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초는 있다

0
233

독초는 있다

‘농사꾼이 된 철학교수’ 윤구병 선생은 ‘변산 공동체’를 일구며 틈틈이 글을 쓴다. 그가 쓴 글은 꾸밈없고 간결하다. 또 그 글에서는 변산반도 곰소에서 파는 젓갈 같은 그런 곰삭은 맛이 난다. “잡초는 없다”는 글처럼 작은 이야기에서 큰 생각거리를 추려내는 솜씨도 놀랍다.

어느 봄날, 그는 마늘 밭을 뒤덮은 ‘잡초’를 뽑아내느라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뒷날 그 ‘잡초’가 약이 되는 별꽃나무, 광대나물이었음을 알고 ‘잡초 뽑기’가 잘못이었다고 후회했다. 식물학자들도 ‘잡초’란 몹쓸 풀이 아니라,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로 정의해야 한다고 한다. 보기를 들어보자. 선사시대에 호밀과 귀리는 밀과 보리를 재배하는 땅에 난 ‘잡초’였지만, 인간이 그 가치를 발견하면서 완전한 재배종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먹는 채소도 처음엔 다 ‘잡초’가 아니었던가. “살아 있는 땅에 잡초는 없다”

윤구병 선생 말마따나  “살기 좋은 세상에 잡초 같은 인생은 없다.” 그러나 이 지구촌에 ‘잡초 같은 인생’이 더욱 늘어가는 것을 보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남한 땅만 해도 잡초처럼 살다가 신자유주의 공세에 뿌리 뽑히는 수많은 노동자가 있다. 지난해 참혹한 현실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분신과 자살이 잇달았다. 올해 2월 14일 새벽 4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도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분신했던 전태일 열사, ‘노동자도 인간이다’며 떨쳐 일어섰던 1987년 노동자 대투쟁, 그리고 또다시 “하청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박일수 열사의 마지막 외침. 아직도 노동자는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산다는 증거이다.

“잡초는 없다”는 윤구병 선생 말을 조금 바꿔보자. 노동운동에 “독초는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앞장서 이끌었던 헌대중공업 민주노조운동, 1988~1989년 128일 동안의 파업투쟁, 그리고 1990년 그 유명한 골리앗 투쟁의 기억을 밀쳐 둔 채, 노사협조주의에 물들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현대중공업에 어용노조가 둥지를 틀었다. 박일수 열사는 “현대어용노동조합은 그네들을 지키기 위한 노동조합이다. 노동자는 하나다는 원칙은 말장난 일뿐 열악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는 안중에도 없다”고 유서에 적었다. 현대의 원청 하청 자본과 어용노조가 ‘잡초처럼 살아온’ 박일수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았음을 알려준다. 어용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숨통을 죄는 아주 심각한 독초임에 틀림없다. 이미 식민지 시대 노동운동가들도 어용노동조합을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1930년대 ‘어용노동조합’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한 활동가의 기록을 보자.

 

“공장과 일터에서 운동을 진행하는 데 제일 큰 적은 관료(어용)노동조합과 총독부에서 조합에 파견하여 거짓 노동자의 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이다. 만일 어떤 노동자든지 관료노동조합에 반대 태도를 가질 때는 그들은 곧 노동자를 공장에서 몰아낸다. 관료(어용)노동조합은 공장주와 자본주들이 관료노동자, 십장, 그 밖에 자기들에게 충복하는 노동자를 이용하여 조직한 것인데 노동자가 집중한 곳에는 어디든지 이것이 있다. 조선에 실업자가 많은 까닭에 그들은 노동자를 몰아내는 데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다.”

어용노조 말고도 지금 노동운동 텃밭 곳곳에 독초가 움트고 있다. 노조관료주의는 힘겹게 일구어온 노동운동의 힘을 안에서 갉아먹는 지독한 독초이다. 노동자에게 노동운동사 강의를 하기에 앞서 나는 때때로 노조위원장 사무실에서 차를 마신다. 그 때 가끔씩 노조 위원장 사무실에서 노조관료주의의 역겨운 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는 사장 명패와 똑 같이 자개를 박은 노조위원장 명패에서 풍겨온다. 그 냄새는 푹신한 가죽의자와  큼지막한 책상에서 나오고, 차 심부름을 시키는 위원장의 내리 깔은 목소리에도 묻어있다. 나는 그런 노조위원장 사무실을 보면, 곧장 무슨 브로커 사무실이 떠오른다. 사실, 노조관료란 자본과 노동 사이의 브로커를 일컫는 말이다. 민주노조라면 적어도 자개가 박힌 노조위원장 명패만이라도 걷어치워야 한다.

노조관료주의 말고 독초는 더 있다. 어느 노동조합 간부교육에서 나는 정말 화나는 일을 겪은 적이 있다. 한 간부가 시의원 전화를 받고는 그와 저녁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리를  뜰 수밖에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이런 간부를 노동운동의 독초라고 생각한다. 독초 간부가 이 땅의 잡초 노동자를 죽이고 있다.

20년 남짓 노동교육에 몸을 던진 역사학자 박준성은 ‘잡초’ 선생 윤구병을 아주 좋아한다. ‘변산 공동체’에 내려가 며칠씩 땀 흘려 일하기도 했다. 그는 민들레도 좋아한다. 곳곳에 핀 민들레를 슬라이드에 담아 노동자에게 보여주며, “노동해방 그날까지 민들레처럼 피어나자”고 선전· 선동했다. 그는 지금 힘차게 간암과 싸우며 잠시 노동교육을 멈추었다. 그러면서도 민주노총 위원장 얼굴만을 크게 실어놓은 2004년 메이데이 포스터에 잔뜩 흥분하고 있다. “무슨 국회의원 선거 포스트 같다”면서 민주노총에 항의 전화를 해야겠다고 했다. 분명 건강에 해로운 일을 할 모양이다. 그러나 나도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형 말이 맞아. 그따위 포스터 생각을 해내는 사람들이 바로 독초야.”

어떻게 되찾은 이 땅의 메이데이인가. 민주노총! 메이데이 정신을 그렇게 왜곡할 수 있는가. 나는 민주노총 위원장만을 띄워놓은 올해 메이데이 포스터를 보면서, 독초의 독한 기운을 느끼고 있다. 박일수 열사의 두툼한 얼굴도 생각난다. 노동운동사를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있는 그 누구라도 올해 메이데이 포스터를 걷어치울 것을 민주노총에 힘차게 요구해야 한다.

풀은 가축과 동물의 먹이가 될 뿐만 아니라, 땅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가 올 때면 가녀린 풀뿌리가 땅을 꽉 움켜쥔다. 풀잎은 제 몸을 휘어 땅을 감싸 안는다. 풀 한포기 없이 마른 땅은 비바람에 쉽게 살이 깎인다.  ‘잡초’는 그만큼 소중하며, “ 살아있는 땅에 잡초는 없다.”

우리, 기억하는가.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살자던 그 약속. 지금 이 땅에서 한 포기 ‘잡초’처럼 산다면,  우리가 움켜쥘 땅은 어디이고 어디로 휘어 무엇을 감싸 안아야 하는가.  내가 노동운동의 관료주의를 탓한다면, 역사 연구자들의 ‘연구주의’는 또 어찌할 것인가. 연구진영 안의 비정규 노동자인 강사들의 처지를 나 몰라라 하는 정규직 연구자, 그런 교수가 있다면 그들은 또 누구인가. 그들을 노동귀족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무엇보다 내 안에서 어떤 독초가 자라는지 먼저 점검해볼 일이다.

 

최 규진(역사학 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