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주인과 머슴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1)

0
275

주인과 머슴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1)

한상권(중세사 2분과)

1. 교육부 드디어 움직이다

1997년 6월 9일 오전 10시 덕성여대에 교육부 감사반이 들이닥쳤다. 다음날 인문대학생회가 이 사실을 속보로 알렸다.

속보  교육부 드디어 움직이다
6월 9일부터 교육부에서 기습감사에 돌입하여 행정동 초비상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님의 재임용탈락과 관련하여 재단 이사장이 학교운영에 불법 개입한 혐의들이 이제 곧 낱낱이 밝혀질 것. 또한 학생등록금의 부당 전용과 재단 전입금 횡령 등을 비롯한 덕성여대 재단과 학교당국의 총체적 비리를 가려온 부인(否認)ㆍ부정(否定)의 장막이 이제 걷혀질 것! -“자못 교육부에 기대하는 바가 큰 줄 아뢰오” 

  학생들은 교육부감사에 자못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지금까지 숱하게 입에서 입으로 거론되어 온 재단비리와 학교행정의 비민주성, 이사장의 비 교육자적 행각 등 총체적 비리가 감사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학내사태가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덕성여대는 속된 말로 ‘망신살 뻗친’ 학교가 되어 애꿎게도 학생들이 수치와 모욕을 고스란히 다 받고 있었다. 누가 내 삶의 공간 덕성을 이다지도 만신창이로 만들었는지, 그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고 책임자에게 분노를 쏟아냄으로써 땅에 떨어진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각오가 대자보에 절절이 묻어나 있었다.

학생들 표현대로 감사반은 기습적으로 들어왔다. 이사장은 외부에서 아무리 떠들어봤자 교육부가 덕성여대사태에 개입할 여지는 없을 것으로 보았다. 3월 28일 고등교육실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나는 재임용탈락 과정에서 덕성여대가 교육부 행정지침을 어겼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그러나 고등교육실장은 교육부에서도 법적 검토를 하였으나 구제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4월 16일 서울대 한영우 교수가 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 개소식에서 교육부장관과 우연히 만나, “장관님께서는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하고 물으니, 장관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제재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재임용탈락처분이 불법이 아니므로 관할청으로서도 어찌 해볼 수 없다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이었다.

게다가 이사장은 ‘96년 교육부로부터 임기 5년의 임원취임승인까지 받았다. 사립학교법에 정해진 임원취임승인의 취소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2001년까지 이사장 자리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96년 종합감사를 통해 덕성학원과 덕성여대가 교육부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는 점이다.

사학을 지도ㆍ감독할 책임이 있는 교육부는 매년 8-10명의 감사인원을 파견하여 정기적으로 종합감사를 실시한다. 그런데 감사인력이 한정되었기에 한 해에 종합감사를 할 수 있는 대학은 몇 되지 않는다. 교육부가 작성한「행정감사 개요」에는 국공립대학 및 전문대학의 종합감사 주기가 3년으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사립대학의 경우 특별히 종합감사 주기가 명시돼 있지 않다. 실제로 ‘96년 1백여 개 사립대 가운데 교육부 종합감사를 받은 대학은 용인대, 덕성여대, 경성대, 목원대 등 단 4곳뿐이다.

  ’97년에도 7월말까지 한국항공대, 호서대, 동아대 등 3곳밖에 종합감사를 받지 않았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1백여 개 대학이 모두 종합감사를 받으려면 최소 20년이 넘게 걸린다는 얘기다. 덕성여대의 경우 ‘96년 종합감사를 받았으므로 당분간 감사받을 일이 없었다. 앞으로 5년 동안 덕성학원을 통치하는데 어느 하나 걸림돌이 없었다. 앞길은 탄탄대로였으며 운세는 욱일승천이었다. 이사장이 나를 해임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자신감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예상을 뒤엎고 교육부 감사반이 급습해서 모든 서류에 빨간 테이프를 붙이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덕성여대가 2년 연속 감사를 받게 된 것이다.  ’96년 감사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종합감사인 반면,  ’97년 감사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비리ㆍ분규사학에 대해 특별히 실시하는 특별감사였다. 스스로를 “오로지 학교를 위한다는 일념에서 지나치게 정도를 걸어왔다고” 생각하는 이사장은 교육부 특별감사 소식에 분노하였다. 경영권 탈취를 위한 정치적 음모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사장의 생각은 ‘99년 법원 제출용으로 작성한「참고자료」에 잘 드러나 있다.

운동권 세력과 김용래가 정치권력을 동원하여 교육부로 하여금 1년 전인 ’96년 5월 종합감사에도 부정과 비리가 전혀 없었던 덕성학원과 대학에 ‘97년 6월 불시 사안감사를 나오게 하고…

이사장이 주장하는 바는 두 가지다. 하나는 ‘96년 종합감사에서 재정운영이 투명한 것으로 확인된 대학에 대해 부당하게 교육부가 특별감사를 실시하였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운동권 세력과 김용래 총장이 특별감사를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이사장 주장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96년 종합감사부터 알아보자. 

  교육부는 ‘96년 5월 14일부터 23일까지 열흘간 감사인원 8명을 파견하여 학교법인 덕성학원과 덕성여대에 대해 종합감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법인운영과 관련하여 법인세 환급금 9억 3천여만 원 부당 전출,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생긴 수익 8천 3백여만 원을 학교운영경비에 충당하여야 함에도 부담하지 아니한 일, 이사장 직무대행으로 지정받지 아니한 이사가 2년간 9회에 걸쳐 이사회를 소집한 일 등 위법ㆍ부당한 사례 6건, 대학운영과 관련하여 입시관리(4건), 수업ㆍ학사관리(3건), 교직원인사관리(2건), 연구비ㆍ장학금ㆍ회계관리(8건), 시설ㆍ기자재관리(5건)등 22건의 비리를 적발하였다.

  이처럼 재단과 대학에서 총 28건의 비리가 적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장이 부정과 비리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교육부가 비리를 적발하고서도 이사장과 총장 등 관련 책임자에게 ‘경고’ 내지 ‘주의’ 등 미온적인 조치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즉 드러난 처벌이 없었기에 이사장은 “부정과 비리가 전혀 없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착복 운운함은 전혀 거짓이며, 무고입니다

생뚱맞게도 교육부는 ‘96년 종합감사에서 적발한 비리를 1년 뒤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으로 덕성여대사태가 불거지자 언론에 흘렸다.  ’97년 5월 9일 중앙일보는, 교육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하여, 지난해 교육부 감사결과 덕성학원이 회계서류를 조작하여 10억 전용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덕성여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덕성학원이 94-95년 법인세환급금 9억 3천 여 만원을 학교회계로 돌리지 않고 연금ㆍ의료보험 부담금ㆍ학교운영비 명목으로 사용한 것처럼 회계서류를 조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8일, 지난해 5월 덕성여대에 종합감사를 실시, 법인운영ㆍ입시관리 분야 등에서 모두 28건(학교법인 6건ㆍ학교 22건)의 지적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덕성학원 이사장과 전 덕성여대총장 등 재단과 학교 관계자 35명에 경고ㆍ주의 조치하고 법인세 환급금 등 20억 2천 여 만원을 학교회계에 전입토록 했다고 밝혔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덕성학원은 수익용 기본재산 수익금 80% 이상을 학교운영비로 써야 하는 교육부 규정을 무시하고 같은 기간 중 8천 2백 여 만원을 부담하지 않았다.


<사진 1> 덕성학원 10억 전용(중앙일보 1997.5.9, 백서 2, 285쪽)

덕성학원이 전용하였다는 법인세환급금이란 학교비회계의 원천세 환급금을 말한다. 학교비회계의 예금이자소득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세금이 면제된다. 다만 국세청이 원천징수한 다음 연말정산을 통해 환급하는 절차를 거쳐 법인에게 지급한다. 학교비회계의 환급금은 연말정산을 통해 국세청으로부터 돌려받은 돈이므로 법인이 사용할 수 없고 받는 즉시 학교로 돌려주어야 한다. 따라서 학교비회계의 환급금을 법인에서 사용하거나 재단전입금으로 회계처리하면 ‘교비유용’에 해당된다.

  덕성학원은 ‘94-’95년에 학교비회계의 환급금 9억 3천여 만 원을 유용하였다. 법인에서 마땅히 대학에 돌려주어야 할 환급금을 재단전입금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즉 ‘94년 재단전입금 3억 9,980만원 중 2억 7,480만원이 학교비회계의 환급금이며, 순수 재단전입금은 1억 2,499만 7천원뿐이었다.  ’95년에는 재단전입금 6억 6,330만 1,190원 전액이 학교비회계의 환급금이며, 환급금 145만 4,810원은 법인에서 사적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사립학교법 및 학교법인의 학교경영 재산기준령에 의하면, 학교법인은 수익용 기본재산에서 발생한 수익의 100분의 80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학교법인이 설치ㆍ 경영하는 학교에 전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법인 덕성학원은 재단전입금을 터무니없이 부족하게 냈다.

  이 비리는 ‘97년 특별감사에서 적발되었다. 학교법인 덕성학원은 ’93-‘94년 상계동 토지를 매각해 700억 이상의 수익금을 취득하였다. 덕성학원은 토지매각 수입금을 은행에 예치시켜 놓고, 이자수입의 100분의 80에 해당하는 법정부담경비 172억 여 원을 동 법인이 설치ㆍ경영하는 학교의 연간 운영경비로 전출하지 아니하였다. 부담 기준액에 미달되는 44억 여 원만을 전출하여, 128억 여 원을 부족하게 전출한 것이다.

교육부 특별감사에 의해 적발된 재정 비리에 대해, 덕성학원은 ’97년 10월 7일 일간지에「덕성학원 사태의 진실을 밝힙니다」라는 광고를 통해 해명하였다.

덕성학원에서는 토지수용대금 약 600억 원의 2년간 이자수입 190억 원이 ‘96년에 입금되어 그 80%에 해당하는 금액에서 이미 전출한 금액을 공제한 잔액 128억 원을 ’98년 2월말까지 전출하면 되는 것인데, 마침 교육부 감사에서 지적하여 이를 즉시 전출하였던 것이며, 이를 유용하였다는 것은 악의로 왜곡 선전하는 것입니다.


<사진 2> 학교법인 덕성학원, 덕성여자대학교 [덕성학원 사태의 진실을 밝힙니다](97.10.7, 조선ㆍ중앙ㆍ동아ㆍ한국일보 광고, 백서 3-1, 637쪽)   

법정전출금 128억을 ‘98년 2월말까지 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교육부 특별감사에서 지적되어 즉시 전출하였으므로 재정 비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과연 광고에서 해명한 대로 덕성학원은 128억이나 되는 천문학적인 돈을 자발적으로 대학에 전출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교육부 특별감사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덕성학원은 이 돈을 대학에 전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6월 5일 덕성여대 교수 13명이 성명서를 통해 이사장의 재정 비리를 지적하였다.

박원국 이사장은 또한 숱한 재정 비리를 저질러 왔다. 박원국 이사장은 건물 신축 등 재단이 부담해야 하는 사업에 학생들의 등록금을 적립하여 사용하였으며, 수년 전 매각한 상계동 토지대금 700여억 원이 있음에도 재단 전입금을 거의 내놓지 않아왔다.  

이 성명서가 발표 되자, 덕성학원은 교수들 주장이 허위사실 날조, 선동 행위라고 몰아붙이며 즉각 반격에 나섰다.

위 주장은 이사장을 중상 모략하여 대학과 재단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행위입니다. …상계동 토지는 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으로서 정부에 수용된 것이며, 그 대금은 다른 수익용 기본재산 대체취득과 장래 법인산하 교육기관의 교육 사업을 위한 특별적립금으로 적립하는 조건으로 교육부의 기본재산처분허가를 받은 사항이며, 대학에 시설확충을 위한 재원이 적립되어 있으므로 현재 상황으로서는 재단에서 대학에 전출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학 재정이 충분히 적립되어 있으므로 법인이 사립학교법 및 학교법인의 학교경영 재산기준령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특별감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덕성학원은 법인수익금의 80%를 대학에 전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다가 교육부가 128억을 대학에 전출하지 않으면 이사장을 해임시키겠다는 감사처분서를 내려 보내자 부랴부랴 전출하였다. 

  다른 하나는 이사장이 교육부를 기망(欺罔)하면서 특별사업비를 적립하였다는 사실이다. ‘96년 종합감사에서 교육부는 특별사업비의 과다적립을 지적하면서 재원 배분에 적정을 기하도록 ’주의‘를 주었다. 이에 대해 덕성학원은 “앞으로는 이러한 사례가 없도록 재원배분에 적정을 기하겠다.”고 교육부에 보고하였다.

그러나 ’97년 특별감사 결과,  ‘96년에는 전년도보다 무려 42억 2천 41만 3천원이 더 많은 51억 5천 76만 1천원을 또다시 적립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분간 감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전년도에 적립한 9억 3천 34만 8천원에 비해 무려 여섯 배가량이나 되는 돈을 또다시 적립한 것이다.

  이사장이 조성한 특별사업비는 인건비, 학비감면(장학금), 학생실험실습비, 기자재구입비, 시설비 등 학교운영에 필수불가결한 예산들을 집행하지 않고 적립한 돈이었음이 ‘97년 특별감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① 인건비: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과 학생들에게 질 높은 교육을 위하여 우수한 교수를 충원하고, 교육행정의 효율적인 운영과 원활한 교육 활동 지원을 위하여 일반직을 임용하는데 드는 비용이다. 이사장은 교수를 전국 평균 확보율보다 미충원하고, 승진요건 충족자를 미 승진시켰으며, 일반직을 법인정관에 규정된 정원보다 미 충원하는 방법 등으로 인건비로 편성된 예산을 미집행하여 ‘94-’96년간 14억 8천 여 만원을 적립하였다.

② 학비감면(장학금): 관계규정상 장학금 예산은 학생들 납입금 징수액의 10% 이상을 확보‧집행해야 한다. 그러나 ‘94-’96년간 장학금을 10% 해당액보다 부족하게 집행하여 총 5억 3천여만 원을 적립하였다.

③ 학생 실험 실습비: 교육과정상 실습에 소요되는 최소한의 경비를 예산에  편성하였으므로 이를 전액 집행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이사장이 ‘94-’96년간 예산액보다 미집행하거나 당초 예산에서 삭감하여 실험실습을 소홀히 하면서까지 누적한 적립금은 2억 8천여만 원이다.

④ 기자재구입비: 교육과정상 실험실습을 위한 필요한 기자재나 교육행정 의 원활한 수행을 위하여 갖추어야할 기자재구입비이므로 편성된 예산액을 당해 연도에 전액 집행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이사장은 ‘94-’96년간 17억 2천여만 원을 미집행하여 적립금으로 충당하였다.

⑤ 시설비: 학교의 장기발전을 위하여 연차별로 계획을 수립하여 투자되는 것이므로 당해 연도에 편성된 예산은 전액 투자하여 교육의 질적 효과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사장은 ‘94-’96년간 31억 8천여만 원을 미집행하여 적립금으로 충당하였다.

⑥ 기타: 수입증가, 과목별 미 집행액 및 집행 잔액(불용액) 등으로 발생한  41억 7천여만 원을 각각 전액 적립시켜, 등록금을 낸 당해 연도 재학생에게 양질의 교육 혜택을 주지 못하였다.


<사진 3> 감사결과처분서(백서 2, 177쪽)

‘83년부터 ’96년까지 이사장은 결산잔액을 다음 연도에 이월 사용하지 아니하고 전액을 대학특별사업적립금 명목으로 312억 조성하였다. 지난 10여 년간 이사장은 교수와 직원을 전국사립대학 평균 수준 이하로 채용하고, 그나마 있는 교수와 직원의 월급을 전국 대학 평균수준 이하로 책정하고, 학생들의 실험실습을 소홀히 하도록 하고, 교육에 필요한 기자재를 구입하지 않고, 시설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고, 심지어 학생들의 장학금마저 덜 지급하면서 특별사업비를 적립해 왔던 것이다.

  과도한 특별사업적립금 조성으로 학교운영은 비정상적‧비효율으로 되었으며, 교육의 질은 날로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할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 채 조성한 특별사업적립금에는 교직원의 한숨과 눈물, 학생들의 회한과 분노가 배어있었다. 한마디로 특별사업비적립금이 덕성 황폐화의 주범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96년도 종합감사에서 특별사업비의 과다적립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이사장은 앞으로는 이러한 사례가 없도록 재원의 배분에 적정을 기한다는「종합감사결과 처분조치 보고서」를 교육부에 제출하고,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무려 50억 원 이상이나 되는 돈을 또 다시 특별사업비로 과다 적립하였다. 이처럼 교육부를 기망하면서까지 특별사업비를 적립한 이사장이 128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대학에 자발적으로 전출할 것이라 보기는 상식적으로 어렵다.

  이사장은 특별사업적립금을 과도하게 조성함으로써 덕성여대를 침체의 늪에 빠뜨린 잘못을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특별사업적립금이 있다는 자체가 자신의 청렴결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대학회계 적립금 312억 원은 그동안 재정 비리나 낭비 없이 경비를 절약하여 운영한 결과이며, 이 자금을 대학의 시설확충, 교직원 처우개선, 연구기금, 장학기금 등에 투자하기 위하여 대학회계에 적립되어 있으므로 착복 운운함은 전혀 거짓이며, 무고입니다.

교수확보율은 전국 최저수준을 맴돌고, 운영비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94년 34.9%, 95년 34.7%에 불과하여 타 대학에 비해 부끄러울 정도로 턱없이 낮은 수준인데,  “재정 비리나 낭비 없이 경비를 절약하여 운영”한 결과 특별사업기금을 적립하였으며, 이 돈은 “대학의 시설확충, 교직원 처우개선, 연구기금, 장학기금 등에 투자하기 위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접하고, 분노에 앞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3. 도대체 누구더러 강단을 지키라는 것인가  

  앞서 인용한 법원제출용「참고자료(안)」에서 이사장은 교육부 특별감사가 운동권 세력과 김용래 총장이 정치권에 줄을 대 불러들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97년 10월 16일 학내에 뿌려진 출처불명의 괴문서에는 김용래 총장이 학교를 탈취하기 위해 감사를 불러들인 것처럼 쓰여 있었다.

김용래 총장은 이사장을 적극 밀어내기 위해 교육부에 감사를 요청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학 재단의 이사장들이 돈 문제가 많기 때문에 박원국 이사장도 털면 먼지가 나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김용래 총장은 덕성여대에 들어와서 보니 대학교에 재산이 엄청나고(약 7,000억 원), 늘 흑자 운영이며, 그 총 관리자가 박원국 이사장 한 명 뿐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야심의 목표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사장 한 명만 제거 하면 그 엄청난 재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채용된 지 두 달도 안 된 신임 총장이 교육부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을 감사해 달라고 요청할 리가 있습니까?

그러나 교육부도 밝혔듯이 특별감사는 [한상권교수재임용탈락처분철회및재임용제개선추진위원회](추진위)에서 요청한 것이었다. 추진위가 교육부 감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어떻게 백방으로 노력했는지 밝힘으로써 김용래 총장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벗겨 드리고자 한다.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 이후 교육부는 사면초가에 직면해 있었다. 교육부의 지도ㆍ 감독을 받아야 할 사학이 행정지침을 어겼는데도 아무런 제제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성여대는 한상권 교수를 재임용탈락 시키면서 ‘93년 교육부의「교수재임용제 개선 지침」에 따라 스스로 만든 내규상의 절차조차도 지키지 않았다.

  이는 재임용의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고, 심사 제도를 강화하여,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하라는 교육부 행정지도 지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다. 학계ㆍ 언론ㆍ 정치권 등에서 직무유기를 하는 교육부를 질타하고 비리사학과의 유착에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학술단체협의회 상임의장 박진도 교수(충남대)가 교수신문에 기고한 칼럼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악덕 사학법인이 전횡을 저지르는 일차적인 책임은 감독기관인 교육부의 직무유기에 있다. 그동안 교육부 징계재심위원회는 재심신청에 대해 각하 결정으로 일관해왔다. 교육부는 우선 덕성여대 법인에 대해 교육부의 행정지침을 위반한 책임을 물어 시정명령을 촉구해야 하고, 나아가 덕성여대 전횡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사진 4> 박진도, [도대체 누구더러 강단을 지키라는 것인가] (교수신문 109호, 97.3.21, 백서 1, 232쪽)   

KBS 추적60분에서 교수재임용제의 문제점을 다룬 직후인 5월 7일, 추진위는 재단의 비리와 전횡을 비판하는 교수를 강단에서 축출하는 수단으로 교수재임용제를 악용한 덕성여대에 대해 교육부감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교수재임용제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교육부는 재임용제가 공정하고 엄정하게 운영되도록 행정지도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이번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 처분이 교육부의 방침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덕성여대에 대해 어떤 시정 명령도 내리고 있지 않다.

교육부의 이 같은 태도는 작년 5월 덕성여대에 대한 종합감사를 통해, 박원국 이사장의 법인세 환급금 부당전출 등 법인 비리 6건, 입시관리 등 대학 비리 22건, 총 28건이나 되는 비리를 적발하였음에도 경고 내지 주의에 그치는 미온적인 조치를 취한 연장선상에 있다. 이처럼 교육부가 ‘사학의 자율’이라는 미명하에 덕성여대의 전횡과 비리를 계속 방치한다면 파행을 일삼는 재단을 비호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는 이러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덕성여대에 대해 강력한 행정 감독권을 발동해야 할 것이다. 

  5월 22일에는 “덕성여대가 교수재임용제의 근본정신을 무시하고 재량권을 남용하고 있음에도, 사학을 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는 교육부가 아무런 시정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한다.”며, 감사원ㆍ교육부ㆍ청와대민정수석실ㆍ국민고충처리위원회ㆍ정부합동민원실 등의 정부기관에「덕성학원 비리감사 요청에 관한 진정서」를 접수시켰다.

우리는 덕성여대 재단의 비리가 종합감사를 받은 1994‧ 95년도에만 저질러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육부의 방침을 어기면서 비리와 전횡을 일삼은 학교법인 덕성학원에 대해 철저한 종합감사를 실시해 주기를 감사원에 진정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1994년 이전은 물론 1996년 5월 이후 1997년 5월까지의 법인ㆍ학사ㆍ인사ㆍ재정ㆍ시설 등과 관련된 비리 의혹에 대한 전면 감사를 실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리 적발 시 단순히 경고나 주의를 주는 형식적인 조치에 그치지 말고, 반드시 의법 조치하여 사학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기를 진정합니다.


<사진 5> [덕성학원 비리감사 요청에 관한 진정] (백서 2, 82쪽)   

이 밖에도 추진위는 대통령비서실ㆍ국무총리실ㆍ검찰청 등에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끈질기게 장관 면담신청을 하여 교육부를 압박하였다. 교육위원회 소속 설훈 의원은 교육부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실무자로부터 보고받은 후 조치를 취하겠습니다.”라는 답변을 장관으로부터 받아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학계ㆍ언론ㆍ정치권 등으로부터 가해지는 전 방위 압력에 교육부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특별감사에 착수한 것이다. 교육부는 7월 16일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학교법인 덕성학원과 덕성여대에 대한 감사는 ‘이사장이 대학학사행정에 간섭하여 총장의 권한을 침해하고, 동 대학 한상권 교수를 재임용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탈락시켰으며, 학사ㆍ재정상에 비리가 있다’는 민원이 제기되어 실시하였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특별감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로 지목한 민원이란 추진위가 5월 22일 정부기관에 접수시킨「덕성학원 비리감사 요청에 관한 진정서」를 말한다.

4. ‘교육마피아’와 ‘부지부지장관’

막 여름방학에 들어가려는 참에 특별감사가 시작되었으므로 일단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교육부가 감사를 철저히 하도록 끊임없이 감시하고 압박하는 일이 중요하였다. 교육부를 견인하지 못하면 ‘96년 종합감사처럼 면죄부감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든 탑이 무너져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교육부의 분규사학 처리과정을 보면 지나치게 미온적이고 재단 우호적이어서 분규가 장기화되고 문제해결이 미궁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교육부와 비리사학과의 유착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수인 의원은 비리사학의 뒤를 받쳐주는 교육부의 일부 수구적 관료를  ‘교육마피아’라 이름 하였다. 재단의 학교공금 횡령 및 회계부정, 교수임용 및 재임용 부정, 입시 및 편입학 부정, 재단의 전횡과 부당한 학사행정 간섭, 총장선임을 둘러싼 학내분규 등 사학들에서 수많은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까닭은, 비리사학과 교육마피아의 유착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수인 의원의 주장에 따르면, 교육부의 비리사학에 대한 ‘면죄부 발급의 악순환’ 은 5단계로 진행된다.


  제1단계‘수수방관의 단계’이다 사립대학에서 말썽이 나면, 교육부는 일단 팔짱을 끼고 관망한다. 교육부관계자들은 말썽이 그대로 수그러드는지 커지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제2단계는 ‘면죄부 감사의 단계’ 이다. 교수와 학생들의 항의 강도에 따라 말썽이 커지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 교육부는 감사를 한다. 그러나 이때는 중요하지 않은 몇 가지만 지적함으로써 여론을 잠재운다. 이 제2단계의 감사는 교수와 학생들의 항의, 여론의 비판에 따라 위기에 빠진 수구부패재단을 단죄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에게 구원의 밧줄을 던져주는 단계이다. 대학의 개혁을 부르짖어온 교수ㆍ 학생ㆍ 학부형ㆍ 시민들은 순진하게도 이 단계에서 교육마피아에 철저히 속고 만다.

  제3단계는 ‘관선이사 파견단계’ 이다. 첫 감사에서 여론을 잠재웠는데도 교수와 학생, 어떤 경우에는 학부모까지 가세하여 항의의 강도와 요구의 수준이 높아지면 여론의 비판이 거세진다. 다시 감사가 시작되고 이때 교육부 마피아는 아무리 유착되어 있는 사학재단의 마피아일지라도 돌볼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관선이사진을 파견한다. 자신들의 존립까지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선이사진’ 구성이 문제해결의 절대적ㆍ 최종적 처방은 아니라는 데 교육마피아의 유능성과 교활성이 함께 발휘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4단계는 교육부의 관료나 관료출신 인사를 한 사람 이상, 그리고 구 재단이나 교육부와 밀착한 그럴듯한 경력의 인사들을 과반 수 넘게 새 이사진에 채워 넣는다. 새 관선이사진은 결국 교육부와 문제 재단의 마피아에 새로운 형식으로 장악 되는 것이다.

제5단계는 ‘관선이사진 흔들기 단계’ 이다. 교육부관계자와 구재단의 실력자들은 새로운 이사진에 포진된 그들의 하수인들을 동원하여 새로운 이사진을 처음부터 흔들기 시작한다. 교수ㆍ학생들의 개혁요구를 수렴한 학교당국의 개혁 프로그램을 그들은 사사건건 방해하고 거부한다. 새로운 이사진에 개혁적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 투서, 위협 등 여러 가지 방법의 압박을 가한다. 대구대학의 경우 개혁적인 새 이사장들과 이사들에게 심지어 가족몰살의 위협까지 한 것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혁이사진이 끄떡없으면, 교육부 마피아는 구 재단 마피아의 진정 등의 형식을 빌려 그들이 선임한 관선이사진 붕괴를 위한 최종적 감사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제5단계의 감사는 제2단계와는 달리 현 이사진을 붕괴시키려는 목적으로 진행되는 특징을 갖는다. 그들은 여론에 밀려 자신들이 구성한 이사진을 드디어 그들 스스로 무너뜨리는데, 가장 주목할 점은 그들은 악당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정의의 가면(!)을 쓴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죄부 발급의 악순환’은 지난번 검은 자금을 주고받은 대구대학 재단관계자와 교육부 관계자가 검찰에 구속된 사례에서 널리 많이 알려졌다. 또한 지난해 그토록 말썽을 빚은 덕성여대에서 새 이사진이 구성되었지만, 교수와 학생들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한상권 교수의 복직문제가 해를 넘겨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다가 올해에야 겨우 해결된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교육개혁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창작과비평』1999년 여름호(통권 104호, 1999.6)


   사학에서 분규가 발생하면 교육부는, 첫째 발뺌, 수수방관하고 여론을 살피고 있다가 감사반 파견하기, 둘째 그나마 그것도 재단 부정부패의 은폐 또는 면죄부 발급, 셋째 여론이 악화되면 관선이사 파견 또는 이사장 승인 취소, 이런 방식으로 일관해 왔으며 지금도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학비리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모영기사건’이다. ‘모영기사건’이란 지난 ‘91년 교육부 대학정책실장으로 있던 모영기씨가 학내분규로 계속 물의를 빚던 김문기 상지대 재단이사장과 2억 6천만원대 토지거래를 한 사건이다. 대학을 감독하고 지도해야 할 직위에 있는 모씨가 오히려 비리대학과 거래를 한 것이다. 지난 ’93년 김문기 이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이런 사실일 밝혀지자 모씨는 사표를 제출하고 해외로 도피하였다. 모영기 사건은 돈으로 맺어진 관ㆍ학 부패 고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겨레 이용인 기자가 폭로한 사학비리 실태는 더욱 구체적이다.


<사진 6>  “우리 앞에 교육개혁이란 없다” (백서 3-2, 570-571쪽)    


사립대 문제를 꺼내면 교육부 관료들은 ‘그것은 고공 플레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들이 말하는 고공이란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을 말한다. 정치인에 대해 좀 더 깊이 물어보면 “다 아는 사실인데 뭘 물어보냐”고 반문한다. 전직 교육부 고위관료도 “여ㆍ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들이 로비에 의해 움직이는 게 가끔 눈에 보인다. 그럴 때는 정말 외로웠다”고 회고한다. ‘악성 사립재단’의 보호막 구실을 하는 정치인들이 사학 문제를 해결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상지대의 경우 김문기 이사장 본인이 민자당 국회의원이었으며, 그 뒤로도 친밀한 관계인 ㅎ 국회의원이 계속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한다.

현재 분규가 진행 중인 대학도 거의 예외 없이 배후에 정치인이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서원대의 경우 ㄱ 의원과 ㅂ 의원이 바람막이가 돼주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실제로 최완배 이사장은 “빽”을 자랑하며 다닌다고 한다. 계명대는 ㄱ 의원이, 청주대의 경우도 또 다른 ㄱ 의원이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한다. 경주대는 설립자인 ㄱ 의원이 “학교를 말아 먹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사학재단의 로비스트로 전락한 여야 국회의원들의 눈부신 활약은 지난 ‘90년 사립학교법 ’개악’때도 드러났다. 당시 중앙대 학생들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한국대학법인협의회’ 공문에는 국회 문공위원과 여야 당직자들에 대한 사학재단의 개인별 교섭 배치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교적 깨끗하다고 알려진 o 의원, ㅂ 의원과 중진이었던 ㅈ 의원 등도 사학재단 로비에 굴복하고, ㄱ 의원 등은 앞장서서 사학재단의 입장을 대변했다고 한다. 재단 이사장에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했던 사립학교법은 현재까지 교육계에서 ‘악법중의 악법’ ‘만병의 근원’으로 질타를 받고 있다.
(「특집 “우리 앞에 교육개혁이란 없다”」,『한겨레 21』214호, 1998.7.2)   


이 기자는 교육부 관료가 장관을 길들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였다.


한때 교육부 안에서 ‘부지부지(不知不知) 장관’ 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장관이란 빈정거림이다. 한 전직 교육부장관에게 붙여진 이 별명은 교육부 안에서 관료들의 힘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한다. 리더십과 판단력이 부족할 경우 장관은 쉽사리 ‘부지부지 장관’이 돼버린다. 장관이 새로 취임하면 관료들은 ‘장관 길들이기’에 나선다. 세 가지 함정을 파는 것이다.

  첫 번째가 스케줄 함정.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관의 스케줄을 관리하며 ‘뺑뺑이’를 돌린다. 정책 사안에 대해 제대로 숙고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없는 상황에서 관료들은 자신들의 손에서 1-2주 정도 붙잡고 있던 정책을 갑자기 내밀며 결재를 요구한다. “청와대 보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두 달을 보내고 나면 장관의 입에서는 “가만있어 보자. 내일 스케줄은 어떻게 되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이때가 첫 번째 함정에 빠지는 순간이다. 장관이 스스로 할 일을 챙기지 못하고 관료들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외부자문이나 충분히 여론을 청취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정책을 발표했다가 언론이나 다른 장관들에게 ‘난타’를 당하기도 한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보고가 늦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두 번째는 방문객 함정이다. 장관실에는 숱한 방문객이 찾아온다. 물론 장관이 필요에 의해 부르는 방문객도 있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문객 대다수는 교총을 비롯한 관변 교육단체의 장, 관변학자, 정당 관계자 등이다. 이들은 대개가 장관의 단점이나 정책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듣기 좋은 미사여구만 늘어놓는다. 반면 쓴 소리를 해줄 방문객은 부르기 전에는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결국 찾아오는 방문객들의 면담에 쫒기다 보면 한쪽 얘기만 듣게 되고 어느새 두 번째 함정에 빠지게 된다.

  세 번째 함정은 자기도취 함정이다. 바쁜 스케줄에다 쉴 새 없이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이하다 보면 장관은 스스로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기도 모르게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 “이거 해보니 별 것 아니야”하는 자만심도 싹트게 된다. 세 번째 함정에 빠진 것이다. 교육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입각할 때는 장관들이 누구나 호기를 부린다. 하지만 떠날 때가 돼서야 함정에 빠진 것을 알고 후회하게 된다,”고 말한다.
(「 “우리 앞에 교육개혁이란 없다”」,『한겨레 21』214호, 199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