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위논문 – 『북의 통일정책과 월ㆍ납북인의 통일운동 (1948~1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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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위 논문
– 『북의 통일정책과 월ㆍ납북인의 통일운동 (1948~1961년)』-

이신철(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 학술원)


조국통일민주주의결성 환영 평양시군중대회(1949. 6. 29)

  1989년 8월 일단의 대학생들이 판문점으로 가겠다고 젊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사람과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앞세우고, 사학과를 선택한 나에게 그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정의감 넘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4학년이 되었을 때, 그 시절 많은 선배나 동료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진로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뭔가 행동을 하기에는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대학원 석사시절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어느덧 학위를 제출해야 할 시간이 다가 왔을 때, 나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이라는 단체를 쥐고 있었다. 분단과 통일의 갈림길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한쪽을 선택했지만, 버림받은 그들의 삶은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였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남북 현대사연구가 폭발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때였지만, 솔직히 나는 조국전선이라는 단체가 어떤 곳인지 대학원에 와서야 처음 알았다.

  학부 때 어쭙잖게 연구자 흉내를 내며 신간회를 공부할 때부터 통일전선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터였다. 그리고 해방직후 통일전선인 민주주의민족전선에 대해서도 한 때 공부를 했던 바가 있었다. 그럼에도 조국전선에 대해서는 막상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와 같았다. 실제로 북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통일전선운동은 학부와 대학원 내내 내게 학문의 출발이 되었고, 화두가 되어있었다. 박사과정에서는 학문과 학문적 실천의 영역뿐 아니라 생계의 영역까지 보태져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하고 활동하는 시간을 보냈다. 학위의 주제에 대한 고민은 늘 상 있었지만, 이미 두툼한 북조선 관련 연구들이 제법 나온 상태였다. 어떤 선배전문가들은 당분간 박사논문은 나오기 힘든 상황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실제로 정치사나 당사 부분, 그리고 경제분야에서 주요한 문제들은 상당히 다루어진 편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공백이 있었다. 남에서 북으로 간 사람들에 대한 연구는 문학가나 미술가 등 예술분야의 몇 몇 인물들에 대한 단편적인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료부족으로 엄두를 못내는 주제였다. 더구나 그들의 활동은 주류로 평가받지 못하는 주변부 운동이었다. 보수적 시각에서는 아예 꼭두각시활동으로 격하시키고 있는 터였다. 또 월북의 개념이나 그들의 활동분야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월북이냐 납북이냐의 논란까지 고려한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머리부터 아픈 주제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했다. 통일의 내일을 위해서는 북으로 간 사람들의 활동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일을 회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자의든 타의든 북으로 간 사람들의 자료들을 모으다 보니 새로운 자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료의 주 발굴처는 러시아였다. 조국전선의 기관지 『조국전선』이 입수되었다. 그 외에도 러시아 외무성을 비롯한 구소련측이 생산한 문서자료들과 1949년판 『로동신문』, 그리고 『민주조선』 등이 핵심자료가 되었다. 몇 몇 단행본들도 입수했다. 모두가 새로 발굴한 자료들이었다. 신문자료만 분석해도 이전에 학계에 소개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제법 엮어졌다. 전쟁 중 북으로 간 임시정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재북평통)의 자료도 생각보다는 많았다.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는 조국전선의 공식문헌 속에서도 이남 출신 인사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게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었다. 그 밖의 공백은 러시아 문서들과 북측의 단행본들이 메워 주었다.

  어렵사리 모은 자료들을 이리저리 얽어놓으니 그래도 나름대로 하나의 틀이 마련되었다. 논문을 써놓고 보니 역시 북으로 간 사람들의 활동이 북측의 통일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역할에 불과했다는 기존의 주장은 과도한 것임이 증명되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노선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나름의 평화통일방안을 실현시키기 위해 온몸으로 노력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노력이 북의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의 노선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든가, 남북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든가 하는 현실정치의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의 활동은 일제시기 이래의 민족통일전선과 합작정신을 계승하였고, 1948년 남북협상을 계승하려 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또 그들의 활동 속에서 그러한 진지한 노력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논문을 쓰고 고치면서 북에 대한 연구는 아직 많은 부분 미진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기존의 훌륭한 연구성과들이 기본적인 얼개를 모두 엮어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겨우 냉전적 사고를 걷어낸 북조선사의 기본뼈대를 갖추어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북의 통일정책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의 필요성도 절감했다. 북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평화통일이 세계체제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를 좀 더 심층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연구의 진전은 관점의 전환과 더불어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

  논문은 연구의 공백을 새롭게 채우는 과정이었지만, 새로운 과업을 안겨주는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자연스레 나의 다음 연구주제는 동아시아 평화나 세계체제 또는 세계평화 속에서 북조선이 어떻게 존재해왔는가 하는 문제가 되었다. 그러한 전환이야말로, ‘내재적 접근법’과 같은 연구방법에까지 이념의 색안경을 들이대는 후진적 사회분위기를 탈피하고, 북조선 연구의 시민권을 획득하게 해 주는 지름길이 될 것이란 기대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