칭 또는 3인칭 대명사가 되었다.

정종의 각 품계는 대부분 다시 둘로 나뉘는데, 정삼품의 경우에 통정대부(通政大夫)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나뉜다. 그 통정대부 이상을 당상관(堂上官), 통훈대부 이하를 당하관이라 한다. 당상관과 당하관이란 용어의 뜻을 이 조정에 비겨서 풀자면 당상관은 당, 곧 임금이 계신 건물에 오를 수 있는 지위를 말하며, 당하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그 아래 있어야 하는 관원이란 뜻이겠다. 당상관은 관복의 가슴과 배에 붙이는 장식 ―흉배(胸背)의 무늬가 문반은 학이 두 마리, 무반은 호랑이가 두 마리인데 비해서 당하관은 각 한 마리씩이다. 흉배만이 아니라, 옷의 색깔과 여러 장식들도 서로 다르다. 복장이나 장식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행정적 구실도 크게 구별되었다. 당상관이 주로 각 관서의 장관을 맡았다면, 당하관은 중하급 간부직을 맡았다.

정삼품 품계석의 뒷편 쯤 되는 자리 몇 군데 박석에는 지름이 20Cm쯤 되는 동그란 쇠고리가 박혀 있다. 눈여겨 보면 그런 고리는 근정전 기둥에도 박혀 있다. 일반 관람객들은 흔히 이 쇠고리가 무엇에 쓰던 것일까 아주 궁금해 한다. 무엇이겠는가 반문을 하면 형벌을 가할 때 쓰던 물건이라고 하는 등 꽤 기발한 답변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 고리는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관원들이 이 조정에 모여 있을 때는 햇살을 가려 줄 차일을 쳤는데 이 고리는 그 차일치는 줄을 매던 것이다. 그 차일을 그 넓은 조정 전체에 다 칠 수 없었으니 앞 부분 당상관들이 서는 정도만 쳤던가, 고리 위치가 대강 거기쯤이 된다. 조정의 바닥, 길, 품계석, 쇠고리 하나하나에서도 우리는 그 옛날 이곳에서 의식을 치르던 왕과 관원들의 위계와 질서를 그려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