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노는 놈과 미친 년이 쫓겨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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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야기 4 – 노는 놈과 미친 년이 쫓겨난 도시

2004 아테네 올림픽의 성화가 마지막 불꽃을 사르고 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 “놀이판”에 “ 열광(熱狂)”하는 걸까? 다 알다시피 올림픽 종목은 공 가지고 놀거나 몸 비틀어 노는 몇 종목을 제외하면 대개가 싸움박질 놀이다. 누가 뭐라든 나는 올림픽의 대표 종목은 마라톤이 아니라 근대 5종 경기라고 생각한다. 말 타고 달리다 말이 지치면 내려서 뛰고, 강이 가로막으면 헤엄쳐 건너 총질 하다가 총알이 떨어지면 칼 뽑아 들고 싸우는 일련의 전투과정을 나름대로 세련되게 정리해 놓은 종목이다. 대부분의 경기 종목이 여기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육상, 수영, 사격, 양궁, 격투기 등이 모두 싸움박질 놀이가 아니던가. 더 말하면 군소리다. 인류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은 역설적이게도 한갓 전쟁놀이일 뿐이다.

다 알다시피 이 전쟁놀이는 올림푸스 산의 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몇 년에 한 번씩 진짜 전쟁을 “쉬고” 가짜 전쟁을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좀 애매한 점이 있다. 올림푸스 산의 신들은 인간들이 전쟁을 “쉬는 것”에 기뻐했을까, 아니면 전쟁놀이를 “하는 것”에 기뻐했을까.

우리말에 특이한 단어가 어디 한 둘이겠는가마는 “놀다”라는 단어만큼 이상한 단어도 드물 것 같다. 사람들에게 노는 것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열이면 여덟, 아홉은 좋아 한다고 한다. 싫어한다는 사람은 대개 나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사실 나는 노는 게 무섭고 놀게 될까봐 두렵다. 그러나 세상에 아무리 비정규직이 많다 한들 그들이야 인간축에도 못 끼는 소모품들이니까 그 심사에 일일이 신경쓸 필요까지는 없을 터이다. 또 비정규직이면 어떻고 실업자면 어떤가. 로또 대박만 맞으면 평생 “놀고 먹을” 수 있는데. 그 쯤 되면 비정규직이라도 노는 게 무섭지는 않을 것이다. 노는 것은 일단 좋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이 자신을 “놀리면” 기분이 나빠진다. 싸우고 들어온 아이들에게 왜 싸웠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짜식이 놀리잖아”라고 대답한다. 노는 건 좋은데 놀림을 받는 건 – 달리 말하면 남이 나를 놀게 하면 – 싫다. 노는 데 “미친” 사람도 놀리면 화를 버럭 낸다. 도대체 “논다”는 건 무슨 뜻일까.

“놀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열가지 이상의 정의가 나와 있다.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다라거니, 놀이를 하며 즐겁게 지내다라거니 – 정의 자체가 동어반복이지만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다 – , 역할을 맡아 하다라거니 연기를 하다라거니 등등. 그런데 나는 “놀다”라는 단어가 지닌 이토록 많은 의미가 모두 “신(神)을 기쁘게 하는 행위”에서 파생된 것이라 본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 종교의식의 보편적 구성요소는 살해[희생(犧牲)], 혼음(混淫), 음주(飮酒)와 집단 가무(歌舞) –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현대인의 가장 근원적인 성소(聖所)는 나이트클럽이다 – 였다. 누가 뭐래도 노는 것의 정수(精髓)는 주색잡기(酒色雜技)가 아니겠는가.

고대인들은 동족을 희생으로 삼고,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함으로써 신을 기쁘게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행위를 하면서 스스로도 즐거워 했다. 근대 이후에 일반화된 분석적 시선으로 본다면 “노는 것”을 구성하는 여러 행위들은 서로 얽히기도 하고 구별되기도 하겠지만, 고대적 인식틀 속에서는 단 한가지의 의미를 지닌 행위였을 뿐이다. 신을 부르고 그를 기쁘게 하는 것. 그래서 신나게 – 신(神)이 나오게 – 놀아야 했고, 놀다 보면 신이 났다. 마침 영어의 play와 pray도 반끝 차이다. 그럼 왜 놀리면 화가 나냐고? 노는 것과 놀림을 당하는 것은 노래부르고 춤추는 자와 희생이 되는 자의 거리만큼, 꼭 그만큼 거리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요즈음에도 왕왕 신나게 놀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 “광란의 밤을 보내자”는 말이다. 미친 듯이 논다거니 노는 데 미쳤다거니 하는 말도 자주 쓰인다. “미치다”는 말은 국어사전에는 “어떤 곳에 닿다. 이르다”로, 아니면 “정신이 나가다, 어떤 대상에 몰두하다”로 정의되어 있다. 앞의 것과 뒤의 것은 아예 표제어를 달리 하여 설명된다. 우선 정신이 나갔다는 의미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일에 미쳤다는 말을 쓰기는 한다. 이런 용례가 있다 보니 미치다에 “몰두하다”는 의미가 부가된 것이겠지만, 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이건 언어도단이다. 미친 상태로 일을 해서 무슨 성취를 보겠는가.

미치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노는 일”이어야 한다. 노는 것과 미치는 것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고 남이 뭐라든 아랑곳 않고 흔들어 대는 일은 “미쳐야” 할 수 있다. 주술과 비밀의 부호로 가득찬 책에 미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노래를 부를 바에야 미친 듯이 부르고 춤을 출 바에야 정신 없이 추어야 한다. 미치다는 “정신이 나가다”가 맞다. 그런데 정신이 나가면 그 자리는 빈 자리로 남을까? 그 빈 자리를 차고 들어오는 것이 “잡신”이거나 “귀신”이다. 그래서 미치다는 “신 들리다”와 같은 뜻이 된다. 이제 앞의 정의로 되돌아가 보자. 미치다는 “○○에 도달하다. 닿다. 이르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일반적으로 ○○은 공간, 지점, 경지를 지칭하지만 본래는 신(神)이었을 터이다. 신에게 닿다 = 신 들리다 = 정신 나가다이다. “미친년 날 뛰듯” – 나는 “미친년 널 뛰듯”이라는 속담은 “날 뛰듯”이라는 말이 변한 것으로 본다. 널은 둘이서 뛰어야 하니 그게 맞다면 미친년들 널뛰듯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 이라는 속담은 신들린 무당(여자)이 작두날 위에서 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미쳐 날뛰다도 같은 뜻이겠고.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푸코 덕분(?)이다. 그는 『감시와 처벌』에서 “미친 사람”이라는 말이 중세어에서는 “신에게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고 했다. 이렇게 공교로울 수도 있을까?

춤을 추는 기생들. 기생의 춤이나 무당의 춤이나 ‘남’ – 또는 신(神)을 즐겁게 하기

위한 행위이다. 기생의 춤과 무당의 춤은 ‘격’이 다르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둘 다 천민(賤民)이었다.

 

지금쯤이면 성실한 독자라도 이 글의 주제가 뭔지 헷갈릴 때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고대와 중세의 도시가 광대한 농촌을 수탈함으로써만 존립할 수 있었음은 이미 말한 바 있다. 도시는 생산하는 것이 거의 없었으니 그 안은 “놀고 먹는” 자들로 채워져 있었다. 왕과 그의 신하들, 사제들, 병사들, 그들의 가사노예들, 상인들, 그리고 드물게 수공업 장인들. 그리고 그 후계자들. 이들이 도시 주민의 기본 구성인자였다. 도시는 생산에서 괴리된 자들이되 스스로는 신(神)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 – 노는 놈과 미친 년들 – 의 공간이었다. 도시 서울의 주민에 대해서는 다음 지면을 빌어야 하겠지만, 한가지만 미리 말해 둔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후 간략하게 서울의 주민 구성을 조사한 적이 있다. 그 때 직업난에 “양반”이라 기재된 사람이 무척 많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직업난 기재사항은 “무직”으로 바뀌었다. 근대적 시선에 비친 양반은 “놀고 먹는” 인간일 뿐이었다.

 

 

무당의 춤. 그림 속의 인물만 보아서는 기생인지

무당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시 주민이 그러한 것 처럼 도시의 공간 요소도 모두 성소(聖所)라는 작은 핵(核)에서 분기된 것들이다. 성소(聖所) 자체는 신전(神殿)이나 왕궁(王宮)이 되었고, 그를 경비하기 위해 병영(兵營)이 들어섰으며, 신의 대리인[사제(司祭)]들이 지닌 비밀스러운 권력의 원천을 비장(秘藏)하기 위해 문서보관소(도서관)가 만들어졌다. 사제(司祭)와 그 보조자의 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장과 창고가 만들어졌으며, 그들의 재생산을 위해 학교가 지어졌다. 접신용구 – 놀이기구 = 노리개 – 를 만들기 위한 정교한 수공업 작업장도 빼 놓을 수 없는 도시의 공간요소였다.

가장 특징적인 도시 건조물은 한 해 한 두차례 주변 농촌 주민들까지 끌어 모아 벌이는 대규모 “놀이”를 위한 시설이었다. 도시에서 가장 큰 건조물인 경기장이나 원형 극장은 가장 비생산적인 건조물이기도 하다. 종교의식이 일상적인 문화활동으로 바뀐 현대에조차 경기장은 비어 있을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중을 일시에 모아 놓을 수 있는 대형 광장이나 경기장을 갖추지 않은 도시는 거의 없었다. 도시민과 농촌주민, 수탈자와 피수탈자,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한 자리에 모여 한 때나마 종교적 일체감을 갖는 것은 칼을 사용한 지배, 수탈보다 훨씬 유용했다. 거대한 경기장은 도시의 지배력과 동원능력을 과시하고 그 통합능력을 구현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자신들이 모시는 신(神)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세의 서울은 세계 도시가 지닌 보편성에 비추어 본다면 무척 특이한 도시였다. 서울에는 경기장은 물론이요 작은 극장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전(神殿)이라 할만한 것도 없었다. 종묘와 사직, 문묘와 국사당, 그밖에 왕이나 그 대리인이 가서 제사 지내는 여러 곳의 제단(祭壇)들이 있기는 했지만, 대규모 군중이 종교적 일체감을 얻을 수 있는 공식적인 행사도, 그를 위한 공간도 없었다. 신라의 경주나 고려의 개경에는 수십개의 사찰(寺刹)과 탑이 있었고, 수천의 중이 있었다. 연등회나 팔관회 같은 행사 때면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경향 각지의 사람들이 몰려 들었을 것이다.

모든 성소(聖所)가 그렇듯이 사찰은 경건해야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가장 신성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통속의 이미지는 어느 한 순간 극적으로 반전되어 가장 속되고 가장 방종한 공간이 되기도 했다. 고대의 종교의례에서 행해졌던 의식들은 순치되고 완화되면서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사찰은 극장이기도 했고, 무대이기도 했다. 정도전(鄭道傳)은 고려시대 중들의 타락을 비난했지만, 놀고 먹는 자들이 없었다면 문명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장소에서 성(聖)과 속(俗)을 연결해 주었다. 그것이 그들의 일이었고, 그로써 권위를 가질 수 있었다. 술만 해도 그렇다. 술은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하는 신령스러운 물이다. 제례에 술을 쓰지 물을 쓰는가. 중세 서양에서도 술 만드는 일은 수도원의 몫이었다. 그런데 정도전은 중들이 술을 만들어 판다고 욕을 했다. 그러나 놀고 먹는 사제(司祭)들이 아니고서는 누가 그 “고심막측”한 학문에 미칠 수 있었겠는가.

지금은 국보 2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1896년 이전까지 원각사 탑은 아무런 종교적 감흥도 주지 못한

채 수 많은 주택 사이에서 도시의 흉물로만 남아 있었다.

 

한양 땅에 새 서울을 건설한 정도전과 이방원은 이곳에 기존 종교의 상징들을 담고자 하지 않았다. 중과 무당은 성 안에 들어와 살지도 못하게 했으니, 그들이 살고 그들이 활동하며 그들이 사람과 접할 수 있는 장소가 만들어질 수는 없었다. 도성 안에는 새 사찰이 지어지지 않았고, 거대한 종교적 상징물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농촌주민이 몰려와 함께 노는 장소는 물론 도시 주민이 어울려 즐길 수 있는 장소도 없었다. 일본 에도의 가부키좌나 중국 북경의 경극장 같은 극장도 없었다. 신을 찬미하는 집단 행위에서 비롯된 극(劇)조차 공식적으로는 궁궐(宮闕) 안에서만 이루어졌다. 궁 안에는 산대가 설치되고 나례(儺禮)가 진행되었지만, 시정(市井)에서는 마당놀이조차 흔치 않았다. 도성민들은 능행길에 나서는 왕을 ‘구경’하는 일이나, 왕의 장사를 지내는 일, 대보름의 다리밟기나 연날리기, 초파일 연등놀이 정도만 즐길 수 있었다. 유교 국가의 수도 서울은 놀이에서 종교색을 빠르게 탈색시켜 갔다.

1919년 고종 인산 때의 방상씨. 중세 도시 서울 주민들에게는

산 왕이든 죽은 왕이든 왕의 행차는 그 자체로 구경거리였고,

그를 구경하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놀이였다. 왕은 대사제이자

가장 인기있는 배우였다.

 

“노는 행위” 자체가 바뀌었으니 놀고 먹을 수 있는 자격조건도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은 사(士)의 도시가 되었지만, 사대부(士大夫)들은 자신들이 놀고 먹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노는 놈은 중이나 광대뿐이었고, 미친 년은 무당이나 기생뿐이었다. 유교 지식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민중의 삶에 뿌리내린 종교의 사제(司祭)들과 그 후예들을 천민(賤民)의 지위로 내모는 데 성공했다. 더불어 “노는 일”도 천한 일이 되어 버렸다. 사대부가 하는 일 – 현대인의 놀이 중 으뜸이 증권이나 부동산에 대한 ‘투자’이듯이 조선시대의 놀이 중 으뜸은 사실 ‘시서(詩書)’였을 테지만 – 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니었다. 이후로 놀이는 천한 것들이 하는 ‘짓’이 되어 버렸다.

P.S. 위에서 늘어 놓은 우리말 풀이는 전적으로 내 측상지학(厠上之學) – 구양수(歐陽脩)의 삼상(三上), 즉 침상(寢上), 마상(馬上), 측상(厠上) 중 측상(厠上)이다. 화장실에 앉아 혼자 생각했다는 뜻이다. 삼상 중 가장 저급한 것이 측상이다.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역시 노파심에서 적었다 – 에 따른 것이다. 관련 문헌을 찾지도 못했고, 국어학자에게 물어 보지도 못했다. 사실 물어보려다가 망신당할까 봐 그만 두었다. 그런만큼 별다른 근거는 없다. 망신은 한 사람으로 족하니 인용할 때 주의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