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재임용탈락 교수의 ‘장외수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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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용탈락 교수의 ‘장외수업’ (2)

한상권(중세사 2분과)

4. ‘교수님’은 여전히 출근투쟁 중

개강 첫날인 3월 2일(월), 나는 제자들의 환영과 축복 속에서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 가면서 휴게실에서 외롭게 투쟁을 하기 위해 대문 밖을 나섰다. 97년 12월 3일 이사진이 개편되자 나는 규장각으로 출근하여 그동안 밀린 공부를 하고 있었다.

  12월 19일 김대중 후보가 박빙의 접전 끝에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IMF의 혹독한 한파 속에서도 50년 만에 이루어진 평화적 정권교체로 국민들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대학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복직의 꿈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총장선거에서 민주세력이 패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공든 탑이 두 번째 무너진 것이다. 모든 것을 또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만 했다.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학생들의 65일 간 수업 거부 투쟁으로 이사진이 교체되면서 나의 복직을 둘러싼 사회적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사회는 신임총장이 선출되지 않아 제청권이 없기에 복직절차를 밟을 수 없다고 하였다. 대학에 대해 인사권을 가진 이사회가 개편 즉시 총장 직무대리에게 복직제청을 지시할 수 있었는데도, 나의 복직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루지 않아 복직은 총장선출 이후로 미루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총장선거 과정에서 구세력의 조직적인 방해로 총장선임이 지연되는 것이 분명한 이상, 이사회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이전까지 합당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이사회는 사회적 합의를 이행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3개 월 간의 우여곡절 끝에 2월 26일 새 총장이 선출되었으나  나는 복직과 관련된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1학기 한국사 강의는 외부 강사에게 배정되었으며 연구실은 여전히 폐쇄되어 있었다. 복직을 위한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사회적합의가 이행되지 않았음을 알리기 위해 또다시 출근투쟁을 감행해야만 했다. 이사진 교체로 복직이 가시화되었음에도 두툼한 강의노트 대신 성명서 한 장을 들고 출근투쟁을 하는 나의 딱한 처지를 인권사랑방에서 취재하였다.


한상권 교수 출근투쟁 재개

일단락된 것을 알려졌던 덕성여대(이사장 김계수) 사태가 여전히 해결을 못보고 있다. 덕성여대 총학생회는 “지난해 2월 28일 한상권 교수가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된 사건과 관련, 97년 10월 박원국 이사장이 해임되고 12월 3일 이사진의 전원교체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현 이사진이 한 교수의 재임용을 계속 미루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상권(사학과) 교수는 새 학기 개강과 동시에 다시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공동의장 유초하 등)”도 지난 2일 성명서를 내고 “덕성학원 이사진과 신임총장은 한 교수를 즉각 복직시키라”며 “학교 측이 비민주적 관행을 척결하고 민주적 개혁을 착실히 추진시키지 않는다면 관선이사 파견과 민주총장 선출을 위해 싸우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학교 측 관계자는 “현재 한교수가 재임용 기준에 부합되더라고 교수로서의 임기가 만료되어 면직된 상태”라며 “학교 측이 재임용을 하지 않는 것에 법적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교체된 이사진은 총장을 새로 선출한 뒤 한 교수의 복직문제를 거론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런데 학교 측이 지난 2월 26일 이강혁 총장을 새로 선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교수를 복직시키지 않고 있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89년 재단이 성낙돈 교수를 재임용시키지 않고 탈락시킨 것과 관련해 평교수협의회 의장 자격으로 성교수의 복직운동을 전개했다가 90년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으며 지난해 2월 뚜렷한 사유 없이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덕성여대 재단은 재임용 때 심사 내규에 기준을 두어 임용여부를 결정하고 있는데, 한 교수는 연구실적(학교기준 1.0 이상) 2.3점을 받았으며 가의 실적(C학점 이상) A학점, 봉사점수(0.2 이상, 강의점수가 A학점일 경우 봉사점수는 없어도 됨) 0.1점을 받아 재임용에 아무런 하자가 없는 상태였다.


뉴스플러스에서도 나의 출근투쟁 소식을 다루어 주었다.


<사진 3> ‘교수님’은 여전히 출근투쟁 중 (NEWS+, 1998.3.19 /백서 3-2, 530쪽)

 


                                          ‘교수님’은 여전히 출근투쟁 중

지난해 2월 교수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그 부당성을 들어 재단 측과 싸움을 벌여온 덕성여대 사학과 한상권 교수(45). 지난해 10월 이사장 전격 해임. 12월 3일 이사진 교체 등의 덕성여대 사태 결말로 미루어 당연히 복직될 것으로 여겨지던 그는 새 학기에도 여전히 출근투쟁 중이다. 지난해 5월 26일부터 자리 잡은 인문사회관 로비 한쪽이 그의 연구실이고 휴대폰이 그의 사무용 집기이다.

『신임 이사진은 총장 선출 이후로 저의 복직문제를 미뤄놓은 상태였지요. 그러나 새 총장이 2월 26일 뽑혔음에도 여전히 학교 측은 새 학기 강의 배정, 폐쇄된 연구실 개방 등 가시적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 교수에게 힘을 실어줬던 여러 사람들이 다시 나섰다. 3월 9일 아침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덕성여대한상권교수재임용탈락처분철회및교수재임용제개선추진위원회」대표들은 이강혁 총장과 면담을 갖고 13일까지 한교수를 원상복직 시키지 않을 경우 총장과 이사진 퇴진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통고한 상태. 또 한교수가 들어올 것으로 알고 한국사 수강신청을 한 학생들이 수업거부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한 교수는 자심의 싸움이『개인적 권리회복뿐 아니라 교수재임용제 남용을 막는 선례가 된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후기 조선사연구에서 괄목할 연구업적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한 교수는 출근투쟁 중에도 오후 2시부터는 규장각으로 자리를 옮겨 연구에 매진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자신의 저서 「조선후기 사회와 소원(訴冤) 제도」로 제23회 월봉(月峰) 저작상을 수상한 것은 전혀 의외의 일이 아니다.


5. 재임용탈락 교수의 ‘장외수업’

김계수 이사장은 새 총장이 선출되면 한 교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학내 구성원들에게 누차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강혁 총장이 선출되면서 이 약속은 지키기 힘들게 되었다. 박원국 전 이사장의 지원으로 어렵사리 당선된 이강혁 총장이 나의 복직문제에 우호적일 리 만무하였기 때문이다.

총학생회의 주장에 따르면, 이강혁 총장은 2월 26일 이사회에서 선임된 이후 3월 10일 취임식 이전까지 중앙운영위원회와의 3차례의 면담 과정에서 매번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자신은 “준비되지 않은 총장”이라며 “아무 것도 모른다. 준비되지 않았다. 시간을 달라”고 했고, 두 번째는 “한 교수 복직 관련해서는 상반된 의견이 있어서 사태파악하기에 어렵다. 한 교수를 만나보면 될 것 같다”라고 했으며, 세 번째에는 “해직의 부당함은 인정한다. 그러나 인사권은 이사회에 있으므로 이사회의 의중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나마 취임 이후에는 학생들의 면담 신청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임 이사진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이제나 저제나 내가 강단으로 돌아오기만을 고대하였던 사학과 학생들은 또 다시 상처를 안고 새 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3월 9일 사학과 95학번 학생들이 인문사회관 로비 임시연구실로 찾아왔다. 이번 학기로 예상되었던 복직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학교가 한국사 강의를 외부강사로 배정하자, 사학과학생회가 수업권 쟁취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고 하였다.

  새 학기에는 선생님이 돌아오시리라 믿었던 기대가 무너지자 학생들은 허탈감을 분노로 표출하였다. 학생들은 정의가 패배하는 모습을 앉아서 보고 있지 만은 않았다. 불의와 거짓이 대학을 지배하는 현실을 온몸으로 거부하였다. 힘이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힘이라는 역사적 진리를 믿고 있었다. 학생들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약속을 자의적으로 파기하며 오늘의 이런 상황을 초래한 학교당국을 규탄하며 우리 스스로 한상권 교수님의 복직을 선언하고자 한다”며 강의투쟁에 돌입한다고 선언하였다.

학생들은 강의투쟁이 양심을 지키다가 불행을 당하고도 의연한 선생님의 모범을 이어 우리도 제자로써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내가 속한 내 삶터를 바꾸어가는, 그리하여 진정한 덕성의 민주화, 나아가서는 사회의 발전과 역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사학도로서의 신념의 표시라고 하였다.

 

  사실 강의투쟁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강의투쟁은 강의를 하는 교수와 듣는 학생 모두가 불퇴전의 확고한 결의가 있어야만 가능한 싸움이다. 우리는 1990년 해직교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 모두가 불이익을 당한 선례를 들어가며 장시간 토론하였다.

  논의결과 우리의 투쟁이 교육권을 쟁취하는 데 의미 있는 싸움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강의투쟁이 학생들에게는 빼앗긴 수업권을 되찾는 투쟁이며 해직 교수인 나에게는 부당하게 박탈당한 교수권을 되찾는 투쟁이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교수권과 수업권 이 두 가지를  통합하는 개념을 교육권이라 부르기로 했다. 우리의 강의투쟁은 교육의 두 주체인 교수와 학생이 각자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이며, 그 최종 도달점은 교육권 확보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교육권 확보투쟁을 벌이는데 있어 서로가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는 주체가 되어야지 누가 누구를 위한 투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 사실을 문서로 명확히 하자고 제안했다.

학생들은 “우리는 강사의 수업을 거부하고 한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자 한다. 이는 정당한 우리의 학습권이며 학교당국은 이 수업을 인정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어 “우리가 오늘부터 한상권 교수님과의 강의를 결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우리의 권리이고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강의투쟁에 돌입하는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가 신성한 학문을 배우는 자리가 비록 지나가는 학우들로 북적북적하여 시끄럽고, 칸막이 세 개로 막혀진 차가운 인문사회관 로비일지라도 한상권 교수님의 즉각적인 원상복직을 확신하는 우리의 결단이 결코 무시되지 않을 것을 믿으며 다음과 같은 우리의 요구를 밝힌다.

하나. 이번 주 내로 당장에 한상권 교수님을 원상 복직시켜라!
하나. 한상권 교수님과의 강의에 대한 학점을 인정하라!

강의투쟁이란 새로운 투쟁방식의 물꼬를 튼 95학번 학생들은 홍재현, 손효진, 황진경, 전향연, 임채리, 문지현, 여방글, 강민정 등 8명이었다.


<사진 4> “한상권 교수님의 즉각 복직을 강력히 촉구한다!” (백서 3-1, 87쪽)

이후 장외강의 소식을 뒤늦게 들은 학생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한국최근세사 수강생은 20명이 넘어 정규수업을 듣는 학생들보다 많았다. 나 역시 강의투쟁에 임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나의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들에게

본인의 복직을 간절히 염원하며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 주신 덕성여대 학생 여러분! 본인은 사학과 학생들의 요청을 받아 들여, ‘98년 3월 10일부터 강의를 시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먼저 본인이 강의를 시작하기로 한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원국 이사장은 ‘97년 2월 본인을 재임용에서 탈락시켰습니다. 교육부 감사결과에 따르면, 한상권 교수는 재임용심사기준인 연구실적, 교육실적, 근무실적, 봉사실적 등에서 별다른 문제점이 없음에도 박원국 이사장이 주영숙 총장, 임숙자 교무처장 등과 한상권교수를 임기만료자로 처리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하고 소명의 기회도 부여하지 아니한 채,  ’97년 2.28일자 재임용에서 탈락시켰습니다. 이에 전국 80여개 대학 3,000여 명의 교수와 연구자들이 부당하게 재임용탈락 된 한상권교수를 즉각 원상복직 시키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박원국 이사장은 본인의 복직을 끝내 거부하다, 마침내 학내외 민주세력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97년 10월 10일 전격 해임되었고, 그에 동조하던 구 이사진도 ’97년 12월 3일 교체되었습니다.

박원국 이사장 해임 및 이사진 교체는 부당한 재임용탈락처분에서 연유한 것이므로, 이사진 교체 이후 조만간 복직될 것이라 생각한 본인은 출근투쟁을 중지하고 밀린 연구에 몰두해 왔습니다. 그러나 신임 이사진은 총장이 선출되지 않아 복직 절차를 밟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본인의 복직문제를 총장 선출 이후로 미루었습니다. 그리고 총장이 선출된 지금은 약속대로 복직 절차를 밟는 것이 아니라, 재임용탈락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한답니다. 본인 재임용탈락처분의 부당성은 작년 교육부감사를 통해 이미 명명백백히 밝혀졌습니다. 만일 본인의 재임용탈락이 정당하였다면 교육부가 왜 박원국 이사장을 해임하였겠습니까? 본인의 복직을 완강히 거부하는 구이사진을 무엇 때문에 갈아 치웠겠습니까?

본인의 복직은 이사진 개편과 동시에 합의된 ‘사회적 약속’입니다. 새로 선임된 이사진이‘한상권 교수 원상복직’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새 학기가 시작된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은 것은 유감입니다. 본인의 복직은 우리 사회의 모든 양심세력이 굳게 단결하여 지난 1년간 싸워 얻어낸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 또한 더 이상 학교 측의 조치를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면서 본인에게 강의를 시작해달라고 요청하였으며, 본인은 심사숙고 끝에 강의를 시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본인의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본인은 아직 정식으로 복직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본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학교 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 두 가지가 옳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수강신청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첫째, 학교 측의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처분은 정당하다.
둘째, 한상권 교수 강의는 불법이므로 학교 측의 학점 불인정은 정당하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가 옳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수강신청을 해도 좋습니다.

첫째, 학교 측의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처분은 부당하다.
둘째, 한상권교수의 강의는 정당하므로 학교 측은 우리의 학점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단순히 강의를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측으로부터 학점을 인정받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이제 본인의 강의를 듣고자 하는 학생들과 더불어 ‘98년 1학기 한국사 과목 강의를 시작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98년 3월 10일

한 상 권


  ‘장외강의’ 시간표는 정규수업과 똑 같이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정규수업 시간에 맞추었다. 기독교방송 시사자키 담당 피디가 강의소감을 물었다.

강의실에서 진행하는 정상적인 수업이 아니라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수업을 받겠다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한편으로 갸륵하기도 하고,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감수하면서 강의를 듣는 모습에서 대견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결연한 자세로 수업에 임하는데서 비장함까지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모습인 강의투쟁 소식을 듣고 한겨레가 이 사실을 보도했다.


<사진 5> 재임용탈락교수의 ‘장외수업’ (한겨레 98.3.12,백서 3-2, 528쪽)


                                            재임용탈락교수의 ‘장외수업’

11일 오전 10시 덕성여대 인문사회관 로비에서는 색다른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난해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1년 넘게 복직을 하지 못하고 있는 한상권(44. 사학과) 교수가 ‘로비강의’를 강행한 것이다.

첫 강의 과목명은 ‘한국 최근세사’.

물론 강의를 받아도 학점을 인정받을 수 없는 ‘비정규 수업’이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20명 남짓한 학생들 눈동자는 진지하기만 했다.
한 교수가 1년여 만에 ‘첫 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에게 당부한 것은 ‘당당한 자세’였다. “학점 받기를 포기하고 제 수업에 임하고 있다는 식의 나약한 태도는 버립시다. 우리는 지금 당당하게 정식 수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날 수업을 들은 유민하(22.사학과 3)씨는 “지난해 선생님 수업을 신청했다가 갑작스런 해직 사태로 강의를 들을 수 없었는데 다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첫 수업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노란 프리지어꽃 한 다발이 전달되자, 한 교수의 눈시울에는 금세 물기가 돌았다.
“올해 초 재단 이사진이 바뀌고 다시 여러분과 가까이서 호흡할 수 있기를 무척 기대했는데…, 대학 쪽에서는 끝내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이 수업이 학교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이 함께 노력합시다.”


6.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관선이사 파견을 요구하며 2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총파업을 했던 총학생회는 12월초 구 이사진이 새로운 이사진으로 개편되었을 때 새 이사진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새 이사진이 민주적이고 양심적인 인사로 구성되었으며, 빠른 시일 내에 한상권 교수를 복직시키고 덕성의 민주화를 도와줄 것이라고 교육부와 교수들이 설득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취임 이후 4개월 동안의 이사진의 행동을 보면서, 학생들은 과연 새 이사진이 민주적이고 양심적인 인사들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하였다. 새 이사진이 덕성의 민주화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대표적인 증거로 총장후보추천위에서 민주세력이 미는 후보와 구 재단이 미는 후보가 동일하게 9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가 구 재단 인사를 만장일치로 총장으로 선임하였다(실제는 4대 1이었다. 이사장은 기권하였으며 또 한명의 이사는 교협 추천의 총장 후보로 출마하였기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하면서 만장일치로 하기로 하였다)는 점을 들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사진이 3월 18일로 임기 만료된 민주성향 이사의 후임으로 박원국 전 이사장의 둘째 동생이며 전 덕성여자고등학교 교장 박원택 씨를 이사로 선임하였다는 것이었다. 작년 12월 초 3대 3으로 출발한 이사회가 6개월이 채 안되어 5대 1로 바뀌게 되었다. 박씨 일가가 또다시 이사회를 장악할 판이었다.

  교협 교수들과 학생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며 망연자실하였다. 현 이사회에 이미 박원국 전 이사장의 첫째 동생이 이사로 있는데, 이번에 둘째가 또 다시 이사로 선임되었다는 사실은 박씨 일가가 다시 이사회를 장악했다는 증거이고, 조만간 박원국 전 이사장이 다시 덕성으로 돌아온다는 증거가 아닌가? 어떻게 민주적이고 양심적이라는 인사들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할 수 있는가?

  교육부는 관선이사 파견을 주장하는 덕성 구성원들에게 현 이사진이 관선이사에 준하는 민주적이고 양심적인 인사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득했고 덕성구성원도 그 말을 믿고 사실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현 이사진의 행동을 보면 박원국 전 이사장의 하수인이던 구 이사진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나라 교육행정을 담당하며 가장 정직해야 할 교육부가 교수와 학생들을 속인 것이 아닌가? 새 이사진의 양심과 지성을 믿었던 교수와 학생들은 허탈해 했다.

  1998년 3월 24일, 이사회에서 임기만료로 결원이 된 이사 후임으로 박원택 씨를 만장일치로 선임하여 교육부에 임원취임 승인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교육부는 “신중히 검토하고 있음을 알린다”는 회신만을 보냈을 뿐 박원택 이사 승인을 10개월이나 보류하였다. 교육부의 임원취임승인 보류에 대해, 이번에는 박원국 전 이사장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며 분개하였다.

직ㆍ간접적으로 박원택 이사 승인을 재촉하였으나, 한상권 전 교수 재임용 탈락에 대한 교원징계재심위원회 재심청구가 당연퇴직사유로 각하된 바 있고, 한상권의 재임용탈락이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교육부의 공식견해 발표에도 불구하고 덕성여대 분규의 중심인물이며 합법적으로 재임용 탈락된 한상권 교수의 특채를 박원택 이사 취임승인의 조건으로 내세워 감독청 스스로가 사학법인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였음.(덕성여대 분규에 따른 이문영 이사장 등 이사진 선임 경위/1999.10.14, 박원국) 

교육부가 한상권 교수의 복직을 조건으로 내걸면서 10개월이나 박원택 이사의 임원취임승인을 유보한 데에는 나름대로 까닭이 있었다.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3월 3일 초대 교육부장관으로 이해찬 의원을 임명하였다. 그런데 이해찬 신임교육부장관은 일찍이 덕성민주화운동에 큰 관심을 표명한 바 있었다.

  1990년 박원국 이사장이 개악된 사립학교법을 악용한 첫 케이스로 당시 평교수협의회 소속이었던 성낙돈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을 때, 10월 19일 덕성여대 대운동장에서 성낙돈 교수를 지켜내기 위한 기금마련 공연 [선생님! 물러나지 마세요]가 만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공연에 이해찬 씨와 나중에 17대 대통령이 된 노무현 씨도 참석하여 지지연설을 하였다.(【나의 복직투쟁기 (2)】새 교수님 필요 없다. 한 교수님을 돌려 달라! 참조) 이러한 인연으로 인해 이해찬 교육부장관은 덕성의 사정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 고 있었다.

  총장선거에서 패하여 낙담하고 있었던 교협이 국민의 정부 초대교육부장관에이해찬 의원이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색하였다. 

학내외 민주세력들의 의로운 투쟁을 전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할 무렵 이해찬 의원은 만사를 제쳐두고 저희 대학을 지지 방문하여 학내외 민주세력들에게 성낙돈 교수 원상복직의 당위성과 사학비리 척결을 역설하였습니다.(아마 그 연설내용은 당시 학내사태의 보고에 동분서주했던 학생과장에 의해 기록되어서 박원국 전 이사장에게 보고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학내외 민주세력들과 더불어 공동투쟁결의문을 채택하였습니다. 이해찬 신임교육부장관의 교육개혁의지는 이미 잘 알려진 바지만 위의 예로 미루어 한상권 교수의 원상복직문제를 비롯한 덕성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계시리라 짐작됩니다. 따라서 이해찬 신임교육부장관의 취임과 더불어 그동안 학내 민주세력들이 벌였던 투쟁이 빠른 시일 내에 단단하게 결실 맺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교육부장관의 선방으로 교육부장관의 선방으로 이사회가 완전히 박씨 일가로 넘어가는 최악의 상태는 모면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