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용의 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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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발톱

홍순민(중세사 2분과)

경복궁의 정전 근정전은 그에 걸맞는 위용을 갖추고 있다. 겉에서 보기에 정면이 5간, 측면이 5간 해서 25간이나 되는데다가, 지붕도 2층으로 되어 있고, 갖가지 치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를 보아도 높다란 천정에, 그것을 받치고 있는 높은 기둥들이 꽤나 장엄하다. 그러나 지금 근정전 안은 썰렁하기 짝이 없다. 근정전 안을 들여다 보면서 임금님의 위엄을 찾으려 하다가는 일말의 배신감마저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실망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근정전에 100년이 넘게 임금님이 임어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집, ‘나간 집’은 금새 썰렁해진다. 그런데 근정전은 100년이 넘게 비워두었던 집이니 썰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금의 썰렁함을 보면서 그 옛날 임금님이 이곳에 임어하여 활동할 때도 그랬으려니 짐작을 하여서는 곤란하다. 우선 은은한 조명, 유장한 음악, 사람들의 온기로 채우고, 그런 다음 지금 꺼칠해진 단청색을 그윽하면서도 산뜻하게 다시 칠하고, 창호도 제대로 된 한지로 다시 바르고, 이곳저곳을 쓸고 닦고 해서 반들반들 윤을 내어 보라. 마음 속으로 그렇게 준비 작업을 한 다음 다시 근정전을 들여다 보라. 한결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높은 기둥들이 줄지어 선 중앙에 사람 한 길 가까운 높이로 단을 놓고 그 위에 평상 의자가 놓여 있다. 임금님이 앉는 의자―용상(龍床)이다. 그 뒤에는 정교하게 조각을 한 세 면짜리 나무 병풍―삼곡병(三曲屛)이 용상을 옹위하고 있다. 그 뒤에는 물결치는 바다, 소나무, 대나무가 우거진 사이에 기암괴석이 들어서 있고, 그 틈으로 폭포가 떨어지고, 다섯 봉우리가 뾰족뾰족 솟아 있으며, 그 위로 해와 달이 떠 있는 그림을 그린 병풍―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이 놓여 있다. 그 위로는 조각을 더욱 정교하게 한 나무로 된 지붕 모양의 닫집이 설치되어 있다. 왕의 존엄을 드러내기 위한 갖가지 상징들이 베풀어져 있는 것이다.

특히 천정의 중앙 부분을 보라. 그 부분은 정면 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동서 옆문에서 더 잘 보인다. 그곳에는 구름 사이에서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다. 이른바 쌍룡희주(雙龍戱珠)다. 용은 동양이나 서양을 막론하고 수천년 동안 사람들의 관념 속에 굳게 자리잡아 온 동물이다. 동양에서는 용은 비늘가진 동물(鱗蟲) 중의 우두머리로서 그 모양은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項)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鷹), 주먹(掌)은 호랑이(虎)와 비슷하며, 양수인 9가 두 번 곱해진 81개의 비늘이 있고, 그 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銅盤)을 울리는 것 같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에는 명주(明珠)가 있고, 목 아래에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으며, 머리 위에는 박산(博山)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각 동물이 가지는 최고의 무기를 모두 갖춘 것으로 상상된 용은 그 조화능력이 무궁무진한 것으로 믿어져 왔다. 용이 가진 이러한 성격 때문에 흔히 왕을 용으로 비유하였다. 왕의 얼굴을 용안, 왕이 공식 행사 때 입는 옷을 곤룡포라 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근정전 천정에는 그런 용 두 마리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용을 볼 때는 발가락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용의 발가락, 다시 말하자면 발톱의 수는 셋이나 넷인 경우도 있고, 아주 드물게 일곱일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다섯이다. 이를 오조룡(五爪龍)이라고 한다. 용 발톱의 수는 대체로 그 용의 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를 막론하고 대부분 오조룡으로 왕을 상징한다. 발톱이 일곱인 용은 말할 것도 없이 황제를, 그것도 특별히 격을 높여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근정전 용의 발톱이 일곱이다. 덕수궁 중화전의 용 발톱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용 발톱이 다섯인데 유독 근정전 용 발톱은 일곱이다. 일제시기에 찍은 사진을 보아도 일곱임이 확인된다. 근정전 천정의 용 발톱이 어째서 일곱인가. 지금 나로서는 풀 수 없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