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위논문 – 「고려시대 ‘연고지 유배형’의 성격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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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위논문을 말한다

고려시대 ‘연고지 유배형’의 성격과 전개
(2015. 8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오희은(중세1분과)

 

  학부를 졸업하고 고려시대사를 전공으로 하여 대학원에 진학하였지만, 구체적인 연구 분야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석사 과정 시기의 대부분은 내심 그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그러던 중 선배의 추천으로 전국역사학대회에서 《唐律疏議》, 《慶元條法事類》 등의 각종 법전류의 서적을 구입했던 것이 큰 계기가 되어, 법제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두서없이 공부를 하다 보니 막상 어떤 주제로 논문을 쓸 수 있을지는 막막하기만 했다.

법제는 성격상 다양한 영역에 관계되어 다뤄질 수 있는 자료이지만, 나는 우선 형법의 운영체계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형벌 자체에 몰두하여 각종 형벌제도사를 다룬 책들을 읽어나갔고, 그러다보니 당시 《능지처참》과 같이 극형을 다룬 책을 들고 다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도 시간이 지나 듣게 되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죄인에게 가해졌던 형벌의 종류나 집행 방식이 그 시대의 역사적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서 각 형벌은 해당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토대 위에서 성립하고 운영되는 사회적 산물이므로, 특징적인 형벌의 종류나 집행 실태는 범죄행위에 대한 제제라는 기능적인 차원을 넘어서 시대적 맥락 속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너무 뻔한 핑계로 들려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형법구조를 밝히는데 있어 최대 난점은 사료의 부족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여기저기 산재해 있던 형법 관련 기사들을 모아놓은 《고려사》 형법지가 고려시대 형법사 연구의 주된 자료이지만, 이는 법전이 아니기 때문에 사료의 성격상 제약이 많다. 또한 편년 사료에 남아있는 몇 개의 시행 사례를 통해서는 일반적인 법규와 전반적인 구조를 복원해 내기 힘들다. 따라서 주변 국가의 법제에 대한 이해와 고려시대의 사회구조 및 다양한 제도들과의 관련성 속에서 고려 형법의 운영 문제를 신중하게  다뤄야 하므로 까다로운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딱딱한 법조문 안에 생각이 갇히기 전에, 실제 고려의 행형양상을 통해 고려의 법제·사회적 특성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매력적인 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작성한 학위논문의 제목은 〈고려시대 ‘연고지 유배형’의 성격과 전개〉이다. 본 연구에서는 고려시대에 죄인을 외딴 섬도 아니고 궁벽한 산골 마을도 아닌, 죄인의 연고지로 유배보내는 형벌이 법제상에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이 ‘연고지 유배형’의 대표적인 형태가 歸鄕刑으로 나타나는데, 지금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처벌로서의 기능이 의심스러운 이 흥미로운 형벌은 이미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기존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①고려의 전체 행형체계 속에서 ‘연고지 유배형’이 어떤 성격을 가지는 형벌이었는지, ②귀향형의 유배지인 鄕이 과연 本貫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③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특정 형벌의 운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행형체계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동안 고려의 형법제도는 唐律을 모방하였다는 전제 아래, 《唐律疏議》의 해당 조항과의 비교 분석이 고려 형법제도 연구의 주요한 방법이었다. 물론 宋, 金 등의 형벌제도의 영향도 언급되지만, 이는 특정 제도의 도입 등 부분적인 영향으로 이해될 뿐 전반적인 고려 전기 형법체계는 역시 당률의 지배적인 영향 속에서 파악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 경향 아래에서 필자는 고려 형벌제도에 미친 宋 형벌제도의 영향력이 실제보다 과소평가되어 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우선 唐律 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고려의 刑制가 宋의 제도를 수용하여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영향력이 상당하였음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고려 행형체계에 대한 이해는 고려 전기 ‘연고지 유배형’의 형벌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배경으로서, 논문의 서두를 열기 위하여 필수적인 작업이었다. 검토 결과, 宋 折杖法의 도입 사실과 고려 전기 유배형의 운영 방식을 통해 당시 고려 형벌제도에 미친 宋制의 영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고려의 유배형은 宋에서 절장법의 시행으로 인해 五刑體系 외에 다양한 유배형이 필요해지자 활용되었던 編配刑이라는 형종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운영되었던 형벌이었음이 확인된다.



[그림1] 고려사 형법지 명례  ⓒ 동아대학교 소장 고려사 판본(네이버 제공)

고려 전기 절장법체계 하에서 귀향형은 위와 같은 성격의 고려 전기 유배형의 한 종류였지만, 유배지가 원격지가 아니라 죄인의 연고 鄕里였다는 측면에서 다른 유배형과 크게 구별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귀향형은 유배형 가운데 가장 가벼운 등급으로 운영되었다. 그리고 행형 내용상 鄕을 떠나 거주하는 존재가 적용대상이 되므로, 자연스럽게 주로 지배층에 한정되는 특성이 있었고, 사례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관리의 경우 政界로부터의 강제적이고 물리적 격리라는 의미가 컸다. 이 같은 ‘연고지 유배형’은 유배형 가운데서는 특혜적인 성격이 강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귀향형은 고려 전기 행형체계 속에서 운영되었던 맥락이나 방식에 있어서는 宋制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운용 실태는 고려의 사회적 토대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고려의 기본 사회 구성원리가 양측적인 친속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귀향형이 기존의 이해처럼 ‘本貫으로의 유배’로만 운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고려의 鄕은 양측적 친족관행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되어, 內·外鄕을 비롯하여, 祖妻鄕·曾祖妻鄕까지 포괄하는 개념이었다. 귀향의 유배지는 형법에서 인정하는 개인의 연고지로서, 본관을 포함하여 다양한 연고향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나아가 고려후기에는 귀향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형태의 ‘非鄕 연고지 유배형’이 등장하여 귀향보다 한 단계 가벼운 형벌로 운용되는 양상이 포착된다. ‘연고지 유배형’의 범위가 고려 전기의 鄕에서 別業, 別墅 등의 사적 연고지까지 포함하게 된 것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刑制에서 인정하는 연고지의 범주도 확장시켜 운영하였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확장된 고려 후기의 ‘연고지 유배형’은 관리에 대한 특혜적인 형벌로서의 성격이 강화되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후 고려 후기 ‘연고지 유배형’의 전통은 조선 초 付處 및 安置刑으로 일부 계승되어 本鄕付處, 私莊安置, 自願安置 등과 같은 형종으로 나타난다. 조선이 형법체계를 明律의 질서에 맞추어 다시 만들었지만, 오형체계 속 流刑 3등급 외에 이와 같은 다양한 유배형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前代부터 받아들인 刑制의 유산을 모두 청산하지 않고 律의 대체규정으로 존속시켰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고려와 조선 간 형벌제도 연속성의 측면에서 주목된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서 미처 자세히 다루지 못하였지만, 조선 刑制로의 연속과 변화에 대한 측면은 아직 더 검토해야 할 여지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써보는 논문이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다. 초고를 서술한 이후 지도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수정하기를 반복하였다. 특히 글을 서술하는 방식이나 기술적 측면에 대한 조언을 통하여, 계속하여 글을 고쳐나가며 논문의 완성도를 발전시키는 과정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논문 수정 작업을 거듭 거치다보니 결국 석사학위논문이 완성되었지만, 아직도 석사논문을 쓰는 과정은 논문을 쓰는 첫 ‘훈련’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는 지도교수님의 말씀이 귀에 맴돈다. 이같이 소중한 첫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의 연구가 한국사의 법제사 연구에 보탬이 될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