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을 말한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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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을 말한다
– 『기억을 둘러싼 투쟁』(2006, 아세아문화사) –

김민철(근대사 2분과)

마침내 항복하고야 말았다. 지루하게 끌던 공방전이 예기치 못했던 웹진 위원장의 마지막 일격으로 끝나 버린 것이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가며 버틴 결과 이제는 포기했거니 하면서 부채감에서 벗어나 다소의 심리적 여유를 가지고 긴장을 풀려던 그 순간이 함정이 될 줄이야. 동학들이여, 고래 힘줄보다 더 질긴 어느 분의 원고 청탁 전화를 받으시면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마시길. 거절할 게 아니면 아예 거절에 ‘ㄱ’자를 꺼내지도 마시던가.

  자신이 자신의 책을 소개하는 일이 마치 제 자식 자랑하는 것처럼 뭔가 편치 않으리라 생각했기에 버텼던 것인데(너무 고루하다고 비난하지 마시라), 역시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편하게 쓰라는 말을 애초부터 믿은 바는 아니지만 끝내 버티지 못한 내 나약함을 탓하면서 푸념 아닌 푸념으로 글을 시작해 본다. 자 그건 그렇고, 어떻게 내 책을 소개한다. 역시 상투적으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글 모음집이다. 우연찮은 기회에 임종국선생의 유산과 인연이 닿아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1995년 민족문제연구소로 개명)를 만들어 친일 문제를 다룬 지 벌써 15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 정도의 세월이면 나름대로 대가가 되어 자신의 철학과 논을 세웠을 법도 한데, 공부가 짧고, 재주도 부족하여 아직까지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만 그동안 고민했던 사고의 단편들이 그렇게 무의미하지 않았으며, 그런 고민들이 조금이라도 이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욕심으로 책을 엮어보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체계적으로 친일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어서 논과 사실 규명이 섞여있고, 저널과 학술, 그리고 실무적인 글이 같이 있어 모음집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했다. 첫째는 다소 이론적인 부분이고, 둘째는 친일의 현상을 밝힌 글과 친일 문제와 씨름하면서 벌인 논쟁을 다룬 부분이고, 셋째는 친일 문제를 비롯하여 이른바 ‘과거청산’ 전반에 걸쳐 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문제를 다룬 부분이다.

  과거청산과 관련해서 특별법을 제정하는 문제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00년부터였다. 당시만 해도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회단체나 연구자가 거의 없었고,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힘든 투쟁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강제동원 진상 규명을 위해 피해자 단체와 사회단체, 그리고 연구자를 얼기설기 모아 시민연대를 만들어 법 제정을 위한 운동에 들어갔다. 곧 이어 친일 진상규명을 위한 법과 민간인 학살과 의문사를 해결하기 위한 법 제정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로서는 어느 쪽이든 특별법이 제정되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던 때라 법 내용은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그저 만드는 것 자체에 모든 힘을 기울이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는 한계였을까. 아니면 제정 과정에서 많은 타협과 굴절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 한계는 우리 사회의 의식이 도달한 최대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진상규명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간 탓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과거청산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 예컨대 역사적인 진상규명과 가해자든 피해자든 간에 법률적인 판정을 내리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 심각한 괴리로 인해 빚어진 문제일 수도 있다. 더구나 예상한 대로 준비가 부족한 데가 학술적인 자원도 그리 많지 않아 현재의 과제를 충족하기에는 우리의 역량이 턱도 없이 부족한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이런 저런 단편적인 고민들이 갈무리되지 못한 글들이 셋째 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만약 이 일을 다시 쓰게 될 날이 있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준비 부족과 불철저함, 그리고 무능으로 인해 참으로 힘들게 주어진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날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그 동안 내가 친일문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주장은 「친일 문제-인식, 책임, 기억」 속에 담겨 있다. 이 글은 지금까지 친일문제를 고민하면서 생각했던 내용을 집약함과 더불어 논쟁의 한 중간결산이기도 하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인간들의 정치적 선택과 그로 인한 행위와 결과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으며(인식의 문제), 또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한가(윤리ㆍ가치의 문제)를 찾고 싶었다. 지금도 이에 대한 해답은 분명치 않다.

  다만 친일문제와 관련해서 끌어낸 한 가지 결론은 친일이라는 역사적인 행위를 이해하는 문제와 평가하는 문제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고, 또 일치하지 않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엉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정도이다. 그다지 새로운 것도 심오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행위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하려 함으로써 빚어지는 다소의 혼란스러움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역사적 해석과 윤리적 평가 문제가 친일 문제만큼 첨예하게 제기되는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전자에 초점을 둔다면 이른바 협력론으로 가게 되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어렵게 되고, 후자에 초점을 두면 윤리적 단죄론으로 빠져 식민지기 일상의 협력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즉 구조의 문제로만 돌리면 윤리와 가치가 설 자리가 없고, 역으로 윤리 문제가 제기되면 인간을 제약ㆍ구속하는 구조가 사라지게 된다. 양자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면서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이 긴장관계, 그래서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구조와 주체의 긴장관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여기서 나는 두 번째 과제인 책임의 문제를 제기했다. 즉 야스퍼스의 책임론에서 시사를 받아, 책임의 유형을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야스퍼스는 2차대전 후 독일인의 책임을 법적 책임, 정치적 책임, 도덕적 책임, 그리고 살아남은 자가 져야할 형이상적 책임을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유형 구분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주체가 구조와 맺은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구조 속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에 따라 책임의 유형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종말살을 집행했던 아우슈비츠수용소의 장교로서, 아니면 집행에는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지지했던 독일국민으로서, 그것도 아니면 불의인 것을 알면서도 공포로 인해 묵인해야만 했던 무력한 자연인으로서 져야할 책임의 몫과 크기는 다르다.

  책임의 몫과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책임을 동일시하는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다. 친일‘청산’에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논자들이 공통으로 범한 오류는 바로 ‘책임의 동일시’였다.

  반인도적인 군위안부 제도를 결정하고 집행했던 사람과 그것을 이용했던 병사들에게 똑같이 책임을 묻거나, 자식을 지원병으로 내보내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선전하고자 했던 조병상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원병으로 갔던 청년에게 전쟁협력의 책임을 동일하게 묻는 일은 결국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모두가 무죄다’는 복거일식의 공범론으로 떨어지고 만다.

  일상사를 통해서 친일문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주장 또한 주관적 의도와는 달리 공범론식의 논리에 빠져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식민지 구조를 말하고, 그로 인해 체제유지를 가능케 한 대다수 조선인들에게 도덕적 책임을 추궁하는 일과 소수의 반민족적 범죄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법적ㆍ정치적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구분되어야 한다.

  셋째, 친일 문제를 통해 나는 탈민족ㆍ탈식민 담론과 씨름하고자 했다. 탈민족 담론과 탈식민 담론이 한국 지식계, 특히 한국사학계에 던진 메시지는 매우 신선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 성과와 의의를 최대한 수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식민지기 사람들의 삶이란 민족주의 담론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다층적이며 다차원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친일 문제의 경우에도 민족(주의) 담론만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많다. 최정희의 「야국초」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가부장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자식을 일본군으로 보내는(군국주의 일본에 의탁하는) 논리는 페미니즘과 민족주의가 전면적으로 충돌한 대표적인 소설이다.

  야국초를 단지 민족 담론으로만 해석해버린다면 식민지기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최정희의 비판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친일문제에서 민족담론을 제거한다면, ‘친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식민지기 역사를 민족주의‘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민족주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전혀 다름은 상식일진데, 탈민족 담론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든 개념은 폭력이다’는 경구처럼 민족주의 또한 제한된 범주틀이고, 그것을 비판하는 탈민족 담론 또한 같은 제한성을 갖는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민족주의로 식민지기를 이해할 때 어떤 한계가 있는가를 자각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정제되지 못한 채 문제제기 수준에서 머무는 글들이지만 지금까지 도달한 중간 결과물이다. 아직 영글지 못한 개념의 조합에 지나지 않고, 밀란 쿤데라가 말한 ‘안개’ 속에서 더듬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자족할 게 있다면 ‘안개’의 한 부분과 그 ‘안개 속에 있는 나 자신’을 조금은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물이 생각보다 선명하지 않고 단순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 셈이다.

  예전에 비해서 사물을 더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다른 각도에서 보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 사고 속에서 어줍잖은 타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라 확신한다. 여전히 내가 서 있는 곳은 포연이 자욱한 전장터이기에. 다만 싸움 속에서 빚어질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더 줄여보려는 바람들이 책 속에서 전달되었으면 한다.

  마무리를 하는 김에 자랑이나 하나 해야겠다. 부디 애교로 봐주시기를. 여기에 실린 글 중 「이광수의 친일파 변호론 비판」은 「친일파 청산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고등학생이 읽는 우리말ㆍ우리글』(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나라말 펴냄)에, 「‘이완용 땅 찾기’ 또 승소」는 『국어시간에 논리읽기 3단계』(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에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