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경복궁의 중심 강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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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중심 강령전

홍순민(중세사 2분과)

경복궁의 중심축을 따라 광화문, 근정전을 지나 사정전을 휘돌아 곧바로 뒤로 가면 향오문(嚮五門)이란 문이 나온다. 그 문을 들어서면 정면 11간에 측면이 5간 해서 55간이나 되는 상당히 큰 건물이 위엄있게 앉아 있다. 경복궁의 연침 (燕寢) 강령전(康寧殿)이다. 동서 양쪽에 각각 하나씩 거느린 건물들 ― 동소침 (東小寢), 서소침(西小寢)과 함께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소침의 이름이 연생전(延生殿)이요, 서소침의 이름이 경성전(慶成殿)이다.

왕이라고 해서 늘 곤룡포, 면류관과 같은 화려하기는 하나 거추장스러운 복장을 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또 왕이라고 해서 늘 공무만 처리할 수는 없다. 평복으로 일상생활을 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또 측근 고위 신료를 편안하게 만나 깊숙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왕이 그렇게 일상생활을 하는 궁궐의 건물을 연침, 달리는 침전(寢殿) 또는 연거지소(燕居之所)라고 한다. 경복궁에서 왕의 건물, 다시 말해서 왕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건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의식행사를 치르는 정전―근정전이나 공식집무실에 해당하는 편전―사정전보다도 연침인 이 강령전을 들어야 할 것이다. 연침은 궁궐의 중심인 내전 구역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을 이루는 건물이다.

강령전은 1395년(태조 4)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 건립되었다. 그 해 10월 정도전이 궁궐에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울러 각 전각에도 이름을 지어 그 뜻을 태조에게 아뢸 때 그 맨 앞에 강령전을 말하였다. 그런 만큼 그 이름에 깃든 철학이 근정전, 사정전 못지 않게 깊고 무겁다.

“홍범 구주의 오복 가운데 세 번째가 강령입니다. 무릇 백성의 왕이 된 분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덕을 닦음에 황극(皇極)―왕으로서의 기준과 법도―을 세우면 오복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연침의 이름을 오복 가운데 하나인 강령으로 붙였습니다.”

강령은 그 자체로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수(壽), 부(富), 강령(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의 오복 가운데 세 번째로서 그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또 오복은 그저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의 지향이 아니라 왕으로서 왕답게 마음과 덕을 닦을 때 저절로 향유하게 되는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강령전 좌우의 연생전과 경성전으로 가면 왕이 천지 자연의 순리를 따라 인(仁)과 의(義)의 덕을 지녀야 한다는 데로 확장된다.

“천지 자연이 만물에 대해서 봄에는 생겨나게 하고 가을에는 이루게 하였습니다. 성인이 만민에 대해서 인으로써 생성하게 하고 의로써 제도를 갖춥니다. … 그래서 동소침은 연생이라 하고 서소침을 경성이라 이름하여 전하께서 천지 자연이 만물을 생성하는 것을 본받아 그 정령을 밝히 하심을 드러내려 하였습니다.”

강령전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손에 서울이 폐허가 될 때 불타 없어졌다. 그후 270년이 지난 고종 초년에 경복궁을 중건할 때 당연히 함께 중건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다시 세워진 강령전은 50년을 넘기지 못하고 또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1917년 창덕궁 내전에 큰 불이 났는데 이를 복구할 때 경복궁에 남아 있던 건물들을 옮겨다 지으면서 강령전은 창덕궁의 연침인 희정당으로 변신하고 말았다. 원래 강령전은 지금 창덕궁의 희정당이 되어 있고, 경복궁에는 근년에 새로 복원된 강령전이 들어서 있다.

둘 중에 어느 것을 진짜 강령전이라고 해야 할까. 편액이야 창덕궁의 것은 희정당이요, 경복궁에 새로 복원해 놓은 것이 강령전이다. 그러니 창덕궁의 것을 강령전이라고 우기기도 어렵다. 하지만 새로 복원한 강령전 역시 진짜 강령전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마음에 차지 않는다. 단지 새로 만들어서, 연조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과연 이 건물이 50년, 100년 세월이 쌓인다고 해서 과연 깊고 그윽한 문화재의 향기를 풍길까? 어쩐지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왜 그런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꼽을 수 있는 이유로는 만드는 공법이 다르고, 거기 깃든 정신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끌과 대패, 톱과 자귀로 혼과 정성을 다해 지은 집은 하나의 작품이다. 그러나 전동 공구를 써서 시멘트를 척척 발라가며 지은 집은 작품이라고 하기 어렵다. 단지 어느 회사의 제품일 뿐이다. 제품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오직 작품만이 감동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