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사와 관련, 최근의 동북공정 논란에 대한 몇 가지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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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와 관련하여 최근의 동북공정 논란에 대한
몇 가지 斷想

김종복(고대사 분과)

1.

3년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중국의 동북공정이 요즘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9월 4일 KBS의 9시 뉴스에서 최근 중국에서 출간된 『발해국사(渤海國史)』라는 책의 내용을 소개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특종(?)을 놓친 각종 언론에서는 고구려에 이어 발해마저도 중국사로 편입하였다고 다소 호들갑을 떨었다. 고구려연구재단이 동북아역사재단에 통합에 따른 양자간의 갈등, 동북공정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에 대한 보도가 뒤따랐고, 급기야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와 관련하여 친중 반일(및 반미)의 성향을 보이는 현 정부의 태도에 대한 논란으로까지 비화되었다.

2.

사실 최근의 언론 보도에서 보이는 동북공정에 대한 논란은 새삼스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 며칠 지나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 알려졌듯이 이미 그 실체는 지난 2003년에 언급된 내용이 되풀이된 데 불과하다. 다만 그 발단이 발해사와 관련되었기에 발해사 전공자로서 몇 글자 적어본다. 언론의 속성상 처음 다소 선정적으로 또는 도발적으로 보도되었던 고구려에 이어 발해마저도 중국사로 편입하려고 한다는 내용 역시 중국학계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발해는 당대 지방민족정권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공식적인 입장이었고 이에 대한 한국학계의 비판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3.

문제의 『발해국사』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이 책의 내용은 “1) 발해 건국의 주도 세력이 고구려 유민이 아니라 말갈족이며, 2) 대조영 정권은 초기에 말갈을 정식 국호로 채택하였고, 3) 발해는 완전한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가 아니라 당의 통치 범위 안에 든 지방민족정권에 불과하다”라는 점들을 근거로 발해사를 중국사로 보고 있다고 한다. 역시 새로운 내용은 없이 종래의 견해를 종합 정리한 데 불과하다.

4.

발해사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건국 시조인 대조영에 대해서는 『구당서』와 『신당서』가 각각 “발해말갈(의 대조영)은 고(구)려 별종”과 “속말말갈 출신으로 고구려에 복속한 자”로 기록한 데서 논란의 여지가 발생하였다. 이 부분은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지만 종래 한국학계에서는 전자, 중국학계에서는 후자에 근거를 두고 논지를 전개하였다. ‘순수하게’ 고구려(인)으로도 볼 수 없지만 마찬가지로 말갈(족)으로도 볼 수 없는 데서 발해사에 대한 논란이 발생한다. 다음으로 대조영 정권이 처음에 말갈을 정식 국호로 채택하였다는 것은 사실의 호도이다. 왜냐하면 글자의 차이는 있지만 역사책에는 대조영이 건국 직후 진국왕(振[震]國王)을 자칭하였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에 대해서는 전통적인 중화주의에 입각한 조공-책봉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대조영이 처음 정착한 동모산으로 추정되는 성산자산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현유향 성산자촌)

5.

고구려 멸망에서 발해 건국에 이르는 과정이나 발해의 문화 등에서 발해사는 고구려와 말갈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근대 국민국가의 일국사적인 시각에서 ‘순수하게’ 또는 배타적으로 어느 한 요소만 강조함으로써 자국사로 편입한 데 있다. 종래 남북한을 포함한 한국학계가 고구려와 발해의 계승관계만 규명한다면 발해사는 당연히 한국사가 된다는 암묵적 전제 하에  말갈적 요소를 부차적으로 취급하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역으로 말갈적 요소를 강조하고 고구려적 요소를 배제하면 자연히 중국사가 된다고 보는 중국학계의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사실은 고구려가 한국사라는 점에 대해서는 종래 중국도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6.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며 종래 한국사로 인정하던 고구려조차 새삼 중국사로 편입해야 하는 이유의 하나는 발해사에서 고구려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을 학문적으로 더 이상 경시할 수 없다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90년대부터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보는 견해를 내세운 중국학자들은 이미 발해사에 대한 논저를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발해사 연구자로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중국학계가 고구려도 중국의 역사로 본다면 종래 논란이 되었던 발해사의 귀속문제가 일거에 해결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해를 말갈족의 역사로 본다는 점이다.

국가적인 연구사업이라는 속성상 기존의 견해를 종합 정리해도 무방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다만 고구려를 중국사로 보려고 했던 중국학자들이 고구려 영역과 관련된 요녕성과 길림성 학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흑룡강성은 고구려와 무관하기 때문에 여전히 말갈족 주체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의 『발해국사』의 저자는 흑룡강성 사회과학원 소속이다.

7.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에도 지배하기 위하여) 과거를 지배한다는 경구를 생각하면 동북공정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입장 차이는 아마도 당분간 해결될 전망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해석은 과거 사실에 대한 객관적 입장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역사해석은 결국 선전․선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발해국사』의 저자는 남북한이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일정한 성과를 거뒀지만 민족적 감성에 사로잡혀 학술연구의 정상궤도에서 벗어났다고 폄하했지만, 그러한 비판은 자신에게도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