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제 저는 떳떳한 F학점을 받겠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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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떳떳한 F학점을 받겠습니다!!! (1)

한상권(중세사 2분과)

1. 사학과 임시학생회도 무기한 수업거부투쟁을 할 것입니다

  10월 1일 비상총회에서 무기한 수업거부가 결의되자, 사학과 학생회가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 4월 19일 열린 사학과 비상총회에서 수업거부, 시험거부가 부결되면서 한상권 교수 복직운동이 중단되었고 재학생 비상대책위도 해체하였다. 이날 결정에 따라 사학과 학생회는 한상권 교수 문제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복직을 원하는 학생들은 ‘한(하+ㆍ+ㄴ)사람들’이라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였다. 

  2학기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학내 문제에 소홀했던 총학생회가 학원자주화투쟁을 앞장서 이끌어 나갔다. 9월 4일 <현 덕성 학내사태와 97년 하반기 학원자주화 투쟁에 대한 13대 총학생회 입장>을 밝히는 개강 집회가 학생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개강 첫 주에 빠지는 수업이 많아 학생들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300여 명 안팎의 학생들이 모인 것은 덕성여대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학우들에게 한결같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각 과단위에서 자발적으로 써 붙인 대자보가 교정에 넘쳐나고,  ’퇴진 박원국 이사장’  ‘복직 한상권 교수’ 리본을 가슴에 단 학생들과 교수들을 강의실을 비롯한 캠퍼스 어디서든 볼 수 있었다.

요구를 끝까지 관철시키기 위해 학생들 속에서 스스럼없이 ‘수업거부’ 의견들도 나오고 있었다.  학생들은 ‘투쟁 총화’와 ’규탄 발언’ 등의 순서로 집회를 마치고는 자연스럽게 행정동 이사장실로 항의방문을 갔다. 이사장실문이 굳게 닫힌 채 좀처럼 열리지 않자 학생들은 다시 박원국 이사장의 숙소인 “신라호텔! 신라호텔!”을 외쳤다.

추석을 며칠 앞둔 9월 11일, 총학생회 중앙운영위 간부들이 인문사회관 농성장에 찾아와 1학기 학자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불신이 높은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총학생회가 학자투쟁에 전념하지 못한 것은 극심한 공안탄압 때문이었다. 정부는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총학생회장과 인문대학생회장을 구속하였다. 학교당국도 덩달아 총학생회를 자치기구로 인정하지 않았다. 총학생회는 1학기 내내 학생회비를 지급받지 못해 재정이 바닥나 있었다. 대자보 작업이나 복사할 비용조차 없어 개인 돈을 꾸어서 하는 형편이었다.

  9월 26일(금) 학원자주화투쟁 1차 비상총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덕성여대 학생들과 비상대책위원회 교수들, 그리고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전국대학노동조합연맹(대학노련),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부추련) 등 덕성의 민주화투쟁을 지지하는 교육ㆍ시민단체가 함께하는 연합집회였다.

억수 같은 장대비가 교정을 뒤덮었고, 금요일이라 수업도 거의 없었으며, 학부제로 들어온 1학년 신입생을 모으는데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8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학생회관에 모였다. 27개 학과가 과 깃발을 휘날리며 한 자리에 모여 본 것은 4ㆍ19마라톤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날 비상총회는 예년과는 달리 4학년인 94학번이 가장 많았고 새내기인 97학번이 가장 적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학부제로 들어온 신입생들은 비상총회에 가자고 손을 끌어주는 선배가 없어 선뜻 집회 자리에 올 수 없었다. 친구들끼리 한번 가보자고 해서 왔을지라도 마땅히 앉을 자리가 없어 뒤에서 멀뚱멀뚱 서 있다가 그냥 가야만 했다. 새내기들은 인문사회과학부 학생이거나 자연과학부 학생이지 무슨 과 학생이 아니었으므로 해당 학과 깃발 아래로 갈 수는 있는 처지도 못되었다.

  2학기 들어 학원자주화 투쟁분위기가 고조되자, 많은 사학과 학생들이 한 교수님 복직 문제와 학자투쟁에 사학과 학생회도 동참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사학과 학생회는 1학기 비상총회 결정을 들어 한상권 교수님 복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10월 1일 제 2차 비상총회에서 전교생이 모여 총파업을 결의하고 무기한 수업거부에 돌입하였으나, 사학과 학생회 간부와 몇몇 학생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수업에 들어갔다.

  이들의 행동에 학자투쟁을 결의한 사학과 학생들이 심한 분노를 느끼고 거칠게 항의하였다. 그러자 사학과 학생회 간부들은 학생들의 수업거부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10월 6일 학번모임에서 사퇴 성명서를 나눠주고 자진사퇴하였다.

  그동안 이들과 의견조정을 시도하였던 운영위원회에서 10일 사학과 비상총회를 열어 공개적인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학생회 간부를 비롯하여 수업에 들어가고 있던 학생들은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비상총회에서 95학번(3학년) 손효진을 임시학생회장으로 하는 사학과 임시학생회가 구성되었다.

  새로 구성된 사학과 임시학생회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학과 내의 갈등문제에 대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한상권 교수님 복직과 관선이사 파견 때까지 5천 덕성인과 함께 무기한 수업거부투쟁을 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2.  졸업논문을 담보로 강의투쟁을 벌이겠습니다

10월 15일, 한국사 수강 신청을 한 4학년 학생들이 졸업논문 지도 받겠다며 인문사회관 농성장으로 찾아왔다. 학생들은 한상권 교수님이 아니고는 한국사를 주제로 논문을 쓴다는 의미가 없으며, 동시에 이제는 언제까지고 한상권 교수님이 복직되길 기다리고만 있지 않겠다는 집단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졸업논문을 담보로 강의투쟁을 벌이겠다고 하였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결연한 의지를 서신을 통해 이미 교육부장관에게도 알렸다고 하였다.


<사진 1> 교육부 장관님께 (백서 3-1, 486-487쪽)


교육부 장관님께

저희들은 덕성여대 사학과 재학 중이며 졸업을 앞둔 4학년들 중에서 특히 이번 졸업논문으로써 한국사를 신청한 학생들입니다.

아시다시피 2월 28일자 저희 스승님이신 한상권 교수님께서 갑작스레 재임용탈락 되신 경위로 인하여 저희들은 전공 수업에 있어 말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첫째 급조된 시간강사는 이제까지 한 교수님에게서 배워오면서 3년을 예비해둔 커리큘럼의 기본 틀을 뒤엎은 강의 계획 및 진행으로 학생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었으며 둘째는 이 역시 여기서 파생된 문제로 기간강사에 의해 논문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상당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어찌됐든 간에 2학기에도 한국사를 신청하였는데, 거기엔 상황의 극적인 변화들, 특히나 교육부의 대응 방안에 주목해 왔기에 우리는 2학기를 기대한 것이었지만 역시나 문제의 근본이 풀리지 않고서는 저희가 졸업하기 전에 우리 교수님을 다시 강의실에 뵙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과감히 한국사를 폐강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지금 이렇게 청원 올리게 된 사태가 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강의를 폐강시킴으로 인해 신청해 놓은 논문에 대한 지도 문제로써 현재 사학과에서는 이 문제를 책임 있게 담당할 전공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희가 청원코자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7개월 동안 강단을 떠나 계신 한상권 교수님에 대한 더 이상의 모독과 고통을 그만케 하고 교수님이 이곳 덕성여대에서의 14년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교육자로서의 본연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교육부의 특단의 조치를 촉구코자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금 덕성의 사태에서 그깟 강의와 논문지도 문제가 그리 큰 문제냐고. 또한 어떤 이는 그러기에 어쨌든 다른 좋은 교수 초빙해 오면 될 것 아니냐고들 말입니다.

  그러나 장관님!

장관님 역시 대학이란 공간에서 학문을 하시면서 대학 사회 공동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배우는 제자는 단지 4년간의 통과의례로서 대학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졸업하고 나서도 평생을 잇는 끈이 되는 교수 학생이 하나 되는 지적토양으로서의 대학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학풍이라고 얘기한다면 누구 하나의 일방적인 강요와 주입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교수는 학생을 사랑하면서 아낌없이 앎을 베풀고, 학생은 학생대로 교수님을 믿기에 원 없이 지식에의 갈증을 풀어 나가는 것입니다.

  즉 저희 과에서 흐르는 지적인 교류는 한상권 교수님의 학자적 능력과 사랑, 그리고 제자들인 저희와 역대 선배님들이 가진 무한한 존경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저희 덕성여대 사학과는 그것이 힘이자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 누구 하나의 합의도 없이 졸지에 훼손당한 지금에 와서는 아예 상황의 몰염치와 잔인함에 저희들이 맥이 풀려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저희들은 더 이상 주저앉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수님에 대한 몰인정한 매도를 불식시키고 한상권 교수님의 교수다움을 증거 하기 위해 앞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기만과 허위로 무장하여 한상권 교수님을 지금의 상황으로 몰아간 주범들에 대하여 그 책임을 철저히 물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간곡히 다시 한 번 청원 드립니다.
  감사에서도 지적되었듯이 한상권 교수님의 재임용 탈락의 전모를 인식한 대로 이제 더 이상의 법조문에 근거한 방관자적인 대답을 말아 주십시오. 저희들은 되도록 평온히 이 사태가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 사회적 정의를 획득하는데 있어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쪼록 더 늦어지기 전에 용단을 내려 주시길 진심으로 청원 드립니다. 바쁘신 중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997년 9월 30일
덕성여대 사학과 4학년 한국사 수강 신청자 일동
김보림, 김수아. 김윤정, 김은주, 민희영, 박문선, 박정민, 이범정, 이수정, 이은경, 정금희, 조혜진, 차호연, 추주연, 추희, 황미정


나는 4학년 학생들의 요청을 받아 들여 10월 22일부터 한국사 논문지도 강의를 시작하였다.
3. 사학과의 결의 높은 학습권쟁취 투쟁에 함께 합시다

사학과 4학년 학생들이 졸업논문을 담보로 강의투쟁을 벌이자, 재학생 대책위원회가 “진정한 학습권 쟁취를 위한 싸움”이라며 대자보를 통해 알렸다. 재학생 대책위원회는 “오늘의 총파업 사태에 임하여 또 하나의 의미 깊은 투쟁이 다름 아닌 수업을 듣자고 결의하는 사학과의 강의투쟁이라니 이 얼마나 서글픈 역설인가. 사학과 4학년 졸업예정자들이 이번에 벌이는 투쟁은 다음 세 가지 의미에서 전체 덕성 인에게 너무나 소중한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하였다.

  첫째, 당장의 재직 교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듣고자 하는 강의를 위해 강의를 결행하는 것이다. 이는 곧 수업을 포기하는 권리와 동등하며 학교에서 인정해주지 않는 강의라 하여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기에 학생의 절대적 의무이자 권리인 것이다.

둘째, 허구적인 제도와 구호를 넘어 실천으로 요구를 관철시켜가는 강인한 의지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과거의 교훈 속에서 실체 없는 단체와 실천 없는 구호가 얼마나 유명무실했는지를 잘 알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결행하며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 사학과부터 그 길을 터서 투쟁하고 있다.

셋째, 진정한 민주화란 사람과 실천의 문제이다. 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워온 당사자가 당장 학교에 없고 실체도 분명 보이지 않는데도 관념 속에서 형식과 제도를 만들어 간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재학생 대책위원회는 대자보를 마무리 하면서, “학습권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학과의 강의투쟁처럼 쟁취하는 그 자체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4. 정말 어케야 할는지

10월 1일 비상총회에 3,000여명이 모이자, 학생들은 이렇게 많은 덕성 인들이 원하며 이렇게 많은 덕성 인들이 뜻을 같이하면, 학원민주화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아무리 길어도 2주일 정도면 해결될 줄 알았다. 학생들은 이사장이 묵고 있는 신라 호텔로, 이사장을 비호하고 있는 교육부로, 과별로 단대별로 서울의 중심인 종묘공원, 종로거리, 마로니에 공원, 명동 등지에서 집회를 갖고 선전전을 하여 이사장과 교육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학생들은 서울 시민을 만나가면서 덕성의 상황을 알리는 한편, 이사장을 비호하는 교육부장관퇴진 서명운동을 날마다 발바닥에 불이 나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열정적으로 하였다. 또한 지하철 내에서 시민 선전전을 하였으며, 교육부와 국회에 덕성 인의 바람을 알리는 옆서 보내기 운동도 벌였다.

  행정동을 점거하고 철야농성을 하였으며 거의 매일 수유역까지 가두시위 겸 선전전을 하였다. 학생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나 수많은 전경과 백골단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는 학생들을 가로 막았다. 학생들은 전경과 백골단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놀라 기겁을 하였으나 차츰차츰 익숙해져 갔다.

  10월 10일 박원국 이사장이 해임되자 투쟁구호가 “관선이사 파견” “한상권 교수님 복직”으로 바뀌었다. 학생들은 과별 분임토론을 통해 현 국면에서 관선이사 파견투쟁을 해야 하는 이유를 논의하고 그 결과를 대자보를 통해 알렸다.

  처음 우리의 목표는 박원국 이사장 퇴진과 한상권 교수님 즉각 복직이었습니다. 이사장 퇴진을 외쳤던 것은 덕성의 발전을 저해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장이 퇴진한 지금 덕성에서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 이사진들이 퇴진한 이사장의 친인척으로 구성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선 우리가 싸워왔던 게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이사진들은 이사회를 열어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이사장을 세우려 할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박원국 이사장과 똑같은 사람으로 바꿔치기 하려 합니다. 우리의 요구를 무시하는 이사진 전원을 몰아내고 민주적인 관선이사를 파견하여 덕성을 다시 대학다운 대학으로 세워야 합니다. 박원국 이사장의 허수아비인 어용총장을 퇴진시키고 한상권 교수님은 다시 교단에 서야 합니다. 교육의 주체인 교수, 학생들의 참여 보장 없는 덕성의 현실에 맞지 않는 학부제를 철회시켜야만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우리는 계속할 것입니다.  <덕성여대 통계학과>

  10월 17일(금) 종묘공원에서 17개 시민단체, 덕성여대 교수협의회소속 교수, 학생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상권교수의 즉각 복직과 관선이사 파견”을 요구하는 비상집회를 개최하고 명동까지 거리행진을 하였다.

<사진 2> 종묘집회 (명동까지 가두행진.)

학생들은 거리행진 내내 덕성진군가를 부르고, 덕성의 요구사항을 구호로써 그리고 플래카드로써 알리는 작업을 벌였다. 노래패 솔바람이 작사 작곡한 덕성진군가는 학자투쟁 기간 동안 학생들이 가장 많이 부른 노래였다.


<사진 3> 덕성 진군가 (백서 3-1, 391쪽)


  푸르른 백운대 바라보며 의리와 패기 긍지 삼아 시대의 어둠 불 밝히고서 당당하게 서리라
  역사와 민중 앞에 언제나 부끄러움이 없는지 소리 높여 지르는 함성소리로 투쟁의 선봉 지켜내리라
진군하여라 나의 사랑 덕성이여
그대와 손잡고 나갈 또 다른 새날 위하여 노래하리라
터지는 시대의 양심으로 이 산하 푸른 하늘 밑 해방세상 위하여


이날 종묘공원 집회 후 명동까지 가두행진을 한 학생들이 비록 명동성당 안으로까지 들어가지는 못하였지만 시민들에게 덕성의 학내 상황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은 차량 통행이 완전 차단된 종로 거리를 행진하면서 해방감을 만끽하면서도 한편으로 수업거부가 장기화되는데 불안해했다. 총파업 투쟁이 2주가 넘어가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총파업 언제까지 하냐?” “유급되는 거 아니냐?”라는 질문이 많이 나왔다. 시간이 갈수록 학원의 민주화 투쟁은 쉬운 일이 아니며 점점 더 어려움이 크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바라는 요구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고 불안해하기 시작하였다.

중간고사가 다가오면서 수업을 강행하려는 교수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학생들을 아끼는 교수들’ 명의로 <이제는 수업을 할 때입니다!!!>라는 편지가 학내에 나돌았다. 학생들이 요구한 이사장 해임이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4학년의 취업, 학교 이미지 손상, 대학종합평가 등을 생각해서라도 하루빨리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동요하였다. 특히 새내기들은 교수들에게 개별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고, 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학교에 못 다니는 줄 알고 있었다. 10월 17일 종묘집회에 참가한 한 학생이 불안한 심정을 자유게시판에 올렸다.

정말 어케야 할는지.
  총파업 이후 투쟁에만 열을 올리던 혜수기, 강의실 근처는 가보지도 않았는데 교양이 문제네요. 우째야 할는지. 솔직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당연히 셤은 없을꺼라 자신했는데. 아래 글 보니까 걱정이 되네요. 물론 그 어떤 출석체크도 무효라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네요.
오늘 종묘에서 명동성당까지의 행진(?)은 정말 대단했죠? 근데 좀 아쉽더라구요. 왜? 학교 집회는 이렇게 많은 인구가 안 모이는지…. 우리 덕대생들이 야외로 나가는 걸 좋아하는 건 알지만….늘 야외 집회를 가질 수도 없는 일이구.…언제까지 저 이사진님들께서 버티고 계실는지….이렇게 있다가 겨울이 오면 어쩌죠? (97.10.17 habae)

5. 우리의 수업권에 대하여

중간고사가 시작되는 10월 20일(월), 교수와 학생 1,000여명이 민주마당에 모여 중간고사 철회와 관선이사 파견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자 몇몇 교양과목 담당 교수들이 레포트 제출일과 시험날짜를 공고하고 수업을 들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날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총파업 기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실시하는 중간고사를 단호히 거부한다.”며 투쟁결의를 다졌다.


<사진 4> 중간고사 거부 결의 (한겨레 97.10.21, 백서 3-2, 454쪽)

중간고사 기간 동안에 총학생회의 수업거부 투쟁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학내 곳곳에 나붙었다. 수업을 듣는 사학과 4학년 학생들 명의로 된 대자보였다.


우리의 수업권에 대하여

여러분들이 내건 이사장 퇴진, 한상권 교수님 복직, 관선이사 파견 등의 모든 구호에 동의하진 않지만 주장하는 의도는 알겠습니다. ①그러나 연례행사처럼 일어나는 수업거부의 사태는 대체 얼마나 더 반복될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②그리고 총학, 비대위와 교수님들 3개 세력은 각각이 주장하는 바가 어떤 경료로 서로 일치하며 학생들의 수업거부라는 최종적 방법을 선택하게 했는지에 대해 수업 받고자 하는 덕성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설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투표 없이 처음에 제시한 단 하루 파업 안이 박 교수님의 즉석제안으로 6시경까지 남았던 나머지 학우들만의 구두동의에 의해 무기한 파업으로 탈바꿈 될 수 있는 것 자체가 덕성여대 내부에서 얼마나 다른 목소리가 압살당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수업권은 학우 간에 담합거래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권리가 아닙니다. ③ 이것은 강좌개설교수와 학생 개개인간의 지극히 개별적인 계약이며 동시에 권리이고 교수에겐 의무입니다. ④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 중에는 우리의 이 권리를 포기시키려 하면서 그 방법마저도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집단논리와 상황논리로 우리를 위협하지 마십시오. 약속과 계약을 우습게 여기고 과정의 적법성, 합법성을 무시하고서 어떻게 덕성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최소한 자신의 권리로 남의 권리를 짓밟으려 하지 마십시오.

혹자는 “무지몽매한 학구열”이라 비아냥거리던데, 학구열씩이나로 봐주실 것도 없습니다. 기본권입니다. ⑤저희를 압박하는 분들의 구호 속엔 민주 ㆍ 자주 같은 피상적 이상적 권리에 대한 주장도 많던데 목적에 경도된 하나의 권리가 또 다른 권리를 침해하는 “과정”의 비민주성에 대해서는 왜 눈감고 입 다무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⑥제발 서로의 목소리를 존중합시다. 우리가 표면적 소수라고 해서 힘으로 누른다면 그대들이 박정희, 전두환과 다를 것은 무엇입니까? <‘史 94, 수업듣는 학생들’>


수업을 듣는 사학과 4학년 학생들은 수업권은 포기할 수 없는 학생의 권리라는 점, 무기한 수업거부를 결정한 비상총회가 민주적이지 못하였다는 점, 소수 학생의 정당한 수업권 행사를 다수 학생이 위협을 가해 침해하고 있다는 점, 수업거부가 학생 자발적 의사가 아닌 교수들 선동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총학생회의 수업거부 투쟁을 비난하였다. 이 대자보는 학생들 입장에서 공개적으로 수업권을 주장한 글이었기에 파급효과가 컸다.
6. 정말 부끄럽습니다

학내에 불법적인 폭력이 난무하고 교협 교수들의 의도적인 강의 불참으로 정상적인 수업이 진행되지 않아 수업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사학과 4학년의 주장에 대해 사학과 2학년이 나서서 반박하였다.

 


  먼저, 그토록 듣고 싶었던 소수의 의견을 듣게 되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대화의 장이 열렸으면 합니다. 그러나 사실과, 혹은 다수의 의도와 맞지 않은 논리가 있기에 이렇게 반박합니다.

  ① 수업거부가 왜 연례행사처럼 보여 지고 일어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요즘과 같은 덕성의 큰 투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의 요구(4년을 덕성에서 지내오신 분들이니 충분히 아시리라 믿습니다)들은 철저히 무시되어 왔기에 우리 학생들은 총파업이라는 최대이자 최후의 무기를 가지고 맞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단순히 매년 일어나는 행사가 아니라 덕성을 지키기 위한 소중한 우리들의 투쟁이었던 것입니다.

  ② 총 파업 건에 대해 총학과 재대위와 교수님들의 의견일치만으로 그것이 시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엄연히 비상총회라는 자리를 통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10월 1일 2차 비상총회자리에서 하루 임시파업에 대한 총투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투표와 동시에 진행되었던 자유발언에서 무기한 총파업이라는 학우들의 의견이 제안되었습니다. 이후에 그 의견들을 지지하는 박 교수님의 발언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투표가 진행된 시간은 4시에서 4시 30분경이었고, 무기한 총파업 제안이 나오자마자 그 자리에 있던 과반수의 학우들의 지지로 사회자로부터 무기한 총파업이라는 결정을 이끌어냈습니다.

  물론, 그 상황에서 재투표를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그 자리에 참석을 했었다면 그 많은 학우들의 의견들을 단지 담합거래라고 일축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현 사태에 있어 압살 당했다는 다른 목소리들은 우리들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내놓은 무기한 총파업이 아닌 다른 해결책을 제시함이 어떠합니까?

  ③ 이러한 권리와 계약을 먼저 파기시킨 것은 학교 측이지, 스스로 포기한 것도, 다른 이들에게 포기를 강요한 것도 아닙니다. 학기 초 우리는 한상권 교수님의 한국사 수업을 듣기로 당신들이 말하는 소위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깬 것은 학교 측이었지, 교수님들도, 학생들도 아니었습니다.(97년도 1학기 강의 계획서 참조)

  ④ 집단 논리와 행동으로 위험했다고 하시는데, 우리의 행동이 치졸하고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에게 동등한 수업권을 소수만이 챙겨 이후 생길 수 있는 다수 의 피해를 막기 위함에 피치 못할 수단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소수의 수업권을 결코 포기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수업을 받기 위해 잠시 유보한 것 뿐 입니다.

  ⑤ 민주ㆍ자주 같은 것이 피상적, 이상적 권리라면 도대체 우리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권리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요구안 8가지가 어떻게 피상적이고 이상적이며 목적에 경도 된 것입니까? 여기에 과정의 비민주성이라 운운함은 더 이상 덕성인도 아니며 학교에 대한 무관심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⑥ 제발 서로의 목소리를 존중할 수 있도록 정당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해주셨으면 합니다.더 이상 그와 같은 궤변으로 서로 피곤해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또한 사학인으로서 공부하신 분들이 어찌 박정희ㆍ전두환과 같은 환경으로 이 상황을 설명하시렵니까? 정말 부끄럽습니다.
<사학과 96학번>


우리의 수업권을 침해한 것은 교협 교수님들도 총학생회도 아닌 한상권 교수님을 일방적으로 재임용탈락시킨 학교측이며, 우리의 수업거부는 수업권을 포기한 것이 결코 아니라 제대로 된 수업을 받기 위해 수업권을 잠시 유보한 것일 뿐이라는 내용의 반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