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작지만 큰 건물 : 수정전

0
249

작지만 큰 건물 : 수정전

홍순민(중세사 2분과)

경복궁을 관광하는 사람치고 경회루를 빼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동시에 대개는 경회루만 보고 그 앞에 있는 화장실에 들르고는 그냥 다른 곳으로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경회루 남쪽에 있는 건물을 눈여겨 보는 이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우리가 궁궐을 찾는 목적이 그저 좋은 경치 화려한 건물만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면, 궁궐에 남아있는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더듬어 보려는 것에도 의미를 둔다면 경회루만 보고 돌아설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있는 건물―수정전(修政殿)을 볼 필요가 있다.

수정전은 얼핏 보기에는 대단한 구석이 눈에 띄질 않는다. 경회루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근정전처럼 위엄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주위 분위기가 그윽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곰곰 뜯어보면 범상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정전은 실제 크기는 근정전, 경회루보다 훨씬 작다. 그러나 간수를 보면 정면 10간, 측면 4간 해서 40간이나 된다. 근정전이 25간, 경회루가 35간인 데 견주어보면 간수, 다시 말해서 개념상으로는 가장 큰 건물이다. 크기만 그렇게 큰 것이 아니다. 수정전은 땅바닥에서 어른 키로 한 길은 되게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지었다. 기단을 높게 한 의도는 위엄있게 보이려는 것과 함께 지열을 차단하여 여름에 시원하게 하려는 데 있으리라.

냉방과 함께 난방도 대비되어 있다. 기단의 측면을 보면 지금은 나무 판자로 막아 놓은 부분이 있는데, 그곳이 아궁이다. 아궁이가 있으면 굴뚝이 없을 수가 없다. 굴뚝은 건물 뒤편, 그러니까 경회루 쪽으로 두 개가 나 있다. 지금 모양은 네모난 벽돌로 아주 멋없이 서 있는데 원래부터 그런 모양이었을까 의문이다.

기단은 건물 전면으로 넓게 나와 있다. 이 부분을 월대(月臺, 越臺)라고 한다. 월대는 격이 높은 주요 건물에만 설치되어 있다. 큰 행사를 거행할 때 대신, 종친같은 높은 사람들이 자리잡기도 하고, 악공들이 연주를 하거나 무희들이 춤을 추기도 한다. 또는 그 건물의 주인이 되는 왕이나 왕비, 또는 대왕대비등이 직업 죄인을 문초할 경우에도 이 월대에서 행하기도 하였다. 수정전에 그러한 월대가 특별히 넓게 조성되어 있다는 것은 이 건물이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징표가 된다.

지금 수정전은 고종 초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인 1867년(고종 4)에 지어진 것이다. 고종 초년에는 고종이 기거하는 연거지소(燕居之所)로 쓰이기도 하였고, 때로는 이곳에서 신료들을 만나 정무를 의논하는 편전(便殿)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처음에는 내전(內殿) 영역에 들어가는 건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고종 중반 1890년대의 전반, 우리 역사의 격변기에 여러 제도가 급하게 변개될 때는 수정전이 군국기무처, 내각의 청사로 쓰이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는 고종은 경복궁에 임어하더라도 향원지 뒤편의 건청궁에 기거하였기에 이 건물 일대는 신하들의 활동 공간이 되었던 듯하다.

임진왜란 경복궁이 불타 없어지기 전에도 당연히 이곳에 건물이 있었다. 특히 세종 연간에는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집현전이 이곳에 있었다. 학문을 연구하며, 왕에게 주요 정책을 자문하고 건의하던 기관, 한글을 창제하는 등 세종대 문치의 본산이라고 할 집현전이 있던 자리라니 다시 쳐다 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바로 그럴만한 자리이다. 이 건물의 동쪽은 왕이 계시는 내전이다. 서쪽으로는 지금은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잔디밭이 끝나는 지점에는 경복궁의 서쪽 문인 영추문(迎秋門)이 서 있다. 저 잔디밭 자리가 바로 경복궁에 들어와 있는 여러 관서들이 있던 공간―궐내각사(闕內各司)였다.

 수정전―옛날의 집현전은 그렇게 왕의 영역과 신하들의 영역이 만나는 접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왕과 신하들이 만나서 학문과 정치를 닦던 곳이다. 우리 문화의 정수 가운데 하나인 훈민정음―한글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창제될 수 있었던 것이다. 후대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고 싶으면 인재를 키워라. 인재를 키우되 제도적으로 키워서 신뢰를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능력을 발휘하게 하라. 경회루만 보고 돌아서지 말고 수정전이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런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경복궁 구경의 참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