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용마루 없는 지붕 : 교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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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루 없는 지붕 : 교태전

홍순민(중세사 2분과)

경복궁의 중심축에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는 건물들 가운데 마지막이 교태 전(交泰殿)이다. 강령전의 뒤로 돌아가면 양의문(兩儀門)이 나오는데 교태전은 그 문 안에 들어앉아 있다. 강령전이 왕의 침전이라면,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 (寢殿)이자 시어소(時御所)이다. 사극 같은 것을 보면 흔히 왕비를 모양이나 내 고 앉아 후궁들과 시앗 싸움이나 하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 우 잘못된 인식이다. 왕비도 공인으로서, 궁궐안에 살며 활동하는 내명부(內命婦)를 비롯한 여러 층의 여인들을 치리하는 일 등 처리해야 할 업무가 적지 않 았다.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공간이 시어소인 교태전이다.

교태전의 모양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지붕의 전면과 후면이 만나는 가장 높은 곳에 기와를 쌓아서 낮은 담장처럼 마감한 부분을 용마루라고 하는 데, 교태전에는 그 용마루가 없다. 기실은 교태전 앞의 강령전에도 용마루가 없 고, 창덕궁의 대조전, 창경궁의 통명전에도 용마루가 없다. 이 건물들은 모두 궁 궐의 왕비의 시어소, 곧 중궁전(中宮殿)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왜 중궁전에는 용마루가 없는가. 이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설명이 있다. 중궁 전은 공식적으로 왕과 왕비가 동침하는 집이다, 왕은 용이다, 그런 용이 깃들어 서 다음 대를 이을 용을 생산하는 곳이므로 또 다른 용이 위에서 이를 내리누 르면 안되기 때문에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확실한 근거가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듣고 보면 그럴 듯도 하다. 그러나 그럴 듯하기는 하지 만, 아무래도 그 정도 가지고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이를 더 보완하기 위해서는 그 이름에 담긴 뜻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얼 핏 우스개로 생각하기에는 왕비가 왕에게 교태를 부리는 집이기에 교태전이라 고 하였나 보다고 할 지 모르겠으나, “교태(嬌態)”가 아니고 “교태(交泰)”이다. “태(泰)”는 주역의 괘 이름이다. 태 괘는 아래가 “건(乾)”, 위가 “곤(坤)”으로 되 어 있다. 곧 이 밑에 이 위에 있는 형상이다. 양(陽) 효(爻) 셋으로 이루어 진 건 괘는 하늘, 남자, 밝음, 위로 솟음 등을 상징한다. 이에 비해 음(陰) 효 셋 으로 이루어진 곤괘는 땅, 여자, 어두움, 아래로 가라앉음 등을 상징한다. 그런 데 태 괘는 건이 아래 곤이 위에 있으므로 아래 위가 뒤집힌 형상이다.

얼핏 생각하면 불합리한 것 같으나, 실제로는 매우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위로 솟는 성질을 가진 양이 아래에 있고, 아래로 가라앉는 성질의 음이 위에 있기 때문에 양과 음이 서로 엇갈리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음양과 남녀가 서로 교(交)하는 것 이다. 그러고 보면 교태전으로 들어가는 문 이름―양의문의 양의도 곧 음양을 가리키는 것이니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남녀가 서로 만나 교통하여 생산을 잘 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왕과 왕비의 침전으로 서 이보다 좋은 뜻이 어디 있겠는가.

교태전은 태조 초년 경복궁이 처음 세워질 때는 없었다. 그로부터 거진 50년 가까이 지난 세종 22년(1440년) 무렵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던 것을 고종 초년 에 다시 중건하였다. 그것을 또 1917년 창덕궁의 내전 일대에 불이 나서 다시 지을 때 교태전은 창덕궁으로 옮겨가서 대조전의 부재로 쓰였다. 원래의 교태전 은 지금 창덕궁의 대조전으로 변신해 있고, 대신 경복궁에는 근년에 복원한 새 교태전이 들어서 있다. 강령전이 창덕궁의 희정당이 되어 있는 것과 같은 운명 이다.

궁궐을 흔히 구중(九重) 궁궐이라고 묘사한다. 아홉 겹으로 둘러싸인 깊고 은 밀한 곳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궁궐이라고 다 그렇게 깊고 은밀하지는 않다. 문 이나 담장 근처는 외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 다. 궁궐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부에 있고, 가장 은밀한 곳이 바로 왕비가 사는 중궁전, 중전(中殿)이다. 경복궁의 중전이 바로 교태전이다. 하지만 지금 교태전 은 강령전과 마찬가지로 근년에 복원한 것이기에 그리 깊고 그윽한 맛이 나질 않는다. 내외 관광객들만 뭔가 있나 하고 두리번거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