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위논문 – 「신라 왕실여성의 칭호변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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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위논문

「신라 왕실여성의 칭호변천 연구」

(2014. 8.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이현주(고대사분과)

   한국 고대사에서 왕실여성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구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왜 왕실여성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만 했다. 이는 내 스스로에게도 해야만 하는 질문이었다. 왜 왕실여성인가?

   첫째, 왜 여성인가? 석사논문의 주제는 <신라의 건국신화와 동물상징>이었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할 당시 나의 관심사는 한국사상사였다. 그 중에서도 한국 고대의 종교에 대한 관심이 컸다. 한국 사상의 근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그 결과 미흡하지만 처음으로 낸 논문이 신라 건국신화에서의 동물상징의 의미였던 것이다. 고대의 종교에서 시작된 관심은 석사논문을 쓰고 난 후에 건국신화에서의 알영, 그리고 왕비로 이어졌다. 이 후 결혼과 출산, 육아의 기간을 거쳐오면서 연구 주제의 촛점이 자연스럽게 사료 상에 흩뿌려져 있는 여성의 흔적으로 맞춰지게 되었다.

둘째, 왜 왕실여성인가? 사료에서 왕실여성에 관한 사료는 비교적 많은 편이다. <천전리서석> <황복사금동사리함기> 등의 금석문에서도 왕실여성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단순히 사료가 많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답변이 되지 못한다. 왜 왕실여성인가? 왕실여성의 흔적은 신라 초기부터 말기까지 파편적이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남겨져 있다. 왕계의 구성원이었기 때문이다. 왕실여성은 고대 국가의 발전 및 고대 왕권의 영향력 안에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로 볼 때 왕실여성의 존재양상이 고대사회의 발전 및 왕권의 변화과정과 궤를 같이했을 것이라는 점이 주목되었다.

셋째, 왕실여성의 연구를 통해 무엇을 밝히고자 하는가? 왕실여성의 연구를 통해 고대의 사회상 또는 왕권에 대해 다른 시각을 부여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지 기왕의 한국 고대 사회의 발전과정과 왕권의 존재 양상에 대해 왕실여성의 존재만을 덧붙여 놓는 것에만 만족할 것인가? 답은 누가보아도 분명하다. 전자의 경우가 보다 더 가치있는 연구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역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아직 그에 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대사회를 다각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왕실여성의 제도사적 연구가 유의미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였다. 논문의 가장 주안점은 왕실여성의 제도화 과정이었다. 왕실여성의 제도라고 하면, 중국의 <후비제>를 떠올린다. 왕을 중심으로 한 왕의 배우자들의 위계제도이다. 본 논문에서도 중국의 후비제가 신라에 도입되고 수용되는 과정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후비제>에만 촛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외래의 제도인 <후비제>의 도입과 수용, 제도의 운용 양상을 알기 위해서는 수용 기반, 도입 배경, 수용 과정, 운용 양상 등의 단계별 분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연구의 구체적인 주제는 신라의 “후비제”가 아니라 신라 왕실여성 “칭호”의 변천 과정과 의미가 되었다.

신라의 시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시기 구분에 따라 각각 상대, 중대, 하대 또는 상고기, 중고기, 하고기로 나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공통으로 중요한 기점을 삼는 것은 상대와 중대, 중고기와 하고기, 즉 7세기이다. <삼국사기>에서는 중대 이후를 중대와 하대로 나누었고, <삼국유사>에서는 중대 이전을 상고기와 중고기로 나누었다. 이와 같은 사서에서의 시기구분법을 절충하여 본 논문에서는 상고기, 중고기. 중대, 하대로 시기구분을 하였고, 각 시기별 왕실여성의 존재양상을 ‘칭호’ 분석을 통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촛점은 ‘왕실여성의 제도화 과정’이다.

첫 번째는 상고기의 ‘부인’ 칭호의 수용이다. ‘부인’은 한자식의 외래 칭호로, ‘부인’ 칭호가 수용되기 이전에는 ‘ar’계 칭호가 있었다. ‘ar’계의 칭호는 특정 역할과 지위에 있는 인물들에게 쓰였던 존칭이었다. 그 대상은 주로 왕모, 왕비, 왕매, 왕녀 등 사제적 지위를 담당한 자들에 한정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왕을 비롯한 왕가의 여성들은 일군의 신성 가족으로서 종교적 역할과 그에 따른 위상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림1]  황남대총 북분 허리띠와 금동관  ⓒ국립중앙박물관

두 번째는 중고기의 ‘비’ 칭호의 등장이다. 법흥왕대의 금석문인 <울주천전리서석>에서 을사명의 ‘여랑왕’은 물론 기미명의 ‘태왕비’, ‘왕비’, ‘매왕’, ‘부인’ 등의 칭호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왕실여성의 칭호인 ‘태왕비’, ‘왕비’가 보이는데, 그 배경으로 법흥왕대 ‘대왕’ 칭호의 등장을 주목하였다. <울주천전리서석>에서의 ‘비’ 칭호는 기왕의 <이름+부인>에서 <이름+비>로 변경된 것이었다. 중국식의 칭호인 ‘비(妃)’가 신라적 용법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신라 고유의 칭호인 ‘여랑왕(女郞王)’과 ‘매왕(妹王)’의 칭호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중고기 왕실여성의 칭호는 왕실여성의 지위를 특화시킴으로써 중고기 왕권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를 하였다.


[그림2]  천전리서석 추명  ⓒ한국 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세 번째는 중대의 ‘왕후’ 책봉과 왕후-부인 체계의 성립이다. 중대에 왕실여성 칭호로 ‘태후’·‘왕후’ 칭호가 도입되었다. 아울러 왕실여성에게도 추봉과 책봉, 시호제정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중대 왕실여성의 칭호는 중대 왕권의 한화적 내정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즉 중대 왕권의 안정과 강화를 목적으로 한 체계의 변화의 일환으로 왕실여성의 제도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신라 왕실여성의 제도가 중대에 ‘왕후’ 책봉이 제도화되고, ‘정비(正妃)’ 개념이 도입됨으로써 왕후-부인 체계로 성립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림3]  황복사금동사리함기  ⓒ국립중앙박물관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하대의 왕후-부인 체계의 변용이다. 중대에 성립된 왕실여성의 제도는 하대의 정치상황 하에서 변용되었다. 하대 전기는 원성왕계의 분지화된 가계간의 왕위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였다. 이 시기는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왕의 직계에 대한 추봉 및 책봉은 물론  왕실여성의 책봉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 시기의 왕실여성의 지위가 매우 불안정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인 것이다. 이에 왕실여성이 안정된 지위를 획득하기 위하여 태자를 출산하거나 당으로부터 책봉을 받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해 신라 왕실여성의 제도가 王后-夫人 체계로 성립되는 과정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신라의 부인의 칭호는 상고기 초부터 하대 말까지 기혼 여성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칭호였다. 상고기에 부인 칭호가 수용되었고, 중고기에 부인 칭호와 지위를 일컫는 비 칭호가 사용된 이래 중대에서도 부인 칭호는 왕후, 태후, 왕비 등의 지위를 일컫는 칭호와 동시에 사용되었다.

또한 신라의 왕후-부인 체계는 당의 후비제를 수용하였으나 당의 내직제와 같은 일원화된 위계제도를 정립하지는 않았다. 중대 이후 왕후와 부인의 책봉이 이루어졌는데, 왕후 책봉은 부인과의 위상 차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중대에 왕실여성의 책봉을 통해 ‘대왕의 정식배우자 1인’으로서의 ‘정비’ 개념이 정립되었다. 신라의 왕후-부인 체계는 왕의 정비인 ‘왕후’가 왕실여성을 포함한 상층 여성의 위계질서 상에서 최상위의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정립되었다. 이로 볼 때 산라의 왕실여성 제도는 당의 왕실여성 제도인 후비제의 체계를 수용하였으나 실제적으로는 신라의 내부 사정에 의해 재편되고, 운영되었던 양상을 알 수 있었다.


[그림4]  개선사석등기  ⓒ한국 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고대사회에서의 왕실여성은 경계에 서 있는 존재이다. 여성과 남성, 왕과 귀족. 왕실여성의 존재양상을 다각도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도사적 이해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고대 사회 전반에 대한 정치사는 물론 신분제, 사회경제를 포함한 혼인 및 친족제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고대사회와 왕권의 변화에 따른 왕실여성의 존재양상의 변화를 제도사적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처럼 여성의 제도적 측면에만 촛점을 맞추다 보니, 한국 고대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는 본 연구의 한계일 수 밖에 없다. 한편 앞으로 공부해야 할 꺼리들이 산적해있는 것에 대해 가벼운 들뜸도 느낀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무겁지만, 가벼운 듯 한 발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