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제 저는 떳떳한 F학점을 받겠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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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는 떳떳한 F학점을 받겠습니다!!! (2)

한상권(중세사 2분과)

7. 덕성의 한 사람으로서 그 때 당신은 무엇을 했소?

투쟁이 길어지고 주위의 관심도 시들어가자, 학생들은 끝이 안 나는 싸움에 점점 더 지치고 불안해했다. 투쟁이 장기화 될수록 학생들의 관심은 점점 줄어가고 참여도가 떨어져가고 있었다. 함께 하던 친구들이 점점 줄어들자 불안은 더욱 커져갔다.

  오랜 수업거부에 대한 불안에 기름 붇는 격으로 학생들을 불안에 빠지게 만들고, 집으로부터의 통제를 받게 한 것은 두툼하게 집으로 배달된 ‘괴문서’였다. ‘수업을 받는 학생 일동’과 ‘덕성에 관심 있는 분들께’라는 학생과 교수가 함께 논의해서 작성한 듯한 괴문서는 많은 의문을 품게 하였다. 도대체 그들의 배후는 누구인가??

  학생들은 자신의 목표와 요구에 대해 고민하는 과별 분임토론을 하고 오천의 단결된 힘으로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높이는 결의대회를 진행하였다. 학생들은 누군가가 “1997년 10월, 덕성의 한 사람으로서 그 때 당신은 무엇을 했소?”하고 물을 때, 당당히 큰 목소리로 “덕성의 민주화를 위해 한몫했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고 모든 노력을 했다. 학생들은 시일이 오래가면서 지치고 힘들었지만, 이건 다른 누구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기 때문에 “외면하지 만은 말아야 겠다” “이왕 시작한 것이니까 끝은 보아야 겠다”는 생각에서 꾸준히 집회에 참여하였다.

  10월 29일, ‘덕성 민주화를 위한 대토론회’가 학생회관 112호에서 열렸다. 청중으로 50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었고, 학생들이 미리 적어놓은 질문쪽지들에 대해 교협 교수들과 중운위 학생들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관선이사 파견에 대한 의견과 함께 학생들 사이에 불거져 나오고 있는 유급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날 오전에는 경실련, 참여연대 등의 “덕성여대 사태 해결을 위한 각계 원로 기자회견”이 있었다. 김창국(전서울지방변호사회장,참여연대공동대표), 주종환(동국대명예교수), 김성수(전성공회대주교), 박상증(전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참여연대공동대표), 김중배(전한겨레신문사장,참여연대공동대표), 강만길(고려대사학과교수), 유현석(변호사,경실련공동대표), 김윤환(고려대명예교수,경실련공동대표), 이설조(불국사주지스님,경실련공동대표) 등이 기자회견에 참여하여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10월 30일, 덕성여대 노동조합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노동조합은 이날 10시 30분 민주동산에서 총파업 출범 선언식을 가졌다. ‘관선이사파견’ 어깨띠와 “쟁취” 머리끈을 동여맨 조합원들은 구호와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면서 학교 안을 행진한 후 행정동 3층 대회의실에서 본격적인 쟁의를 개시했다.

이로써 학내의 모든 행정업무는 마비가 되었고, 드디어 덕성의 교수, 학생, 직원 등 삼주체가 덕성 민주화 투쟁에 본격적으로 걸음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이튿날 학생 1,000여 명이 광화문에 모여 집회를 가졌다.


<사진 5> “한상권교수 복직” 덕성여대 1천명 집회 (한겨레, 11.1, 백서 3-2, 468쪽)

광화문 집회는 싸우는 서로서로에게 큰 힘이 되는 자리였다. 추운 날씨, 총파업 한 달째임에도 아직 식지 않은 덕성인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자리이기도 했다. 오후 2시 광화문 동화 빌딩 앞. 날씨가 정말 쌀쌀 했다. 모두들 바닥에 않아 바들바들 떨면서도 구호하나 주먹질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집회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사진 6> 광화문 집회 (동화빌딩앞) 

여전히 시민들은 광화문 거리로 뛰쳐나온 덕성여대생들에게 호기심 많은 눈길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것에 안타까워하였다. 교협 대표 교수와 학생대표가 항의방문단을 결성하여 교육부에 들어가 박원국 이사장 임원 취임승인 취소 후 남은 이사들에 대한 경고가 어떻게 된 것인지, 교육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덕성 인들의 분노를 전달하고 돌아왔다,

교육부 면담 결과를 보고하는 발언에 힘 받은 덕성인들 다시 한 번 교육부와 광화문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마지막으로 민교협에서 격려 발언을 해주었다. 근엄한 목소리의 유초하 민교협의장의 발언이 이어지자 다들 막판 흩어지는 분위기에도 마이크 앞으로 집중해서 듣고, 각자 바쁜 일정 속에서도 덕성여대를 위해 함께 발 벗고 나서 주는 데 크나큰 고마움을 느꼈다. 집회가 끝나고 단대별로 실천투쟁이 있었다.

어느덧 10월도 다 가버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덕성의 캠퍼스는 을씨년스러웠다. 과대표들이 과별토론회를 끝마친 후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들에게 편지를 썼다.

  벌써 낙엽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숙제다 취업이다 해서 정신이 없을 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보다는 전산인들, 그리고 5천 덕성 인들은 한 자리에 모여 어용 총장 사퇴와  민주적 관선이사의 파견, 민주적 협의체 건설, 정말 중요한 한 교수님 즉각 복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정말 덕성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기에 나의 대학이 더 이상 동토의 왕국이라고 불리지 않기를 원하기에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어느덧 무기한 총파업이 시작된 지 30일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의 시간들은 300일을 산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많은 실천투쟁과 교내ㆍ외 집회를 가지면서 많은 친구들이 지쳐갔습니다. 그러나 그간 우리가 함께 하는 모습 속에서 박원국 이사장의 승인 취소, 전면 학부제 철폐, 이사진의 개편 등 수 많은 성과들을 얻어냈습니다. 그런 성과들 중에서 무엇보다 큰 것은 학자(학원자주화 운동)을 하면서 덕성에 대한 자부심과 전산인, 덕성인의 하나 됨이었습니다. 때때로 괴문서가 날라 오고 어용이라 불리는 교수님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정말로 옳은 길을 가야한다는 믿음으로 함께 하는 전산 친구들의 모습. 그 모습들은 정말로 자랑스러웠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은 남아 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지쳐가면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많은 실망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학교에 나오지 않더라도 그 친구들이 언제나 우리를 지지한다는 것을. 우리는 끝까지 갈 것입니다. 교수님을 그리고 옆의 친구를 믿기에…

수업을 받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마음들이 크면 클수록 더욱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 길에 언제나 함께하는 전산인 친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산학과 학생회장 94학번 김수예>
8. 이제 저는 떳떳한 F학점을 받겠습니다!!!

11월이 되면서 “계속해서 수업거부를 하게 되면 학사 경고 또는 F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하며 많은 학생들이 총파업이 지속되는 것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지쳐가고 있었다. 일부 교수들은 학점을 학생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여 F학점을 운운하면서 보강도 못해주겠다고 학생들을 겁주고 있었다.

  총학생회와 과 학생회가 나서서 “F는 12월말에 주게 되는 데 조금 있으면 학교가 정상화된다. 학교가 정상화 되면 양심적인 이사장과 총장이 오게 될 것이고, 오는 즉시 수업 보충에 필요한 정상화 지침을 마련할 것이다.” “덕성여대가 지금까지 수업거부를 많이 했고 최고 40일까지 한 적도 있지만 지금까지 수업에 참가하지 않은 학생들이 F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는 다른 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설득하여도, 학생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불안감에 다시 수업을 듣는 것이, 수업을 들으면서 투쟁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었고, 이미 몇몇 학과는 수업에 복귀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결국 학생들은 학년별로 모여 토론을 통해 수업거부 강행여부를 결정하였고, 계속 투쟁을 결의하였을 경우 그 결과를 인터넷에 올렸다.

 


 제  목 : 투표결과
올린이 : with성원(문성원)    97/11/18 19:35    읽음 :  41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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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상학과 96학번은 오늘 아침 10시부터 모여서 5시 넘게까지 회의 끝에 투표결과가…계속 투쟁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학과에서는 지금 우리 학번만이 계속 수업을 거부하기로 나와서 지금 아주 어려운 상황이 되었지만…그래도 오늘 서로 많은 얘기 끝에 나온 결정입니다. 지금 서로 정말 힘들고 그렇지만 지금까지 싸워온 이유를 생각하면 지금에 와서 관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힘들겠지만 함께 투쟁하는 덕성인 여러분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예대인 여러분 지금 정말 가장 힘든 시기에 있다는 거 압니다. 저희과도 그렇구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흔들린다면 다른 단대들 매우 힘들 것입니다. 예대인들 누가 그러더군요. 진정한 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진과 선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구요. 전 그 말에 동감합니다. 우리 지금 매우 힘들고 막막하지만 서로 조금만 힘내고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대인 여러분 우리 힘내서 덕성인으로서 함께 이 일 헤쳐 나갔음 좋겠습니다.


 

  사학과의 경우 10월 13일 임시학생회에서 무기한 수업거부를 결의하였으나, 수업을 하려는 교수와 들으려는 학생들이 있었으므로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임시학생회는 사학과에서 다음 수업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였다.

학년

과목

정원

출석인원

 

4학년

동양사 특강

5명

5명

3학년

동양 최근세사

약 35명

약 10명

3학년

한국사 강독

약 17명

약 10명

3학년

서양사상사

약 30명

약 10명

대다수의 사학과 학생들은 수업 진행을 강력 반대하였으나, 임시학생회는 소수인 수업 참가자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들을 막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출석체크 등의 무언의 압력이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사학과 학생들을 위협하였다. 이는 명백히 소수의 수업참가자가 다수의 수업 거부자들의-특히, 한국사 강독의 경우 소수만이 수업을 거부하고 있기에 더욱 위기감을 느꼈다-수업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사학과 학생들은 수업을 막으려 하였으나, 이들은 계속 수업에 들어갔다.

  동요하는 학생들을 다잡기 위해 임시학생회장 손효진이 단식에 돌입하였다.


<사진 7> 이제 저는 떳떳한 F학점을 받겠습니다!!! (백서 3-1, 537쪽)


                       이제 저는 떳떳한 F학점을 받겠습니다!!!

그동안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투쟁하신 사학인 여러분!
저는 지금 지난 3월 한상권 교수님께서 재임용 탈락되면서 시작된 우리의 투쟁을 한번 되돌아보았습니다. 저희 사학과가 다른 과보다 더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총파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우리는 정말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총파업을 시작하면서 우리 과는 또 하나의 커다란 벽에 부딪쳤습니다. 바로 수업에 들어가는 학생들과, 수업을 강행하는 교수라는 벽입니다. 95학번의 경우 동양사와 한국사 강독은 이미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동양사의 경우 보충 수업이 없다는 말까지 들은 상태입니다. 이제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는 사학과 95학번의 경우 동양사라는 과목은 수업에 들어가 학점을 따느냐 아니면 끝까지 양심을 지켜 F학점을 받느냐 하는 선택밖에는 남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상권 교수님의 복직을 위해 오천 덕성인과 함께 총파업을 결의하였고, 이제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한교수님의 복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때, 95학번들은 자신의 양심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보충수업은 하지 않을 것이므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라고 하며 수업을 강행하시는 교수님 앞에서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수업에 들어가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이 더욱 힘차게 투쟁해야 하는 것인가?

저도 공부하는 학생이기에 이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제 뜻을 밝히고자 합니다. 제가 수업에 들어간다면 당장의 이익을 얻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인해 저는 평생 ‘그때 왜 나는 나의 양심과 도덕성을 저버리면서까지 학점을 받았을까’라는 후회를 할 것입니다. 부끄러운 A를 받기보다는 떳떳한 F를 받겠습니다.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암울헀던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밝게 빛나는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유신타도, 군사독재철폐, 민주화를 외치던 선배들이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던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리고 가까이에 계신 한상권 교수님 역시 교수님 개인을 위해서였다면 벌써 다른 학교로 출근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덕성의 민주화를 위해서 저희와 함께 열심히 투쟁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 과연 어떤 사람이 더 당당하게 자신을 말할 수 있을까요?

협박이나 타협에 의해서 억지로 들어간 수업에서 제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강의실 밖에서 책에서 배울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믿음, 사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소중함을 말입니다. 지금 당장 F를 받는다 해도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우리가 승리로 이끈 멋진 학교에서 지금 함께한 많은 사람들과 즐겁게 공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가는 길은 역사입니다. 항상 처음의 마음으로 옆에서 힘들어하는 동지를 생각하며 끝까지 함께 합시다!!

 1997년 11월 5일
한 교수님 복직, 이사진개편, 민주적 협의체 건설을 위한 단식 2일째 날
사학과 임시학생회장 손효진


  플라자에 올라온 글을 보고 중학교 선생이 메일을 보냈다,

그랬었군요…한교수님 얘기는 예전에 얼핏 들었다가 기억에서 지워졌었는데, 아직 해결되지 않았네요. 떳떳한 F… 훌륭한 생각입니다. 저도 실은 비슷한 과정을 통해 F를 줄줄이 받아본 경험이 있습니다만…
결코 부끄럽지도 않고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하죠.
추운 날씨에 힘들텐데, 감기 조심하고 건강관리 잘 하시길…
뜻하시는 바를 꼭 이루기 빕니다.~!
서울 가산중학교 교사 나우철이 임시학생회장님께 드립니다.

9.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정말 목숨 걸고 투쟁합시다

12월이 되었다. 60여일의 투쟁을 전개하면서, 눈에 보이는 투쟁 대오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학생들이 지쳐가고 있었다. 많은 말들이 나왔다. “총파업투쟁, 시험거부, 레포트거부, 점거농성, 단식투쟁, 쉼 없는 실천투쟁 등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젠 수업에 들어가고 싶다” 등등. 수업을 듣지 못하는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었고 끝이 안 보이는 투쟁에 힘겨워 하고 있었다.

  투쟁의 정당성은 인정하지만,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지치자 쉬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였다.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살포를 통한 용공조작을 비롯하여 끊임없는 학교 측의 방해ㆍ 와해 공작이 학생들을 분열시키고 있었다. 총학생회가 “이번 한 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정말 목숨 걸고 투쟁합시다. 그래도 재단이, 교육부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자퇴도 불사하고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세워봅시다.”며 학생들을 독려하였다.

조교협의회도 성명서를 통해 우리 조교들은 우리의 요구가 실현될 때까지 후배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라며 거들고 나섰다. 조교협의회는 10월 7일 조교들이 모여 “졸업생으로서, 그리고 학교에 몸담고 있는 조교로서 우리는 학교의 사태를 보면서 침통함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결성한 조직이었다. 학원자주화투쟁 기간 동안 조교협의회는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 투쟁의 오류를 지적하고 시정하여 주었다.

  총학생회에 대해서는 구호의 난립을 조정하는 일이 시급하며 선창 구호를 한상권 교수님 복직으로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또한 특수한 문제를 지나치게 보편화 시키려는 전술전략을 시급히 수정해야 한다고 충고하였다.

  즉 한상권 교수님 복직투쟁을 대선자금을 고리로 한 김영삼 정권 퇴진으로 비화시키거나 사립학교법 철폐 투쟁으로 비화시키는 것은 잘못이며, 교육부는 우리의 견제대상일 뿐이므로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였다. 또한 교협에 대해서도 공식 결정된 사항이 아닌 것은 학우 대중 앞에서 함부로 언급하지 말 것, 투쟁 종결 시한에 대해서 성급히 언급하지 말 것, 학우대중도 투쟁의 기본주체임을 분명히 해둘 것 등을 주문하였다.

  교협에서도 “유급 시한이 다가옴에 따라 교육부가 전대미문의 대규모 유급사태를 막기 위해 이사진 구성에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만약 학생들이 유급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전원 교수직을 사퇴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12월 1일(월) 아침 8시부터 교문 앞에 집결하여 침묵시위를 벌였다. 학생들도 학교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덕성 인이 아닌 떳떳이 자랑할 수 있는 덕성 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은 수업 받을 때가 아니라며 버텼다.

  학생들은 덕성이 민주적이고 대학다운 대학이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것이고 이 땅에 올바른 교육을 세워내는 발판이 된다고 하였다. 또한 교육이라는 것이 강의실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을 때, 우리의 총파업 투쟁 또한 우리의 교육권을 따내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창조적인 교육일 수 있다며 서로를 독려하였다.

12월 4일(목), 두 달이 넘는 수업거부 투쟁 끝에 마침내 이사진이 개편되었다.


<사진 8> 덕성여대 사태 해결전망, 재단쪽 이사진 전면교체 (한겨레 97.12.5, 백서 3-2, 500쪽)

  총학생회가 그간의 정황을 학생들에게 보고하였다.

  지난 주 토요일(11.29), 교육부는 재단에 다음 주 월요일(12.1)까지 수업을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모종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주말부터 재단ㆍ학교 측의 유급 협박과 대오를 분열시키기 위해 방해공작들이 극에 달했던 것입니다. 허나, 5천의 힘으로 만들어냈던 총파업 사수투쟁은 그들의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12월 2일, 유급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투쟁의 결의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급해진 교육부는 박원국 전 이사장을 불러 들였고 12월 3일 덕성은 이사진 개편이라는 역사적 성과를 쟁취하게 되었습니다. 5천이 지지했기에, 5천이 만들어냈기에 가능했던 투쟁이요, 승리입니다.…

총학생회는 박원국 전이사장이 드디어 5천 덕성 인에게 무릎을 꿇었으며, 두 달이 넘도록 끊임없이 피어올랐던 5천 덕성의 불꽃이 이를 가능케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12월 4일 이사진 개편으로 구세력이 완전히 패퇴한 것은 아니었다. 교육부는 10월 10일 박원국의 이사겸 이사장 임원취임승인을 취소하면서 나머지 이사 전원에게 다음 내용의 경고를 내린바 있었다.

또한 이사 겸 이사장에 대한 임원취임승인의 취소 조치 이후 현 상황이 지속됨으로써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할 경우 사립학교법에 따라 이사 전원에 대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임을 첨언하오니 유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학 81420-1155).

학생들은 무기한 수업거부를 결의하고 행정동 점거 철야농성 하고 있었으며, 교수들 역시 10월 11일부터 총장실에서 철야농성을 하고 있었으며, 노동조합도 무노동 무임금을 무릅쓰고 10월 30일 파업에 돌입하였다. 이미 11월부터 덕성여대는 학내 전 구성원의 총파업으로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었다.

  교육부가 현 상황을 종식시키고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초 약속한대로 사립학교법에 따라 이사 전원에 대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기존이사 전원을 해임시키고 관선이사를 파견하는 것이다. 덕성여대 구성원이 관선이사 파송을 간절히 바라는 까닭은 박원국 전이사장의 영향력을 영원히 배제할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기존 이사진 전원은 박동서 임시이사장에게 사표를 낸 상태였다. 실정이 이러한데도 교육부는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관선이사 파송을 주저하고 있었다.

사립대학의 반발로 관선이사 파견이 부담스러우면 이사진 전원을 개편하는 해결방안이 있었다. 교육부가 관선이사 파견 대신 기존 이사진을 개편하는 방향으로 덕성사태 해결의 가닥을 잡자, 교협도 이에 동의하였다. 문제는 어떤 인물로 교체하느냐에 있었다. 교협은 교육자적 식견을 갖춘 이사진 명단을 교육부에 제출하면서, 최소한 신임 이사진의 과반수와 이사장만큼은 교협이 추천한 인물로 선임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장기적인 수업 결손에 따른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내린 대승적인 결단이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사진개편 시안을 이미 마련해 놓고 차일피일 시간을 끌고 있었다. 더욱이 교협 교수들과 학생들이 교체해줄 것을 요구한 친 재단측 성향의 인사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교협이 추천한 인사들만 교체하려고 의사를 타진하고 있었다. 교육부는 관선이사파견 요청은 물론, 이사진개편 조차 교수협의회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친 재단 성향의 인물로 이사진을 개편하려는 교육부의 기도에 대해, 교협 교수들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끼면서 극도로 분노하여 단식으로 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9> 법인 일방적 이사개편 강행태세… 교수들 단식으로 맞서 (교수신문 125호, ‘97년 11월 24일 백서 3-2, 492쪽 )

12월 4일 개편된 이사진은 민주적인 인사 3인, 중립적인 인사 1인, 친 재단성향 인사 3인으로 구성되었다. 구세력은 여전히 이사회에 포진하고 있었으며 대학은 이들 수중에 있었다. 박원국 전 이사장은 잠시 기가 꺾였을 뿐 총학생회의 주장처럼 완전히 백기 투항한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버텨 이사 3인을 확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박원국 전 이사장의 교육부에 대한 적개심은 대단했다.

교육부의 덕성학원에 대한 압박과 후임이사 문제로 약 두 달간 교육부와 실랑이하는 동안 격렬한 운동권의 악랄한 폭거로 덕성여대가 해방 대학 화 되고 무법 상태가 된 학원의 안정을 위해 교육부가 추천한 3인의 이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나 본인과 이사회의 자유의사는 아니었음. 그간 교육부는 불법한 분규중심세력이며 임의단체인 교수협의회와 이사선임에 대하여 협의하여 사학법인의 독립성과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고 사학법인의 정통성을 침해하였음. 또한 교육부의 이와 같은 행위는 국가의 법질서와 학원의 질서를 보호하여야 할 교육부에서 반대로 반국가단체인 한총련 중심의 운동권세력을 지원하여 정통성이 있는 덕성학원을 보호하지 않고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 대한 반국가적 탈법행위를 하였고 감독청으로서의 의무를 배임하는 행위를 하였음.
(박원국, [덕성여대분규에 따른 이문영 이사장 등 이사진 선임 경위] 1999.10.14)

  학생들은 구세력의 저항이 여전히 만만치 않음을 강의실에서 느낄 수 있었다.

  12월 8일(월), 학생들이 68일간의 수업거부 투쟁을 접고 마침내 수업에 복귀하였다. 이번에는 그동안 강의를 진행해왔던 교수들이 보강을 못해주겠다며 반발하였다. 학생들은 우리의 수업권 요구는 정당하다며, 강의를 거부하는 교수들의 입장을 반박하였다.


총파업 기간 중에 수업을 들어간 사람이 소수이건 다수이건 그게 학생회 간부이건 아니건 그건 상관없다. 주요한 건 총파업 기간 중의 수업들은 무효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수업거부를 했었던가에 대해 각자가 올바르게 정리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그건 누군가가 주입시켜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권리를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총파업을 접고 수업에 들어가니 많은 것들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울지 모른다. 게다가 더욱 기막힌 건 우리를 상대로 아주 보란 듯이 학점을 가지고 협박과 위협을 가하시는 교수님이 계시다는 것…. 우리는 이에 대해 당당히 우리의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학생들을 상대로 아직까지도 협박을 공개적으로 가하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 우리들의 잘못도 묵과할 수 없다. 왜 협박을 받는가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말이다.

한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을 모이면 커질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불이익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침묵으로만 대응해서는 안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수업복귀가 아니라 수업투쟁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것이 많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학원의 주인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강의 시간에 어떤 부당한 대우나 성적에 관련한 협박을 받는 경우, 혼자서 침묵할 것이 아니라 과단위로 학부단위로 그러한 사례들을 모아내어 더 큰 피해를 막아야한다. 덕성인 자신의 권리 찾기는 민주동산에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덕성의 주인으로 올바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목소리로 말이다. 아직 끝난 것은 없다.

지금의 침묵들은 금이 아니다. ‘똥’이다. /공부들 열심히 하시구요, 날씨도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 투덜투덜(97.12.10 GIOANN)


교수들은 박원국 전 이사장의 집요함을 이사회 개최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알았다. 12월 12일 신임 이사진들이 제 1차 이사회를 열어, 덕성학원 새 이사장으로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대 민교협 회장이었던 김계수 교수를 이사장으로 선출하였다. 첫 이사회가 롯데호텔 “메트로폴리탄”에서 개최되는 날, 박원국 전 이사장이 롯데호텔 옆방에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박원국 씨는 새로 선출된 이사장과 이사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다. 이 자리에서 박원국 씨는 권순경 총장직무대리를 소개하며, 자신은 개혁을 하려다 실패하였으며 재정 비리는 없었음을 거듭 강조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교협 교수들이 몹시 분개하였다.

우리 교수들은 신임 이사장과 이사들의 처신에 대해 분노에 가까운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학사행정에의 지나친 간여로 인해 교육부로부터 해임당한, 따라서 학교법인 덕성학원의 전임 관리자일 뿐 이제 덕성학원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박원국씨가 신임 관리자인 김계수 이사장 이하 이사들과 회동했다는 사실을 우리 교수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신임 김계수 이사장은 특히 이 점에 대해 분명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

신임 이사진들은 12월 12일 제 1차 이사회를 열어 김계수 전 외대교수를 이사장으로 선출하고 12월 22일 다시 모여 총장 선출 문제에 대한 원칙을 논의하기로 하였다.

총장선출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앞에 두고 험난했던 1997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교수신문이 교수재임용문제 불씨로 9개월 간 지속된 덕성여대 사태를 1997년 교수사회의 주요 사건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였다.


<사진 10>1997 되돌아본 교수사회의 사건들 (교수신문 127호, 12월 22일 백서 3-2, 506쪽)

1997년 12월의 끝자락. 한국사회의 격변만큼이나 교수사회에도 중대한 사건과 변화가 있었다. 대학 간 경쟁 협력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대학교육을 시장의 관점에서 보려는 움직임이 강화됐다. 이 같은 현상은 교수임용에 학력파괴를 적용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적체된 인적자원을 적실성 있게 활용하기 위한 계약제교수채용 도입, 교수업적평가제를 둘러싼 진통, 사학법인 이사장의 취임승인취소까지 이어진 덕성여대 한상권 교수 문제 등 유난히 굵직한 사안이 많은 해였다.