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담장인 듯 병풍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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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인 듯 병풍인 듯

홍순민(중세사 2분과)

궁궐 전체는 주요 건물을 중심으로 행각이나 담장이 둘려 자연히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그렇게 나뉜 구획도 다시 담장이나 판장 따위로 더 작은 구획으로 잘게 나뉘어 있었다. 남녀의 내외, 신분의 직역에 따른 활동영역을 구별하기 위해서다. 자경전도 예외가 아니다. 예외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가 살던 곳이니만큼 외부로부터, 또 그 내부에서의 구별도 더욱 엄격하였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자경전은 동서남북 사방을 돌아가며 행각과 담장이 둘려 있었다. 정문에 해당하는 남행각의 만세문(萬歲門)을 들어서면 지금은 부속건물인 협경당의 동쪽 담장에서 서행각까지가 탁 트인 하나의 마당으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자경전과 협경당 사이 청연루 어간에는 작은 담장이 막고 있었다. 또 다른 주요 건물들에서 보듯 문을 들어서면서 건물 전면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사람키 높이 정도로 버팀목에 덩굴을 올린 취병(翠屛)이나 나무 판자로 된 가리개를 두었음 직하다.

자경전 북쪽은 공간이 상당히 옹색하다. 본채와 북행각 사이에 화계를 설치할 만한 둔덕이 없다. 화계 대신 그 곳에 담장을 쳤다. 이럴 때 굴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따로 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본채에 붙여 굴뚝을 설치하자니 모양이 좋지 않다. 이런 고민을 일거에 해결한 답이 우리가 오늘날 보는 이른바 ‘십장생 굴뚝’이다. 땅밑으로 연기 길을 내고, 담장의 일부를 굴뚝으로 만들어 그 위에 연기 빠지는 부분은 연가(煙家)―집 모양을 열 개 만들어 얹었다.

담장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두기도 한다. 담장 안에 있으면 안전하지만 다른 한편 답답하다. 담장 안에 사는 사람들, 특히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한 채 늘 그것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담장은 참 답답한 존재, 쳐다보기가 두려운 공포의 대상이다. 더구나 그 담장이 똑같은 모양의 돌이나 벽돌로 쌓여 있거나, 아니면 한 가지 색으로만 칠해져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무게로 짓누르는 스트레스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담장에 그림을 그리고, 문양을 베풀고, 글을 써 넣는다면 그것은 공포의 대상에서 감상의 대상으로 반전하지 않겠는가.

이런 뜻에서 나온 배려인가. 궁궐의 담장 가운데 여성이 사는 공간의 담장에는 무늬와 글자, 그림이 베풀어져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이름하여 꽃담(花紋墻, 花墻)이다. 그 가운데서도 자경전의 꽃담과 “십장생 굴뚝”은 유명하다. 무늬는 ‘만(卍)’자나 격자 또는 육각형의 벌집 모양―귀갑문(龜甲紋) 등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작은 꽃을 넣기도 하였다. 글자는 마치 왕의 옥새를 보는 듯 조형미가 뛰어난 전자(篆字)로 되어 있다. 단순한 선분의 조합만으로 어떻게 이런 글자를 만들 수 있을까. 놀랍다. 쉽게 읽기 어려운 그 글자들을 흔히 ‘수복강녕 (壽福康寧)’이라고 어림짐작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한문을 읽는 순서대로 오른쪽에서부터 읽어보면 북쪽 담에 있는 글자는 ‘聖’ ‘人’ ‘道’ ‘理’, 서쪽 담의 안쪽 면에 있는 것은 ‘千’ ‘貴’ ‘萬’ ‘壽’, 바깥 면의 것은 ‘樂’ ‘疆’ ‘萬’ ‘年’ ‘張’ ‘春’ 등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집에 사는 분이 성인의 도리를 지키고, 고귀함과 장수, 즐거움과 정정함을 오래 누리시라는 축원이리라.

꽃담을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흙을 구워 박아 넣은 그림 무늬들이다. 이른바 ‘십장생(十長生) 굴뚝’의 그림은 꼭 십장생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있는 바위와 구름, 붉게 빛나는 해, 소나무와 대나무, 불로초, 연꽃, 포도, 국화, 사슴, 학, 거북, 오리, 작은 새들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병풍 몇 틀을 한꺼번에 보는 느낌이다. 서쪽 담의 바깥에는 대나무, 이름 모를 꽃나무, 국화 둘, 석류, 모란, 복숭아, 매화 그림 해서 여덟 폭이 벌려 있다. 나무만 뻗뻗하게 서 있을 리가 있나. 그 속에는 벌과 나비, 새들이 날아들어 꽃을 희롱하며 노닐고 있다. 화조 병풍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