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적 성폭력의 위계와 반성의 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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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적 성폭력의 위계와 반성의 준거

1980년경 “뿌리”라는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알렉스 헤일리의 동명 원작 소설을 토대로 한 이 드라마는 스토우 부인의 “엉클 톰스 캐빈”을 통해 백인 귀부인의 동정어린 시선에 비친 흑인노예 밖에 알지 못하던 한국인들에게 처음으로 ‘흑인의 눈으로 본 흑인노예’를 소개해 주었다. 뒤이어 흑인 작가들이 쓴 유사한 책들이 서점에 쏟아져 나왔고 그 책들을 통해 흑인 ‘노예농장’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도 비로소 알려졌다. 노예농장은 흑인 노예를 ‘생산, 판매’하는 농장이었다. 이 곳에서 흑인 여성 노예는 노예를 생산하는 기계에 불과했다. 이 곳의 흑인 여성 노예들은 심지어 ‘순종(純種)’ 노예를 생산하기 위해 ‘근친상간’까지 강요당해야 했다. 이토록 끔찍한 ‘반인간적’ 폭력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피해 당사자는 ‘흑인 여성 노예’라는 통합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개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흑인’과 ‘여성’, ‘노예’는 구분할 수 있는 범주이고, 또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노예제 폐지와 인종차별 철폐, 성해방을 ‘동시에’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까지는 없을 테니까.

이제 다음 증언을 들어 보자.

“정옥순(鄭玉順)씨의 기억은 매우 또렷했다….그해 8월27일, 칼을 찬 군인이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하고 물었다. 그때 손을 들지 않은 15명의 여성은 다른 여성에 대한 본보기로 죽였다. 발가벗긴 여성을 군인이 머리와 발을 잡아 못박은 판자 위에 굴렸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판에 너덜거렸다. 그때의 기분을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진 것 같았다”고 정씨는 표현했다. 그 다음 군인들은 못판 위에서 죽은 한 여성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 정씨와 다른 여성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본 중대장은 “위안부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 운다”고 했다. 군인들은 죽은 여성의 머리를 가마에 넣어 삶았다. 그리고 나무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했다. 정씨는 그때 피살된 여성들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한사람씩 짚어나갔다. 중도에서 헛갈리면 다시 처음부터 세어나갔는데 아무리 해도 한사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자 몹시 서운해 했다. 그 수비대의 대대장은 ‘니시하라’, 중대장은 ‘야마모토’, 소대장은 ‘가네야마’였으며, 위안소 감독은 조선인 ‘박’이었다고 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어떻게 이 지경으로까지 다룰 수 있을까. 니시하라라는 자도 야마모토라는 자도 자기 집에서는 좋은 아버지, 착한 아들, 다정한 남편이었을 게다. 그들 역시 한 때는 옆 집 처녀를 보고 가슴을 두근거리던 순진한 청년이었을 게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끔찍한 야수로 만들었을까. 그들 ‘칼 찬 일본 남성’은 군인으로서 ‘덴노헤이까’의 ‘하사품’을 함부로 취급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으로서 ‘사람 취급할 필요가 없는’ ‘조선인 성노예’들을 다룬 것이다. 조선인 성노예가 체험한 끔찍한 폭력은 분명 다중적이었다. ‘덴노의 군인’들은 남성으로서 여성을 폭행했고, 군인으로서 종군위안부를 폭행했으며, 일본인으로서 – 물론‘덴노헤이까의 적자’가 된 조선인도 포함된다 – 조선인을 폭행했다. 그러나 그 다중성에도 위계가 있었다. 그들의 폭력성을 극단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은 ‘조선인’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민족차별적, 자민족우월주의적 태도였다. 그들은 ‘조선인 위안부’는 결코 자신의 누이일 리가, 그들 이웃의 누이나 딸일 리가 없다는 ‘확신’ 속에서 행동했다.

일본군 성노예들이 겪은 일상적 성폭력은 일차적으로 상대가 ‘군인’이기 때문이었지만, 그밖에도 그네들이 수시로 직면해야 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 끔찍한 학대의 공포, 그리고 현실화된 죽음과 학대는 그네들 자신이 다름 아닌 ‘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민족, 성, 계급의 삼중모순의 결과임은 분명하지만, 이번에도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민족’이다.  이 문제를 ‘전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바라볼 경우, 이토록 ‘극단적인 야만성’이 발현된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일본 제국주의자도 한국 정부도 ‘매매춘업소를 찾는’ 보통 남성도 똑같은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한다. 쓸 데 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군소리를 하나 덧붙이자면, 나는 한국정부나 한국 남성들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흑인 여성 노예’의 경우에서처럼 ‘조선인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서도 차별적 접근이 필요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구나 나는 현대 한국 남성들의 왜곡된 성관념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은 – 전부는 결코 아니지만 – 일본 제국주의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조선 시대에도 매매춘이 있었지만, 적어도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지배하기 전까지는 오직 ‘남성의 성적 욕구를 배설하는 대상으로서만’ 존재의의를 갖는‘여성’은 없었다. 기생도 있었고 들병이도 있었고 은근짜도 있었고 사당패도 있었지만, 그냥 ‘창녀’는 없었고 그들을 한군데 모아 놓은 ‘공창 ․ 유곽 ․ 창녀촌’같은 것은 더더욱 없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서울에 건설한 최초의 ‘공익시설’은 다름 아닌 ‘유곽’이었다. 서울에 주둔한 사단 병력의 젊은 일본 병사들을 위해, 보호국에서 한몫 잡으려고 몰려 온 독신의 일본인 ‘남성’들을 위해 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공창’을 서둘러 조선에 이식했고, 거기에 조선인 여성들을 끌어들였다. 감언이설과 사기, 강압, 인신매매, 채권 행사 등 갖은 방법이 동원되었다. 그 결과 ‘성적 욕구의 배설대상’으로서만 존재의의를 갖는 ‘새로운 인간’이 처음으로 조선 땅에 출현했고 유곽은 새로운 ‘매매춘의 표준적 공간’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더러운 표준은 ‘더러운 여자들을 깨끗한 여자들로부터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는 그들식 ‘합리성’으로 포장된 채 조선인 남성들을 그 주위에 둘러 세웠다.

내외주점이라는 게 있었다. 일찍 과부가 되어 생계가 막연해진 여성이 술집을 차려 놓고 손님과 서로 내외해 가면서 술장사하는 ‘품격 있는’ 술집이었다. 하인도 없는데 손님은 ‘술 한상 내오시라 여쭈어라’하고 안주인도 ‘술값은 닷푼이라고 여쭈어라’하는 그런 술집이었다. 안주인이 드러워진 발 사이로 손만 내밀고 술상을 내 놓으면 손님끼리 앉아서 술 마시고 돈 놓고 나가는 그런 ‘점잖은’ 술집이었다. 적어도 유곽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러나 유곽이 매매춘의 새로운 표준이 되면서, ‘순전히 성적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여성이 나타나면서, 내외주점도 그 외곽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1910년대 초반부터 내외주점은 이름과 동떨어진 ‘밀매음의 마굴’로 지탄받기 시작했다. 카페 여급과 비루홀 웨츄레스가 뒤를 이었다. 일본식 매매춘 문화는 다른 ‘선진적’문화와 함께 조선 남성들의 의식을 사로잡았고, 그들의 행태를 일제 지배하의 식민지적 ‘표준’에 맞추어 바꿔 나갔다.

현대 한국 남성들에게 익숙한 성문화 – 현대 한국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반성해야 할 성의식 – 는 한국 남성이 수천년간 유지해 온 ‘기질’이나 ‘속성’, 또는 가부장제 그 자체에서 불쑥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성매매의 새로운 표준 속에서 구체화된 것이며, 6․25 이후 미군의 장기 주둔이라는 상황에서 심화된 것이다. 신마치와 동두천, 이태원이 순차적으로 한국적 ‘소돔과 고모라’의 모태가 되었고 그랬기에 양동(서울역), 청량리(역), 용산(역)에 ‘창녀촌’이 생겼으며 이태원, 미아리, 천호동에 ‘텍사스’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한국전쟁기 ‘대한민국’ 군대도 ‘위안소’를 운영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남성들이 ‘쇼윈도우’에 갇힌 여성들을 빤히 쳐다 보며 킥킥대고 있을 것이다. 모두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전시 성폭력’이라는 ‘일반성’이나 가부장제적 전통에서 만들어진 한국 남성의 특유한 ‘기질’과 관련하여 이해하려고 애쓸수록 ‘모두 반성합시다’말고는 별다른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일본군부가 운영한 ‘종군위안부’의 경험이 없었어도 한국인들이 ‘종군 위안부’ 제도를 ‘창안’할 수 있었을까?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심어놓은 식민지적 성문화에 익숙해지지 않았어도 오늘날 한국의 성문화가 이 지경이 되어 있었을까?

반성의 준거는 자기 역사 전반을 뼈아프게 성찰할 때 얻어지는 것이지 선험적으로 전제된 ‘보편적 인간성’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수백년간 지속된 가부장제 하에서 만들어진 성관념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하고, 자국 정부가 한 행위에 대해서는 무턱대고 관대해지는 백년 넘은 애국주의도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반성하고 ‘청산’해야 할 것은 현대 한국 남성의 의식과 몸에 ‘새겨진’ 식민지성 – 여기에는 물론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찌든 ‘국가주의’도 포함된다 – 이다. 우리가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는 것은 누구누구를 ‘친일파’와 그 후손으로 찍어 내치자는 것도, 일본 제국주의에 모든 잘못을 덮어 씌우자는 것도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에 무턱대고 함몰되어 갔던 과거를 반성하자는 것이고, 그 함몰된 의식상태를 떨치지 못하고 살아온 과거를 반성하자는 것이며, 우리 스스로 새로운 ‘표준적 도덕률’을 확립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자는 것이다. 이 모든 과거를 이왕지사 우리 역사의 일부가 된 것이니 그냥 끌어안고 가자고 할 양이면 도대체 가부장제와 애국주의, 민족주의는 뭘 근거로 해서 청산하자는 말인가. 또 이 일에 국가가 개입할 이유가 없다면 ‘양성평등법 제정’이나 ‘호주제 폐지’는 왜 필요한가.

P.S. 아래 쓴 글에 대해 ‘탈민족’이라는 분이 ‘민족주의’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왜 눈을 감는가고 지적해 주셨다.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그 지적에 대해 이 글이 보충답변이 될 듯 싶다. 나는 그 분이 말한 소위 ‘한국 민족주의’의 폭력성을 부인하거나 외면한 것이 아니다. 아래 글에서도 분명히 조선일보가 간도 문제를 거론하는 ‘민족주의’적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나는 일본 군국주의의 핵심 키워드들이 ‘한국 민족주의’로 둔갑하여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에게 내면화되었던 ‘민족자결적이고 호혜적인 민족주의’를 대체한 현실을 지적했고, 그렇게 변형된 ‘팽창적 민족주의’를 비판했다. 이 둘을 모두 ‘민족주의’로 부르는 데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고 보았기에 굳이 따옴표를 붙여가며 썼던 것이다. 다만 내가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이든 식민지 민족주의이든 모두 악이다 라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  정작 내가 답답하게 느끼는 점은 ‘탈민족’이라는 분이 말한 용기있게 저항해야 할 ‘억압적 민족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동안 식민잔재 청산이나 민족자주, 민족통일을 입밖에 냈다가 투옥된 사람들은 무수히 보았지만 그 반대편에서 ‘탈민족’을 주장한 사람들이 무슨 사소한 불이익이라도 겪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혹시 있었다면 알려 주시기 바란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지금 조중동이 지배하고 있는 여론시장에서 ‘탈민족’을 주장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아래 글을 쓰면서 ‘편협한 민족주의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했다. 지난 두 주간 조중동을 비롯한 각 일간지에 실린 관련 논설이나 시평을 일별하면 지금 어떤 태도가 ‘힘있는 다수’가 되어 있는지 명백하게 알 수 있으리라 본다. 내가 아래글에 담고자 한 메세지 중 하나는 ‘탈민족’적 시각에 대한 지식인들의 다양한 변호 논리 속에서 ‘종군위안부 모집에 일본 국가 권력이 관여한 바 없다’는 주장이 사건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으로 정착되어 갈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 발언에 대한 일시적 비난여론에 편승하여 누구를 ‘조롱’하겠다는 생각은 결코 없었다. 도대체 어떤 대목이 ‘조롱’으로 비쳤는지 모르겠지만 내 주제에 감히 누구를 조롱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글도 오늘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야! 한국사회”에 대한 제한적 반론으로 쓴 것이지만, 막상 써 놓고도 올릴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그냥 묻어두려고 했는데 ‘탈민족’이라는 분이 이 글을 굳이 올리게 만들었다.

 

다만 ‘탈민족’이라는 분이 지적하신 대로, ‘탈민족’적 언설이든 ‘민족주의적’ 언설이든 제 편한대로 끌어다 대는 조선일보와 일관되게 ‘탈민족주의’적 시각을 전파해 오신 분들을 한데 뭉뚱그린 것으로 비쳐진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본래는 ‘탈민족적’ 입장에서 과거사청산이 부조리함을 주장하는 지식인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각에서 조선일보의 간도문제 보도태도를 비판하는 지식인은 찾아 볼 수 없었던 점에, 그럼으로써 그 분들이 조선일보가 짜 놓은 매트릭스를 직간접적으로 보강하고 있는 현실에 문제를 던지고자 했던 것이었지만, 어쨌든 내 미숙한 글쓰기 솜씨로 인해 인식상의 착란을 초래한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