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쓰레기통이 된 정(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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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이 된 정(鼎)

홍순민(중세사 2분과)

우리는 흔히 어떤 건물을 볼 때 그것만을 열심히 보고 말기 쉽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이 어떤 건물을 지을 때, 그것을 남 보여 주려고 지은 것은 아닐 터이다. 건물의 주인 자신이 그 건물을 사용할 때 얼마나 좋은가가 우선 고려의 대상이 되었음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떤 건물을 밖에서 들여다보고 만다면 그 건물의 진가를 반도 못보는 폭이다. 그 건물의 주인이 된 심정으로 안에서 밖을 내다볼 줄도 알아야 한다. 절에 가서는 부처님이 보시는 곳을 바라보고, 어느 집 사랑채나 혹은 정자, 누각에서는 그 안에 앉은 주인이 내다보는 풍광을 바라보며 누릴 줄을 알아야 한다. 이 점 궁궐의 전각도 마찬가지이다.

근정전 내부가 지금 저렇듯 썰렁하고 답답함만을 보고, 뭐가 이래 하고 그냥 돌아서는 것은 근정전을 제대로 보는 것이 못된다. 돌아서 근정전 월대 한 가운데 서서 앞을 내다 보시라. 무엇이 보이는가. 얼마전 구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기 전까지는 그 뒤통수만 보였다. 이제 그것이 없어진 자리에는 복원공사를 하는 모습만이 보인다. 하지만 거기서 눈을 들어 더 멀리 내다보면 지금의 세종로―옛 육조거리가 보이고, 서울 장안의 저자거리와 그 속에서 복대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보인다. 더 멀리 한강을 건너 바라다보면 조선 팔도의 풍광과 거기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백성들의 삶이 보인다. 그것들을 볼 수 있어야 그 근정전 안 용상에 앉거나, 근정전에 나아가 국정을 논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근정전을 돌아나오다 보면 그런 뜻을 담고 있는 유물을 맞닥뜨리게 된다. 근정전의 전면 좌우 모서리 기둥 옆에 설치되어 있는 청동제 유물이 그것이다. 관광 안내원들은 이것을 향로라고 소개한다. 무슨 근거로 향로라고 설명하느냐고 물었더니, 안내원 교육을 받을 때 공부한 관광공사 교과서에 그렇게 나와 있다고 한다. 향로? 이곳에 향을 피웠다? 향이란 사당이나 신전 등 신이나 혼령을 위로하는 곳에 피우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근정전이 사당이나 신전이란 말인가. 설령 향로라 해도 무슨 향로를 건물 밖에 놓는가. 전혀 맥이 닿지 않는 설명이다. 그것은 아무리 보아도 정(鼎)이다.

정이란 솥으로서 배가 둥글고 다리가 셋에 귀가 둘 달렸다. 처음에는 흙을 구워 만들었으나 나중에는 청동으로 만들었다. 정은 천자는 아홉, 제후는 일곱, 대부는 다섯, 사는 셋을 썼다. 중국 하나라에 이르러서는 전국 아홉 주의 쇠를 모아 솥을 아홉 개 만들었다. 이 구정(九鼎)은 왕권과 구주를 상징하며, 더 나아가서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게 하고 하늘의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상징물로 쓰였다. 하나라에서 은나라로, 은나라에서 주나라로 왕조가 바뀔 때 구정도 함께 전하여졌다. 정의 이러한 상징성이 우리나라에서도 받아들여져 경복궁 근정전 앞에 설치된 것이다.

근정전 앞의 정은 그저 약간 거리를 띄우고 보아야지 그 안은 들여다보시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안에는 흙이 반쯤 담겨져 있고, 대개는 우유 곽 한 두 개와 담배 꽁초 몇 개 그리고 가래침 자국이 몇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정은 드므도 마찬가지이다. 드므란 ‘넓적하게 생긴 큰 독’이라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궁궐에서 드므는 주요 전각의 월대 모퉁이에 설치하여 그 안에 물을 담아 놓았다. 하늘의 화마(火魔)가 그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내려다 보고 제 풀에 놀라 달아나라는 뜻이라 한다. 말하자면 주술적 소방용구라 하겠다.

그런데 근정전의 드므는 1층 기단의 동서쪽 계단 뒷편으로 치워져 있다. 게다가 나무 뚜껑이 덮여져 있고, 열어 볼 수도 없게 아예 철사로 고정되어 있다. 하도 쓰레기들을 버리니, 이를 막기 위한 고육책인 듯싶다. 드므는 불을 막는 상징적 도구에서 쓰레기통으로 전락할 뻔하다가 불구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나은 편인가, 왕권을 상징하는 정은 관민 합작에 의해서 꼼짝없이 쓰레기통으로 둔갑하고 말았으니… 그러고 보니 궁궐 여기저기에 설치되어 있는 진짜 쓰레기통들도 영락없이 정을 닮았다. 절묘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