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주몽’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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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규(고대사 분과)

1. 들어가며

  2009년 하반기에 드라마 <선덕여왕>이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것처럼 2006-2007년에는 <주몽>을 비롯하여 <연개소문>,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 고구려 드라마가 안방극장을 완전히 점령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시간 관계상 드라마 <주몽>만 시청했는데, 무척 반가운 마음으로 열렬 시청자의 대열에 합류했었다. 고구려사를 공부하는 필자로서는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고구려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방송국 제작진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었다.


<사진 1> 드라마 주몽 포스터 (출처 : http://www.imbc.com/broad/tv/drama/jumong/)

  당시 필자는 <주몽>을 시청하는 동안 가급적 연구자라는 생각을 버리고 드라마에 몰입하려 했다. 그것이 혼신의 힘을 다해 드라마를 만든 제작진에 대한 예의라 여겼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출연자들의 빼어난 용모와 화려한 의상에 감탄하며, 얽히고설킨 남녀 삼각관계에 푹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은근히 아직도 베일에 가려진 고구려 건국사를 새롭게 규명할 영감이 떠오르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드라마 방영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리고 시청률이 올라갈수록 오히려 드라마에 몰입하기가 힘들어졌었다.

  역사소설과 TV사극의 성격이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문학가와 역사학자들이 다각도로 검토한 바 있다. 대체로 문학가들이 역사적 사실성보다 작가의식이나 문학적 상상력을 중시한 반면,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엄밀한 고증을 요구하며 지나친 상상력에 따른 폐해를 경고했다. 필자가 <주몽>이라는 드라마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 것도 다른 역사학자들처럼 지나친 상상력, 곧 허구적 요소에 대해 반감이 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드라마의 세부 내용에 대해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은 없다. 또한 굳이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역사드라마는 비록 역사를 소재로 했지만, 어디까지나 드라마이지 역사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실제 역사적 사실로만 가득 채워지고 실존 인물만 등장한다면 그처럼 재미없는 역사드라마도 없을 것이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가상의 인물이 다수 설정된 상태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풍부하게 동원될 때 비로소 ‘진정한 역사드라마’로서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도 역사드라마가 그 시대의 총체적인 역사상만 제대로 묘사하고, 주제의식만 바람직하다면 작가의 상상력과 허구적 요소는 풍부하면 할수록 좋다는 입장에 동의한다. 그러했기에 드라마 <주몽>을 시청하던 초기 단계에는 출연자의 용모와 의상, 남녀의 삼각관계에 푹 빠져들려고 그토록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역사학자로서는 그것도 고구려사 전공자치고는 비교적 관대한 입장에서 <주몽>을 시청한 것 같은데, 왜 당시 드라마에 푹 빠져들지 못했던 것일까?
2. 고구려 드라마의 기획의도와 제작배경

  문화방송[MBC]의 <주몽>은 지난 2006년 5월 15일에 처음 공중파를 탔다. <주몽>은 방영 첫 회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더니 매주 시청률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인기가 워낙 높아지자 60회까지 방영하려던 애초 계획을 변경하여 81회까지 연장 방영했다(2007년 3월 16일 종영).

  문화방송에 뒤이어 서울방송(SBS)과 한국방송(KBS)도 경쟁적으로 고구려 드라마를 방영했다. 2006년 7월 8일 처음 공중파를 탄 SBS의 <연개소문>은 2007년 6월 17일 100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고, 2006년 9월 16일 처음 방영된 KBS의 <대조영> 역시 2007년 12월 23일 134회나 방영되었다. 가히 고구려 드라마 시대라 부를 만한 상황이었다.

  특히 <주몽>의 평균 시청률은 40%를 넘나들었고, 34주 연속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TV 채널과 영상매체가 다양화된 현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50.6%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달성하기도 했다(2007년 2월 27일).

  그럼 방송3사는 왜 이처럼 경쟁적으로 고구려 드라마를 방영했고, 또 시청자들은 거기에 기록적인 시청률로 화답했던 것일까? 드라마 <주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방송3사가 고구려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방영한 이유, 그리고 이에 대해 시청자들이 기록적인 시청률로 화답한 열풍의 배경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당시 방송3사의 제작진은 고구려 드라마의 기획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주몽>의 제작진은 기획의도를 ‘거대함’이라는 단어로 압축해 표현했다. 이들이 말하는 ‘거대함’은 다시 ‘오늘보다 거대한 고구려’, ‘신화보다 거대한 영웅’, ‘역사보다 거대한 사랑’ 등으로 세분된다. 고구려가 오늘보다 거대한 이유는 ‘우리 민족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고 ‘우리 민족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대함이라는 코드는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화보다 거대한 영웅’이란 남주인공 주몽을 지칭하며, ‘역사보다 거대한 사랑’은 여주인공 소서노의 몫이다. 주몽이 ‘신화보다 거대한 영웅’인 이유는 단순히 신화로만 기억되었던 인물이, 실제로는 혼자 몸으로 수천만 대군을 상대해 고조선의 하늘을 되찾고 고구려의 하늘을 열었기 때문이란다. 소서노의 사랑이 역사보다 거대한 이유는 모든 역경과 시련을 삼키고 시대를 압도하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드라마 <주몽>은 ‘신화보다 거대한 영웅 주몽’과 ‘역사보다 거대한 사랑의 화신 소서노’가 힘을 합쳐 ‘오늘보다 거대한 고구려’를 창조해 나간 과정을 그렸다는 것이다.

  드라마 <주몽>은 남여 주인공의 캐릭터부터 전체 줄거리와 시대적 배경에 이르기까지 ‘거대함’이라는 코드로 시종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대함’과 이를 구현하는 주체인 ‘영웅’이라는 코드는 SBS의 <연개소문>과 KBS의 <대조영>에서도 거의 동일한 형태로 반복된다.

  가령 <연개소문>의 제작진은 ‘고구려는 우리 민족의 웅지를 가장 잘 대변했던 초강대국이었다’고 전제한 다음, 광활한 대륙으로 영토를 넓혔던 광개토대왕, 수나라를 무너뜨린 을지문덕, 당태종 이세민을 무릎 꿇린 연개소문과 같은 영웅이 있었기에 고구려가 중국과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신라가 당의 힘을 빌려 삼국을 축소 통일한 이후, 이들 영웅에 관한 역사가 왜곡되고 폄하되어 사라졌기 때문에 영웅 연개소문을 극화하여 묻혀 있었던 고구려 역사를 되살리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세계를 향해 웅비할 수 있는 대한민국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포부를 당당히 밝혔다.

  드라마 <대조영>에서도 고구려는 수나라를 굴복시킨 나라, 당 태종의 30만 대군을 무릎 꿇린 위풍당당한 대제국으로 설정된다. 그리고 고구려 패망 이후, 새로운 영웅 대조영이 분연히 일어나 당의 지배에서 신음하던 유민들을 구해내고 흩어진 군대를 규합해 새나라 발해를 건설한 것으로 그려진다.


<사진 2> 드라마 대조영 포스터 (출처 : http://www.kbs.co.kr/drama/daejoyoung/ )

  새나라 발해 역시 고구려의 전통을 이은 동북아의 최강국으로 설정된다. 이에 제작진들은 ‘대조영과 발해’를 그리는 일은 찬란한 한민족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임과 동시에 민족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결국 방송3사의 드라마 기획의도는 거대하고 찬란했던 지난 역사를 복원함으로써 역시 거대하고 찬란한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원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학자들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고위금용(古爲今用)’ 즉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목적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 방송3사의 제작진이 복원하겠다는 ‘거대하고 찬란했던 역사’는 과연 무엇일까?

  <주몽>의 제작진은 고구려가 오늘보다 거대한 이유는 ‘중국제국을 무릎 꿇리고 두려움 없이 세계와 맞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주몽이 거대한 영웅인 이유는 ‘혼자 몸으로 (중국제국의) 수천만 대군을 상대해 빼앗긴 고조선의 하늘을 되찾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구려나 주몽이 거대한 이유를 중국제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연개소문>의 제작진 역시 고구려가 초강대국이었던 이유를 ‘중국에 당당히 맞섰던 것’에서 찾고 있으며, <대조영>의 제작진도 발해 건국을 ‘수나라를 굴복시키고 당 태종의 30만 대군을 무찌른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묘사했다. 방송3사의 제작진은 거대하고 찬란했던 역사의 기준을 모두 중국왕조와의 대결에서 찾은 셈이다. 또한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드라마의 주인공이 영웅인 이유도 중국왕조를 굴복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방송3사의 고구려 드라마는 고구려사나 발해사의 전모를 그렸다고 보기 힘들다. 방송3사는 고구려사나 발해사를 온전히 복원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기 보다는 중국왕조와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어 드라마를 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연개소문>의 제작진은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역사기만을 획책하여 고구려 역사 없애기에 급급하고 있다’며 그동안 묻혀있었던 고구려사를 되살리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사진 3> 드라마 연개소문 포스터 (출처:  http://tv.sbs.co.kr/ygsomun/ )

  결국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은 <연개소문>의 제작진뿐이지만, <주몽>이나 <대조영> 등 고구려 드라마 제작 배경에는 ‘동북공정’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대응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주몽>의 촬영과정에 대해 “중국 현지 세트장에서 고조선 유민의 대장이 해모수였고 중국이 자신의 영토라 주장하는 요동일대가 고구려의 기반임을 우회적으로 풀어나갈 예정”이라는 언론기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노컷뉴스 2006년 4월 11일).

  그렇다면 중국왕조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사실을 강조하고, 이를 이끈 영웅을 부각시키는 것이 과연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지하듯이 현재 중국은 여러 소수민족의 역사를 포괄하기 위해 현재의 영토를 기준으로 중국사의 범주를 설정하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정립했다.

  이러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각 시기별 역사 주체의 계통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오로지 현재의 영토만을 기준으로 역사의 범주를 설정하는 ‘영토 지상주의 역사관’으로서 과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무려 2000여년 이전까지 소급시켰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역사왜곡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다만 중국은 1980년대 전반까지만 하더라도 고구려의 활동무대였던 만주지역의 정세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고, 고구려 정통성을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이를 고구려사에 적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한중 수교로 조선족 사회가 동요하고, 북한의 체제위기로 만주도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동북아 정세변화에 대비해 만주지역의 안정을 유지하고, 한반도 정세변화에 대비해 북한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 전략 프로젝트로 동북공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6년간 치밀하게 준비한 다음 2002년에 동북공정 5개년 사업을 선포했는데, 핵심목표는 만주지역의 안정을 확보하고 북한의 정세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중국은 처음에는 족원론이나 관계론을 중심으로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다가, 마침내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기준마저 폐기하고는 과거 불특정한 시점의 영토를 기준으로 고구려사 나아가 고조선까지 중국사로 귀속시키려고 획책했다. 현재의 목적을 위해 자신들이 설정했던 역사 범주의 기준마저 제멋대로 바꾸는 극단적인 패권주의 역사관인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에 대해 이미 1990년대 초반에 문제가 제기된 바 있고, 2002년에는 왜곡의 실태가 상세히 밝혀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고구려사 왜곡의 심각성은 학계의 문제제기보다는 주로 언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2003년 7월 중앙일보가 동북공정의 실태를 보도한 이래, 이해 8월 동아일보와 신동아의 보도, 10월 KBS 일요스페셜 <한중 역사전쟁> 방영 등으로 2003년 하반기부터 전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언론매체는 각종 기획 보도를 통해 중국 위협론까지 제기하며 다소 선동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여기에 일부 시민단체까지 가세하여 중국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민적 관심을 촉발시키기 위해 고구려사의 우수성이나 위대성을 다소 과장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이는 주로 중국왕조와의 대결에서 고구려의 우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리해 고구려사의 전개과정과 그 성격을 심층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나 동북공정에 나타난 중국의 대외전략을 치밀하게 분석하려는 노력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중국은 6년간이나 치밀하게 준비한 다음 국가적인 전략 프로젝트로 동북공정을 추진했는데 비해, 우리는 이성적인 대응보다는 감정적인 대응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송3사가 중국왕조와의 대결을 통해 고구려의 위대성을 부각시키는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방영했고, 이에 대해 시청자들은 기록적인 시청률로 화답했다.

  고구려 드라마의 제작 배경에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대응이라는 명분이 존재했다면, 그 열풍의 중심에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전 국민적인 반감이 자리잡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방송3사가 드라마를 통해 고구려사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는데 상당히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중국왕조와의 대결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감정적이고 일회적인 대응을 더욱 부추겼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만약 이러한 여론에 편승해 시청률을 끌어올리려 했다면 상업적 이익을 위해 국민의 폭넓은 역사관과 국제인식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더욱이 고구려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상황 자체를 왜곡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려다가 오히려 그들의 역공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를 드라마 <주몽>에서 너무나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3. 드라마 <주몽>의 구성과 내용 검토

  B.C. 108년 고조선이 한나라에게 멸망된 다음 그 유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비참한 삶을 이어가게 된다. 이때 고조선 유민 출신의 젊은 장수 해모수가 분연히 일어나 유민들을 규합해 한나라의 가혹한 지배에 강렬하게 저항한다. 그렇지만 젊은 장수 혼자 힘으로 한나라의 대군을 상대하기는 역부족. 하백 부족장의 딸 유화가 해모수의 기상에 감화되어 그와 사랑을 나누고, 한나라 군대에 쫓기는 그를 숨겨준다.
그렇지만 그 애틋한 사랑의 대가로 하백 부족은 철저하게 도륙된다. 더욱이 한나라의 위협을 받은 부여왕 해부루는 부여의 안위를 위해 해모수를 제거하는데 협조하기로 한다. 마침내 해모수는 한나라 철기군에 쫓겨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유화는 홀몸으로 해모수의 피를 이은 주몽을 낳는다. 유화는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자 새로이 부여왕으로 등극한 금와를 찾아가 주몽을 금와의 아들이라 외친다.

  <주몽>의 1-2회 내용이다. 드라마는 이때부터 20여년의 세월을 껑충 건너뛰어 청년 주몽의 궤적을 따라 본격적으로 전개되지만, 제작진은 1-2회 방영을 통해 기획의도와 전체 줄거리를 강하게 암시했다. 아울러 고조선 유민의 영웅인 해모수의 활약상을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해모수와 유화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청률 고공 행진의 기반까지 다졌다.

  고조선을 재건하기 위해 온몸을 던진 해모수, 그런 해모수의 모습에 감화되어 그와 사랑을 나누는 유화,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드라마의 주인공 주몽. 이들의 관계가 드라마의 기본 축을 이루다보니, 전체 줄거리는 자연스럽게 주몽이 해모수의 유지를 받들어 고조선 고토를 회복하여 고구려를 건국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여기에 졸본 계루집단의 어여쁜 여인 소서노가 가세해 주몽과 헌신적인 사랑을 나누며 고구려 건국의 터전을 제공한다.


<사진 4> 드라마 주몽 ‘소서노’ (출처 : http://www.imbc.com/broad/tv/drama/jumong/)

  세대를 달리해 운명적인 사랑을 나눈 해모수와 유화, 주몽과 소서노의 관계가 드라마의 기본 축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한나라와의 친교를 통해 정치적 기반을 확충하고 부여의 살길을 도모하려는 금와왕의 맏아들 대소와 그를 둘러싼 일단의 무리가 있다.

  바로 주몽과 대소의 노선이 첨예하게 맞부딪히면서 드라마의 갈등구조가 형성된다. 부여왕 금와는 고조선의 재건이라는 명분과 부여의 안위라는 현실 사이를 오가며 이러한 갈등구조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고조선의 재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온몸을 던진 주몽과 권력욕에 불타 한나라와의 협조를 서슴치 않는 대소의 모습이 선명하게 대비되며 드라마의 갈등구조는 마침내 선악의 문제로 발전한다.

  여기에 유화-해모수-금와, 금와-유화-원후, 소서노-주몽-대소, 주몽-소서노-예소야 등의 남녀 삼각관계가 겹겹이 중첩되면서 드라마는 끊임없는 갈등과 긴장의 연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해 드라마는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게 전개되면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이른다.

  이처럼 선명한 갈등구조에 얽히고설킨 삼각관계를 치밀하게 결합시켰으니 <주몽>은 아주 잘 만든 드라마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주몽>이 단순한 멜로드라마였다면 필자도 그러한 평가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몽>은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고구려 건국과정을 다룬 사극이다. 더욱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응하겠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제작되었다.

  전술했듯이 사극도 어디까지나 드라마이므로 작가의 상상력이나 허구적 요소는 얼마든지 동원될 수 있고, 또 허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사극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총체적인 역사상과 완전히 어긋나는 상상력이나 허구적 요소까지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상상력과 허구적 요소는 그 시대의 역사상을 더욱 풍부하게 그려내기 위해 동원되어야지, 역사상 자체를 왜곡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이라 하더라도 사극에는 독이 될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주몽>은 전체 줄거리부터 실제 역사상과 상당히 다르게 설정했다. <주몽>의 줄거리는 주몽이 고조선의 고토를 회복하여 고구려를 건국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주인공 주몽이 B.C. 108년 고조선 멸망 직후에 유민의 영웅인 해모수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상정했다. 그리고는 청년 주몽이 B.C. 76년경 해모수의 유지를 받들어 한의 현도군을 격퇴하고 고조선 고토를 회복해 고구려를 건국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고구려가 B.C. 37년에 건국되었다는 《삼국사기》의 전승과 다를 뿐 아니라, 서기 1세기경에 고대국가로 발돋움했다는 학계의 통설과는 거리가 더욱 멀다. 물론 고조선에서 삼국으로 이어지는 계승관계가 우리 고대사의 근간을 이루며, 고구려 역시 고조선 주변부에서 흥기했다는 점에서 고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역사의 전체 흐름을 말하는 것이지, 고구려 건국자들이 직접 고조선의 계승을 표방했다는 것은 아니다.

  현전하는 자료상 고구려 건국자들이 직접 고조선의 계승을 표방한 흔적을 찾기는 힘들며, 특히 해모수를 고조선 유민으로 설정할 만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고대국가의 건국자들은 저마다 독자적인 천손족(天孫族) 설화를 바탕으로 건국을 정당화했다. 고구려도 마찬가지였다.

  고구려 건국설화를 보면 해모수는 천제(天帝)의 아들, 유화는 수신(水神)인 하백의 딸로 나온다. 이들의 결합으로 태어난 주몽은 하늘신과 물신의 권능을 한 몸에 이어받은 신적(神的)인 존재로 설정된다. 시조 주몽의 신성성(神聖性)은 고구려 건국의 원동력이요 정당성의 원천이었다.


<사진 5> 드라마 주몽 해모수와 유화 (출처:  http://www.imbc.com/broad/tv/drama/jumong/)

  드라마 <주몽>은 독자적이고도 성스럽게 전개되었다는 고구려의 건국과정을 고조선의 부흥으로 치환시킨 셈이다. 이 과정에서 고조선 계승을 강조하기 위해 기원전 1세기 후반에 활동했다는 주몽의 출생시점을 고조선 멸망 직후로 소급시켰다. 더욱이 주몽이 고조선 고토 수복을 강조하기 위해 요동지역까지 정벌한 것처럼 묘사했다.

  그렇지만 고구려 건국지는 고조선의 주변부인 압록강 중상류 일대이며, 4세기 이후 비로소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서북한이나 요동으로 진출했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제작의도가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실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그린다면, 우리 역시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주몽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와 대립되는 인물로 금와왕의 맏아들 대소를 상정하다보니 드라마의 주무대가 부여의 궁정으로 설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고구려 건국의 실제 무대인 졸본(卒本) 곧 압록강 중상류 일대보다 부여가 더욱 큰 비중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때로는 고구려 건국과정을 그린 것인지 부여 궁정의 권력갈등을 묘사한 것인지 혼선을 줄 정도였다.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이 과정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부여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도 했다. 또한 금와왕과 사출도(四出道) 제가(諸加)들의 대립, 금와왕과 신녀(神女) 여미을의 갈등 등을 통해 초기 국가체제나 정치운영의 특징적인 면모를 적절히 그려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고구려 건국의 본무대인 졸본지역의 상황은 늘 부수적으로 다루어졌고, 마치 부여 궁정에서의 권력투쟁의 부산물로 고구려가 건국된 것처럼 묘사되었다.

  특히 주몽의 노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한(漢)과 협조하는 대소의 노선은 시종일관 부정적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묘사는 자칫 강대국과의 대결만 선(善)이고 타협은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낳을 수도 있다.

  실제 드라마에서는 주몽과 대소의 노선 차이가 남녀관계로까지 연결되어 주몽은 서로의 이상에 공감하는 소서노와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고, 대소는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현도군 태수 양정의 딸 설란과 정략결혼을 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정치노선뿐 아니라 사랑의 영역도 이분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자칫 시청자들에게 흑백논리를 심어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남녀의 사랑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할 수 없듯이 대외정책의 노선도 선과 악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강경한 대응책이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온건한 타협책도 필요하고, 양자를 병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다양한 대외정책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자라나는 세대들이 급변하는 대외정세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국제감각을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드라마 <주몽>은 고구려의 건국과정을 고조선의 부흥으로 치환하고 그 과정에서 한나라를 완전히 굴복시킨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을 파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드라마를 제작했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중국왕조와의 대결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전국민적인 반감만 더욱 부추긴 셈이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일시적으로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 모르지만, 이성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은 더욱 소홀하게 되었다.

  더욱이 고구려가 한나라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상황 자체를 윤색하거나 왜곡함으로써 오히려 중국측의 역공을 받을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드라마의 소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가령 불교가 수용되지도 않았는데 석등(石燈)이 등장한다든지, 부여나 고구려 지역에는 없었을 다리달린 술잔 등은 드라마를 좀 더 화려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라고 보아 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 <주몽>의 제작진은 한나라 군대의 위력을 강조하기 위해 말까지 철갑으로 두른 철기군(鐵騎軍)으로 상정했다. 그리고는 주몽이 신기(神技)에 가까운 활솜씨와 검술로 한의 철기군을 거꾸러뜨리는 장면을 매회 크라이막스마다 삽입했다. 아울러 고구려가 대량으로 강철을 제조하는 초강법(炒鋼法)의 비밀을 터득해 한의 철기군을 제압한 것으로 그렸다.

  초강법이 전한대에 개발되었으니 고구려가 건국을 전후해 그 제조법을 터득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이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이 적절히 발휘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철기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철기 곧 말까지 갑옷을 두른 중장기병이 중국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서기 2세기 후반이며, 4세기 초에야 주력 병종으로 자리잡는다. 주몽과 고구려의 위대성을 표현하기 위한 대표적인 소품이 실제 역사적 상황과 다르게 설정된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 <주몽>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드라마 제작진이나 많은 시청자들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문연구자의 눈으로 사극을 보기 때문이라고 항의할 수도 있다. 50.6%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달성했으면 누가 뭐라 하더라도 성공한 드라마로 봐야하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필자의 아쉬움이 더욱 많이 묻어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필자는 <주몽>이 한국인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공감하는 세계적인 드라마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시청했다. 사실 고대 신화에는 모든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원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지의 제왕>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것도 북유럽의 전설과 민담을 소재로 모든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문화원형을 잘 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몽설화는 우리 나라 건국설화 가운데 내용이 가장 풍부한 편이다. 그런데 설화상 독자적이고 성스럽게 묘사된 고구려 건국을 고조선의 부흥으로 치환함에 따라 신화적 요소들이 들어설 자리는 아주 좁아졌다.

  고대 신정정치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도입한 신녀(神女)도 여미을과 벼리하를 제외하면 제대로 신통력을 발휘하는 신녀가 없고, 주몽 역시 신적 권능을 발휘하는 모습은 거의 없고 뛰어난 무예로 한나라 군대를 격퇴하는 장면만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고대인들의 상상력과 세계관이 풍부하게 담겨 있는 신화적 요소가 한나라와의 대결을 통한 고조선의 부흥으로 치환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해 <주몽>이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국민적인 반감을 등에 업고 기록적인 시청률을 달성했는지 모르지만, 모든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오히려 끊임없이 중국왕조와의 대결을 강조함으로써 한국인들은 매우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갖고 있다는 인상만 심어줄 위험성이 높아졌다.
4. 나가며

  이렇게 본다면, 드라마 <주몽>이 고구려의 건국을 당시인의 세계관이나 실제 역사적 상황에 부합되도록 제대로 묘사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대응이라는 명분, 그리고 중국에 대한 전국민적 반감을 바탕으로 고구려 건국자들이 내세우지도 않았던 고조선의 부흥으로 치환시켰고, 그것도 한나라와의 대결로 더욱 단순화시켰던 것이다.

  이로 인해 고대인들의 신화적 세계관뿐 아니라 고구려 건국의 본무대인 압록강 중상류 일대에서 펼쳐진 여러 정치체의 다양한 움직임, 고구려 건국을 전후한 동북아 국제정세의 변화양상 등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거나 다루어지더라도 부수적인 요소로 처리되었다. 제작진이 ‘오늘보다 거대한 고구려’를 그리겠다고 표방했지만, 고구려 건국의 웅장한 서사시는 고조선의 부흥과 중국왕조와의 대결에 의해 가려지고 거의 모두 생략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대로 시청한 적은 없지만, <연개소문>이나 <대조영>도 기획의도에서 수나 당과의 대결을 유난히 강조했다는 점에서 <주몽>과 비슷한 우를 범하지 않았을까 적잖이 걱정된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실제 그러하다면 모든 국민들이 고구려라고 하면 ‘중국왕조와 끊임없이 대결한 나라’로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 강대국과의 대결만이 최선의 외교노선이라는 선입관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나 선입관은 고구려사에 대한 시야를 좁힐 뿐 아니라 21세기에 절실히 요청되는 글로벌 국제감각을 함양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최근 고구려 드라마 열풍 속에는 실(實)보다 허(虛)가 더 많았다고 생각된다.

  고구려사를 중국왕조와의 대결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해서는 득(得)보다 실(失)이 더 큰 것이다. 고구려사의 실체를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더욱 거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고구려는 국제정세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광활한 영토를 확보한 대제국이었을 뿐 아니라, 주변국가와 활발하게 교류한 국제적인 국가였다. 또한 고구려의 핵심주민집단은 예맥족이었지만, 말갈족이나 거란족 등 다양한 종족을 포괄했다.

  그러므로 중국왕조와의 대결보다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대한 고구려인의 인식과 대응을 보다 거시적 시각에서 파악할 필요가 았다. 아울러 예맥족뿐 아니라 고구려를 구성한 다른 족속의 입장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고구려사의 국제적인 면모와 더불어 문화적 다양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가 결코 배타적인 민족감정의 소유자가 아니며,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모든 인류와 더불어 공유할 수 있는 열린 역사관을 갖고 있음을 전세계인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사시민강좌>41에 게재되었던 필자의 “고구려 드라마 열풍의 허와 실”의 일부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