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상권 교수 복직 결정 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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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권 교수 복직 결정 Ⅱ (1)

한상권(중세사 2분과)

1.  외국에 일 년 나갔다 오세요

   문화제공연에서의 약속에 따라 5월 4일 월요일부터 장외강의를 시작하였다. 중단된 지 두 달 만에 하는 강의였다. 한국최근세사를 듣는 3학년 학생들이 환영의 뜻을 밝히고 강의에 동참하였다.

 


   저희는 5월 4일부터, 지난 3월 23일 이후 중단되었던 한국사 강의를 다시 시작합니다. 한국사 강의는 3월 10일부터 사학과 학생들의 자체 결의로 시작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은 ‘불법강의’라고 말하고 있지만 한 교수님의 복직이 당연한 줄 알았던 저희로서는 한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것이 너무나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에서는 당연히 한상권 교수님이 복직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교수님의 복직은 당연한 약속이기에 교수님의 강의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잠시 강의를 중단한 것은 학교 측에서 조만간 복직이 될 테니 강의를 잠시 중단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4월 30일 인사위원회에서 한 교수님의 복직을 제청하겠다는 약속은 깨져버렸고 저희는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4월 26일 총학생회장님이 불법으로 연행되어 현재 성동 구치소에 계시고 총장실 점거 농성을 풀지 않으면 고소장을 쓰겠다고 중운위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학교측은 덕성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이렇게 학생들을 위협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의 수업이 ‘불법이니 중단하라며 협박성 강요’만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한국사 수업은 너무나도 정당합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이 수업을 인정받는 투쟁을 벌일 것이며, 이는 한상권 교수님이 1학기에 사학과 교수로서 원상 복직됨과 함께 이루어질 것입니다.
4월 29일 문화제에서 많은 학생들이 외쳤던 ‘한상권 교수님 복직’과 이를 시행하지 않는 ‘이강혁 총장 퇴진’의 구호를 기억합니다. 이강혁 총장님과 이사진들에게 경고합니다.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변명과 협박으로 한교수님의 복직을 미루지 마십시오. 작년 65일간의 총파업에서 박원국 이사장을 몰아냈던 덕성인의 힘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1998년 5월 6일 한상권 교수님 수업 수강자 일동

  96107005 김수정    96107015 박옥생   96107023 이상분   96107025 이은영
96107011 김혜원    96107029 임성미   96107031 정유진   96107033 최윤정
96107036 한상이    96107042 권혜은   96107044 손고은   96107039 홍재현
96107024 손효진    96107005 김경선   96107011 김은영   96107027 유민하
96107040 황진경    96107037 전향연   96107025 여민경   96107017 문지현


   학생들은 “한상권 교수님이 재임용에서 탈락되신지 1년 반이 다 되가는 장기간의 투쟁이지만 우리들이 계속 싸울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지지하는 많은 분들의 힘과 옳은 것에 대해 굽힘이 없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 때문”이라고 하였다. 학생들은 민주화가 이루어진 평화로운 덕성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으며 그날이 올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하였다. 학생들은 복직투쟁을 정의 실현과정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외강의를 시작하자마자 교무처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5월 4일 저녁 교협회장단과 함께 교무처장을 만난 자리에서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 한상권 교수는 조만간 이강혁 총장을 면담한다 2. 교무처장은 이강혁 총장에게 건의하여 인사위원회 개최 일정을 잡도록 한다는 두 가지 사항에 합의하였다.

  합의에 따라 6일(수) 종로 운니동 교정에서 이강혁 총장을 면담하였다. 이강혁 총장은 총장에 선임된 직후부터 학생들이 총장실 점거농성을 하는 바람에 쌍문동 교정은 발도 못디디고 운니동 교정에 임시 총장실을 만들고 그 곳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면담석상에서 이강혁 총장은 2학기에 복직을 시켜주겠다며 선행조건을 제시하였다. 일부 교수들이 한교수가 복직되면 보직교수들에게 보복하여 학교가 더 시끄러워 진다면서 복직을 반대하고 있으니 학교가 조용해질 동안 일 년 동안 외국에 나가 있으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연구도 밀려있을 것이니 학문을 깊이 천착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안식년)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가고 싶은 대학만 알려주면 필요한 서류수속은 학교가 다 알아서 해 주겠다고 하였다.

  복직을 시켜주고 게다가 덤으로 일 년 동안 안식년까지 주겠다니 참으로 달콤한 제안이었다. 당시 덕성에는 안식년제도가 없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총장의 제안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복직 방해공작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구재단측 교수들의 도움으로 당선된 총장이 복직을 시켜준다 하니 믿기 어려웠다. 그동안 행적으로 미루어 볼 때 총장의 발언은 더욱 신뢰성이 떨어졌다.

  이강혁 총장은 취임 직후 학원정상화추진일정을 발표하여, 4월 마지막 주까지 최종보고서를 작성하고 5월 2일 인사위원회에서 한 교수 복직제청을 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4월 23일, 인사위원회에의 복직제청을 일주일 앞두고, 돌연 학원정상화 추진위원회 회의 개최 연기를 선언하였다. 학생대표가 참여를 거부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총학은 학원정상화 추진위원회 발족 담화문 발표 직후인 4월 1일, 진의조차 의심스러운 정상화추진위원회를 단호히 거부한다고 선언하였기에 총장의 해명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였다. 심지어 총학생회장 구속에 필요한 학교자료를 검찰에 넘기는 과정에서 총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까지 교수협의회에 의해 제기되고 있었다.


  총학생회장 이수미가 98년 4월 학교 앞에서 한총련과 관련한 학생간부 일제 검거 때 불법 연행되어 갔습니다. 당시 경찰의 입장은 이수미 학생이 한총련 소속이 아니므로 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수미 사건과 관련하여 검찰 측에서 기소에 필요한 학내 자료를 건네 달라고 요구해 왔을 당시 학생처장은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서가 검찰에 넘겨졌고 그 후 이수미는 기소되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총학생회에서 몇 차례에 걸쳐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해 줄 것을 부탁드렸으나 총장님께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2. 동료교수 복직 외로운 싸움

  총장이 제시한 선행조건은 복직투쟁의 상징성과 도덕성을 흠집 내기 위해 내놓은  미끼였다. 이강혁 총장은 나의 복직을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하려 하였다. 그러나 나의 복직투쟁은 이미 개인차원의 문제를 넘어, 덕성 전체의, 더 나아가 전국대학 교수들의 교권확립과 교육민주화를 가늠하는 상징적인 싸움이 되어 버렸다. 서명교수들은 나의 복직투쟁을 개인차원의 저항이 아닌 교수사회를 대표하여 재단권력에 맞서는 싸움으로 승화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복직여부가 아니라 복직방식에 있었다. 어떠한 타협이나 뒷거래도 없는 명예롭고 떳떳한 복직 그 길만이 덕성 민주화와 우리나라 사학발전의 튼튼한 초석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선행조건을 받아들일 경우, 사학민주화 투쟁의 상징성이 퇴색됨은 물론 나의 도덕성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외국에 일 년 동안 나가 있으라는 요구는 나의 복직을 위해 함께 싸워준 학생들을 뒤로 하고 숨어 지내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이는 온갖 협박을 물리치고 장외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을 저버리는 행위이다. 나는 복직투쟁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서로가 주체가 되는 싸움을 하자고 하였다. 학생들은 빼앗긴 수업권을 되찾고 나는 교권을 되찾는 그 길, 즉 박탈당한 교육권을 되찾기 위해 함께 싸우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런 내가 이강혁 총장의 선행조건을 받아들일 경우, 그 순간 지금까지 쌓아왔던 신뢰는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선행조건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총장의 복직제안을 거부하였다. 아울러 주위에 떠도는 각종 이야기, 즉 한상권 교수의 부정적인 생각과 불법적인 행동 그리고 무리한 요구 때문에 학내사태가 풀리지 않는다는 소문에 대한 나의 입장을 밝혔다.

 


첫째, 현재 한국최근세사를 듣고 있는 3학년 학생과 한국사연습을 듣고 있는 4학년 학생들을 반드시 제 손으로 졸업시킨 후, 안식년을 신청하거나 대학을 옮기는 문제 등은 그때 가서 결정할 것입니다. 

둘째, 제가 학교로 돌아오면 저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던 보직교수들에게 복수할 것이며, 그 때문에 학교가 더욱 시끄러워진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저는 복직된 후 부당한 위해행위가 가해지지  않는 한, 교수의 본분인 강의와 연구 그리고 학생지도에 전념할 것입니다.

셋째, 현재 저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총장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넷째, 인사위원회 소집 등 복직 절차와 관련된 추후 일정표를 명확히 제시해주기 바랍니다.

다섯째, 현행법상 원직복직이 아니라 신규임용 형식으로 복직이 될 수 밖에 없다면 저는 복직된 이후에도 사법부에 제소하여 잘못된 재임용 제도를 바꾸고 불이익 반환소송을 하여 피해보상을 받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총장의 복직제안을 거부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협상에 기대를 걸었던 많은 교수들이 실망하였다. 일단 제안을 받아들여 복직 해놓고 정 외국에 나가기 싫으면 규장각에 가 있는 방안도 있지 않겠냐며 어렵사리 마련된 복직기회가 무산된 것을 아쉬워하였다. 반면 소수이지만 나의 입장을 지지해주는 교수도 있었다. 교양학부 오영희 교수는「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된 한상권 교수는 즉시 그리고 명예롭게 복직되어야 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한교수가 명예롭게 복직되지 않으면 1년 뒤 박원국 전 이사장은 돌아올 것이고 우리 대학은 다시 옛날로 돌아갈 것”이라며, 학교측과의 싸움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사진 1> 동료교수 복직 외로운 싸움, 한국대학신문 276호, 98.5.11 (백서 3-2, 541쪽)

오영희 교수는 홀로 남아 언론에 보도 자료를 보내는가 하면 농성중인 학생들을 찾아 위로도 해주는 등 외롭게 싸웠다. 당찬 오교수의 모습을 보고 학생들은 한교수 재임용탈락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였다. 하지만 오교수는 이에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진실된 싸움이기에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3. 지친지성…‘상아탑’이 그립다

  5월 20일, 일요서울이라는 주간신문에 덕성여대사태가 보도되었다(일요서울 211호, 51면). 지금까지 덕성사태와 관련하여 30여 회에 걸친 TV보도, 130여 차례에 걸친 신문보도가 있었다. 이들은 한 결 같이 교수재임용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직의 부당성과 복직운동의 정당성에 초점을 맞추어 덕성사태를 다루어 주었다. 이와는 달리 일요서울은 학교측 입장을 옹호하는 논조를 폈다. ‘학교당국은 한 교수가 불법적으로 옥외강의를 하고 있지만 한 교수에게 물리적 제재는 가하고 있지 않다’고 하여, 학교측이 합법적·평화적인 방법으로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일요서울은 덕성여대가 알려진 것처럼 비리사학이 아니며 재정이 튼실한 모범사학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제일 먼저 회계부정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진 2> 지친지성…상아탑이 그립다 (백서 3-2, 319쪽)


  최근 각종 사학재단의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덕성여대의 기형적인 모습에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덕성여대의 경우 재단이 매우 튼튼할 뿐 아니라 대학감사결과 단 한건의 부정 및 비리가 적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하루빨리 정상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덕성여대는 재단이 튼실하고 단 한건의 회계부정 및 비리도 없다’는 덕성학원의 주장을 이강혁 총장에게 전해 듣고 그대로 기사화한 것이다.

덕성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97년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있었던 설훈 의원의 발언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설훈 의원은 법인과 대학에서 쓰지 않고 남긴 돈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음을 문제점으로 제기하였다. 대학이 남는 돈이 있으면 교육에 필요한 데 써야 함에도 법인이 학교로 전출하거나 수익용 기본재산을 늘리는데 사용하지 않고, 적립하거나 다음 해로 이월한 금액이 1996년 결산 기준으로 볼 때 2,875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특히 26개 대학은 학교회계에 200억 이상의 이월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었고, 20개 법인은 일반회계에 50억 이상의 이월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법인회계에 이월적립금이 가장 많은 재단은 덕성여대로 그 말썽 많은 덕성여대가 1,013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일요서울에서 말하는 ‘덕성여대의 경우 재단이 매우 튼튼’하다는 것은 내막을 알고 보면 ①박원국 전이사장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면서 무리하게 특별사업적립금을 조성하였거나 ②박원국 전이사장이 대학에서 쓰지 않고 남긴 돈을 교육에 필요한데 쓰지 않고 법인회계에 무리하게 이월 적립하였거나 ③법인이 재단전입금을 법령에서 정한 기준보다 부족하게 학교에 전출한 결과였다. 일요서울은 덕성여대 재단의 재정이 튼튼한 이면에는 저임금의 착취와 부실교육에 시달리는 교수, 직원, 학생들의 신음과 원망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일요서울은 이처럼 재정이 튼실한 덕성여대에서 기형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그 실례로 학점 없는 강의, 총장실 점거, 떠도는 총장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이 중 학점 없는 강의 즉 장외강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한상권 교수는 지난 3월부터 학생들을 상대로 ‘학점없는 강의’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건물 로비에서 수업을 시작했지만 너무 어수선하다는 이유로 빈 강의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10여명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교내에서조차 찬반이 엇갈리나 대부분은 재임용탈락불만은 법의 잣대로 해야지 학생들을 흥분시킬 일이 아니라는 편이 우세하다.



일요서울은 교육의 두 주체인 교수와 학생의 합의하에 진행하는 장외강의를 재임용탈락 교수의 분풀이 또는 학생 선동용으로 폄훼하였다. 장외강의를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정과 그 목적을 당사자들에게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기사를 작성한 것이다. 게다가 장외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수가 10여 명에 불과하다며 소수인 점을 부각시켰다. 반면 대부분이 재임용탈락의 부당성은 법에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학교측 주장을 거들고 나섰다.

  일요서울은 학생과 직원의 말을 인용하여 기사를 마무리하였다.


  덕성여대 변종수 학생과장은 “학생들의 불법점거에 대해 지속적인 설득을 하고 있지만 워낙 강경한 입장이라 설득이 쉽지 않다” 며 “공권력을 동원할 수도 있지만 최대한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 교수가 원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재임용탈락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며 하지만 “우선 한교수와 학생들의 생각이 좀 더 긍정적으로 변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한상권 교수가 장외강의를 통해 학생들을 선동하여 불법적·폭력적인 방법으로 입장을 관철시키려 하기 때문에 평화적인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전형적인 왜곡보도였다.

  일요서울은 덕성사태의 원인과 진행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도 않은 채, 학교 측 입장만 유리하게 전달함으로써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정의감 하나만으로 싸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었다. 이에 공개질의서를 통해 언론의 기본사명인 공정성을 방기한 데 대해 질타하였다.

 


  박원국 전이사장은 교수재임용제를 교수 통제수단으로 악용하여,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학자적 양심을 지키려는 사람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킴으로써 삶을 파괴하고 가정을 도륙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며, 인간을 비열하게 만드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양심을 금력, 권력, 물리력을 동원하여 파괴하는 것보다 더 큰 범죄는 없습니다.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이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재단과 학교에 대해 준엄하게 질책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정과 비리가 없다’며 면죄부를 주는 데 대해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개질의서에 대해 담당기자는 “한교수님이 지난 1여년이 넘게 해온 힘든 복직투쟁을 가로 막았다는 일종의 자책감마저 들기도”한다며, “한교수님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는 사과내용을 담은 답신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