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국사 과목 필수 요구와 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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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국사 과목 필수 요구와 역사교육

안병우(중세사 1분과)

  최근 몇몇 대학이 2010학년도부터 한국사를 필수선택과목으로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사는 수학능력시험에서 사회탐구영역에 속하는 11개 선택과목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국사를 필수로 요구하게 되면, 그 대학에 지원하려는 학생은 수능시험에서 반드시 국사를 선택해야 한다.

  대학들의 이러한 결정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국사를 필수로 하기로 결정했거나 의향을 밝힌 대학은 모두 11개인데, 이들이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서울의 명문대학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대의 일부 대학에서는 국사를 필수로 요구하고 있다. 결국 수학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국사를 선택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수능시험에서 학생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과목을 선택한다. 현재 국사는 수능시험에서 별로 선호하는 과목이 아니다. 선택하는 학생수로 보면, 금년에는 약 22%의 학생만이 국사를 선택하였다. 이는 사회탐구영역 가운데서 7위에 해당된다. 게다가 선택하는 학생수는 2005학년도 47%(5위)에서 2006학년도 31%(6위), 그리고 22%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한국근현대사를 선택하는 학생은 국사보다는 훨씬 많아서, 2005학년도 47%(4위), 2006학년도 54%(3위), 2007학년도 53%(3위)였다. 사회탐구영역에서 1, 2위는 계속 한국지리와 사회문화가 차지한 것을 보면, 국사나 한국근현대사는 점수를 잘 받기 어려운 과목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국사 선택비율이 낮은 것은 서울대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대가 국사를 필수로 요구하기 때문에, 과목별 석차가 낮아질 것을 우려한 학생들이 의도적으로 회피한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고 본다. 이러한 현상은 위에서 말한  11개 대학들이 국사를 필수로 요구하게 되면 거의 사라져서, 응시생의 약 60% 이상이 국사를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한국사를 필수로 요구하면 부대적인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한국사의 내용이 통합교과논술시험의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논술시험에서는 응시생 모두가 공부한 과목의 내용을 소재로 출제하는 것이 형평성 보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필수인 국사 과목에서 출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언론의 관측이다.

  실제로 서울대는 금년도 논술시험에서 국사 과목 소재인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출제했고, 내년도 예시문항에서는 ‘조선후기 상업발달’ ‘조선전기ㆍ후기의 회화 발달’을 제시하였다. 모의논술시험에서도 ‘개항전후의 정치세력과 정치사상’에 대한 문제를 출제하였다.

  국사를 필수로 요구하기로 한 대학들의 결정은 몇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볼 점이 있다. 먼저 이번 결정은 대학의 자율적 의지와 판단에 의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학 입학처장들이 이 문제를 놓고 협의한 것은 분명하지만, 정부가 강제하였다는 증거는 현재로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학이 입학에 관한 자율권의 차원에서 결정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의미가 있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왜 대학이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가 하는 점이다. 입학처장들은 세계화시대, 다양성의 시대에 우리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 자칫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있으며, 이런 문제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국사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는 수긍할만한 것이지만,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요인, 예컨대 사회의 요구 등이 함께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셋째, 이번 결정은 역사교육 강화라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월 교육부는 중등학교 역사교육강화방안을 발표하였다. 연차적으로 시행될 이 방안은 교단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 큰 변화는 역사과의 과목 독립이다. 통합사회과에서 실질적으로 역사가 분리되어 역사는 역사로서 가르치게 된 것이다.

  학교 역사교육 강화와 함께 공무원시험 등에 한국사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고,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만들어 두 차례 시행하였다. 작년 11월에 시행한 첫 시험에는 1만 5천 여 명, 이번 5월에 시행한 2차 시험에는 무려 2만 7천 여 명이 응시하여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대학들의 결정은 이러한 사회분위기를 일정 정도 반영한 측면도 있으리라고 본다.

국사를 필수로 하는 데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이를테면 세계화되는 시대, 다양성의 시대에 세계의 지리, 역사, 문화 등에 대하여 더 배우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 걱정만 해서는 안 되므로, 대학은 관심의 초점을 우리 자신에서 세계로 옮겨, 국사보다는 과학을 필수로 하거나 세계지리, 세계사, 제2외국어 선택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론이 충분히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대학들의 이번 결정이 完美한 것인가? 역시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수는 없겠다.

  첫째, 정체성 함양이 목적이라고 한다면, 대학은 대학에서의 교육을 통해 정체성을 길러주려고 하기보다 고등학교에 그 책임을 넘겨버렸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수능에서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요구하는 대학들이 과연 교양과정에서 한국사를 필수로 지정하고 있는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에서의 국사 교육도 중요하지만, 대학에서의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

  만약 국사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필수과목으로 요구한다면, 대학에서도 마땅히 그에 걸맞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무래도 시험준비 위주로 될 수밖에 없는 고교 국사교육보다 수준 높고 바람직한 한국사 교육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이 조치가 거둘 효과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인정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과연 국사를 필수로 부과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목표 달성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 하는 점은 검토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한국사 교육은 한국사 전체의 흐름과 변화를 파악하는 능력의 함양을 중요하게 여기고, 역사를 배움으로써 오늘의 현상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안목을 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그런데 수능시험에서 필수로 부과하는 것이 단편적인 사실 암기에 그치지 않을지 걱정되는 것이다.

  그러한 점들을 고려하여도, 대학들의 이번 결정이 비난받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대학은 대학의 역할이 있고, 고교는 고교의 역할이 있다. 대학은 고교의 교육 결과를 바탕으로 좀 더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교육을 하면 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사물을 보는 올바른 눈, 과거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안목, 현재를 올바로 인식하는 비판정신이 길러질 것이며, 한국사 교육은 단계별로 그러한 지성의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