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재임용탈락 교수의 ‘장외수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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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용탈락 교수의 ‘장외수업’ (1)

한상권(중세사 2분과)

1. 강한 개혁의지와 탁월한 행정능력을 갖추신 분을
총장으로 모십니다

1997년 12월 22일, 총장선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이사회가 삼청동 용수산에서 열렸다. 안건 논의에 앞서 김계수 이사장이 그동안 교무위원회, 교수협의회, 총학생회, 직원노동조합 대표들과 면담한 결과를 보고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계수 이사장은 덕성여대가 지니고 있는 특수성을 4가지로 요약하였다.

  (1) 교무위원회와 교수협의회의 갈등
(2) 교수회의 기능 필요 및 활성화
(3) 신임이사진에 대한 큰 기대
(4) 총장선출에 대한 지대한 관심
 

  신임 이사장은 덕성여대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계수 이사장은 덕성여대 사태를 독재 권력을 행사해온 박원국씨 일파와 학원민주화를 열망해온 학원 구성원들 사이의 싸움이라기보다, 교수들 간의 세력다툼 정도로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신임 이사진은 총장선출이 덕성여대 분규 수습과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인물을 선출하는 일이므로 교수, 학생, 직원, 동문 모두가 납득할 만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인사가 선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한 총장 선출 방식을 논의하였다.

  총장 선출 방식은 인사권을 가진 재단이 직접 임명하는 방법과 이사회가 구성원의 총장후보자 추천을 받아들여 이들 가운데 선임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그리고 후자는 다시 총장후보자를 직접 투표하는 직선제 추천 방법과 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간선제 추천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사진들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형식을 만들어 주는 추천위원회 구성이 좋을 것 같으며, 총장후보 추천 절차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덕성여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만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 총 인원은 이사회에서 결정하여 19명으로 하였다.

  초빙기간은 연말연시에 공휴일도 있고 하니 여유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1998년 1월 10일까지 보름간 하기로 하였다. 총장후보자 추천원칙이 정해짐에 따라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사장 명의로 일간지에 총장 초빙공고를 냈다.

21세기를 슬기롭게 살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교육인 육성을 교육이념으로 삼고 있는 덕성여자대학교는 강한 개혁의지와 탁월한 행정능력을 갖추고 국제적 시야와 대학에서 행정 경험을 갖추신 분을 제 5대 총장으로 아래와 같이 추가 공모합니다.
(지난번에 서류를 제출하신 분께서는 새로 제출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사회는 1월 중으로 총장을 선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신임 이사장은 “학교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은 총장에게 부여할 것이며, 이사회 권한은 장기적으로 축소하여 학원의 경영에 관한 사안만 책임을 지겠다”고 하였다.

  확실히 신임 김계수 이사장은 박원국 전 이사장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김계수 이사장은 대학구성원인 교수, 학생들을 허심탄회하게 만났고 거기서 분명 박원국 전 이사장과는 다르게 대학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김계수 이사장은  학원민주화 투쟁 기간 요구하였던 사안 즉 민주적 협의체 건설, 한상권 교수 복직, 적립금 312억 원의 사용 등이 모두 총장 선출이 되면 총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하였다. 한상권 교수 복직문제도 이사회가 나서서 대학에 강요하면 총장의 권한을 침해하는 월권이므로 총장을 새로 선출하여 신임 총장에게 제청케 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는 원칙적으로는 옳지만 덕성의 실정에는 맞지 않았다. 덕성사태의 본질을 모르는데서 나온 순진한 생각일 뿐이었다. 학내사태의 심각함을 간과한 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 이사장과 이사진에 대해 교협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2월 26일 교협은 이사진 개편 이후 20여 일이 지나도록 학교의 정상화를 위한 아무런 가시적 조치가 없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학사행정이 과거를 답습하고 있음에 학교의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며, 새 이사들은 학내사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신임 김계수 이사장 이하 이사들이 박원국 전 이사장의 독단과 횡포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심히 우려된다며 다음과 같이충고하였다.

우리 교수들은 새 이사진에게 박원국 전 이사장이 학교법인 덕성학원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통로를 하루빨리 차단할 것을 촉구한다. 다시 말해 지난 6월 실시된 교육부감사에서 불법적인 인사행정의 사례로 지적된 OOO과장 등 재단관계자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이사진이 박원국 전 이사장에게 충성하던 직원들을 그대로 두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신임 이사장 이하 이사들은 대체 무엇 하러 학교법인 덕성학원의 임원에 취임하였단 말인가? 또 새 이사진은 박원국씨가 계속적으로 학사행정에 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 이하 보직 교수들과 과장급 직원들을 교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박원국 전 이사장은 지금도 과장급 직원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보직교수들을 직접 불러 재정상 행정상의 지시를 내린다고 한다.

그러나 교협의 간곡한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계수 이사장은  학내분규를 야기한 총장 직무대리나 보직교수들을 그대로 유임시킨 채 덕성의 문제를 오로지 신임총장선출로만 해결하려는 기존의 태도를 계속 고수하였다. 문제는 새 이사진이 파견되기 전까지 덕성은 정상적으로 운영된 대학이 아니었다라는 점이다. 파행적인 학교운영의 책임은 박원국 전 이사장이 임명한 총장 직무대리와 교무위원 등 보직교수 그리고 재단 사무국장 등에게 있었다.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는 1997년 11월 초 교수협의회 공동대표와 홍보책임자 등 3인의 교수를 업무방해죄로 서울검찰청 북부지청에 고발하였다. 학생집회(97.10.1)에서의 수업거부 선동, 교수휴게실 불법점거, 총장실 무단점거 등이 업무방해죄의 내용이었다.

  12월 초 이사회가 전면개편 된 이후에도 새 총장 선출을 지연시키면서 계속 총장 직무대리 지위를 유지해 온 권순경 교수는 학생등록금으로 이루어진 교비에서 500만원을 지출하여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집요한 노력 끝에 결국 마침내 2월 9일 3인의 교수가 기소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징계절차를 밟기 위해 북부지청에 기소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는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자에게는 교원 직위를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사립학교법 조항(58조)을 근거로 들어 이사장에게 세 교수의 교수 직위해제를 요구하였다.

  검찰의 기소사실이 알려지자 총학생회는 65일 동안 5%도 안 되는 수업만이 진행된 채, 유급까지 감행한 수업거부가 어떻게 교수님들의 선동에 의한 것일 수 있냐고 반박하며, 덕성의 민주화에 앞장선 세 교수를 위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무죄 탄원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학생들은 2월 12일과 13일에 있는 1학기 수강신청을 거부하고 나섰다.

  교협 또한 덕성의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동료교수들을 법정에 세우려는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를 즉시 직위해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사회가 총장선출 문제를 올바로 풀려면 제일 먼저 학내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를 해임시켰어야만 했다.

  보직교수들 또한 덕성이 65일의 수업거부를 하도록 비민주적인 학사행정을 진행한 장본인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진이 계속적으로 보직교수의 의견을 듣는 것은 학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는 일이었다. 학교를 안정화 시키려면 더 이상 학사행정이 이들에 의해 진행되어서는 안 되었다. 당연히 보직교수를 전면 교체했어야만 했다.

  재단 사무국장 또한 문제였다. 새 이사진이 재단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무국장으로부터 사표를 받아야만 했다. 재단 사무국장은 이사장과 가장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덕성의 재단 사무국장 또한 박원국 전 이사장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다.

  사무국장뿐만 아니라 재단고문, 비서실장 모두 박원국 전 이사장의 충실한 수족이었다. 이들은 박원국 전 이사장과 가장 친분이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음으로 박원국 이사장은 해임되었어도 여전히 재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적연결망을 가지고 있었다.

  한성대의 경우 1997년 12월 중순에 관선이사가 파견되어 총장과 보직교수가 이미 전면적으로 교체되었고 재단사무국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반면 덕성여대는 이사진 개편 이후에도 누구 하나 반성이나 사과 없이 어엿하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구세력은 여전히 큰 소리 땅땅 치면서 지금껏 유지해온 지위를 악용하여 박원국 이사장의 사주 하에 이사회와 대학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김계수 이사장이 새로 선임되었지만 그를 이사장으로 여기는 보직교수나 직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교협 교수와 학생들은 이사진까지 개편된 뒤에도 덕성의 상황은 1997년 2월 28일 그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점차 느끼기 시작하였다. 교협 교수와 학생들이 유급을 무릅쓰고 65일간의 수업거부 투쟁을 벌였던 까닭은 박원국 전 이사장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난 인사로 이사진을 교체한 후, 민주적인 인물로 새 총장을 뽑아 덕성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염원 때문이었다. 하지만 12월 3일개편된 이사진은 이러한 구성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2. 교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시행세칙안을
만들어 이사회에 제출하기 바랍니다

 1988년 1월 10일 총장 후보 서류 제출이 마감되었다. 기존 응모자와 합하여 총 17명이 지원하였다. 1월 13일 이사회는「제5대 총장후보추천규정」을 대학에 전달하면서 총장후보 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1월 21일까지 5인의 총장후보를 선출하여 이사회에 올릴 것을 요청하였다.

  재단 이사회가 총장후보 선출을 위한 추천규정을 만들어 대학에 내려 보내면서 총장후보 추천을 요청한 것은 모든 학내구성원들의 참여하에 민주적 절차에 따라 새 총장을 선출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와 교무위원들은 모든 학내구성원들을 소외시키고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시행세칙을 밀실에서 만들음으로써 민주적 총장선출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였다.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는 이사회가 대학에 내려 보낸 공문을 마감 시한인 20일까지 학내의 어떤 구성단체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밀리에 교무위원회에서 추천규정을 실현하기 위한 시행세칙을 만들도록 하였다. 권순경 직무대리와 교무위원들이 만든 시행세칙은 다음 두 가지 면에서 비상식과 부도덕성의 압권이었다.

  하나는 시행세칙을 만든 주체가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와 보직 교수들이라는 점이었다. 원래 이사회가 대학에 내려 보낸 총장후보 추천규정의 정신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새 총장을 선출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총장후보 추천위원회의 구성과 후보선출을 위한 시행세칙은 학원민주화 투쟁에 참여한 모든 구성단체들(교수, 학생, 직원)의 합의에 의거하여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만들어야 마땅하였다.

  그럼에도 자기 자신이 총장 공채에 응모한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는 학내 제 단체들을 소외시킨 채, 구 재단과의 협의 하에 자신의 보좌기관인 교무위원회에서 시행세칙을 만들게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행세칙이 민주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당사자 배제원칙(제척사유)에도 위배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따라 총장을 선출함으로써 덕성을 정상화시키려는 법인 이사회의 총장후보 추천 규정의 정신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총장 후보 추천위원회 19인(교수대표 12, 직원노조 대표 1, 비 노조 대표 1, 학생대표 2, 동문대표 2, 법인직원 1)구성을 위한 규정에서 민주세력을 철저히 배제하였다는 점이었다.

대학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총장후보 추천인단 구성을 통한 총장선출이 진일보한 총장선출 방식인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사회에서 규정한 총장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이 덕성에서 민주화를 가로막고 박원국 전 이사장의 명령만을 맹목적으로 수행한 세력에 지나친 비중과 배려를 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몇 안 되는 법인 직원에 1표, 비 노조직원에 1표, 회장단의 어용성이 줄곧 문제가 되어왔던 총동창회에 2표를 할애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교수 대표 선출 있어서 교수 수가 월등히 적은 단과대학들 약대와 예대에도 각각 2인의 대표를 선출하게 하는 것은 형평과 대표성의 기준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아예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는 12인의 교수 대표(각 단과대학별 2인)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단과대 학장들을 당연직으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단과대 학장들은 박원국 전 이사장이 임명한 이들로 학내분규를 야기한 책임을 져야 할 인물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동문 대표 2인도 모교의 민주화를 위해 애써온 민주동문회를 배제하고 박원국 전 이사장을 지지하고 있는 현 동창회서 선출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추천위원회 구성의 의미 자체를 박탈하였다.

  학생들이 기말고사와 리포트 작성에 정신이 없는 기회를 틈타 총장 직무대리와 보직교수들은 자신들의 의도대로 총장선출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비상식적인 일들을 끊임없이 자행하였다. 그 결과 급기야는 총장후보 선출 시행세칙마저 구성원의 의사를 배체한 채, 교무위원회에서 독단적으로 만들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회는 ‘대화와 화합’만을 외칠 뿐 이들의 비민주적인 행동에 대해 계속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와 교무위원들이 밀실에서 총장후보 추천규정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교협은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와 보직교수들의 개입을 차단하지 않고는 결코 공정한 방법으로 총장을 선출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였다.


<사진 1> 충북대ㆍ덕성여대 총장선출 문제로 시끌(교수신문 129호, 98.2.16, 백서 3-2, 520쪽)

그러나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와 보직교수들은「교직원 여러분께 알리는 말씀」이라는 글에서 교협의 주장을 반박하고 시행세칙의 적법성을 강조하였다. 이 글에서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는 자기가 “혼신의 노력”을 한 결과 학내가 정상화되었다며 자신의 대학경영능력을 내세웠다. 그리고 시행세칙의 작성주체는 당연히 교무위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와 보직교수들은 학내 구성원들의 비판과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들이 만든 시행세칙에 따라 총장후보 추천위원회 구성 강행을 시도하였다.

  급기야 이사장이 나서서 교협 교수들과 보직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2월 2일까지 양측이 만나 협의하도록 함으로써 중재를 도모하였다. 총장 선출에서 어느 한 쪽도 배제되지 않게 하려는 배려에서 나온 중재노력이었다. 그러나 보직자들은 2월 2일의 약속을 연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파기하여 협의과정을 지켜보려고 학교를 방문한 이사장을 헛걸음하게 만들었다.

  김계수 이사장은 2월 3일 이사회를 열어 대학이 올린「총장후보자 추천 시행세칙(안)」을 심의하고 그 결과를 통지하였다.

1. 총창후보추천 규정의 제정 취지가 교내 분규의 발생을 방지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총장의 추천을 하게 함으로써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교내 분쟁을 수습코자 함에 있고 그 이념에 따라 위 추천 규정의 시행을 위한 시행세칙의 제정을 학교에 위임한 바 있으나 위 시행세칙 내용이 전시 규정 취지에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사료되어 이사장은 그 세칙내용의 시정을 지시하고 그 세칙에 의한 집행의 중지를 지시한 바 있다.

2. 대학은 위 지시에 위반하여 총장후보 추천을 한 바 있으나 이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다시 대학이 우선 공정한 방법으로 후보추천이 되도록 교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시행세칙안을 만들어 1998.2.13까지 이사장에게 제출케 한다.

이사회는 대학이 올린「총장후보자 추천 시행세칙(안)」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2월 13일까지 학내구성원의 의사를 수렴하여 시행세칙을 다시 제정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는 민주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미 한 번 거부된 시행세칙을 그대로 다시 이사회에 보고하였다. 새 총장의 선출을 막으려는 명백한 사보타지 행위이며 이사회의 권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이 모든 행동의 배후에는 박원국 전 이사장이 있었다. 이사진 개편 이후 박원국전 이사장의 학교에 대한 간섭은 더욱 노골적이고 집요했다. 교협이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와 보직교수들은 현 이사회가 아니라 박원국 전 이사장의 지시에 따라 학사행정을 처리하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다고 폭로하였다. 그들은 아직도 박원국 전 이사장이 투숙하고 있는 호텔에서 회의를 하고, 일상적인 행정은 물론이고 건축사업과 예산편성 등 크고 작은 업무에 대하여 일일이 지시를 받고 있는데, 이는 학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어떤 반칙을 범해도 이사회는 묵묵부답이었다. 기껏해야 이미 폐기된 문건을 다시 올린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에게 경고장 한 장 달랑 내 보냈을 뿐이었다. 이사회는 모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원칙하에 중립을 표방하였지만 그 원칙은 힘 있는 자를 변호하는 것이었다.

  중립을 표방하면서 학내분규에 수수방관하는 이사진들의 태도는 결국 박원국 전 이사장의 학내 개입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기력한 이사회 모습을 보면서 교협 교수들과 총학생회, 직원노조 등 덕성구성원들은 왜 싸웠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65일간의 수업거부 투쟁은 아무런 정당성을 보상받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탄압만 받을 뿐이었다.

  폐기한 시행세칙이 거듭 올라오자, 이사회가 하는 수없이 총장후보자추천규정 및 총장후보자추천시행세칙을 제정하여 대학에 내려 보냈다. 그리고 이 규정에 따라 2월 말에 가서야 총장선거가 이루어졌다. 결국 이사회의 우유부단함으로 말미암아 1월 말이면 끝날 총장선임이 한 달여 가량이나 더 지연되었다.

  새로 구성된 이사회는 빠른 시일 내에 민주적인 총장을 선출하여 덕성여자대학교를 정상화 시켰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구세력의 지연작전에 휘말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무기력한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결국 김계수 이사장은 구세력의 손에 꼼짝없이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다.
3. 총장 결재는 학교 밖에서

2월 25일 이사회는 총장후보자추천인단에서 5명의 후보자를 선출하였음을 보고받고 다음날 열리는 17차 이사회에서 덕성여대 5대 총장을 선임하기로 의결하였다. 26일 이사회가 열렸다.

심의 결과 격론 끝에 총장후보자 추천인단에서 추천한 5명의 후보자 중에서 이강혁 전 외국어대 총장을 참석자 전원의 만장일치로 덕성여대 제5대 총장으로 선임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사장도 외대 출신 총장도 외대 출신이었다. “덕성이 외대 식민지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강혁 총장은 박원국 이사장 주도로 이루어진 총장 초빙 공고에 응모한 후보였다. 1997년 10월 박원국 이사장이 교육부를 방문하였을 때 대학교육정책관 김 아무개 국장이 “덕성학원의 이사진용이 너무 연로해서 재단 일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함으로 50대로 교체하는 것이 좋겠고, 권순경 총장 직무대리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학교분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므로 유능한 총장을 공모하여 문제 교수를 단호히 대처하십시오. 그러면 교육부에서도 강력히 뒷받침하겠습니다”라고 박 이사장에게 충고하였다.

이에 박원국 이사장은 이사회에 교육부의 뜻을 전하고 총장 선임 절차를 밟았다. 10월 9일 일간지에 총장 초빙 공고를 내고 한 달 뒤인 11월 7일 마감한 결과 응모자가 열 명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박원국 이사장이 해임된 이후이며, 교협, 총학, 노조, 조교협의회 등이 총장선출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 터이라 이사회가 총장 선임절차를 진행할 수 없었다.

  개편된 이사진이 총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려 하자 교협 등 학내 4개 단체는 박원국 이사장이 낸 총장 초빙 공고에 응모한 후보자를 배제시켜 달라고 요청하였다. 박원국 씨는 온갖 전횡을 저지르다 운영자의 자리에서 쫒겨난 인물인데, 그런 인물이 공모하는데 응모한 인사를 총장으로 선임한다면 덕성구성원뿐 아니라 덕성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아무도 인정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이사장이 전임 이사회에서 공모한 분들을 제외하고 추가로 공모하여 그분들만 총장후보자로 심의할 것인가, 아니면 총장후보자를 추가로 공모한 후 당초 응모한 열 분과 병합하여 총장후보자를 심의할 것인가에 대하여 논의해달라고 이사회에 요청하였다.

그 결과 당초 공모자 열 분을 배제하자는 의견은 전임 이사장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문제이며, 전임 이사장과 이사진에서 공모한 열 분 외에 총장후보자를 추가로 공모하는 것은 이러한 점을 충분히 배려해 준 것이며 ,공고의 신뢰성 및 이사회의 공신력을 고려할 때 배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여, 기존 응모자 10명과 추가 공고를 통하여 응모한 인사를 병합하여 총장후보자를 심사하기로 결정하였다.

  교협 등 학내 4개 단체가 공동으로 성명서를 내고, “현 이사진이 박원국 씨의 주도로 이루어진 총장 공채에 응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총장 선임을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요청하였으나,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이강혁 후보를 덕성여대 5대 총장으로 선임하였다.

  총장선거를 둘러싼 3개월의 진통 끝에 구 재단 측 인사가 신임총장으로 선출되자 학생들이 크게 반발하였다. 졸업식이 있는 2월 27일, 재학생대책위원회가 “우리의 투쟁이 무위로 돌아가려는 순간”이라며 다급한 목소리로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렸다.

신임총장에 이강혁 전 외대총장이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이 인간 지난 11월 박원국이 낸 공채 공고에 응모하여 우리의 투쟁을 힘들게 만들었고, 박원국 일당들의 엄호 지지 하에 결국 총장직을 거머쥐었습니다.
우리의 대안!
총장실 점거농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지금처럼의 수준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총장실 점거를-특히나 토~일 요일에는 더더욱-지속적으로 사수할  것이며, 우리는, 한상권 교수님의 복직, 총학생회 인정-학생회비 일괄납부 부활! etc, 어용보직교수 해임, 학부제 철폐 등등을 걸어 위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총장실 점거농성을 절대 사수해야합니다.

학생들은 총장선거에서 패배한 이상 총장실을 계속 점거하는 것으로 위협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98년 새 학기 들어서면서 총장실 점거 농성을 더욱 강화하였다. 학생들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총장실 점거농성을 하는 바람에 이강혁 총장은 총장실에서 집무를 볼 수 없었다.

  학생들이 총장실 점거투쟁을 계속 벌이자 이강혁 총장은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와의 면담에서 “총장집무실이 없어서 업무를 볼 수 없고 따라서 한상권 교수 복직 문제를 비롯해서 여타 학생들의 요구조건들을 당장 해결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강혁 총장은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농성으로 직무를 볼 곳이 없다는 이유로 1주일이 넘게 학교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사진 2> “덕성여대 새 총장 보름째 출근 못해/학생들 총장실 점거로” (한국일보, 1998.4.2, 백서 3-2, 535쪽)

[총장 결재는 학교 밖에서]

  덕성여대 이강혁(李康爀, 63) 신임총장이 지난해 2월 재임용에서 탈락한 한상권(韓相權) 전 사학과 교수의 복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 농성으로 취임한지 보름이 지나도록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 학교 관계자들에 따르면 10일 취임한 이 총장은 처음에는 인문대 대학원장실을 임시 사무실로 정해 출근했으나 15일부터는 오전은 청량리에 있는 개인연구실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오후에는 학교 인근 다방 등에서 교직원을 만나 농성사태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결재서류를 학교 밖으로 들고 나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으며 98년도 교수공채, 대학평가서 제출 등 주요정책결정업무는 공백상태다. 학생들은 한교수의 복직을 요구하며 117일째 총장실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

언론보도로 망신살이 뻗친 이강혁 총장은 종로 운니동 캠퍼스에 총장실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그 곳으로 출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