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도성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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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은 살아 있다

홍순민(중세사 2분과)

돌에도 맛이 있다. 혀로 느끼는 맛이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맛이다. 이태리 대리석은 화려하기는 하지만 결코 질박하지는 않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고 그래서 가장 널리 쓰이는 화강암은 거칠지만 그윽한 맛이 있다. 돌 맛을 잘 느끼지 못하겠거든 박수근을 보시라. 박수근은 어린 아이들이 화강암 바위에 크레용으로 낙서를 한 듯 지극히 단순한 선으로 애기 업은 소녀, 큰 그릇을 이고 가는 아낙네들, 나무들, 발가벗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그렸다. 박수근 그림의 바탕을 이루는 그 거칠고 투박한 질감, 그것이 우리 돌 맛이다. 그래도 잘 느껴지지 않으면 남대문에서 염천교 방면으로 한 50m쯤 가다가 대한상공회의소와 삼성자동차 빌딩 사이로 들어서서 중앙일보사로 향하는 길, 소형차 한 대가 그럭저럭 지나갈 만한 좁고 허름한 길로 들어서서 오른편 빌딩들의 축대를 이루고 있는 돌들을 한 번 눈여겨 보시라.

태조 5년에 쌓은 도성은 험한 지역만 돌로, 평탄한 지역은 흙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뒤 세종 4년에 도성을 수축할 때는 비교적 둥그렇고 한 변이 한 30-40Cm 되는 자연석을 쌓았다. 다시 숙종 30년 어간에 도성을 수축하면서는 서울 주변의 채석장에서 돌을 떠다가 썼던 만큼 한 변이 두 자, 곧 60Cm 정도 되는 네모 반듯한 돌을 틈새없이 이짬을 맞추어 쌓았다. 지금보면 세종 때의 돌은 모양만 둥글둥글한 것이 아니라 연륜의 관록이 붙어 그 색깔도 거무튀튀하다. 성실하게 일하며 늙은 시골 할아버지의 얼굴이다. 숙종 때의 돌은 경박하지도 그렇다고 추레하지도 않은 품격을 갖추었다. 건장한 장년의 기세가 서려 있다.

그 뒤에 보수된 것으로 보이는 돌들은 좀 더 하얗고 빤빤하다. 말쑥하기는 하지만 아직 어느 한 구석에 미숙함이 남아 있는 청년의 모습이다. 그 다음 근년에 다듬어 쌓은 돌들은 인스턴트 식품처럼 도무지 깊은 맛이 없다. 요상스런 옷차림에 머리는 울긋불긋하게 염색하고 무쓰를 반들반들 바른 겉멋만 잔뜩 든 아이들같다. 그리고 마직막으로 중앙일보사 건물을 온통 뒤덮고 있는 그 붉은 색 대리석은 분명코 코카콜라를 빨고 있는 서양 장사꾼 인상이다.

숭례문(崇禮門)-남대문에서 소의문(昭義門)-서소문에 이르는 도심지의 도성(都城)은 헐려 없어져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아직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거기 어마어마한 고층 빌딩들의 뒷켠에 태조때부터 오늘날까지의 돌들이 오순도순 자리잡고 앉아 제각각 자기의 맛을 뿜어 내고 있다. 1970년대에 복원한 곳-인왕산, 성북동 지역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네 지척 시내 한 복판에 여전히 ‘도성은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