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密偵)? 밀정(密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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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정(密偵)? 밀정(密情)?

 

이태훈 (근대사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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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영화 ‘밀정’ 포스터 (네이버 영화)

 

추석연휴에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갔다. 700만명이 넘게 보았다는 ‘밀정’이다. ‘수백만’의 관람인 중 한명을 차지한 셈이다. 영화를 좋아하고 관심도 많았지만, 항상 게으름 때문에 볼 시기를 놓치곤 했던 나로서는 꼭 봐야겠다는 굳은 결심까지 하고 보러 간 영화였다. ‘밀정’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몇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작년의 ‘암살’을 시작으로 ‘동주’ ‘덕혜옹주’, ‘아가씨’ 그리고 ‘밀정’까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근래 갑자기 늘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일제하를 전공하고 또 가르치는 입장에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하란 배경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새삼스럽게 공감하고,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성공했다는 얘기를 거의 못 들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친일경찰’ 이정출(황옥)이 영화의 중심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일제시기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에 ‘친일세력’ ‘조선인 친일경찰’은 매우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정형화된 ‘시대의 억압’, ‘악의 화신’으로 그려졌다. 일종의 클리셰였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암살’에서도 임정의 배신자 이정재는 훌륭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하였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 배신자가 된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배신자로서의 몇십년을 지나는 동안 그의 내면에서 어떤 생각들이 오갔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배신 후 반성 없는 직진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시기 삶의 생생함을 살려내려면 체제협력자 혹은 그들의 활동을 그렇게만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봐야 그들 역시 조선인이고, 그들의 내면에 일본에의 충성만이 자리 잡았을리 없기 때문이다. 조선인이라는 핸디캡, 출세욕심, 소소한 가정사, 조선사회와의 복잡한 관계, 살아남아야 한다는 조바심 등등. 아마도 많은 생각들을 했을 것이고, 그러한 삶은 식민지 조선에서 살아가는 이상 벗어나기 힘든 굴레였다. 그런 사람들을 영화는 어떻게 그려냈을까? 정말 궁금했다.

movie_image-2[사진2] 영화 ‘밀정’ 스틸컷 (네이버 영화)

어쨌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관람한 영화 ‘밀정’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1923년 의열단의 폭탄반입과정에서 벌어지는 경찰 이정출과 의열단원들의 기묘한 우정과 추격전, 그리고 마지막의 통쾌한 복수는 울컥하는 마음마저 들게 하였다. 특히 많은 영화평에서 상찬하였듯이 송강호의 연기는 탁월했다. 밀정 이정출의 희노애락, 번민, 회심과정을 너무나 입체적으로 연기하여, 과거 영화들에서 볼 수 없었던 회색빛 조선인의 마음을 그려내고 있었다. 고증에도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건의 전개과정 자체가 자료와 연구성과를 충분히 섭렵한 다음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고, 기차, 역 등의 세트도 당시의 사진보다 어떤 면에서 더 그럴듯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는 두고두고 기억될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정출의 소속은 경무국인데 직속상관은 경기도 경찰부장이 나오는 등 부분적인 오류는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문제되기에는 영화가 너무 재밌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볼수록 더 궁금해진 것은 영화가 소재로 한 실제인물 황옥은 정말 밀정이었을까 아니면 영화가 그린 것처럼 회심한 비밀단원이었을까란 의문이었다. 영화를 보러 간 두 번째 동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독립운동에 실망하고 밀정이되었다가 다시 회심하는 과정은 너무나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이었다. 민족운동의 길을 선택했다 그냥 포기도 아니고 친일경찰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다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건 운동의 길로 들어간 경우는 내가 아는 한 거의 없다. 영화에서야 그렇게 그려야 하고 그렇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실제 그 위치에 있는 인물이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친일은 그토록 얇은 가면일 수 있었을까? 재미는 있었지만, 고민만 더 늘어난 영화관람이었다.

 

movie_image-6[사진3] 영화 ‘밀정’ 스틸컷 (네이버 영화)

영화를 보고 돌아와 황옥에 관련된 연구들을 찾아보았다. 황옥에 대해서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부터 의열단 연구에서 언급되었고, 최근에는 그의 일생을 단독으로 다룬 연구까지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은 거의 모두 확인되었고, 출생, 가정환경, 출옥이후 행적까지 많은 정보들 모아져 있었다. 그러나 연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에 대한 평가는 더 어려워졌다는게 현재까지의 결론이다. 기본적으로 그를 만났던 의열단원들, 그리고 민족운동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가 비밀리에 민족운동에 헌신했던 사람들이라고 증언한 반면, 정작 그 자신은 재판정에서 그의 모든 행적은 밀정공작의 일원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한 것은 재판에서의 그의 주장이 살기 위한 거짓진술이라고 한다 해도, 해방 후에 자신의 행적에 대한 명확한 회고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방 후 누구나 다 아는 친일파들조차 자신은 민족을 위해 노력했다고 변명하던 와중에도 그는 자신의 행적에 대해 뚜렷한 회고를 남기지 않았다. 한국전쟁 중 납북되지 않았다면 무엇인가 남겼을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얘기하려 했다면 아마 그 이전에 했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지 궁금함만 더할 뿐이었다.
역사가가 자료 없이 얘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밀정으로서의 활동과 독립운동 지원이 모두 다 그의 본심 아니었을까라는.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그의 행적 때문이었다. 잠시 황옥의 행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경로를 걸어 1923년에 이르고 있었다. 황옥은 1887년 경북의 개화된 양반지주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신문물을 교육받았고, 1909년 강제병합 일년전에 재판소 서기로 관계에 들어선 인물이었다. 1910년대 내내 지방재판소의 서기겸, 통역생으로 근무하였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현직에 있었다. 이후 홍진을 따라 상해에 망명하여 잠시 임시의정원에 간여하였으나, 친일관리 출신인 것이 문제가 되어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한성정부 관련 정보를 넘긴 대가로 경무국 도경부로 채용되어 그 이후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국내지부 조직에 관여하는 등 경찰의 비밀공작을 주도하다 1923년 의열단활동에까지 연결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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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영화 ‘밀정’ 스틸컷 (네이버 영화)
그런데 그는 양쪽으로부터 모두 대단한 신뢰를 받은 인물이었다. 경무국과 경기도 경찰부의 대단한 신임을 받아 무려 공산당과 의열단을 지원하는데 경찰기밀비를 사용하였고, 반면 그와 관련된 의열단원들은 해방 후까지도 그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또 그의 행적에서 특히 이상한 것은 조선총독부 경무국 후에는 경기도 경찰부가 왜 이렇게 위험한 공작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었다. 해외의 민족운동세력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재판에서의 황옥 측 주장이지만, 정작 그 공작을 승인하고 눈감아준 그의 상부에서는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경무국 고등경찰과 시절 상관이자 경기도 경찰부 부장으로 그를 지휘한 경찰부장 시로가미의 공명심, 과욕이 부른 실수정도이지만, 욕심만으로 황옥에게 그런 임무를 맡길 만큼 조선총독부 경찰이 허술하다고 보는 것도 어딘지 이상하다. 무언가 황옥에게 신뢰할 만한 계획과 실적이 있지 않았다면 이런 위험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 것이란게 내 추측이다. 즉 황옥은 경찰이 된 이후 밀정으로서 신뢰할 만한 실적, 정보를 계속 꾸준히 쌓아 갔을 것이고, 거기엔 나름의 진정성과 성실함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다. 반면 그와 관계했던 의열단원, 고려공산당원 들이 그가 진심을 다한 지원자였다고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마음을 열어 놓을만한 진정성을 실제 행동을 통해 보여줬다는 것이고, 그의 말과 행동이 재판 이후 평생 유지될 만큼 강력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쪽 모두에게 그의 행동은 진정성 있게 느껴진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설명은 어쩌면 하나일 수 있다. 어느 수준까지 그는 양쪽 모두에게 성실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성실함은 어느 편도 아직 선택하지 못했다는 것. 그에게 선택의 순간은 다가왔지만, 그가 선택하기 이전에 파국은 다가왔고, 그는 살기 위해 최선의 증언을 했다는 것, 그래서 그 이후 자신의 본마음에 대해 어느 편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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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영화 ‘밀정’ 스틸컷 (네이버 영화)
모두 가설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알지 못하는 것은 그가 밀정이었는가의 여부보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비밀리에 감춰진 密情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조선인으로서의 그와 식민지경찰로서의 그, 그 둘 중 어떤 것이 그를 모두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식민지기를 살아간 대부분의 사람들의 密情을 우리는 아직도 알지 못하며, 그 영원한 수수께끼를 풀어 갈 실마리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민족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선택이듯, 식민지에서 살기 위해 친일을 한다는 것 역시 너무나 단순한 설명이다. 그 모두가 가능하지만 어느 한쪽의 선택도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합리성 이상의 것들이 식민지 조선인의 마음을 지배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영화를 보고난 느낌이었다. 아마도 역사연구자들에게 남겨진 중요한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