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평화와 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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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평화와 역사교육

안  병  우

머리말

21세기를 시작하면서 동아시아에는 역사 분쟁의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2001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사건으로 시작된 역사 갈등은 작년부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겹치면서 혼전의 양상을 연출하고 있다. 화해와 평화, 공존을 향해 나아가야 할 3국은 역사에 발목을 잡혀있다. 오랜 기간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살아온 3국이므로, 갈등과 분쟁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선인들이 슬기롭게 갈등과 분쟁을 수습하며, 전쟁과 분쟁의 기간보다 훨씬 긴 기간을 평화와 공존 속에서 지내온 것처럼 3국의 지식인들은 상호 존중과 평화의 원칙 아래서 공존 공영의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1. 동아시아 3국의 역사 분쟁 국면

작금의 역사를 둘러싼 분쟁은 두 축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일본이 주도하고 한국과 중국이 피해를 입는 역사 교과서의 왜곡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이 주도하고 한국이 피해를 입는 역사 왜곡이다.

2001년도의 후소샤(扶桑社) 교과서를 비롯한 역사교과서를 통한 일본의 역사왜곡은 한국과 중국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침략을 미화하고,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은폐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교과서는 한국과 중국 정부는 물론 시민들의 대대적인 저항에 직면하였다. 일본의 양심적인 세력과 연대한 한중 시민들의 노력으로 부상사 교과서는 0.1%도 채택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에히메현(愛媛縣)에 이어 8월 26일에 동경 중·고 일관교(一貫校)에서 채택되는 등, 후소샤 교과서는 서서히 채택되고 있다. 새역모는 내년에 ‘화려한 복수’를 꿈꾸며, 채택 목표율을 10%로 잡고 있다. 또 한차례의 새로운 파고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은 긴밀히 협조했다. 후소샤 교과서 채택 저지에는 일본 시민단체의 노력도 컸지만, 중국과 한국 시민단체도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민간 차원의 협조는 상호간에 대단한 신뢰관계를 구축하여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전범을 창출했다. 한국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중국의 사회과학원과 남경대도살기념관, 일본의 어린이와교과서전국네트21(子どもと敎科書全國ネット21) 등의 시민단체는 2002년부터 금년 여름까지 세 차례의 심포지엄을 남경, 동경, 서울에서 개최하였다. 남경대회의 결정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동 역사부교재 편찬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있으며, 내년에 발간될 예정이다. 3국이 함께 부교재를 편찬하는 일은 역사인식 공유에 공헌하는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동아시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역사 연구와 교육은 이렇게 민간 차원에서 3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작년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동아시아 3국이 역사인식의 차이를 좁혀나가는 데 또 다른 위협으로 등장했다.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 사실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작년 7월 무렵이었다. 이미 학계에서는 중국이 1980년대 중반부터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에 입각하여 평양 천도 이전의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정치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민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의 견해를 따라 이 문제를 학술문제라고 보았다. 그러나 중국이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와 뒤이어 정부 수립 이전의 역사를 삭제하면서 정치외교문제로 간주하기 시작하여, 외교통상부 차관을 책임자로 하는 실무대책협의회를 구성하였다. 국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하였고, 학술연구기관으로 지난 3월 고구려연구재단을 출범시켰다.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여러 개의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결성되었으며, 빈번하게 규탄집회를 개최하였다. 그 가운데 일부 시민단체는 과격한 행동양상을 보였으며, 교사 300여 명은 항의의 뜻으로 삼보일배 행진을 하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이트가 개설되어 수백만 명이 접속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있으며, 언론은 고구려 관련 특집과 기획 기사를 계속하여 연재 혹은 방영하고 있다. 한국은 들끓었으며, 그 정도는 일본이 교과서를 통해 한국사를 왜곡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였다. 다행히도 합리적인 시민학술단체와 정부의 노력으로 전면적인 반중국 정서가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항하면서 구축된 한중간의 신뢰는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생겼다.

2. 역사 분쟁의 배경과 원인

동아시아 3국의 역사 분쟁은 일차적으로 각국의 국내 사정에 기인한다. 일본은 10여 년간의 경제 불황을 겪으면서 현저하게 우경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수상의 잇단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이어 지난 8월 15일 일본의 초당파의원모임인 ‘모두가 야스쿠니에 참배하는 국회의원모임’ 소속 58명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일, 기미가요와 히노마루의 복권,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교육기본법 개정, 유사법제 제정, 평화헌법 제9조 개정 움직임 등은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들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새역모의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것이다. 일제의 한국과 중국 침략을 찬미하고, 남경대학살과 일본군 위안부 등을 부인하며, 전후 일본의 역사관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면서 침략주의 역사관, 전쟁을 긍정하는 역사관에 기초한 이 책은 교과서라고 할 수 없는 책이다. 2001년에는 거의 채택되지 않았지만, 몇몇 학교에서 채택함으로써, 일본의 한층 진전된 우경화 분위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이러한 군국주의화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도 역시 국내 사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에는 한족(漢族) 이외에 55개의 소수민족이 있으며, 국가 내부 통합이 어느 때보다 강력히 요청되고 있다. 개혁 개방의 성과로 경제 규모가 커지고 경제력이 향상됨에 따라 자신감을 회복한 한편에는 계층간 지역간 격차가 심화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자본주의화하는 경제구조와 사회주의적 정치구조라는 유례없는 국가구조에서 정치의 경제통제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부의 문제에 더하여 한반도의 정세 변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조선족이나 국경 문제 등에 대비하여 동북변강(東北邊疆)을 안정시킬 필요성이 동북공정을 수행하게 한 요인으로 파악된다.

중국은 소수민족 통합책으로 역사를 이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민족 개념과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창출된 이론이다. 민족 개념은 학자에 따라 달리 규정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동일한 혈통과 언어, 문화를 가진 역사적 공동체를 지칭한다. 그것은 국민과는 다른 개념이다. 한족(漢族)이 중심이 된 중국은 고대부터 다른 여러 민족과 폭넓게 교류하였다. 그 중에는 독립 국가를 건설한 민족도 있고, 그렇지 못한 민족도 있으며, 현재까지 존속하는 민족도 있고, 사라져 버린 민족도 있다. 또한 이른 시기부터 중국의 일부가 된 민족도 있고, 명이나 청 나라 때에 중국에 속한 민족도 있다. 그들이 현재 중국 국민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고대와 중세에도 중국 민족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당송과 병립했던 다른 민족의 국가들을 중국사에 포함시킬 수도 없다. 요컨대 오늘날의 관점으로 고대의 역사를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은 국가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 고양의 결과이며, 패권주의의 발현이다. 민족주의는 국민을 통합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배타적 성격을 띠기 쉬우므로 역기능도 크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정치지도자나 역사학자에게서보다 대중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후소샤(扶桑社)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을 때 한국의 일부 보수적인 국민은 배일을 주장하며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려 하였다. 근래 중국 대중의 반일 감정은 위험할 정도로 높아져서 축구장 소란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러한 감성적 배타적 민족주의는 국가간의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다.

일본의 우익 정치세력이 군국주의를 지향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신국가주의에 입각한 역사 왜곡을 유도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배타적 민족주의를 열린 민족주의로, 대립과 갈등을 협력과 화해로, 국가주의에 입각한 패권 추구를 평화와 공존으로 끌어가야 할 책임은 정치지도자에게도 있지만, 동아시아 3국의 양심적 지식인에게 있다. 그러므로 이럴 때일수록,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3. 역사 분쟁의 폐해

역사를 둘러싼 분쟁과 갈등은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역사 분쟁이 가져올 가장 큰 폐해는 상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바꾸어 놓는 점이다. 시민의 감정 악화는 결국, 시민이 정치지도자를 선출하고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국가에서는 국가의 정책 방향을 대결 국면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시작된 이래 한국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다. 고구려사 왜곡 이후 중국을 보는 눈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민의 75%가 고구려사 왜곡 때문에 중국에 대한 기존의 생각이나 이미지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은 과연 좋은 이웃일까’라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집권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앞으로 한국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외교통상 상대국으로 중국을 선택한 응답자가 63%나 될 정도로 중국에 대하여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고구려사 왜곡 사건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 되었다. 언론의 논조는 한층 신랄하다. 사설과 기사는 ‘중국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경제는 손잡고 역사는 등돌려’ 등으로 대단히 비판적이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중국위협론과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보수 여론이 세(勢)를 얻고 있다.

고구려사를 둘러싼 분쟁은 중국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 한국정부가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중국은 일부 학자들의 연구일 뿐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한국정부가 외교통상부의 문화외교국을 주무국으로 지정한 것은 학술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정부 수립 이전 역사 삭제 사건을 계기로, 이 문제가 학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무국을 아태국으로 변경하고,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자칭린(賈慶林) 정협(政協) 주석의 방한으로 외교적으로는 일단락되었지만, 중국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중국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동북변강문제는 학술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의 영토, 강역, 주권의 정치문제’이며, 중국은 이후에도 고구려사 왜곡을 중단하지 않으리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볼 때, 역사 분쟁은 학문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한다. 한 국가에 의한 역사 왜곡은 상대 국가로 하여금 즉자적 대응을 불가피하게 하고, 합리적이고 다양한 모색을 불가능하게 한다. 지난 8월 제3회 동아시아역사포럼에서 중국사회과학원의 부핑(步平) 선생이 발표한 표현에 따르면, 역사의식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사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한국의 민족주의 역사학이 저항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지만, 그러한 역사학이 동아시아 3국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역사인식을 제공하지는 못하였다. 대항 역사학으로는 공동의 역사인식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역사 왜곡은 결국 동아시아의 평화를 파괴하고 감정적 대립만을 가져와 공동의 발전을 저해한다. 상호 역사 왜곡으로 각국은 고립될 뿐이다. 일본은 중국위협론을 내세우며 미국과 연합하여 중국에 대항하려 하고, 중국은 미일동맹의 강화를 경계한다. 이러한 구도를 탈피하여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3국은 협조를 강화하여 하나의 지역협력체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 한국의 경제력을 합치면, 세계 3대 지역협력체의 하나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려면 경제 협력과 함께 문화 공유, 역사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4. 역사 분쟁을 넘어 평화로

한중일 3국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지정학적 여건이나 역사 경험, 현재의 국제정세로 보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상호의존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이 수교한 지 올해로 12년이 되었다. 양국 교역규모는 570억 달러에 달하며, 교역량 직접투자 인적 교류에서 중국은 한국의 제1파트너가 되었다. 중국에게 한국은 3대 교역국이며, 일본은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 역시 일본의 제2위 교역국이며, 3국간 수출 비중은 3국 전체 수출의 22%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 교류가 활성화되어 있다. 정치분야에서도 중국과 한국은 북한 핵과 탈북자, 일본의 역사왜곡에 상호협력하며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는 주요한 파트너이다.

현실이 이러하므로, 역사 연구와 교육은 장기적으로 상호 이해를 넓히고 평화롭게 공존 발전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그러나 내년 해방 60주년, 승전 60주년, 종전 60주년을 앞두고 한중일 삼국 사이의 갈등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중일간, 한일간의 관계를 순탄치 못하게 가로막고 있고, 고구려사 문제는 한중 수교 이후 최대 위기를 초래하였다. 한중 사이의 역사 갈등이 외교적으로 일단 봉합된 것은 다행이지만, 이로써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역사가 평화 증진에 기여하기 위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역사와 시간의 문제도 그 중의 하나이다. 역사상의 사건은 일정한 공간 위에서 벌어졌지만, 사건은 사라지고 공간은 남아 있다. 오늘날 그 역사 공간은 어느 국가인가에 속해 있다. 그러나 현재 어떤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지역에서 일어났던 역사까지 차지하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의 역사일 것이다. 현재 북미대륙은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이전에 그 땅에 거주하였던 인디언의 역사가 미국의 역사가 될 수는 없다. 이른바 역사 주권은 영토 주권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의 현재성은 역사학 자체에서도 문제이지만, 국가 차원에서도 문제이다. 역사는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연구된다. 다시 말하면 국가적 사회적 과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역사를 연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학은 사회발전에 기여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역사연구는 과학성과 실증성을 담보해야 하며, 정치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학이 사회와 국가를 위해 기여한다는 것과 정치에 종속된다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나치 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에서 역사학이 수행한 기능을 보면, 역사학의 객관성과 독립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정치에서 자유로운 순수한 아카데미즘을 바탕으로 할 때 3국의 역사학은 좀더 쉽게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3국은 공동의 역사인식을 창출하기 위한 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역사는 자국 중심으로 서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점이지만, 이제 민족과 국가를 포함하되 좀더 넓은 시야로 동아시아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시야는 과거에 대한 진실한 반성과 국가지상주의, 민족중심주의, 패권주의를 포기하고, 다른 국가의 역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에서 출발한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는 지난날의 침략전쟁과 식민지지배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죄한 적이 없다. 그에 비해 중국의 주언라이(周恩來) 총리는 1963년 북한의 과학원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의 전근대 역사학자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잘못 서술한 점을 지적하고, 봉건대국의 태도로 한국을 무시 모욕 침략한 데 대하여 사과하였으며, 덩샤오핑(鄧小平) 부총리는 1974년 유엔총회에서 중국이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만일 중국이 어느 날 낯빛을 바꿔서 초강대국으로 변하고, 세계에 패권국가를 자처하며, 곳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모욕하고 침략하고 수탈한다면, 세계 인민들은 마땅히 중국에 사회제국주의라는 모자를 씌워야 하며, 그 사실을 폭로하고 반대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일본은 지금이라도 지난날의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에 대하여 겸허하게 사죄하여야 하며, 중국은 주언라이 총리와 덩샤오핑 부총리의 발언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상대국의 역사를 존중하는 자세를 회복해야 한다. 상호 존중 없이는 역사인식 공유는 불가능하며, 역사 해석은 해결할 수 없는 평행선을 걸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맺음말

현재 동아시아 3국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 갈등은 하루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우익적 논리에 기반을 둔 군국주의화와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주의는 폐지해야 한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 교과서는 내년에 한 권도 채택되지 말아야 하고,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한 한국사 왜곡을 중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은 아시아에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할 도덕적 정신적 정당성을 갖지 못할 것이며, 중국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난할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모든 종류의 갈등과 분쟁이 그러하듯이 역사 분쟁과 갈등도 노력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동아시아 3국이 역사를 평화와 공영의 도구로 삼으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각국 정부도 그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오히려 현재의 역사 분쟁은 정부가 조장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므로, 양식 있는 학자들과 시민단체의 상호 교류와 공동 연구가 필요하다. 국가와 민족의 틀을 넘어서는 역사적 안목, 현재의 시점과 과거의 시점을 동시에 반영하는 연구가 요청되며, 그러한 연구와 교류를 위해 민간 차원에서 공동의 연구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