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에서 역사교과서 협력이 갖는 의미와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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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에서 역사교과서 협력이 갖는 의미와 진로

신  주  백(근대 2분과)

1. 역사전쟁의 현주소

2003년 하반기부터 작년까지 중국의 동북공정을 둘러싼 한중간의 역사갈등은 외교현안으로까지 부각되었을 정도로 심각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후소샤판 역사교과서를 비롯한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역사왜곡파동이 일어났다. 세기 말에 이미 냉전이 해체되고 EU가 성립되는 등 ‘지구촌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인데, 오히려 동북아시아에서는 역사인식과 영토문제를 둘러싸고 세계적 추세에 어울리지 않는 갈등이 강한 민족감정을 동반하며 폭발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 모두 ‘국제화’, ‘세계화’를 내세우며 FTA를 통해 경제협력을 강화하려고 하는데, 한편에서는 자국 중심의 내셔널리즘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2005년도 일본의 역사왜곡파동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관계자가 2001년 8월 기자회견을 하면서 4년 후 ‘리벤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예고된 사건이다. 하지만 복수를 향한 그들의 움직임은 예년과 분명히 다르다. 우익 인사들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교과서의 내용도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후소샤의 역사교과서는 일본 역사의 우월함과 독창성을 내세우기 위해 한국사의 종속성을 부각시키며 자율성을 부정하고 있다. 대외 침략의 책임을 주변국에 떠넘기고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고 있고 있다. 또한 후소샤의 역사교과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부정하고 침략전쟁을 미화하며 주변국 사이의 반목을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의 문제점은 2001년에도 지적하였다. 하지만 2005년도판에서는 이를 훨씬 세련되게 표현하고있다. 가령 일제강점기 조선에서의 ‘식민지 정책’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대만의 개발을 ‘컬럼’으로 새로 언급하며 식민지 지배를 우회적으로 미화하고 있다. 특히 미·일간의 친선과 우호를 새로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일본 우익의 주류가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와 같은 네오콘으로 바뀌고 있는 정치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맞서 한국의 정부와 시민단체 역시 2001년에 비해 세련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차원의 외교적 압박에만 의존하지 않고, 민간차원의 다양한 국제적 연대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고 있는 것이 2005년도 대응의 특징이다. 특히, 시민단체와 역사학계가 연대하여 일본정부와 출판사에 독자적인 수정요구안을 제출한 것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움직임이다.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 그리고 역사학계의 학문적 축적과 자율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NGO 또는 민간단체가 국가라는 단위에서 어떻게 공존하며 경쟁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되풀이되는 한계도 있다. 가령 개항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일본의 선택에 관한 민족적 해석, 또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역할에 관한 이분법적인 분석처럼 특정한 내용에 관해 1982년 및 2001년의 수정요구안과  같은 학문적 관점을 그대로 답습한 경우가 있다. 이는 수정요구의 일방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또한 1982년과 2001년도 수정요구와 그에 대한 일본측의 답변만으로는 학설상황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아 비판의 근거가 무엇이고, 상반된 해석의 구체적인 지점이 어디이며, 어떤 학설상황 때문에 서로 비판하고 거부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2005년에도 비슷한 작업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왜 이런 한계가 되풀이되는 것일까. 이제까지 한일 양국은 이러한 쟁점을 해소하기 위해 단계적인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쌍무적인 협력을 시도한 적이 거의 없다. 양쪽 모두 일시적이고 일방적인 비판과 반응만 있었기 때문이다.

2. 한일간 역사교과서 협력이 갖는 특별한 의미

2005년도 상황은 지금이 단계적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동북아 역사교과서 협력을 본격화해야 할 시기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국제 교과서 협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방에 대한 호혜적인 인식을 가로막고 있는 심리적 거부반응과 견고한 정서적 장벽을 허물고 상호 이해와 협력을 심화시키는데 있다. 역사교과서는 이 목적을 위해 특별한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상대방에 대해 갖는 편견과 공격적 적대감은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다. 더구나 두 나라 국민은 하나의 사실에 대해 같은 정보량을 갖고 있지 않다. 풍부한 지식과 무지가 병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러한 편견, 공격적 적대감과 응어리, 나아가 무지가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다는데 있다. 우리가 국제이해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벌일 때 청소년교류, 학자교류와 더불어 역사교과서 협력을 우선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일간의 교과서 협력도 마찬가지다. 역사교과서 협력은 ‘쪽발이’와 ‘조센징’이란 호칭이 사라지고 ‘일본인’과 ‘한국인’이란 호칭이 내면에까지 울려 퍼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일간에는 한국과 중국, 독일과 폴란드, 독일과 프랑스와 다른 좀 특수한 측면이 있다. 가해와 피해가 일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 가해자 처벌, 보상,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05년도 역사왜곡파동은 시마네현 의회의 조례 제정으로부터 출발한 독도를 둘러싼 대립,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등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 등으로 계속 증폭되고 있다. 2005년이 ‘한일 갈등의 해’로 되고 있다

한일간의 갈등을 촉발시키고 있는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일본 정치인 등의 망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과 이로 인해 귀환하지 못한 사람들의 유골 반환과 보상문제, 사할린동포의 귀환문제, 우키시마루폭침사건의 진상, 우토로에 거주하는 재일한국인문제 등등이 있다. 모두 일본의 한국 침략 및 지배와 연관된 역사문제다. 그렇다고 어느 것 하나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면서 당면한 외교현안으로 떠올라 있다. 또 역사문제이다 보니 역사교과서의 내용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사안들이기도 하다.

(일제 강제동원 수 표시된 지도 )

 

따라서 한일간 역사현안문제의 해결은 역사교과서의 서술과 많은 관련이 있으며, 역사교과서 서술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는 역사현안문제를 풀어가는 지침이 될 수도 있다. 한일관계에서 역사교과서문제가 갖는 특수성이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협력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역사현안문제를 풀어가는 발판이자 촉매제이면서 역사현안문제가 마무리되고 수렴되는 지적 공간이다. 덧붙이자면 기념물 건립과 공원조성은 그것의 정치적, 지리적 공간이다. 이러한 협력을 발판으로 지리교과서, 언어와 문학 관련 교과서, 나아가 학교교육을 벗어난 영역에서의 협력으로까지 점차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가 일본을 신뢰하고 일본이 우리를 믿을 수 있는 단계는 역사현안문제가 교육과정에 반영되어 교육대상자들에게 반복해 전달될 때이다. 진정한 반성과 사과, 상호호혜는 이러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만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3. 역사인식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협력의 결과물

동북아시아에서 역사인식을 둘러싼 협력이 정례화된 것은 2002년이었다. 2001년 일본의 역사왜곡파동이 계기였던 것이다.

정부차원에서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활동이 있었다. 19개의 대주제를 가지고 3년간 논의한 결과 2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연구성과가발표되었다. 한국측은 독자적으로’한일관계사연구논집’ 10권을 발행하였다. 민간차원에서는 대구와 히로시마지역의 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협력의 결과 ‘조선통신사'(한길사)가 발간되었다. 두 활동이 한일간 협력관계의 결과였다면, ‘미래를 여는 역사'(한겨레신문사)는 한국, 중국, 일본의 교사, 연구자, 시민운동가들이 함께 만든 성과물이었다.

협력의 결과물은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성과가 갖는 최대의 약점은, 2001년도 일본 역사교과서의 역사외곡 파동이 활동의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의 서술 내용을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나의 연구주제에 대해 한일 양국이 각각 논문을 작성했다는 점도 문제다. 그것은 쟁점을 부각시켰다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협력의 강도가 약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실제 같은 대주제를 놓고 토론하고 논문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초점이 전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한편의 단일 논문에서 그것을 부각시켰어야 차이와 일치점을 선명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차원에서 정례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조선통신사’와 ‘미래를 여는 역사’는 민간의 자발적인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우선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조선통신사’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교사와 학생이 밀도 있는 수업을 전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한국, 중국, 일본의 근현대사를 한 권의 책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읽는이들이 유럽중심의 세계사 인식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대한 시야의 동시성을 확보하면서도 상대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데 민간측의 활동은 후속 작업이 계속되어야만 두 권의 책이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통신사’는 한일관계사 전반에서 보면 협소한 문제이고 그보다 더 첨예한 쟁점도 얼마든지 있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동아시아적 관점’을 갖고 삼국의 근현대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지만 세 나라 국민국가사의 병렬적 서술이었다는 측면도 있다. 그리고 삼국간의 서술 수준의 편차도 완전히 극복했다고 볼 수 없다. 물론 ‘미래를 여는 역사’가 갖는 한계는 짧은 ‘역사교과서 교류의 역사’, 동아시아사에 관한 연구수준 등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오히려 이러한 한개는 ‘재도전의 과제’라고도 볼 수 있다.

4.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정부와 민간차원의 교과서 협력의 역사는 이제 겨우 4년째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1935년 40항목의 권고안을 제출한 이래 70년간 교과서 협력을 해 왔다. 마침내 올 해 3월 정부차원에서 공동 역사교과서를 내기로 합의하였다. 국제 역사교과서 협력의 역사에서 가장 진전된 형태의 출판을 합의한 것이다. 독일과 폴란드도 1972년부터 협력을 시작하여 1977년 26항목의 권고안을 공포하였다. 지금까지도 협력을 지속하고 있지만 아직 공동역사교과서는 나오지 않았다.

교과서 협력은 장기적인 전망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가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온 만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또한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국제 교과서 협력을 하는 기본적인 목적은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무지, 공격적 적대감과 응어리를 해소하고 상호 이해와 협력을 심화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역사교육은 화해교육이고 평화교육인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는 협력의 결과를 ‘권고안’이라는 형식으로 출판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2005년도 결과물은 전혀 다른 형식이었다. 왜 그럴까.

한·일, 또는 한·중·일간 국제 역사교과서 협력의 출발점이 일본 우익의 역사왜곡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들에 맞서 대안을 제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일본 우익의 주류는 역사교과서의 출판과 역사교육을 ‘정치운동’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가령 자민당 간사장 대리로 유력한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고 있는 아베 신조는, 2004년 6월 지방의원에게 보내는 공식통지문에서 ‘역사교육의 문제는 헌법 개정, 교육기본법 개정의 문제와 표리일체를 이루는 중요 과제’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렸다. 일본 우익이 당면한 정치과제로 설정한 헌법개정과 교육기본법 개정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으로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을 위치지우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국가간의 교과서 협력에서는 당대 권력자들의 의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모든 정부는 국가의 발전전략과 맞물려 학교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과서 협력이 시작되려면, 그리고 장기적으로 지속되려면 당대 권력자들의 권력의지가 대단히 중요하다.하지만 현재 일본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EU에 합류하는 것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었던 독일과 달리, 일본의 지도자들은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보다 미일동맹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2005년도 후소샤 교과서가 반미를 감추고 반중국·반북한을 입장을 드러내며 탈아입미(脫亞入美)를 새로이 강조한데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교과서 협력을 둘러싼 권력의지의 불균형이란 현실을 주도적으로 타개하고 있는 영역은 시민단체이다. 2001년도 역사왜곡파동 당시의 협력 경험이 창조적으로 발전한 결과다. 독일이 ‘게오르크 에케르트 국제교과서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프랑스가 권위 있는 교과서 전문출판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과 다른 동아시아적 협력 형태인 것이다.

따라서 유럽의 경험을 교조적으로 따를 필요는 없다. 물론 그들의 경험에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은 있다. 첫째, 교과서 협력은 반드시 쌍무적이어야지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 둘째, 교과서 협력은 참가자 개인의 학문적 근거와 자율성에 기초해야만 창조적 자발성을 유도할 수 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협력의 장기 레이스를 담보할 수 있다. 셋째, 교과서 협력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어야 한다. 몇 차례 심포지움을 한다고 해서 실현될 수 있는 성질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한일간 교과서 협력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의 하나도 이와 같은 협력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세 나라 사이의 교과서 협력을 성공시킨 보기 드문 사례인데, 위의 세 가지 원칙에 충실했고 2005년이란 예견된 상황에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상황의 강요, 내지는 실천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위의 세 가지 원칙은 정부차원의 국제 교과서 협력에서도 적용된다. 제1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성과를 거두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의 하나는,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일방적 검토에 있었다. 우리의 역사인식에 내재한 문제점은 검토대상에서 빠졌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참가 위원들 ‘개인’의 목소리보다는 ‘국가를 대표’한다는 분위기가 더 강하게 작용하여 토론과정에서 학문적 내용에 관한 구체적인 협력을 담보할 수 없었다. 내셔널리즘으로 내셔널리즘을 극복할 수는 없으며, 국가차원에서 그렇게 하려고 하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1기를 띄우는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협력방식을 합의하지 못하였다. 교과서를 다루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경험의 일천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정부차원의 교과서 협력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지원’만 해야 한다. 조직의 구성과 운영은 ‘참가위원’ 개인의 의지를 완벽하게 존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1기와 같은 방식으로 참가위원을 구성해서는 안된다. 특히, 일본측과 같은 제1기 구성방식은 한국측이 거부해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처럼 권위 있는 국제교과서연구소와 교과서 전문출판사가 없는 한국과 일본의 현실에서 정부가 운영에 일정하게 관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러한 색채를 얼마나 엷게 하느냐가 이후 성패를 가늠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제1기와 같은 운영방식이 지속되는 한 ‘교과서 내용을 직접 다룬다’는 것 자체가 양국 정부에 대단히 큰 정치적 부담으로 되돌아올 여지가 많다.

물론 정부차원의 교과서 협력은 참가위원의 대표성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원회가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 그리고 한일관계사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집합체여야 한다는 점이다. 학문연구와 교과서분석 및 서술은 차원이 다르며, 국제 교과서 협력은 관계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일정한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물론 민간차원의 협력도 이러한 적용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다만, 민간차원의 협력에서 ‘대표성’ 그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동북아시아의 교과서 협력은 NGO를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NGO의 최대 매력은 이권과 무관한 개인의 창조적 자발성에서 활동의 원천을 찾기 때문이다.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과서 협력의 조직형태는, 정부는 ‘지원’만 하고, 시민단체와 학계는 ‘참가위원’을 선정하고 운영을 주도하는 형식이다. 가장 이상적인 교과서 협력의 출판형태는 교과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다양한 형태의 공동연구의 성과물과 교사용안내서를 발행하여 실제적으로 교과서 내용을 다루고 역사교육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형식일 것이다. 그 예를 들어 보면 2005년 3월 독일과 프랑스 정부는 세 권의 고등학생용 역사교과서를 발행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때 정부는 기본적인 방향만 제시하고, 독일의 국제교과서연구소와 프랑스의 낭트출판사는 관련 연구자와 교사들로 참가위원회를 만들어 자율적으로 집필하기로 합의하였다. 또 책이 나와도 선택권은 교사와 학생에게 있으며 정부차원에서 채택과정에 어떤 작용도 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2005년도 한일관계는 갈등이 예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 우정의 해’라고 하며 폼나게 시작하였다. 하지만 6월의 시점에서 볼 때 2005년도는 ‘한일 갈등의 해’이다. 이를 해결하는 핵심 고리는 교과서 협력이다.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발전적으로 새 출발을 하고, 민간차원의 교과서 협력이 지금보다 더 발전된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2005년은 ‘한일 과거청산 원년의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