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이야기] 진보적 지식인의 기호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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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지식인의 기호품 : 담배(제8회)

진보적 지식인들은 새로운 사상을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개선된 사회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구래의 사회모순을 타파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려고 힘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사상을 수용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물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적었다. 그들은 새로 전래되는 문물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접해보려는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담배 소개자 : 이수광(1563~1628)

16세기말 17세기 초에 담배가 처음 전래되었을 때도 진보적 학자들은 담배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흡연하거나 소개하였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최초의 실학자인 이수광(1563~1628)은 1614년 저술한 자신의 저서 『지봉유설』에서 담배를 소개하였다. 그는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하면서, 이탈리아 신부(神父) 마테오릿치의 저서 『천주실의』와 『교우론』을 한국에 들여와 최초로 서학(西學)을 소개하였고, 『지봉유설』을 지어 서양의 사정과 천주교 지식을 전달하였다.

그는 『지봉유설』에서 “담파고(담배)는 풀이름이다. 또한 이것은 남령초(남쪽에서 온 신성스러운 풀이라는 뜻: 필자 주)라고도 한다. 근래에 왜국(일본)에서 나는데, 잎을 따다 바싹 말려…(사용한다.)… 이것은 가래와 습기를 잘 없애고, 기(氣)를 내리며 술을 깨게 한다. 지금 사람들은 이것을 많이 심어, 그 법을 쓰고 있는데 매우 효험이 있다”라고 담배를 약초로 소개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골초: 장유(1587~1638)

17세기의 대학자이면서 뛰어난 관료인 장유(1587~1638)가 있었다. 그는 이조정랑을 지내고, 대사간․대사헌․대사성을 지낸 후 이조참판․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631년에 딸이 왕세자인 봉림대군(후에 효종임금이 됨)에게 출가하여, 당시의 임금인 인조의 사돈이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 후 예조판서와 우의정을 지내다가 사직하였다.

장유는 유학자이면서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새로운 학문이나 문물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에 진보적 사상이었던 양명학을 수용하여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면서 양명학적 사유를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새로 전래된 담배라는 문물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갖지 않고 수용하였다. 그는 애연가가 되었고, 담배에 대한 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계곡만필』에서 “담배를 피우면 취한 사람은 술이 깨고 깨어있는 사람은 취하게 하며, 배고픈 사람은 배부르게 하고 배부른 사람은 배고프게 한다”고 하면서 담배를 찬양하였다. 그리하여 후대의 사람들은 효종의 장인이면서 대학자이었던 장유에게 조선시대 최초의 골초 아니 우리나라 최초의 골초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던 것이다.

흡연 찬반 논쟁의 정리자: 이익(1681~1763)

경기도 안산을 근거로 생활을 하고 실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성호 이익(1681~1763)도 담배에 대해 조예가 깊었다. 그는 당시 유학자들 간에 담배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었던 것을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면 “먹은 것이 소화가 안 되고 가슴이 조이면서 신물이 올라올 때 유익하며, 한 겨울에 추위를 막는데 유익하다”고 하면서, 그러나 흡연은 유익한 것보다 해로운 것이 더 심하다고 지적하였다. “냄새가 나빠 마음을 깨끗이 하고 신과 만날 수 없는 것이 첫째이고, 재물을 없애는 것이 둘째이며, 세상에 할 일이 많은 데 지금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담배 구하기에 급급하여 잠시도 쉬지 않는 것이 셋째이다”라고 언급하였다. 그는 담배를 구하고 피우는 마음과 힘을 모아서 학문을 닦는다면 반드시 큰 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담배 재배의 권장자: 이중환(1690~1752)

이중환(1690~1752)은 성호 이익의 문인으로 실사구시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관료의 길로 접어들었다가 당쟁에 휘말려 5차례나 형을 살고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유배에서 풀려난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세상의 풍상을 겪으며 살았다.

전국을 돌아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말년에 인문지리서인 『택리지』를 저술하였다. 『택리지』에서 그는 지배계급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생산 활동에 근거한 지리적 환경을 중시하였다. 가장 좋은 지리적 환경은 땅이 기름진 곳이 최고이고, 다음이 교통이 편리한 곳이라고 하였다. 특히 진안의 담배 밭, 전주의 생강 밭, 임천․한산의 모시밭, 안동․예안의 왕골 밭 등 경작하여 돈을 벌 수 있는 상품작물의 재배지역을 중시하였다. 그의 주장은 후에 박지원․박제가 등의 북학파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담배 백과사전의 저자: 이옥(1760~1815)

이옥(1760~1815)은 18세기말 19세기 전반에 문학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전주 이씨로 나이 31세에 증광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790년대에 성균관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조대왕으로부터 ‘불경스러운 문체를 고치라’는 명을 받고 유배되었으며, 유배에서 풀려난 후 고향인 경기도 남양 으로 돌아와 글을 쓰면서 평생을 지낸 문학가이다. 그는 부, 서, 발, 기, 논, 설, 해, 변, 책, 전, 이언, 희곡 등의 많은 글을 남겼으며, 그의 모든 저작들은 『역주 이옥전집』(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번역, 전 3권, 소명출판, 2001)으로 출간되었다.

그는 1810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담배 백과사전인 『연경』을 저술하였다. 그 서문에는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지도 200년 정도 되었다…..  200여 년 동안에 문자로 기록한 책이 당연히 있을 법도 하건만, 담배에 대해 기록한 저술가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바가 없다….. 나는 담배에 대한 벽이 심하다. 담배를 아끼고 즐겨서 남들의 비웃음을 두려워 않고 망령을 부려 저술을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는 담배를 매우 즐기는 애연가였으며, 그에 따라 담배에 대한 모든 사항을 적어 후세에 전하려고 하였다.

우리나라 실학의 집대성자: 정약용(1762~1836)

다산 정약용은 반계 유형원으로 부터 시작되고 성호 이익에 의해 계승된 실학의 학풍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최대의 저술가이며 실학의 완성자라고 인정받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담배를 매우 좋아하였다. 다산 정약용이 둘째 아들인 정학유에게 양계를 권하는 편지 가운데 “네가 이미 닭을 치고 있다니, 백가의 서적에서 닭에 관한 기록을 초록하여 육우의 『다경(茶經)』이나 유득공의 『연경(烟經)』처럼 『계경(鷄經)』을 편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속된 일을 하면서도 맑은 운치를 지니려면 늘 이러한 사례를 기준으로 삼을 일이다.”라고 하였다. 정약용은 담배에 관해 여러 가지 사항을 기록한 『연경』을 읽고 그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였다.(안대회, 2003 「이옥의 저술, “담배의 경전(연경)”의 가치」『문헌과 해석』24 재인용) 그는 이옥이 저술한 『연경』을 유득공이 저술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다산은 1801년에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를 갔다가 「장기농가」라는 시를 지었다.

새벽비가 내리니 담배 심기가 적당하다.

담배 모종을 옮겨다가 울타리 밑에 심어 두자.

금년 봄엔 영양의 연초재배법을 따로 배웠다가

금쪽 같은 담배를 팔아 일년 동안 살아야겠다.

(영양현에서는 좋은 담배를 생산해낸다)

그는 담배를 좋아하였으며, 담배 심기를 권장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의 저자: 이규경(1788~      )

이규경은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이덕무의 손자이며, 이광규의 아들이다. 할아버지 이덕무는 박학다재하며 고금의 문장에 통달하였다. 정조대왕이 도서관 겸 정책입안기관인 규장각을 열고 뛰어난 학자들을 등용하였을 때, 유득공․박제가․서이수와 함께 이덕무는 ‘4검서(檢書)’로 불릴 정도로 뛰어났다. 아버지 이광규도 할아버지를 이어 검서관에 등용되어 오랫동안 규장각에서 일하였다. 이규경은 이러한 가풍을 이어받고 청조 실학을 수용하면서 우리 나라에 실학의 기운을 확대해갔다. 그는 수백 종의 서적을 탐독하면서 천문, 역학, 종족, 역사, 지리, 문학, 풍속 등 1,400 여 항목을 풀어서 설명한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60권을 저술하였다. 그는 일생 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할아버지가 이룩한 실학을 계승하여 조선후기 실학을 꽃피운 박물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연초변증설」과 「각연변증설」항목을 설정하여 담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초변증설」에서는 동북아시아에 담배가 전래된 시기와 담배가 약초로서 전래되었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담배대에 대한 언급도 하고 있다. 「각연변증설」에서는 소금을 전매하는 제도를 본받아 “담배는 그 쓰임이 곡물과 똑같고, 그 가격은 쌀과 더불어 동등하여 이익이 많으니 정부에서 전매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규경은 담배의 생산과 판매에 따른 이익이 많으니, 정부가 담배를 독점적으로 관리하면서 이익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혁신적인 견해를 피력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