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을 말한다 – 『고려 국정운영의 체계와 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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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을 말한다 – 『고려 국정운영의 체계와 왕권』

박재우(중세1 분과)

  고려가 귀족사회이므로, 귀족의 대표적 존재인 재상이 고려의 국정을 이끌어갔다는 견해는 학부시절부터 듣던 오랜 통설이었다. 통설이란 대개 패러다임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사실의 해석을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면에 새로운 상상력을 가로 막기도 한다.
제일 큰 문제는 귀족제설의 관점에서 재상을 중심으로 제도를 연구하다 보니 국왕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는 점이었다. ‘귀족사회’라는 단어를 너무 오래 들어서인지, 필자도 처음에 고려가 ‘왕조사회’라는 당연한 생각을 했을 때만 해도, 그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언뜻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국정운영 방식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면 국왕과 재상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의 끝은 놓지 않고 있었다.
당시 국왕의 역할에 대한 기존 연구는 육부의 상주가 국왕에게 직접 전달되었다는 견해뿐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국정운영 체계 전반에 대한 연구의 필요를 느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려시대의 고문서 속에 들어 있는 행정체계를 보면서, 문서유통 과정을 밝히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고려의 제도 형성에 영향을 미친 중국제도사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았고, 특히 당의 문서유통 및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연구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졌다. 그러면서 국정운영 체계를 신료의 상주, 국왕의 결정, 신료의 시행의 관점에서 연구해야 하며, 이와 함께 국왕의 위상과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왕명의 종류와 반포 방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 먼저 왕명은 중서문하성의 심의를 거치는 것과 중추원을 통해 곧장 반포되는 것으로 구분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국정운영 체계도 신료의 상주에서 육부뿐만 아니라 중앙과 지방 관청의 상주가 재상을 거치지 않고 국왕에게 곧장 전달되었음을 밝혔다. 국왕의 결정도 왕명으로 반포하는 형태와 상주문에 부기하는 형태가 있었다는 점과, 그리고 시행안을 요구하는 중간 결재와 그것에 대한 최종 결재가 있었다는 점도 확인하였다. 신료의 시행은 상주 과정처럼 곧장 시행관청에 보내졌음도 밝혔다. 그리고 고려 국왕은 국정의 결정과정에서 다양한 자문을 통해 신료들과 함께 결정하려 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고려 지배층은 왜 이런 제도를 만들었나를 생각하면서, 성종 당시 지배층의 관념을 조사했다. 그들은 광종대의 독재정치와 경종대의 반동정치를 경험하면서 국왕과 신료 어느 한쪽이 권력을 독점할 때 생길 수 있는 폐단을 경험했고, 그것을 방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념을 가진 상태에서, 이를 충족시킬 제도로서 당의 삼성육부 제도를 수용한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되자 고려는 국왕이 국정운영의 중심에 있었고, 국왕과 신료 어느 한쪽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형성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정운영 방식은 관리임명 방식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인사권은 국왕의 권한이지만 신료들도 서경을 통해 참여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 고려 인사행정의 특징이었던 것이다.
공부를 하는 즐거움은 그동안 사람들이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듣거나 들려주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너무 익숙하고 다들 옳다고 신봉하는 것은 항상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과 사람의 삶이 항상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고려가 귀족사회이며 귀족이 최고 신분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보장하는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의 삶에는 항상 미처 인식하지 못한 변수들이 숨어 있는 것이다. (2006.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