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산 보현사를 찾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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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태양을 머리에 이고서 사찰 경내를 돌아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남한의 사찰을 둘러볼 때도 주로 가을 아니면 봄, 그리고 드물게나마 간혹 겨울에 찾은 적은 있지만, 한 여름에 어느 절을 찾아간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러나 “언제 이곳에 또 오랴”는 생각이 몸을 움직이고, 그나마 거의 ‘살아 있는 절’이 아니어서 현존 경내가 그다지 넓지 않았던 것이 역설적인 다행이랄까(?) [사실 나는 사찰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고, 공부도 짧아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직접 갔다온 죄(?)로 사진이나마 소개하면서 간단한 메모를 남겨보려 한다.]

▲ 보현사 : 떠나면서 바라본 모습

  보현사는 우선 묘향산이라는 명산에 자리잡았다는 것, 그리고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맹활약했던 서산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이름높다.

  처음 지어진 것이 고려 광종 때였고(968년, 광종 19), 현종대에 탐밀(探密)·굉확(宏廓) 두 승려가 동남쪽 조금 떨어진 곳에 터를 닦고 수백간 규모의 사찰을 새로 지었다. 묘향산이라는 산 이름, 보현사라는 절 이름도 이 때 얻었다.

  이후 불사(佛事)가 줄곧 이어졌고, 1067년(문종 21) 문종은 토지를 하사하고 사적(事蹟)을 기록케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문묵(文墨)이 소실되어 옛 일을 알 수 없게 되자 인종이 김부식에게 명하여 이 절의 사적을 기록하고 돌에 새겨서 길이 남겨지도록 하였다. 이런저런 내력들을 새긴 비가 바로「보현사비」이다.

▲ 보현사비 : 김부식이 문장을 짓고 문공유(文公裕)가 글씨를 썼다.

▲ 보현사비 제액 : 고려 인종의 친필이다.

  보현사는 신흥 금(金)나라에 쫓긴 거란의 잔당들이 압록강을 넘어 침입해왔던 1216년(고종 3)에 불타기도 했고, 이후 화재로 소실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여러 차례 중창을 거치면서 조선시대를 거쳐 20세기 전반기까지 규모를 유지하였다. 지금은 많은 전각(殿閣)들이 사라지고 한 손으로 꼽을 만큼의 몇 건물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보현사에는 두 개의 석탑이 있다.

  하나는 1044년(靖宗 10)에 세운 구층탑이다. 1층 탑몸돌에는 감실을 파놓았다. 다보여래상을 안치했었다고 하여 ‘다보탑’이라고도 한다. 그 뒷쪽에는 탑을 세운 내력과 연도를 새겨두었다.

▲ 구층탑

   대웅전 지붕은 황색 기와를 얹었다. 하루 전에 보았던, 복원해놓은 동명왕릉과 정릉사 등에 있는 건물기와들도 마찬가지로 황색이었다. 고구려 기와의 대표색이 황색이라서, 사찰의 주요 건물까지 그렇게 사후에 정비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러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대웅전 앞에 있는 것은 팔각십삼층탑이다. 고려 말기의 것으로 추정하는데, 얼핏 남한에서 자주 보던 오대산 월정사의 팔각구층탑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층수를 비롯하여 다른 데가 있다. 꼭대기 상륜부는 한국전쟁 때 부서진 것을 새로 보수해넣은 것이라 한다.

▲ 대웅전과 십삼층탑 : 북한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절터’가 아닐 바에야, 북한에 있는 절도 절이라. 절에는 스님이 없을 수 없을 수 없다는 듯, 약간의 손님들이 들이닥치자 ‘근무하는 스님’이 대웅전으로 들어가 향을 피우는 등 “절에 왔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남한의 ‘살아 있는 절’과 비교했을 때, 한 가지 편한 것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대웅전을 들여다 볼 때 한 쪽켠에 서 있는 보살님이 앙칼진 목소리로 “사진 찍으면 안돼요”라고 하는 모습을 접할 수는 없다. 서운하냐구요? 천만에 !

  법당 마닥이나 문 앞에 <실내 촬영 금지>라고 쓴 팻말도 물론 없다. 대략 편하다!

▲ 대웅전 내부

   대웅전을 지나 동쪽으로 조금 걸으면 관음전이 나온다. 뭐하는 곳인지는 말 안해도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일반적으로 관음전은 대웅전 구역과는 좀 구별된 별도의 장소에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보현사 관음전은 크기도 큰 차이가 없이 거리만 좀 떨어진 채 대웅전과 동서(東西)로 나란히 함께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북한쪽의 동명왕릉(물론 복원한 것이지만), 평양성 대동문, 연광정 등을 보면서, 한 가지 남한과 다르게 느낀 점은, 단청의 색감(色感)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 – 사진을 제시하니 만큼 주관적인 설명은 생략하자.

▲ 관음전

   관음전에서 다시 동쪽을 보면 수충사(酬忠祠)가 보인다. 임진왜란 때 활약한 휴정(休靜)의 사당이다. 좀 게으른 방법이지만, 입구의 안내문 사진으로 이 글의 설명을 대신해보자. 북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의 한 조각도 함께 전달할 겸…

▲ 수충사

▲ 수충사 입구의 안내문

   수충사 남쪽에 청기와를 얹은 건물에는 팔만대장경 인본(印本) 일부가 보관되어 있다. 오랜만에 실내에서 설명을 듣는 시간이다.

  이쯤까지 일행과 함께 움직이다가, “사람 없는 유적 사진을 좀 찍고 싶어서”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대부분이 북한 안내원의 설명에 열중하고 있는 만큼(최소한 경청하는 척이라도 하고 있었을 것), 건물이나 탑을 찍을 때 이들의 모습을 불가피하게 함께 담을 위험이 없는 시간이 아닌가. 위의 사진들은 이렇게 해서 좀 깨끗하게 나온 것들의 일부를 선별한 것이다.

  더 많은 사진을 소개하려 해도, 번잡해질까 이 정도로 그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다라니 석주, 청기와 건물이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