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의 해빙과 이명박 정부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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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미관계의 해빙과 이명박 정부의 과제

정창현(현대사분과)

1. 뉴욕필 평양공연이 주는 함의

  2008년 2월 26일 6시 7분 역사적인 첫 평양 공연을 위해 방북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뉴욕필)가 북한의 국가인 ‘애국가’에 이어 미국 국가를 연주했다. 동평양대극장 공연 무대에는 북한의 인공기와 미국의 성조기가 나란히 게양됐다. 부시행정부가 ‘악의 축’이라고 규정했던 북한의 수도 평양 한 복판에서 울려 퍼진 미국 국가는 전 세계에 생중계 됐다. 북미관계에 새 장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뉴욕필의 평양공연이 북미관계를 급진전시키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6자회담과 북미대화에 호재인 것만은 분명하다.

“뉴욕교향악단이 역사상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함으로써 우리 인민과 미국 사이의 문화교류가 큰 걸음을 내딛게 되기를 원한다.”

  평양을 방문한 뉴욕필을 환영하며 북한의 송석환 문화성 부상이 한 말은 이번 공연에 거는 북한 당국의 기대를 함축하고 있다. 35년 전 미국과 중국 간 외교관계 수립의 계기가 된 ‘핑퐁외교’에 버금가는 ‘음악외교’가 되기를 바라는 북한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낸 셈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최근 인터뷰에서 “미국은 지금까지 북한과 핑퐁 외교를 갖지 못했다”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자료출처 : 한겨레 신문사 홈페이지 http://www.hani.co.kr/)

  공연 자체로 북한은 엄청난 정치적 효과를 얻었다. 남과 북은 물론 남한과 중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에 생방송된 뉴욕필 공연을 통해 북한은 단숨에 세계의 이목을 평양에 집중시켰다. 공연단이 돌아간 후 우호적인 북한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북한은 공연 취재를 희망하는 각국 취재진 130명에게 단기간이긴 하지만 활짝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단일행사 방북 취재단으론 최대 규모였다.

  특히 북한은 뉴욕필하모닉의 평양 공연 취재를 위해 방북한 ABC의 밥 우드러프, CNN의 크리스천 아만포 등 미국 유명 기자들에게 영변핵시설을 직접 공개함으로써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자연스럽게 홍보했다. 잘 짜여진 한 편의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뉴욕필의 평양공연은 대전환의 출발에 불과하다.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올해를 ‘역사적 전환의 해’라고 규정했다. ‘역사적 전환’에 대해 “말 그대로 세기적 사변이 예고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내놓았다. 이 표현에는 북미관계의 역사적 전환, 더 나아가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에 대한 기대감이 포함돼 있다.

  북한은 갈 길이 바쁘다. 지난해 11월 15년만에 열린 ‘전국 지식인대회’(11.30~12.1)에서 북한은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야 한다는 거창한 계획을 발표했다. 2012년까지 김정일 체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경제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사상, 군사, 경제 3개부문에서 강국을 뜻하는 ‘강성대국’의 달성을 대내외에 선포하겠다는 것이다. 올해가 그 첫해다. 북한은 새로운 5개년 경제계획이 시작되는 올해에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하고, 주민생활에서도 획기적인 향상을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6자회담을 재개해 북핵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유지해 대외투자 유치를 통한 경제향상을 할 수 있느냐, 아니면 또다시 북미·남북관계가 소강국면 내지 갈등 국면으로 변화되느냐는 전환기에 처해 있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대규모 ‘이벤트’이후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뉴욕필의 평양공연은 북한의 선택이 전자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며, 미국에 대한 강력한 ‘화해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2.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新)한반도 구상’

  북한의 대미 화해노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새로운 한반도 구상과 맞물려 있다.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대에 들어와 추진되기 시작한 김정일 위원장의 구상을 확인시켜 준 계기였다. 6·15공동선언 이후 견지하고 있는 남북관계 발전 의지도 다시 한번 확인됐다. 2006년 10월 북측이 핵실험을 할 때까지만 해도 2007년 남북관계의 발전은 예상하기 어려운 정세 변화였다.

  이러한 정세변화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 2006년 11월 ‘종전선언’으로 상징되는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 전환이 맞물리면서 가능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신한반도 구상’에 따라 6자회담과 남북대화에 적극 나선 김정일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이 정세변화를 이끈 측면도 강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한반도 구상’은 2000년대에 들어와 체계화됐지만 북미관계가 악화되면서 2007년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7년 1월 1일 『로동신문』ㆍ『조선인민보』ㆍ『청년전위』 3개 신문의 신년 공동사설, 1월 17일 발표한 정당·정부·단체 연합성명 등에서 이러한 구상이 감지됐다. 특히 북한은 2006년 핵실험 이후 구체적 실천방안을 준비해 왔다.

  북한은 먼저 2006년 11월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간 회동을 통해 6자회담 재개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마카오 방코델타은행(BDA)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고, 12월 5차 6자회담 2단계회의에 나왔다. 또 2007년 1월 16~18일 열린 김계관-힐의 ‘베를린 북미회동’에서도 BDA문제를 북미가 합의한 별도의 워킹그룹을 통해 해결을 모색해 간다는 양보안을 내놓았고, 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미국이 제안한 ‘초기단계 이행조치’에 대한 협의에 적극 자세로 돌아섰다.

  이와 관련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해 1월 1일 “조선(북)은 (올해) 대담무쌍하게 미국에 대한 외교적 공세를 강화해 나갈 공산이 높다”며 “핵시험을 실시한 시점에서 조선은 미국의 위협과 간섭에 종지부를 찍는 노정도(로드맵)를 마련해 놓았다고 보는 관점이 타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한반도 구상’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방침이 정해졌다는 것을 시사한 대목이었다.

  또 북한은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새해 벽두부터 연달아 표명되는 조선의 통일의지에 남측이 호응할 경우 올해 북남관계는 새로운 발전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며 “올해 6·15의 정신을 전면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정책적 공세를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2007년 초부터 남북관계의 ‘새로운 발전 국면’을 시사하면서, 6자회담에서도 유연한 입장을 보일 것을 예고한 셈이다.

  10개월 후 이같은 실천방침은 2차 정상회담 성사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2007정상선언’), 6자회담의 ‘10.3합의’를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한반도 구상’의 핵심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북미관계를 빠른 시일 내에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진전시켜 북미관계 정상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2006년 중간선거 패배 이후 적극적인 북미대화로 선회한 부시행정부의 정책을 활용해 대북 경제제재를 풀고 2000년 하반기와 같은 ‘북미관계 정상화 국면’을 조성하겠다는 방침이다. 2007년 3월 초 미국을 방문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준비는 다 돼 있죠. 앞으로 결과에 대해선 두고 보라”며 시종일관 밝은 표정을 보였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7년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화하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에 동의하고, “남측이 미국과 협의해 계속 추진해 나가도 괜찮겠습니다”라며 북미관계 정상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내비쳤다.

  둘째는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병행 발전시킨다는 원칙 아래 남북협력을 전면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15공동선언이후에도 “매우 불안전한 초보적인 상태의 공존관계”에 머무르고 있는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확고한 평화공존관계’로 전환시켜 나가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007정상선언’에서는 이것이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한다는 표현으로 담겼다. 특히 ‘2007정상선언’에 ‘남북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기로 명기해, 북한에서도 남한에서 제기하는 조선노동당 규약 개정 의사를 내비쳤다.

  과거 남쪽에서는 북한의 대남정책에 대해 ‘통미봉남(通美封南)’이란 용어를 유행처럼 사용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0년을 기점으로 과거의 ‘통미봉남’정책에서 ‘민족공조’노선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선후의 융통성은 있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민족공조(우리민족끼리) 이념을 앞세운 ‘남북·북미대화의 병행’노선에 따른 것이었다.

셋째는 국제환경의 개선과 남북관계의 발전을 토대로 경제재건과 주민생활 향상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지난해와 올해 공동사설에서 ‘경제문제를 푸는데 국가적 힘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한 것과 관련이 있다. 북한이 최대 목표를 ‘인민생활 향상’으로 정한만큼 대화를 통해 경제발전에 필요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여전히 ‘자력 갱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의 획기적 재건을 위해서는 외부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이 ‘2007정상선언’을 통해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 기초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를 수용하고, 개성공단의 ‘3통(통행, 통신, 통관)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인식이 깔려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북한은 기존의 특구지역인 나선·신의주·금강산·개성지역과 앞으로 추가 특구 지정을 계획하고 있는 남포 등에 남쪽과 해외자본을 유치해 경제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도 내부적으로 계획경제의 틀을 고수하며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관계가 진전돼 안보위협 문제가 풀리면 추가 개방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는 실력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30~40대 젊은층으로 세대교체를 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1998년 취임 이후 1차로 내각과 대중단체의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당, 내각, 군대 주요 부서에 3세대 인물들을 대거 발탁했다. 1970~80년대에 대학을 다닌 40대~50대 초반의 신진간부들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의 세대는 크게 ▲혁명 1세대는 일제시기 항일·빨치산 세대 ▲2세대는 1950~60년대 전후 복구와 천리마운동을 주도하며 성장한 세대 ▲3세대는 1970~80년대는 김 위원장의 후계체제를 뒷받침하고 3대혁명소조운동을 주도하며 성장한 세대 ▲4세대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를 거치면서 성장한 세대로 구분된다.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세대교체 작업은 북한 체제 내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앞으로 활발해질 국제·남북교류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다.
특히 1994년 12월 김정일 위원장은 당의 주요 간부와 만난 자리에서 “오늘 우리의 세대들은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다”며 “이런 우리의 새 세대에게 계급 교양을 잘하지 않으면 전(前) 세대들이 피 흘려 세운 사회주의 제도를 지켜낼 수 없다”라고 강조해 3~4세대의 교양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3~4세대들이 국제사회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실력과 감각을 갖추고 있는 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김정일 위원장의 ‘신한반도 구상’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미 직접대화와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의 전망이 확고해 서고, 국제자본이 북한에 투자할 수 있는 국내외적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4가지 개별적 구상이 선순환을 이루면서 북한 내부의 개건과 개선, 남북관계 발전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이 2012년을 구체적 목표 시한으로 밝힌 것은 앞으로 5년간 추진할 개선과 개방의 청사진이 마련됐음을 시사한다.

3. 시대를 역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올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에 골몰하고 있는 부시행정부도 임기 안에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2월 25일 서울에 온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국도 상응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해도 좋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26일 베이징에 간 라이스 국무장관은 중국과 북핵 6자회담 진전 방안 등을 협의한 후 “솔직히 북핵협상이 정말로 정체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일부 진전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북핵문제 2단계는 3단계가 어려움이 있더라도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끝나야 한다”며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신뢰’를 역설했다.

미국은 북한의 입장이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북핵 2단계 해결의 핵심사안인 핵신고 문제를 푸는 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북한이 문서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핵확산 의혹을 해명하되 이를 공개하지 않거나, 문서 대신 구두로 핵신고를 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조만간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것은 국내 상황이다. 통일부 폐지 여부가 논란이 되더니 각종 부정 의혹으로 통일부장관 지명자가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통일부 조직 개편, 4월 총선 등을 앞두고 있어 4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한미정상회담까지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 듯하다.

  더구나 새 정부에서 남북관계는 정책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려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대북관계에서 이념 대결이 아닌 실용주의 원칙을 적용할 것임을 천명했지만 구체적 실천방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기조는 국익에 바탕을 두고 글로벌 코리아를 지향하는 ‘실용외교’로 집약된다. 한·미 관계의 창조적 발전과 자원·에너지 외교 강화, 비핵·개방·3000 구상 등 새 정부가 천명한 주요 국정과제들도 이같은 기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안보정책과 관련해 새로운 평화구조 창출이라는 전략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북핵폐기의 우선적 해결, 비핵·개방·3000 구상 추진, 남북간 인도적 문제 해결 등의 핵심과제를 선정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문호를 개방할 경우 남한이 적극적인 대북 지원에 나서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안에 3000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비핵·개방·3000구상의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이 먼저 핵 폐기를 하고 실질적 변화를 이행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른바 대북 상호주의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핵심공약인 ‘비핵·개방·3000 구상’은 단계별 추진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실질적인 남북경제공동체 진입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북핵폐기→대규모 프로젝트 통한 남북경협 확대→남북경제공동체 협력협정(KECCA) 체결→남북 경제공동체 기틀 마련이라는 과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시장통합’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명박 정부의 구상은 ‘말의 성찬’에 불과하고 실제상황에서는 공염불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북핵문제 해결, 한반도비핵화는 남북관계의 틀이 아닌 6자회담의 틀에서 논의,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6자회담은 ‘2·13합의’와 ‘10·3합의’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의 동력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현재 6자회담은 북미간 대화와 합의를 추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도 이 같은 구도에 따라 한반도비핵화를 추진하고 있고, 앞으로도 극적인 반전이 없다면 차기 미국 행정부에서도 이 같은 정책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비핵화 우선’에 몰입하겠다고 한다. 이 같은 ‘선 비핵화 후 남북경협’ 구상은 남북관계를 6자회담,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북미회담에 종속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는 북한에 ‘통미봉남’아니라 ‘통미통남’을 요구했고, 북한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병행발전’정책으로 화답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북한의 남북관계 중시노선은 확고하게 정착됐다.

  이명박 정부는 이 성과를 계승하기보다는 스스로 남북관계가 파탄 났던 10년 전 김영삼 정부 시절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선 비핵화 후 남북경협’이란 구호는 한 꺼풀 벗겨보면 미국이 하자는 대로, 6자회담의 합의대로 따라가겠다는 지극히 소극적이고, 비주체적인 태도를 보여줄 뿐이다. 


(자료출처 : 한겨레 신문사 홈페이지 http://www.hani.co.kr/)

  더 큰 문제는 대화의 상대방인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에 동의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 개방’발언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아직까지 이명박 정부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북남관계의 발전에 민족의 자주도 있고, 나라의 평화도 있으며 민족의 대단합도 있다”며 6·15공동선언과 ‘2007정상선언’의 철저한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가급적 남북관계가 악화되기 않고 신뢰와 공영의 관계로 유지되길 희망하는 태도로 보인다.

  그러나 한미일 공조, 대북 개방정책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경우 북한은 대남 강경입장으로 선회할 것이다. 북한은  “북남관계는 우리 민족끼리의 관계”이며, “우리 민족끼리의 관계인 북남관계에 외세가 끼어들 틈은 없다”며 한미공조에 대해서 부정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미공조의 강화가 대북 압박정책, 더 나아가 북한체제의 변화로 이어질 지도 불투명하다. 북미관계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비핵화와 동북아평화안보체제 수립을 위한 6자회담의 틀은 여전히 유용하고, 미국도 이를 깨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올해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북미관계 정상화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명박 정부는 ‘현장’과 ‘실용’을 강조하고 있다. 정말로 ‘실용 정부’라면 우선 부시 행정부가 집권 초기에 ‘악의적 무시’정책을 통해 북 체제를 고사시키려 하다가 왜 2005년을 전후해 정책전환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극적인 정책전환이 북미대화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원칙이 서야 ‘실용’도 가능하다.

4.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탈출구

  10년 만에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고소영S라인’(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서울시청 출신의 줄인 말), ‘강부자’(강남의 땅부자 자식까지의 줄인 말) 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내각 구성까지 파행을 거쳤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국정의 제일목표인 ‘실용주의’에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표방하면서도 국민여론을 완전히 무시하고 최고경영자가 기업을 운영하듯이 ‘불도저식’으로 국가를 운영할 태세이다. 최악의 남남갈등과 환경재앙을 몰고 올 것으로 우려되는 한반도대운하 공약을 ‘경제살리기’란 명분 아래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료출처 : 한겨레 신문사 홈페이지 http://www.hani.co.kr/)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에서도 ‘한미동맹 강화’와 ‘실용’이란 이름 아래 헌법과 남북 합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의 관계가 아닌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 몰아가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메신저가 해외에서 북측 인사를 만났다고 한다.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폭넓은 대화가 오고갔다는 후문이다.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격론도 있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은 냉정하게 평가하면 실행수단을 가진 대북정책이 아니라 일방적인 선언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실천은 어떤 형태로든 남북간 대화를 통해 효율적인 이행방안을 마련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접촉이 공식 만남은 아니지만 비공식 대화라도 새 정부와 북한의 입장차이를 좁힐 수 있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공식 특사를 파견하는 대신 스스로 비공식 접촉을 하면서도 지난 정권시기에 있었던 남북교류를 ‘원칙 없는 퍼주기’라고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전략적 한미동맹 복원을 우선과제로 설정했지만 우리나라의 최대무역국이 중국이라는 점, 남북 공존의 틀이 깨졌을 때 경제성장 기조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특히 남북 당국의 공식 합의인 ‘2007정상선언’의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지난 10년 동안 쌓아온 남북간의 신뢰는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북한의 전반적인 대남 정책기조는 ‘2007정상선언’의 순조로운 이행을 통해 ‘연방연합제’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남북협력도 통일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과도 공동선언의 틀 속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2007정상선언’은 사실상 남북관계의 거의 모든 현안을 포괄해 6·15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로드맵을 담고 있다. 이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민족번영의 시대,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가기로 합의했다. 특히 남과 북은 수시 정상회담, 총리회담의 정례화, 부총리급회담과 국방장관회담 등 분야별 논의기구에 합의함으로써 남쪽이 주장하는 남북연합, 북쪽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 연방제에 진입할 수 있는 현실적 토대를 형성했다. 이 같은 남북간 합의는 남한의 대북정책과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가 어울러진 성과였다.

  2000년 북한이 제안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 방식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 방안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평화공존을 통한 단계적 연방제’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전통적 연방제 통일방안이 ‘통합형’에서 ‘공존형’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보수세력에서는 ‘북한의 대남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분단 55년만인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성사 이후 남북관계는 과거의 대결과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화해와 협력의 시기를 맞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2007 정상선언’에 대해 일부에서 ‘통일’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합의내용을 재구성해 보면 남과 북의 통일정책 방향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은 ‘2007정상선언’에서 구체적 통일기구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남북협력을 위한 제도 틀, 예를 들어 총괄 수행 조정기구로 총리급회담, 경제공동협력을 위한 부총리급 경제회담,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국방장관 회담, 의회회담 등에 합의함으로써 남북 사이의 정치·경제·군사 분야 등 남북간 전면적인 협력을 예고했다.

  정상선언에서 합의한 남북대화의 틀은 남측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나와 있는 연합 기구인 정상회의, 각료회의, 남북 평의회 구성과도 비슷하다. 또한 6·15 공동선언 제2항에서 합의한 연합-낮은 단계 연방의 공통성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전면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안정적 협의 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남북간 논의와 진척에 따라 기구의 상설화가 이루어진다면 연합-낮은 단계 연방의 구체적 연합·통일기구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남북간에는 ‘연합기구’를 논의할 수 있는 단계까지 진입할 수 있는 과정에 대해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 같은 성과를 정확히 평가하고 계승할 필요가 있다. 특히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분리, 병행 추진하는 길이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공영의 유일한 방법임을 직시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공들여 정착시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구조를 유지,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비핵화를 달성하고 동북아에 평화안보체제가 수립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미 굴러가기 시작한 6자회담이란 수레바퀴를 멈추기는 어렵고, 멈추게 해서도 안 된다. 북미,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한 평화공존 모색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역류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통일국가 건설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지향하지 않더라도 평화공존이 한반도 대운하 추진, 기업 규제 완화, 영어 몰입 정책보다 이명박 정부가 표방하는 ‘경제 살리기’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동북아 정세 흐름의 ‘현장’을 반영하는 ‘현실주의 노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