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을 말한다 – 『바다에 새겨진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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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을 말한다

– 『바다에 새겨진 한국사』(2005, 한얼미디어) –

강봉룡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내가 바다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5년 목포대 사학과에 부임하면서부터이니, 어느덧 10년이 넘어섰다. 서남해의 바다와 영산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목포는 주거 공간의 80% 이상이 바다를 메워 조성된, 바다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해양도시이다. 더욱이 목포 앞 바다엔 수많은 섬들이 중첩되어 환상적인 다도해 ‘바다호수’의 경관을 이룬다. 목포대에 도서문화연구소라는 연구소가 1983년에 개소된 것은 이 때문이다.

도서문화연구소의 일원으로 섬 조사에 나서면서 느낀 첫 인상은 낯설음이었다. ‘이곳이 정녕 한국의 일부였던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윽고 섬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아름다운 다도해의 경관에 정겨움을 느끼게 되고, 그 속에 잠자고 있던 역사문화의 흔적들을 접하면서 낯설음은 점차 익숙함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섬과 바다를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새로운 학문적 욕구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서 느낀 또 하나의 의문은 ‘왜 우리는 섬과 바다를 제대로 보지 못하였던가’ 하는 것이었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조선시대 500년을 海禁政策으로 일관해오던 역사의 관성이 오늘날 우리의 인식을 얽어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조선은 왜 해금정책으로 초지일관하였을까?’, ‘그러면 고려시대까지는 어땠을까?’ 등등…

나는 거의 무관심의 상태로 방치되어 오던 고대~고려시대까지의 역사유적들을 섬에서 접하면서, 고려시대까지는 해양활동이 활발하였을 가능성을 하나의 가설로 설정하게 되었다. 도서문화연구소의 학술지인 『도서문화』를 통해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우리 역사를 해양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논문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이 가설은 점차 사실로 굳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해양의 관점에서 한국사의 흐름을 정리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욕심도 일었다. 그러던 중 2000년에 (재)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로부터  <해상왕장보고 NㆍEㆍWㆍS>에 ‘한국해양사의 흐름’이라는 주제로 연재를 해달라는 의외의 의뢰가 들어왔다. 나의 욕심을 실현시킬 절호의 찬스라 여기고 앞뒤 재지 않고 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연재는 월 1회로 5년간 계속되었다. 연구 성과가 거의 없는 해양사 분야를 전시기에 걸쳐 정리한다는 것은 매우 힘겨운 작업이긴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 해양사의 큰 흐름을 나름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성과였다. 이제 슬그머니 ‘이를 단행본으로 출간하여 세상에 내놓으면 어떨까?’ 하는 욕심이 일기 시작했다. 곧바로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작업에 들어갔고, 결국 『바다에 새겨진 한국사』란 이름으로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한국 해양사를 크게 두 시대로 나누어 살폈다. ‘해양의 시대’와 ‘해금의 시대’가 그것이다. ‘해양의 시대’는 고려시대까지를, ‘해금의 시대’는 조선시대를 염두에 두었다. ‘해양의 시대’는 다시 삼국통일을 기점으로 ‘연안항로 시대’와 ‘황해 횡단항로 시대’로 나누었고, 21세기를 ‘신해양의 시대’로 전망하였다.

‘해양의 시대’는 해양활동이 크게 융성했던 사례들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①삼국시대 동아시아 해상무역과 그 주도권을 둘러싼 해양쟁패의 실상, ②통일신라시대에 동아시아 공무역이 크게 번성했던 상황과 8세기 후반 이후 공무역이 무너지면서 장보고 해상활동이 일어나게 되는 정황, ③후삼국시대에 능창과 견훤과 왕건이 서남해 제해권을 둘러싼 쟁패를 벌이게 된 사정, ④고려가 왕성한 국제 해상활동을 통해 해양강국으로 떠올랐던 상황, 그리고 ⑤몽고의 침략과 삼별초세력의 멸망으로 고려 해양강국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리는 과정 등을 살폈다.

‘해금의 시대’는 조선이 초지일관 해양활동을 금지함으로써 감내해야 했던 고난들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①조선이 ‘해금정책’과 ‘空島政策’을 채택하게 된 동아시아적 배경, ②왜구의 창궐과 임진왜란으로 이어지는 국난이 해금정책과 상관성이 있다는 사실, ③이순신의 해양수호와 좌절의 의미, ④조선후기에도 해금정책을 고수함으로써 세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아쉬움, ⑤새로 대두한 개방적인 해양인식이 결국 실천에 옮겨지지 못하고 강제 개항당하고 결국 國滅에 이르고 마는 비극적인 과정 등을 살폈다.

몇몇 사례 중심으로 치밀하지 못한 내용 구성으로 처리한 것은 아닌지, 확인되지 못한 사실들을 가설에 기대어 나열해 놓은 것은 아닌지, 남들의 관심이 비교적 적은 분야라 하여 내 멋대로 재단해 버린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이 모든 두려움을 과감함으로 돌파하여 책을 출간하기로 하였다.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 한다는 당위적 생각에서이다.

가혹한 비평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이야기 거리조차 되지 못한다는 대중들의 의사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가 뭐래도 주창할 것은 해야겠다.

인간은 혼자 살지 못하며 사회를 이루고 소통하며 사는 존재이다. 개별 인간 사이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사회 사이의 소통도 필요하다. 소통을 차단하면 개별 인간은 자폐아가 되고 사회는 고립 사회로 전락한다. 조선이라는 사회는 다른 세계와의 소통이 단절된 고립 사회였다. 그런데 이런 조선사회의 폐쇄적 모델이 모든 면에서 전통의 전범으로 인지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북한은 아직도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남한은 여기에서 벗어나 세계와의 소통을 적극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폐쇄적 인식이 강하다.

조선사회의 폐쇄적 모델은 역사인식에도 작용한다. 막연히 조선사회를 기준으로 고려사회도, 고대사회도 그랬거니 지래짐작한다. 그러나 내가 서남해의 섬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적어도 고려시대까지는 적극적인 해양 개방정책이 채택되고 있었다. 가장 단순화시켜 말하면, 고려시대까지는 개방사회였고, 조선시대는 폐쇄사회였다. 개방과 폐쇄는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사회적 마인드가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갈라진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개방사회 고려 사람들의 인간관계와 삶은 매우 역동적이었고 적극적이었던 반면, 폐쇄사회 조선 사람들의 인간관계와 삶은 매우 획일적이고 소극적이었다. 고려사회와 조선사회의 차별성을 구체적으로 판별하고, 그 차별성의 원인을 추적하는데 해양사 분야는 매우 유효하다. 너무 지나치게 한 측면만 강조한다는 비판이 예상되긴 하지만, 이는 내가 이 책을 통해서 과감하게 주창하고자 하는 골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