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개편에 부쳐 – 미래지향의 매체로 더불어 함께하는 희망의 역사학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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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한국역사연구회 회장)

한국역사연구회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웹진을 새롭게 단장하게 되었다. 웹진은 창립 당시 발행하였던 회보를 2000년도에 사이버 매체로 확대 개편한 것이다. 종이매체였던 연구회 회보를 가상공간의 사이버 매체로 전환한 것은 역사의 실체적 흔적을 중시하는 역사연구자들에게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 보면 역사학의 본질을 가장 잘 적용한 역사학자다운 선택이기도 하였다. 역사학자의 연구 행위는 과거를 탐구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앞으로 올 미래로 가기 위한 것, 따라서 시대와 함께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촉을 항상 열어두게 마련이다. 당시 통신환경의 대중화에 따라 사이버 공간이 일상화하게 되는 시대흐름을 한국역사연구회의 눈 밝은 연구회원들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웹진의 탄생은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맛의 밥상을 차리는 실험대였다. 회원들은 책을 펴듯이, 로그인을 하고 사이버 공간으로 들어갔다. 요즘은 사이버 공간에서 로그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 글을 올리고 정보를 나누며 토론하는 웹진은 자신의 연구를 읽히기 쉽게 가공하고 계발하는 글쓰기의 실험장이 되었고, 그렇게 실린 글들은 종종 다음 회가 기다려지는 인기 연재물이 되기도 하였다. 아울러 사이버 공간에서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소통의 맛을 보기도 하였다. 당시 한국역사연구회가 학술단체 최초로 웹진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얼리 어답터 연구회원들에 힘입은 바 크지만, 연구자 대중조직으로서 공동연구를 일상활동으로 하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또한 회지 및 인쇄매체 간행을 담당하는 편집위원회와 더불어 사이버 공간의 매체를 담당하는 웹진위원회를 둔 것도 선도적인 시도였다.

웹진 창간 후 16년이 지났다. 그동안 사회에서 사이버 공간 활동의 일상화는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멀티미디어 매체를 구동하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smart work가 일반화되었다. 정보 공유가 무한확대 되는 인터넷 유목민 시대에 사이버 공간에서 생산 유통되는 자료와 학문 지식은 역대급으로 증가하였다.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에 따른 역사자료의 디지털화는 더욱 확대되었고, 문자 만이 아닌 말이나 영상 또한 사이버 공간에서 소통의 수단으로 부상하였다. 이렇게 변화하는 멀티미디어 환경에서 웹진을 현실에 맞게 개편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었다. 한국역사연구회는 연구자 대중조직으로서 학문적 권위를 높이는 것 못지않게 연구 성과의 확산과 소통을 위해서 매체의 활용을 현실화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종이 인쇄 책을 내는 것 보다 e-book이 더 빨리 제작되고, 유통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social network는 실시간 글쓰기와 영상화를 부추기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인공지능 시대에 어쩌면 알파고 같은 로봇이 빅데이터로 역사책을 쓴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대에 량과 속도의 경쟁에서 역사학은 그다지 우월하지 못하다. 역사연구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일어난 인간사를 종합하고 맥락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라서 생각의 깊이만큼 일정한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웹진의 새로운 출범은 양과 속도의 경쟁을 따라 잡기 위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매체의 변화, 속도의 경쟁이 주는 긴장을 받아들이되, 인간 생각의 깊이를 반영하는 다양한 역사연구 활동을 위한 인프라의 재정비, 우리식의 신장개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변화하는 매스미디어 환경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을 가장 잘하는 역사연구자들의 활력을 담아내고, 새로운 연구 의욕과 입맛을 살리는 활동을 도와서 역사연구자와 시민이 함께 나누는 희망의 역사학의 밥상을 차리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 정부나 대학은 인문학의 축소, 역사학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는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으면 인문학이나 역사학의 역할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동력으로 작동하려면 소외계층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고 전체 인류의 삶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을 제외한 OECD 많은 나라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나 지속가능발전의 지표를 국제사회에 보고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협력과 배려, 공공성 등과 관련한 인간의 삶은 변화된 미래에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새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인간다움의 생각과 실천, 그리고 따뜻함을 창조할 수 있는 역사학은 미래의 희망이다. 이 희망을 실현하는데 웹진의 개편이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창립 이래 학문적 책임과 사회적 역할을 해왔던 한국역사연구회의 전통을 이어서 개편된 웹진이 시대와 함께하는 인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활동을 촉진한다면, 웹진은 미래지향의 매체로서 희망의 역사학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물론 그 마중물이 희망의 역사학이라는 큰물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연구자들 스스로 기존의 생각이나 방법에 머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변화하고 움직이는 생물처럼, 법고하되 창신을 위한 끊임없는 궁리와 참신한 시도의 펌프질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개편된 웹진을 통해 미래로 가는 희망의 먼 길에 많은 분들이 함께 가기를 바란다. 사이버 공간에서 더불어 다양한 연구 밥상을 차리고 그 나눔을 즐긴다면, 그것은 먼 길을 함께 가는 행복한 역사연구자의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렇게 행복한 역사연구자들의 연구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를 바란다. 새로 개편된 웹진에서 법고(法古)를 통해 끊임없이 창신(創新)하는 행복한 역사연구자들의 향연이 이어지고 시민들과 더불어 함께하는 희망의 역사학의 미래를 기대한다. 끝으로 참신함과 열정으로 웹진 개편에 애써주신 이하나 웹진위원장을 비롯한 웹진위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